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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직업인이라 해서 다 국악 좋아하고 전력을 다해 국악 발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니며..
상당수 국악 기관·학교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실은 국악 애정 별로 없이 대다수 시간 양악 듣고 다른 분야에 흥미와 힘을 쏟고
심지어 일제 향수에 젖어 흥이 나면 일본 군가를 즐겨 부르는 이도 있으며..
황학동에서 반세기 가까이 음반가게 운영하시는 사장님 왈
"나 사실 음악 몰라. 오래 음반 다루다 보니 많이 보던 건가, 못보던 건가로 표지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희소성, 값을 매겨서 장사해.
근데 언론이나 손님들은 내가 엄청난 음악 대가인줄 알어. 아니라 하면 겸손하다고 더 난리네. 미쳐 아주."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한국에 봉사 활동 왔다가 우연히 판소리 북을 배우게 된 어느 재미교포 드러머는
한국말이 서툴어서 얼씨구 추임새를 잘못 알아 듣고 계속 '을지로'라 하였다가 지적을 받고 고심 끝에 과묵한 고수가 되었으며..
국악 애호가 아드님이 군생활 중에 안부 메시지를 모친에게 보내왔는데 막내 졸병이였다가 후임이 들어와서 이제 고생에서 탈출했다는 문자였고..
그 모친은 말로만 듣던 탈영을 한 것으로 보고 사방으로 실성 자탄 탈진하셨다가 오인 사실 알고 겨우 진정되셨다 하며..
(2019년 9월 28일 국악음반박물관 트위터 노재명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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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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