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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음파 세계대전’ 제2부 <이별>
글,그림/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
“1981년 12월 20일 하오 9시 40분께 서울 성북구 정릉2동 223의9 삼락아파트 B동 102호
안향련씨(36, 여, 국악인) 집 안방에서 안씨가 극약을 마시고 숨져 있는 것을 친지 김영철씨
(39, 화가)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에 의하면 이날 자신이 갖고 있던 안씨집 현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씨가
두 손만 내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져 있었고 머리맡에는 빈약병 1개와 유서 6장이
남아있었다는 것.
19년전 목포에 있는 임모씨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 헤어진 뒤 국악인으로 생활해온 안씨는
2년 전부터 김씨와 가까이 지내왔는데 최근 가정을 가진 김씨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과
지병인 위궤양을 비관해 왔다.
판소리 춘향전의 젊은 국악인인 안씨는 인간문화재 김소희씨 밑에서 수여받았으며
국악계의 유망주였었다.”
1981년 12월 2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안향련 명창 타계를 보도한 신문 기사. 그의 스승
박봉술이 ‘30대 여국악인 자살’이라는 제목에 놀란다. 문장을 허겁지겁 살펴 보다가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간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신문을 적신다.
전신의 모든 기가 혀와 입술 근육에 쏠린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안향련의 피부 감촉이
어땠느니, 그녀는 물기가 많았다둥... 아님 말고 식으로 얘기한다.
그녀의 출중한 미모를 둘러싼 억측과 말도 안되는 험담, 그녀를 향한 짝사랑 외즐거움과
연정을 넘어선 포로노에 가까운 상상이 합해져 안향련은 사망할 즈음 일부 말발 9단짜리
변태들에게 섹스 심볼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결코 몸을 함부로 한 여인이 아니었다. 단란한 가정 생활을 그토록 갈망하였건만
현실의 높은 장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어여쁘고 인정있고 요리 잘하고 바느질 잘하고 소리 잘하고 못하는 것이 거의 없는
그녀였으나 여자가 국악을 하면 기생 취급하는 당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박봉술 이후 판소리계를 이끌어 갈
재목이었으나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애정 문제도 그렇고 또한 젊은 나이에 지닌 특출난 실력을 시기하는 무리의 견제도
그녀를 고단하게 하였다. 그녀가 인간문화재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세력,
험담으로 그녀를 깎아 내리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타계 직전 국악계를 벗어나 대중음악계로의 진출을 몇차례 시도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명창이......”
“안향련이......”
“행년이가......”
“언니가...”
“동상이...”
“가가...”
“엄마가...”
안향련의 자살 소식을 접한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모이면 제각각 안향련과 얽힌 뜨거운 추억 하나씩을 꺼내 놓았다.
그녀를 아는 모든 이의 가슴에 그녀는 그렇게 뜨거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불같은 사람으로, 영원한 판소리 공주로, 미완의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도 젊은 판소리 명창들의 요절이 종종 있었다. 허나 그땐 워낙
재능있는 소리꾼의 숫자가 많아서 몇몇 젊은 소리꾼들의 요절이 판소리계 전반에 큰 타격이
되지 않았는데 국악 하는 이도 많지 않고 국악을 알아주는 이도 적었던 1981년 천재
안향련의 죽음은 그 충격과 허망함이 실로 컸다.
같은 시기 일본 음악치료협회 연구소에서는 세계 각국의 음악을 가지고 사람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 중이다.
한국의 판소리, 산조, 궁중음악, 가곡, 범패, 민요 <자장가> 녹음을 자원 선발된
임산부들에게 들려주고 태아의 반응을 관찰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애기 재와도라
느네 애기 재와주마
우리 애기 아니 재우민
총총 배로 걸려당
앞밧더레 던지곡
뒷밧더레 던지켜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웡이자랑.”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장전리 고승열 할머니의 <자장가>가 연구실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임산부 3명이 나란히 잠이 들어있다. 만삭의 태아들 맥박도 고르고 모두 고요히
잠 들어있다.
“(왜 우리 일본 음악은 모든 게 한국만 못하지... 어흑~)”
일본 음악치료협회 연구소 수석연구원 벤또 까무라 상이 임산부들이 누워있는 실험실
밖에서 유리 관찰창을 통해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까 먹다가 되내인다. 김치 한점 입에 넣고
맛나게 씹는다.
“음, 역시 김치...”
충분한 임상 실험 결과는 아직 안나온 상태지만 초기의 몇가지 연구 데이터로선 한국의
전통음악이 전세계 음악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좋고 그 우수성이 이 일본 음악치료협회
연구소에서 일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선 고고장을 중심으로 하여 외국의 팝송 댄스음악이 크게 유행 중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 신중현도 그룹 ‘뮤직 파워’를 이끌면서 시류에 맞춰 댄스음악을 선보이는데
그는 국악에 기반을 둔 한국적인 댄스음악을 발표하는 천재성을 드러내고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신중현과 뮤직 파워의 음악은 그 자체를 반주 삼아 탈춤을 추어도 좋을 만큼 한국적이며
그러면서도 국악을 모르는 당대 젊은이들한테도 폭발적인 인기를 획득했다.
흡사 한복이기도 하면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사이키델릭 의상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사자 머리를 휘날리며 동살풀이 가락을 천부적인 벤딩과 특유의 3,3 주법으로 전기기타에
얹은 신중현.
중모리가 뭔지, 중중모리 장단이 뭔지 용어나 이론적으로는 모르나 어려서 농촌에서
자라면서 각설이타령, 농요. 풍물, 전래동요를 듣고 자연스레 흥얼거리며 그 가락들이 몸에 절은
그는 무위자연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작곡을 하면 한국적인 리듬과 곡조가 절로 나온다.
<미인>이 그러하고 <너만 보면>이 그렇고 <산아 강아>, <할 말도 없지만>, <나도 몰래>,
<마부타령>, <전기기타산조>가 그러하다. <님은 먼 곳에>는 또 어떠한가.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훗날 신중현, 그리고 판소리와의 인연은 전혀 예측치 못하고 1981년 안향련 명창이 자살한
무렵 텔레비전에서 <님은 먼 곳에>를 비롯해서 <도라지타령>, <아리랑>을 연주하는 신중현과
뮤직 파워를 바라다 보는 초등학교 6학년 노재명.
1979년 동편제 대가 박록주 작고, 이후 1983년에는 서편제 여왕 김여란과 고음 통성의 명창
박초월 타계, 1986년 저음 단전성의 거목 정권진 별세와 사물놀이 거장 김용배 자살.
그리고 일류 귀명창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판소리의 마지막 황금기 1970년대가 지나고 1981년 안향련의 사망 전후로
국악이 점차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6년 서울 배재고등학교 2학년 노재명, 청계천8가 황학동 도깨비시장에 외국 헤비메틀
엘피 복제 음반 ‘빽판’을 사러갔다가 호기심에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엘피 음반을 바라다 본다.
“음......
(한번 들어볼까...)
쩝~
(그냥 가자...)
빽판 2장 이거 얼마에요?”
“천이백원!”
“천원만......”
“안돼.”
“디오(Dio) 그룹 음반 또 나오면 쟁여놔 주세요.”
“어이~”
다음주에 가도 임방울의 <쑥대머리> 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그 다음주에 가도 마찬가지.
일주일 동안 용돈을 모아 또 청계천으로 향하는 노재명. 이날따라 빽판이 살 만한 게
없다. 아직도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 마구 쳐박혀 있다.
“(저거나......) 음.”
비싸게 부를까봐 연막을 친다. 다른 허접해 보이는 국악 판 하나 쥐고 주인에게 묻는다.
“얼마에요?”
"그런 거는 왜..."
"걍~"
“100원!”
“음...”
뒤돌아 가게 밖으로 나가려다가 고개 뒤로 돌려 이번엔 임방울의 <쑥대머리> 판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럼 저건...”
“100원!”
알판을 꺼내 음질 상태를 살펴보는 노재명.
“싸줘요.”
또 용돈 모아 판 사러 간 돈 차비까지 다 쓰고 청계천에서 잠실 집까지 걸어가는 노재명.
이때 어떤 국악 명반도 100~1000원. 아무리 초특급 판소리 명창이 공연을 해도 텅비는
관중석.
대형극장에서 10여명이 판소리 관람을 하기도 하고 이 무렵 한국보다 외국에서 국악 음반이
더 많이 제작되고 한국에서 중고판이 아닌 정품 새 음반으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국악 음반은
고작 10여종.
방송도 누가 혹여 들을까 봐서, 한 사람이라도 들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북한 간첩들한테
몰래 소리 신호 보내듯이 모두가 잠이 든 밤 12시 넘어, 혹은 새벽 5시에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시간대에 주로 국악이 나오고.
“아~ 돈 주고 산 게 아까워서 열심히 들어서 그런가 웬만하네.”
임방울 <쑥대머리> 듣고 탄력받은 노재명 또다른 임방울 판이 혹시 있나 서울의 레코드
가게라는 데는 한번 다 들어가 보자 결심한다. 주말마다 서울 시내 구역을 나누어 뽕빨
행군을 하는 노재명.
“임방울 음반 있어요?”
“은방울 자매 노래요?”
“아니요 임! 방! 울!”
“모르겠네요. 그런 가수 건 없는 거 같은데...”
그리 한참 지내다가 나중엔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리는 반짝이는 은방울만 봐도
울컥하는 노재명.
1989년 대명창 박봉술이 세상을 떠났다. 10년 전인 1979년 박봉술 집에서 모여 밤새워
놀던 네 사람 가운데 박봉술, 정권진, 안향련이 세상을 떠났고 한승호만 쓸쓸히 남았다.
너무나 가난하여 생전 누구한테 10원 한 장 쓰지 못했던 박봉술. 그런 그가 김여란을
병 문안하러 가면서 통닭 두 마리를 사간 적이 있다. 박봉술로서는 한달 용돈이었으리라.
박봉술의 사정을 훤히 아는 김여란도 무척 고마워했을 터이고 저승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리라.
1980년대도 그렇게 영웅호걸들을 붙잡지 못하고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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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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