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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음파 세계대전’ 제4부 <허허>
글,그림/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
“음식을 왜 그렇게 짜게 해!
응, 짰어. 맛은 있는데 짜.
그리구 총각김치 좀 더 보내줘. 거의 다 먹었어.
고마워 엄마!
글쎄 마땅한 총각이 없네...”
길거리를 지나가는 어떤 아가씨가 휴대폰을 부여잡고 이렇듯 말을 하고
옆을 지나치다 그 장면을 목격한 20세기 한국의 마지막 기인 이자균
황소 눈알 부릅뜨고 혀를 톡톡 내찬다.
이날도 옛 국악 명인명창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는 이자균.
아침 일찍 한 동사무소에 들려 특유의 순박한 웃음과 화끈한 손짓, 발짓 동작으로
공무원을 설득하여 산더미 같은 호적을 뒤져 한국 춤과 국악 장단의 대가 한성준의
호적을 찾았다.
도와준 공무원에게 얼굴이 터질 듯한 미소 씨익 한번 웃어주고 손이 부서져라
악수를 해주고 나오는 이자균.
그리고 곧바로 송동숙 일행의 동해안 별신굿을 녹음하러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려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응, 좀 도와주라.
내가 나 배부르자고 이러냐?
그래 좀 부쳐주면 내가 굿판에 가서 좋은 거 많이 기록해 가지고 올게.
응, 그래 친구 고마우이.”
휴대폰 없다, 승용차 없다, 가진 돈 없다, 30대지만 아직 미혼이다. 이자균! 머릿속이
오로지 국악뿐이다. 친구, 선후배들이 조금씩 부쳐 오는 후원금으로 국악 조사 기록을
하러 다닌다.
몸에 안좋다는 술과 담배를 지구상에서 모두 없애 버리려는 듯 한없이 삼켜 버린다. 술집
천정 먼지가 떨어져 내릴 정도로 빽소리 질러가며 버럭 신공으로 일빽일배 하며 국악계의
온갖 지저분한 덩어리들을 비판하는 이자균! 가는 곳마다 술을 초토화시키는 이자균!
그래도 자신의 몸은 누구보다 아끼고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다. 이자균의 방안에는 최신
의학 정보 신문 기사들이 사방에 붙어있다.
어쩌다 원고료라도 받으면 그간 신세진 거 갚는다고 지인들에게 전화하여
없는 돈에 술 사고 좁은 방안에 들여놓을 책장도 장만하고 그런다.
난장판 상태의 방안에 새 책장 하나 들여놓고 흐뭇해 하는 이자균.
그러다가 책장에서 옛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꺼내 앞표지를 바라보며 실실 웃는다.
"쩝, 지금은 뉘 댁 색시로 갔을랴나... 아이구, 곱기두 허시구랴."
미혼이지만 여자에 대한 관심은 굉장하다. 릴레이식으로 지금까지 아가씨는
끊이지 않고 곁에 있어 왔다. 고자 아닌 이상 열정적인 사나이 여자에게 흥미도
많고 열렬한 법.
이자균 술 마시고 귀가할라치면 대개 아무도 왕래 없는 새벽이라 동네 강아지들만이
그를 반길 뿐이다. 장난끼가 발동한 기인 이자균 왕왕 짖어대는 동네 여기저기
개들과 으르렁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존심을 팔지 않고 국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누구보다 강렬하고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일본의 관심과 탐욕을 경계하며 열변을 토하는 이자균!
1980년대부터 한국의 전국을 누비며 굿 음악 등 각종 민속음악을 비디오에 담았던 한
방송국 프로듀서는 그 무렵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귀중한 그 국악 비디오 자료들을 일본의
한 대학 연구소에다가 고가에 팔아 넘겼다.
1995년 4월 17일 김소희 명창이 타계하자 한국의 모든 언론이 일시에 뜨거워지고
국립전통음악원은 여론에 편승해 김소희 특별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만 치고
그때뿐이다.
원로 국악인들이 평생 지니고 있던 여러 자료를 국립전통음악원에 기증하겠다고 해도
반응은 제발 그런 것 좀 기증하지 말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연말 재무 조사 때 숫자 맞추는
게 귀찮아서이다.
결국 마지 못해 기증받고도 나 몰라라 땅바닥에 방치해 두거나 어두운 창고에 마구 넣어
둔다. 그런 속사정을 잘 아는, 그곳에 오래 근무한 고령의 한 인간문화재는 결국 자신이
평생 간직했던 소중한 의상, 사진, 악기, 서적 등을 모두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 기증한다.
웬만하면 자신이 평생 몸 담은 국립전통음악원이고 보관 수준이 보통만 되도 여기에 증정을
했을 터이나 어째 자료를 대하는 태도가 도무지 못믿어웠던 것이다.
그런 국립전통음악원, 문화여행부, 국립인간문화재연구소, 각종 방송국 등 한국의 소위
권력 문화기관에서 내는 국악 서적이나 음반은 웬만하면 다 비매품이다. 반드시 기필코 꼭
만들어야만 하는 돈은 나라에 책정이 되어 있으니 아니 제작하면 공무원이 문책이라 만들긴
만들되 웬만해선 시민들이 구하기 아주 어렵게, 은밀하게 만들고 창고에서 썩더라도 절대로
쉽게 내주지 않는다. 꼭 필요한 사람에겐 진정 약 올리는 일이다. 그런 자료를 구하러
천하의 어느 누가 찾아가도 주냐 마냐는 전적으로 담당 공무원의 심보에 달려있다.
그런 음반과 서적이 나온지 아무도 몰라도 좋다, 어느 누구도 안들어도 좋다, 모두
창고에서 잠자도 좋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재고가 창고에 너무 쌓여 문책을 당할 것
같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모두 일시에 방출되어도 좋다, 담당 공무원 월급 챙기고 자리
보존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귀명창도 이제 별로 없다, 누구한테 인간문화재 자격 줘도 맞냐 안맞냐 느끼는 대중 없다,
인맥과 돈이면 된다, 한국전통음악 방송? 아무도 안들어도 좋다는 식이다,
오직 몇몇 사람 밥그릇만 잘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첨단무기 시대에 육군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도 되지만 단 한사람의 별을 위해 수많은
부하가 악세사리로 필요하듯이, 단 한사람의 기관장을 위해 으리으리한 건물과 직원들이
괜실히 필요하듯이 국악계가 그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악을 듣는 애호가보다 국악인이 더 많고 국악 교수 한사람의 탄생을 위해 국악과가
만들어지고 수요와 아무런 상관없이 지휘자 한사람의 탄생을 위해 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국악원일지라도 초대형 건물은 만들어진다. 단 한사람 기관장의
탄생을 위해서 무수히 돈이 투입된다. 콘텐츠는 없다. 필요성도 못느낀다.
오직 화려한 껍데기뿐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국악 서적과 음반, 공연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책자나 관공소의
민방위 훈련, 국군의 날 행사와 별다름이 없다. 아무런 재미도 유발시키지 못한다.
공무원들 월급 타기 위해 그저 마지 못해 행할 뿐이다.
오히려 사이비종교 집단이 운영하는 음반회사에서 자신들의 더러움을 위장하기 위해,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제작하는 국악 음반이 더 알차다. 국악 관계기관의 무사안일한
작업보다 외려 그런 이상한 회사의 처절한 몸부림이 더 따뜻해 보인다.
한국의 주요 국악 관계기관에서 행한 모든 성과를 합해도 이보형 국악학자 한사람이 쌓은
업적만도 못한 1990년대 한국 사회, 주요 국악계는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허망히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세계 강대국들의 음파 연구, 세계민속음악 탐구, 한국전통음악 관찰은 계속되고
괄목할 만한 연구 결과들이 속속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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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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