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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월간 미르 2005년 12월호 통권 192호](서울:국립극장) 22~2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세계적인 판소리 스타 안숙선 명창의 적벽가 공연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인정받은 판소리가 근래 세계 도처의 한류 열풍을 타고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다. 국외로 수출된 영화 ‘서편제’에 삽입된 그의 소리, 그리고 해외 순회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강렬한 소리는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날 판소리계에서 안숙선 만한 성음, 학습, 공력, 인물, 호소력을 두루 갖춘 여자 명창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과거에도 이 만한 여자 명창은 보기 드물었다.
안숙선(安淑善)은 1949년 음력 6월 3일 전북 남원군 산동면 대상리 웃점마을에서 태어났다. 안숙선의 외가(강씨 집안)에는 유능한 전통 예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대금산조 인간문화재 강백천, 판소리 인간문화재 강도근, 일제 때의 가야금 명인 강석춘은 그의 외삼촌이고 가야금 명인 강순영은 그의 막내이모이며 일제 때 이름을 떨친 가야금 명인 강태홍도 안숙선의 친척뻘 된다. 그리고 가야금 연주자 안옥선은 그의 친동생이고 판소리 명창 강옥련, 강산홍, 강초운, 가야금 연주자 강정열은 안숙선과 사촌간이다.
안숙선의 남다른 예술성은 이러한 집안 내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이 안숙선에게 거는 국악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고 그런 만큼 그는 학습 초기에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안숙선의 재능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그의 이모 강순영이었고 안숙선이 일찍부터 국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이모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안숙선은 9세부터 수년간 그 이모에게서 가야금 풍류 48장, 가야금산조와 병창, 무용을 배우면서 전통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안숙선은 이모 강순영의 소개로 주광덕 문하에 들어가서 단가와 판소리를 사사했고 김영운에게 단가를 배웠다. 그리고 12～18세 때 외삼촌인 강도근한테 판소리를 익혔다. 그러다가 19세 때 서울로 가서 수년간 김소희 문하에서 단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학습했고 박귀희를 찾아가서 가야금병창을 공부했다.
그리고 안숙선은 정권진에게 심청가를, 정광수에게 단가와 수궁가, 적벽가(삼고초려), 또 성우향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사사했고 함동정월, 원옥화, 김죽파, 김일구 문하에서는 가야금산조를 익혔다.
그런 안숙선 명창이 이번달에 부르기에 무척 드센 적벽가를 모처럼 공연하게 된다.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시리즈 공연 기획진의 말에 의하면 금년 하반기 국립극장 주최 판소리 다섯바탕 공연 섭외시 소리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적벽가를 선뜻 하려는 명창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있는 안숙선 명창이 그 난해한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게 된 것이다.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본 기사의 인터뷰에 응한 그녀의 외소한 체구 어디에서 과연 그렇게 강인한 힘이 늘 분출되는지 신비롭고도 감탄스럽다.
안숙선 명창은 1986년부터 거의 매년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에 올랐고 지금까지 국립극장에서 가장 판소리 완창을 많이 한 명창으로 꼽힌다.
1986년 그가 적벽가를 완창할 때만 해도 세인들은 여자가 무슨 적벽가냐고 하며 적벽가는 여자 명창이 행하기 거의 불가능한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오늘날 여자 명창들이 적벽가를 자연스럽게 완창까지 하게 된 데는 일찍이 적벽가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른 안숙선 명창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안숙선의 적벽가 스승 박봉술 명창은 1986년 안숙선 적벽가 공연 소식을 듣고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허허 거참 숙선이가 소리를 참말로 맛있게 잘혀. 야무지단 말이여. 내 이번에 잊지 않고 꼭 가서 봐야제.” 필자가 알기로 박봉술이 가슴에서 우러 나와서 그리 강하게 제자를 칭찬한 일은 그 언급이 거의 유일하다.
과거에 필자도 몇차례 안숙선 명창의 적벽가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남자들의 적벽가 하고는 또다른 맛, 새로운 시도, 미개척 영역에 도달한 맹렬 탐험가를 대하는 흥분과 기쁨을 가졌었다.
안숙선 명창은 1986년, 1992년, 2000년, 그리고 이번달에 국립극장에서 네 번째 적벽가 공연을 하는 것이다.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지정된 2003년 안숙선 명창은 일년에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완창을 무려 세차례 행했다. 미국에서 춘향가, 한국 국립극장에서 흥보가, 영국에서 춘향가를 최선의 열창으로 완창하여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일조하고 또 소리로서 그 보람과 기쁨을 드러냈다.
그리 폭발적인 완창 마라톤을 세차례 뛰고는 지난해 국립극장 완창을 1년 쉬었고 올해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 공연을 하는 것이니 충분히 힘이 비축되었다 할 것이고 그 역시 지금쯤 소리 한번 후련하게 해보고 싶을 터이다.
더구나 활 쏘고 불 지르고 장수들이 기세등등하게 싸우는 적벽가이니 그의 목도 사뭇 시원해 하리라. 그리고 소리를 구기지 않고 빨래줄처럼 반듯이 펴서 동편제 통성으로 내지를 그의 소리로 귀명창들도 모처럼 귀가 호강을 하리라.
적벽가의 경우 그가 5년만에 하는 것이며 그의 적벽가를 또 언제 들을 수 있게 될지 기약이 없다. 그러하니 이번 안숙선 명창의 적벽가를 받아들이는 귀명창들의 설레임과 기쁨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가장 위축되고 잘 불려지지 않고 있는 적벽가를 제대로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 할 수 있다.
안숙선이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지만 이 적벽가 만큼은 박봉술제이기에 여타 안숙선의 소리와 달리 동편제가 특별히 두드러지는 특색이 있다. 또한 안숙선 명창이 점차 소리를 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박봉술 명창의 어마어마한 공력, 원근감을 잘 그려내는 창법과 특유의 멋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으니 박봉술제 소리 발표는 각별하게 여겨진다. 안숙선은 박봉술 문하에서 적벽가와 흥보가를 학습했는데 그 외 소리까지 더 많이 학습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무척 아쉽다고 말한다.
안숙선이 어려서 강도근에게 배운 적벽가는 나중에 익힌 박봉술제 적벽가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안숙선은 독특하게 어린 시절부터 적벽가를 많이 공부한 편인데 젊어서는 적벽가가 지루하고 그 깊은 멋을 잘 못느꼈으나 지금은 이 적벽가가 할수록 진한 맛이 우러 나온다고 말한다.
안숙선은 적벽가를 부르면서 광활하고 거센 전쟁 광경과 억센 장수들의 거동을 여자 목소리로서 표현하기가 이따금 버거울 때가 있고 사설 또한 일반적인 이야기 전개가 아니고 특수한 용어와 내용이 들어있어서 아차 하면 잊기가 쉽다고 난해함을 술회했다.
안숙선은 적벽가 가운데 삼고초려, 그리고 영웅 호걸들의 계략이 표현된 진영을 구축하고 장수를 배치하는 대목, 적벽대전,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 다니는 조조의 처량한 신세를 그리는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 하는 대목을 즐겨 부른다고 한다. 이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 대목은 그의 스승 박봉술도 생전에 가장 애창했던 소리이다.
안숙선은 이같은 적벽가의 주요 눈대목들을 이어서 2시간 가량 이번달에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고수는 장종민과 이태백이 절반씩 나누어 북반주를 담당하게 된다.
인간문화재 안숙선은 젊어서 세운 목표를 이제 거의 다 이루었고 이제 분주한 세속적인 일들을 좀 줄이고 차분히 과거에 스승들에게 배운 소리를 좀더 면밀히 되새겨 보고 조용히 소리 연구에 몰두하며 신작국악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악을 대중화 하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그는 박봉술 등의 스승과 옛 명창들의 소리 녹음을 틈틈이 듣고 있다고 한다.
9세 때 판소리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반세기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온 56세 안숙선 명창의 이번 적벽가 공연은 소리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기를 꿈꾸는 그의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시점에 접하게 되는 소리이니 만큼 매우 주목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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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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