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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음반박물관에서 느껴보는 삶 & 풍류(3) 지성보다 감성
줄서서 어렵게 기차 좌석표를 샀지만
서서 가는 노약자에게 망설임없이 자리를 내주는 마음.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맛이 하나도 없지만
주인이 상처받을까봐 남기지 못하고 다 먹은 후
맛있었다고 미소 보내는 마음.
술 많이 먹은 다음날 아침 정성껏 차려진 카레라이스를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먹으며 해장하는 마음.
혹은 해장하려 아침 식탁에 앉았는데 돈까스가 상에 놓여져 있을지라도
가려운 살갓을 아스팔트에 긁으며 시원해 하듯 쓰린 위장에 돈까스 표면을 밀어넣는 넉넉한 마음.
바닷가 가서 회 먹고 오자 지금 출발할 수 있냐는 친구의 즉흥성에
같이 에드립 하모니 빵빵하게 더 오바하여 박자 맞춰주는 마음.
과음으로 오바이트한 친구의 분비물을
사랑스러운 아기 어루듯이 맨손으로 훓어내며
친구의 부끄러움을 감싸 안아주는 마음.
힘있고 성공한 사람보다 어린 학생, 약자에게
좋은 것을 먼저 주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더 갖추는 마음.
연주하다 거문고 안족이 부러져도
공연이 중단되지 않고 능숙하게 연주하는 명인...
따뜻한 추임새 보내주는 관객의 마음.
쓸쓸하여 기대고 싶은데 아무리 전화해도 통화가 안되는 친구...
그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전화해주는 친구 동생의 마음.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자신의 체면과 안면 근육이 폭파되고 완전히 무너져 내릴지라도
친가족 같은 후배의 청을 자기 일처럼 알아봐주는 마음.
과음으로 인해 거실에 쉬야를 해버리신 아버지의 허물을 없애드리기 위해
새벽에 바닥을 걸레질하고 향수 뿌려 냄새를 희석시키는 아들의 마음.
아침에 눈치채고 고마워 미소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
대낮에 실수로 켜놓은 쌍라이트 끄시라고
엄지 검지 둥그렇게 모아 좌우로 돌리며
신호 보내주는 앞차 운전사의 마음.
학생이 주인인 학교 분위기를 일구고
쉬는 시간마다 잠바 입고 화단을 가꾸어 학생들은 정원사이신 줄 알았던...
입학식과 졸업식 때 단 30초씩 얼굴을 드러내셨던 교장선생님의 마음.
조명 받는 자리, 박수 받는 위치, 깨끗하고 멋진 좌석, 맛있고 가장 질 좋은 건 후배에게 다 주고
그 자신은 가장 힘든 일 도맡아 하고 늘 음지에서 무거운 짐 나르고 박수 받는 후배를 뿌듯해 하고
다 양보하고 가장 불편한 곳에서 잠들고 모두들 외면하는 음식만 먹던 선배의 마음.
가사가 어쩌니 이면이 어떠니 이론만 따지는 잔소리에 아랑곳 않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무한 감성파 판소리를 추구한 명창 임방울의 마음.
아무리 바빠도 문상시 항상 밤을 지새우며 유가족을 위로해 주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푸념을 한없이 다 들어주고
전화를 먼저 끊는 법이 없는 따뜻한 마음.
억울한 일 겪은 하소연을 듣고
당사자보다 더 격분하여 전화통이 부서질 듯 흥분해 주는...
언제나 편을 들어주는 의형제 형님의 마음.
작은 선물에도 안구에 습기가 차고 몇 곱절 보답을 해주고
단 한번도 후배가 돈 계산을 못하게끔 하고 그 자신이 후배에게 뜯어먹히는 걸 즐겁게 여기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썩은 미소가 나온 별로 우습지 않은 재담에도 강력한 웃음을 폭발해 주는 선배의 마음.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도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단 한번도 잘못했다고 한 적 없는데
사랑하는 여인에게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의 마음.
한국녀와의 결혼을 포기한 노총각 친구 국제중매 좀 성사시켜 보려고 평소 알고 지내던 루마니아 친구에게 인사를 시켰는데
노총각 친구가 이력서를 내밀려고 하자 루마니아 친구 왈.. 그런 거 안주셔도 여자친구 소개해줄 수 있구요
우린 그런 거 안보구요 사람의 말과 눈만 보면 됩니다... 했던 그 마음. 이게 얼마만에 들어본 멘트인가 했던 노총각 친구의 마음.
자신은 사회적으로 무진장 천대받으면서도
교수가 되고자 논문 쓰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뭣 땜에 왔는지 따지지도 않고
늘 순박한 미소 보이며 온화하고 자상하게 자신이 아는 걸 다 꺼내주셨던 큰 무당들의 마음.
영산재 중간에 백발의 80여세 스님들 세분이 담소를 나누는데
마치 유치원생 같이 천진난만한 대화가 오간다.
저렇게 늙었으면 하는 마음.
사이비종교이거늘 친구가 좋아서 유혹에 그냥 흔쾌히 따라가고
새벽 1시에 흰한복 입으라 해서 입고 절하라고 해서 하고 명상하라고 해서 하고
그래도 지금까지 우정에 금가지 않고 변함없이 우직한 일관된 마음.
내 취향의 영화만 개봉하면 전화 해주는 친구 동생.
단 세명이 영화 보는데 군것질을 8만원어치 사오는 친구 동생.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데 막대한 양의 군것질 다 먹을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친구 동생의 마음.
어느 누가 가도 해주지 않는 계란 얹은 김치볶음밥을 나만 가면 해주는 친구 동생.
자태는 조폭 깍두기 어깨 오야봉인데 감성은 국민여동생이라는 거.
마치 밥알 하나하나에 색칠한 것처럼 밥알마다 섬세한 양념 코팅이 되어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무후무한 김치볶음밥을 해주는 친구 남동생의 마음.
기차 옆자리에 우연히 같이 타신 어느 하회탈 미소의 할머니가
내릴 때까지 끝도 없이 주시던 떡, 귤, 물, 삶은 계란과 소금.
어릴 때 아이스크림이 뭔지도 모르고 손자 주겠다고 시장에서부터 휴지에 꽁꽁 싸서 버스 타고 다 녹은 걸 가져다 주신 친할머니의 마음.
소풍가는 아들의 가방에 간식을 넣는데
낱개로 포장된 과자마다 비닐 가장자리를 가위로 살짝 잘라
나중에 뜯어 먹기 좋게 해주시던 어머니의 마음.
같이 음악 듣던 친구들은 공부 안하고 뻘짓한다고
음반 다 불태워지고 악기 박살나고 머리에 고속도로 뚫리고 했는데
집에 음악은 좀 흘러야지 하며 고가의 오디오 세트를 사다 세팅해 주시던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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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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