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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월간 미르 2005년 8월호 통권 188호](서울:국립극장) 26~29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판소리 공연
인간문화재 성창순 명창과 그 제자들의 심청가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귀명창들이 가장 많이 운집하는 완창 판소리의 중심지 국립극장에서 2005년 8월 뜻깊은 판소리 무대가 마련된다.
한국의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이자 유네스코 선정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인 판소리 분야의 인간문화재 성창순 명창과 그의 제자 이지선, 김태희, 김나영이 함께 심청가를 무대에 올린다.
이는 국립극장의 상설 판소리 공연 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것인데 20년 전통의 이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상설 무대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최장기 완창 시리즈 공연으로서 그간 판소리의 발전과 완창 문화 정착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이번 판소리 공연은 성창순 명창이 연로하여 홀로 완창하는 방식 대신에 제자들과 함께 심청가 중 <범피중류>와 같은 주요 눈대목을 나누어 부르거나 때론 다같이 소리하는 매우 입체적이고 독특한 형태로 진행될 계획이다.
이러한 공연 방식은 신진 소리꾼부터 원로 명창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색과 다채로운 소리 면모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감상거리가 되리라 본다.
홀로 몇 시간 판소리 완창을 하는 형태도 물론 나름의 매력과 장점이 있으나 본 공연과 같은 방식 또한 상당히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각양각색의 여러 성음을 골고루 음미할 수 있다는 점, 소리꾼 간에 자연스러운 경쟁 심리가 작용되어 보다 양질의 소리 기량을 접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더욱이 금년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소리 공부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성창순 명창과 그의 제자 이지선, 김태희, 김나영 일행이 비장한 마음을 먹고 입산하여 산속에서 혹독한 소리 수련, 산공부를 성공리에 마치고 하산하자마자 갖는 공연이니 만큼 무척 기대가 된다.
또한 고령의 인간문화재 정철호 명고수, 그리고 김청만 명인의 능숙한 북반주와 멋들어진 추임새도 청중들이 판소리의 아름다움에 마음껏 취할 수 있게끔 자상하게 인도할 것이다.
본 공연을 앞둔 성창순 명창과 그 제자들의 각오가 비범했다. 성창순 명창은 독창으로서 공연을 모두 자신이 감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제자들과 함께 이끌어가는 이번 공연에 대해 더 부담을 갖고 그래서 더욱 빈틈 없이 공연에 대비를 하였다.
우선은 애써 길러낸 제자를 어설프게 세상에 선보일 수 없는 노릇이며 그 책임감과 중압감은 제자들 당사자보다 스승인 성창순 명창이 더 크게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판소리 인재들을 공들여 가꾸고 귀명창들 앞에 공개하는 설레임과 자신감도 성창순 명창은 함께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성창순 명창 자신 또한 모처럼 무대에 서는 것인데 새롭고 진보된 모습을 보여주고 역시라는 찬사에 대해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성창순 명창이 어떤 사람인가. 인상과 소리에서도 느껴지듯 야무지고 다부지고 이 명창처럼 재주있고 노력하고 소리 욕심 많은 이도 드물다.
그의 스승들이 성창순을 가리켜 ‘소리 도둑’이라고 했듯이 녹음기도 없던 시절 소리를 한번 들으면 머리에, 가슴에 그대로 저장시키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부를 줄 아는 총기가 좋고 재능이 뛰어났다.
사람이 완벽할 수가 없고 누구나 단점 한가지는 있게 마련인데 예컨대 목이 좋으면 재주만 믿고 공력 쌓기에 소홀하거나 노력, 지구력, 근면, 성실하기는 하나 재능은 없거나 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성창순 명창 역시 천부적인 음악성,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노력, 비상한 머리를 지녔으나 판소리에서는 금기시 하는 성음이 불안하게 떨리는 목, 치명적인 발발성을 타고 났다.
허나 성창순 명창은 이러한 단점 단 한가지, 어려운 난관을 불굴의 의지와 엄청난 소리 연마, 그리고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잘 극복하였다.
이처럼 판소리, 한국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지나치게 곱기만 하여 촉촉함 하나 없이 바짝 말라 건조한 철성, 불안하게 떨리는 발발성과 같이 다소 안좋게 여긴 성음을 지녔어도 포기해야 하고 완전히 안된다 하는 것이 아니라 공력을 어떻게 들이느냐, 어떻게 자신의 개성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훌륭한 소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목은 좋은데 노력하는 성격을 타고 나지 못해 일찍이 반짝 두각을 나타냈다가 나중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명창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단 한가지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소리꾼이 무수히 많다.
성창순 명창은 그런 면에서 진정으로 득음한 대명창의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본 공연에서 불려질 심청가는 서편제로서 성창순이 정응민 명창 문하에서 배운 보성소리이다. 보성소리는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가운데 가장 인기있고 우아한, 기품있는 소리로 평가받고 있다.
보성소리라 함은 명창 정응민이 젊은 시절 여러 대가들한테 물려받은 고형의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평생을 연마하여 이루어낸 소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를 보성소리라 하는 것은 정응민이 일찍이 중앙무대 활동을 중단하고 전남 보성에 은거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이다.
정응민은 큰아버지인 정재근에게 박유전제 심청가·적벽가·수궁가 등을, 김찬업에게 김세종제 춘향가 등을 배웠다. 그리고 이동백과 송만갑에게도 소리를 배웠다. 이런 소리 내력을 가진 정응민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소리를 자신에게 맞게 고치고 집대성하여 보성소리를 탄생케 했다.
보성소리는 정응민 당대에는 대중적인 소리라기 보다는 아주 오랜 기간 극도로 귀가 잘 훈련된 극히 일부 귀명창들의 취향에 적합한 명품 소리, 귀족적인 방안소리였다. 만일 정응민이 최고 수준에 이른 그러한 어전 소리를 꼿꼿한 정신력으로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린 그런 소리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삶의 끝까지 중앙무대에 서서 시류의 변화에 적응하며 소리에 변화를 꾀한 송만갑의 말년 소리보다도 오히려 일찍 은거한 뒷세대 명창 정응민의 녹음이 더 고풍스럽고 어떤 면에선 정응민의 보성소리가 송만갑의 말년 소리보다 더 장중한 고형의 맛을 지니고 있다.
보성소리는 음악적 구성이 치밀하다. 그리고 사설이 매우 잘 다듬어져 있어서 아니리가 깔끔하다. 정응민은 목이 궂었으므로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보성소리는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 완자걸이 등의 기묘한 장단붙임이 쓰인다. 또한 혀자침, 세우목, 아구성 등의 성음이 자주 사용된다든지, 고제에서 쓰였던 빠른 장단인 세마치, 빠른 중모리,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가 자주 쓰인다든지, 통성의 덜미소리로 소리를 들고 나가는 것 등이 보성소리의 특징이다.
정응민의 보성소리는 중후하고 기품있는 소리로 짜여져 있으며 웅장하고 기품있는 성음으로 부르는 것 등이 보성소리의 특징이다.
보성소리가 기품있는 쪽으로 발달된 이유는 그 소리제의 뿌리가 되는 박유전, 김세종, 정재근, 김찬업, 그리고 그 소리제의 전승자들인 정응민, 정권진 등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의젓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정응민이 흥보가를 재담소리라 하여 부르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데 이유가 있고 보성소리 수궁가에 <상좌 다툼>이 없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정응민제 보성소리의 두드러지는 특징으로서는 소리 붙임을 억지로 꾸미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성창순은 이 정응민제 보성소리 심청가로서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런 만큼 본 공연은 성창순의 특기, 그리고 성창순과 그 제자들의 그간 노력이 집약된 결실이라 할 것이다.
성창순은 1934년 전남 광주에서 명창 성원목의 장녀로 태어나 정응민과 김소희, 박록주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성창순은 원옥화에게 가야금을, 한갑득에게는 거문고를, 김영철한테 철현금 산조를 사사했고 신호열 문하에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성창순은 보성소리의 경우 스승 정응민 외에도 김준섭, 정권진, 성우향과 같은 보성소리를 구사한 당대 명창들의 영향도 간접적으로 받았다.
이지선은 전남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대전 전통가무악경연대회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현재 광주시립국극단 상임단원으로 있다.
김태희는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전국무용국악경연대회 국악 부문 장원 등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나영은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2001년 광주국악대상 명창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두드러진 활동과 수상을 하였다.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저녁 8시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 국립극장 야외무대 하늘극장에서 펼쳐지는 원로 대가와 떠오르는 신예들의 판소리 심청가 공연, 그 황홀한 소리 만찬에 어서 가보고 싶다.
반짝이는 별, 시원한 바람, 순진한 풀벌레 소리와 어우러지는 푸짐한 소리 잔치. 이 세상 참 살만하구나, 새삼 아름답구나, 아 이런 축복도 다 있구나 하고 무릉도원 속 행복을 느끼게 되리라.
[성창순 명창의 주요 CD음반]
# 성창순 판소리 모음
오아시스레코드 ORC-1117(1CD), 1980년대 녹음, 1990년 제작.
성창순 명창이 평소 장기로 부르는 대표적인 판소리 눈대목들이 담겨있다.
심청가의 절정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심봉사 눈 뜨는 데>(정응민제), 동편제의 진수를 보여주는 흥보가 중 <박타령>(박록주제), 그리고 우아하고 기품있는 보성소리의 아름다움이 압축되어 있는 춘향가 중 <적성가>(정응민제), 어떤 소리제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보성소리만의 독특한 붙임새와 장중함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수궁가 중 <약성가>가 들어있다.
전집물이 아닌 낱장이라 부담도 적고 성창순 명창의 이모저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명반.
# 성창순 판소리 춘향가
(주)성음 DS-052(4CD), 1981년 녹음, 1994년 제작.
성창순 명창의 춘향가 완창 음반. 정응민제 보성소리 춘향가이다. 전집물이라 다소 부담이 갈 수 있는 녹음집이긴 하나 성창순 명창의 소리세계에 대해 좀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걸작 음반. 여기에서 고수는 김성권 명고수가 맡았다.
# 성창순 판소리 심청가
(주)성음 DS-051(3CD), 1981년 공연 실황, 1994년 제작.
성창순 명창의 심청가 완창 음반. 정응민제 보성소리 심청가이다. 성창순 명창이 이 심청가로서 국가 기정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만큼 성창순 명창의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고수는 김득수, 김동준 명고수가 맡았다.
- 글을 쓴 노재명은 경기도 양평 서종면에서 국악음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이다. 지금까지 약 3만 5천 점의 국악 자료를 수집했고 국악 음반 270여종의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으며, '귀명창대회' 등도 기획했다. KBS 국악대상 출판상, 난계국악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판소리 음반 사전] 외 1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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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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