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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태림스코어, 2021년)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 조학진 명창 1935년 모습.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 조학진 명창이 1935년에 녹음한 심청가 중 <심낭자 용궁행> 대목이 담겨있는 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명창 창극 심청전 제13회 SP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SP음반 관리번호 MISP-2657
Polydor 19247-B(8773BF) 唱劇 沈淸傳全集(十三)(沈娘子龍宮行) 曹學珍 鼓-韓成俊
조학진 명창 심청가 유성기음반(1935년 녹음)
글·사설 채록/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조학진은 박기홍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한승호의 말에 따르면 조학진은 경상도 출신으로서 경상도 사투리를 썼고 대구에서 살았으며 적벽가를 주로 한 명창이라 한다. 한승호가 10대 때 조학진은 70대 노인이었다고 한다.(1999년 11월 24일 한승호 명창이 노재명에게 증언한 내용).
박황 저서 『판소리 소사』(서울:신구문화사, 1974년) 123쪽에는 조학진의 생몰연대가 1877~1951년으로 되어 있으나 박황 책에 기록된 김창환, 이동백, 김창룡, 김록주 등 많은 명창들 생몰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노재명의 여러 논문으로 밝혀졌기에 조학진 생몰연대도 더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한승호(1924~2010년) 명창이 10대 때 조학진이 70대였고 단체사진의 조학진, 김창룡 나이가 비슷해 보여서 조학진은 1870년대 초에 출생한 듯하며 1940년대에 생존해 있었던 것 같다.
일제 때 신문 기사에 의하면 조학진은 조선음률협회(조선성악연구회)에 몸담은 바 있고 공연과 라디오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소리 법도가 바르고 공력이 대단한 명창으로 평가된다. 조학진이 구사하는 소리의 특징은 요즘보다 빠른 속도로 소리를 몰고 간다는 점, 송만갑의 동편제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조학진의 소리는 고제인 탓에 일제 말기로 갈수록 차츰 인기를 잃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런 연유로 해서 그의 문하에는 제자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조학진은 1935년에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단가, 심청가, 적벽가 유성기음반을 취입한 바 있는데 이 녹음에 박기홍제가 상당 부분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1935년에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녹음된 창극 유성기음반 전집물은 이 창극 ‘심청전’, 그리고 ‘화용도’(적벽가) 이렇게 2종이다.
1935년에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녹음된 창극 ‘심청전’과 ‘화용도’(적벽가) 유성기음반 전집물 모두 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창), 한성준(북)이 취입했다.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 같은 근대 5명창이 모두 생존해 있을 당시인 1935년에 녹음된 음반인데 이 음반의 가사지에 ‘4대 국창’이라고 표현한 기록이 매우 주목된다. 여기에서 ‘4대 국창’이라 함은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조학진을 당시 5명창급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창으로 칭했다는 사실은 조학진이 노래의 신으로 불린 박기홍의 소리맥을 제대로 잇는 대단한 명창이었다는 것을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1935년 폴리도르 창극 취입 사진의 배경으로 봐서는 폴리도르 녹음실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1935년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창극 ‘심청전’ 유성기음반 전집물 녹음을 마친 직후에 촬영된 것이라 하겠다.
이 창극 ‘심청전’ 유성기음반 전집 일부가 '심청전 창: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고:한성준' LP로 기획:한국축음기애호가협회·신나라레코드, 편집·제작·판매:신나라레코드, 성음 제조 RO-600, 3LP 박스물, 1989년 중고 유성기음반 21SP 복각 제작, 소리 배역 고증:박동진, 해설 글:송혜진, 사설 채록:문현.
복각된 바 있는데 해설서를 보면 채록된 사설의 소리꾼이 잘못 고증되어 있다.
이 복각 LP의 해설서(총 11쪽)에 박동진이 본인의 스승이라고 지목한 정정렬·조학진 소리를 다른 명창들의 녹음과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남자 명창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의 소리를 서로 혼동하여 뒤바꾸어 놓았거나 여성 명창의 경우에도 임소향과 문련향의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 뒤바꾸어 고증된 오류가 보인다. 그리고 세마치,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을 서로 혼동하여 일부 대목의 장단을 잘못 명시해 놓은 것도 발견된다. 박동진이 조학진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고 했는데 녹음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차이가 많다.
총 18장으로 제작된 폴리도르 창극 ‘적벽가’ 유성기음반 전집물은 1991년에 신나라레코드에서 3장의 LP(SEL-RO190)와 2장의 CD(SYNCD-007)로 복각했다. 1991~1992년에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는 이 창극 적벽가 유성기음반(18SP) 가운데 일부(12SP)를 ‘화용도 전집[2][3]’(서울음반 SOER-053,068 2LP / SRCD-1127,1128 2CD)이라는 이름으로 복각했다.
그리고 이 음반의 명창들은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창극 심청전과 창극 적벽가를 취입할 때 각각 독집 유성기음반도 1~2장씩 남겼는데 그 독집들 일부가 복각됐다.
폴리도르 창극 ‘심청전’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과 폴리도르 창극 ‘적벽가’ LP(신나라레코드 SEL-RO190, 3LP) 제작 시 유성기음반의 원음 재생이 제대로 안된 상태로 복각되어 소리 진행 속도가 실제와 차이가 있고 음질에 문제가 많다. 그래서 관련된 몇몇 연구 논문들의 결과도 정확도가 떨어졌다. 폴리도르 창극 ‘심청전’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과 폴리도르 창극 ‘적벽가’ LP(신나라레코드 SEL-RO190, 3LP) 제작 시 복각 방법은 대부분 유성기 재생법, 일부는 78회전 플레이어와 SP전용 카트리지에 의한 재생법이 쓰였다.
폴리도르 창극 ‘심청전’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는 1935년에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 임소향, 문련향(소리), 한성준(고수)이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취입한 창극 심청전 총 22장(44면)짜리 유성기음반 전집 가운데 일부(42면)를 3장의 LP로 복각한 것이다.
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창극 심청전은 본래 총 22장으로 제작된 유성기음반 전집이다. '심청전 창: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 1989년 중고 유성기음반 21SP 복각 제작)에 유성기음반 1장 분량이 누락되었는데 제작 당시 이 유성기음반 1장 녹음을 구하지 못해서 수록 못한 것이다.
'심청전 창: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고:한성준' 복각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 1989년 복각 제작)의 문제점과 오류들을 바로잡아 고증하면 다음과 같다.
<삯바느질>은 정정렬의 도창으로 불리며 장단은 중중모리이다. <명산 기도>에서는 중중모리-세마치로 이어지는 도창을 김창룡이, 심봉사 역은 정정렬이, 곽씨 부인 역은 임소향이, 선인옥녀가 빠른 중모리로 말하는 부분은 문련향이 맡았다.
<곽씨 부인 해산>에서는 김창룡이 “석부정부좌~” 하는 중중모리 도창을, 정정렬은 심봉사 역을, 임소향은 곽씨 부인 역을 담당했다. <곽씨 부인 유언>은 도창을 맡은 김창룡과 정정렬, 곽씨 부인 역의 임소향이 녹음했으며 진양조로 불린다.
<곽씨 부인 영면>에서는 도창을 김창룡이, 마을주민 역을 이동백과 김창룡이, 심봉사 역을 정정렬이 맡았으며 여기에서 심봉사가 자탄하는 부분은 자진모리-중모리로 불린다. <곽씨 부인 영결식>은 정정렬(도창), 김창룡(중), 이동백(심봉사)이 녹음했으며 여기에서 중타령은 엇모리로, 심봉사가 자탄하는 부분은 세마치로 불린다. <곽씨 부인 영결식>에서 불리는 정정렬과 김창룡의 중타령은 요즘 불리지 않는 특이한 감상거리다.
<심봉사 탄식>에서는 도창을 김창룡과 정정렬이, 심봉사 역을 이동백이, 마을주민 역을 문련향과 임소향이 맡았다. 김창룡의 도창과 이동백이 녹음한 심봉사 자탄 장면은 세마치로, 정정렬의 도창은 중모리로 불린다. <심봉사 걸유>는 정정렬(도창), 이동백(심봉사), 임소향과 문련향(마을주민)이 녹음했다. 정정렬의 도창과 이동백이 취입한 심봉사 걸유 장면은 중모리로, 이동백이 녹음한 심봉사 아기 어루는 부분은 자진모리로 불린다.
<심봉사 동냥>은 정정렬(도창)과 심봉사 역의 이동백, 심청 역의 임소향이 취입했다. 여기에서 정정렬의 도창은 중중모리로, 임소향이 녹음한 “아버지 듣조시오~” 부분은 빠른 중모리로 불린다. <심청 구걸>에서는 세마치 장단의 도창을 김창룡이, 빠른 중모리 장단의 도창은 정정렬이, 심봉사의 아니리는 이동백이, “여보시오 부인님네~” 하고 말하는 심청 역은 임소향이, 마을주민의 아니리는 문련향이 맡았다.
<심청 장승상댁>에서는 도창을 김창룡(아니리)과 이동백(빠른 중모리)이 맡았고 심봉사는 이동백(아니리), 심청은 임소향(아니리), 장승상부인은 문련향(빠른 중모리)이 담당했다. <심청 답례>는 김창룡(도창:세마치), 이동백(심봉사:세마치), 임소향(심청:중모리), 문련향(장승상 부인:아니리)이 녹음했다.
<심봉사 개천에 빠지는 데>는 김창룡과 정정렬의 도창으로 취입했는데 김창룡은 자진모리 부분을, 정정렬은 엇모리-자진 엇모리 부분을 맡았다. <화주승 걸공양미>는 김창룡(도창:중중모리), 이동백(심봉사:중모리), 정정렬(중:아니리), 임소향(심청:중중모리)이 취입했다. <화주승 걸공양미> 가운데 “아 지체가 될 듯하지마는~” 부분에서 들려주는 이동백의 구성진 아니리, 창조 도섭은 흉내내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미가 있다.
<후원 기도>는 도창과 심봉사 역의 정정렬, 심청 역의 임소향이 취입했다. 여기에서 정정렬의 도창과 임소향이 녹음한 “아버지 듣조시요~” 부분은 중모리로, 임소향의 후원 기도 녹음은 세마치 장단으로 되어 있다. <선인들 오는 데>에서는 도창을 김창룡이, 심봉사는 정정렬이, 선인은 이동백·김창룡·정정렬이, 심청은 임소향이 맡았다. 이동백이 취입한 선인들 외치는 소리는 중중모리 덜렁제로 불린다.
<심청 자탄가(1)(2)>는 정정렬(도창)과 임소향(심청)이 유성기음반 양면에 걸쳐서 길게 녹음했으며 진양조로 불린다.
<심청 사당 하직>은 김창룡의 중중모리 도창으로 시작하여 정정렬(심봉사), 임소향(심청), 김창룡과 정정렬(선인)의 아니리가 이어진 뒤 임소향(심청)이 심청의 사당 하직 부분을 진양조로 불렀다. <심봉사 자탄>은 도창을 김창룡이, 심봉사 역은 정정렬이, 심청 역은 임소향이 취입했다. 여기에서 심봉사가 자탄하는 부분은 정정렬 창으로써 자진모리로 불린다.
<심청 강두 임>은 <소상팔경>(범피중류)과 함께 유성기음반 양면에 짝을 이루어 취입되었는데 <심청 강두 임> 후반부에는 <소상팔경> 초입이 담겨있다. 따라서 이 유성기음반의 경우에는 <심청 강두 임>과 <소상팔경>을 이어서 복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 복각반에서는 <소상팔경>이 둘로 나뉘어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그 유명한 <소상팔경>만 떼어서 감상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을 터인데 <소상팔경> 초입은 LP 앞면에 복각되었고 그 후반부는 뒷면에 복각됐기 때문에 감상하는 데 번거로움이 있다. 유성기음반 앞뒤에 수록된 <심청 강두 임>과 <소상팔경> 모두 도창을 맡은 이동백의 독창으로 녹음되었기 때문에 그의 독집 유성기음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동백의 걸작 중 걸작으로 꼽히는 녹음이다. 중모리-진양조로 불린다.
<심청 인당수>는 조학진(도창)과 임소향(심청)이 녹음했으며 시종 자진모리로 불린다. <심낭자 용궁행>은 조학진의 도창으로 녹음되었으며 엇모리로 불린다. <심청 인당수>와 <심낭자 용궁행>은 유성기음반 양면에 짝을 이루어 취입되었고 거의 대부분 조학진이 녹음하여 그의 독집 유성기음반이나 다름없다. 이 창극 심청전에 담긴 조학진의 녹음 가운데 가장 주목된다.
<선인 인당수 발견 연화>(자진모리-중중모리)는 <천자 화초가>(중중모리), <천자 화계에 배회>(세마치), <국혼>(자진모리)과 함께 유성기음반 2장(4면)에 짝을 이루어 취입되었다. 이 녹음들은 도창을 맡은 김창룡의 독창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독집 유성기음반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창극 심청전에 담긴 김창룡의 소리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녹음으로 평가된다. 특히 <선인 인당수 발견 연화> 가운데 “꽃이라니 무신 꽃~” 하는 김창룡의 소리는 덜렁제로서 중고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후 자탄가>는 도창을 맡은 정정렬의 독창으로 녹음되었으며 진양조로 불린다. <심맹인 자탄가>에서는 도창을 김창룡과 정정렬이, 심봉사는 김창룡, 심황후는 문련향이 맡았다. 장단은 자진모리-중모리로 되어 있다.
<심맹인 득연>은 김창룡과 정정렬(도창), 이동백(심봉사), 임소향(뺑덕이네)이 취입했다. 장단은 중모리-자진모리로 되어 있다. <심맹인 내외 논의>는 김창룡(심봉사), 정정렬(황봉사), 임소향(뺑덕이네)이 녹음했으며 이 가운데 김창룡이 취입한 심봉사 자탄 부분은 세마치 장단으로 불린다.
<심맹인 황성행>은 이동백(도창)과 김창룡(심봉사)이 녹음했으며 중모리로 불린다. 이 가운데 잠시 불리는 이동백의 중모리 새타령은 요즘 전승되지 않는 소리로서 매우 귀중한 감상거리다. <심맹인 황성행> 가운데 “무슨 경황에 황성을 가느냐”, “무릉촌도 잘 있거라”, “곽씨 부인 이곳에서 죽고” 부분에서 김창룡이 구사하는 창법은 충청도 사투리와 거의 같기 때문에 매우 주목된다. 이와 같이 충청도 억양을 바탕으로 한 창법이 중고제의 한 특징이다.
<맹인 인사>에서는 정정렬이 도창과 심봉사 역을, 임소향은 뺑덕이네 역을 맡았고 이동백, 김창룡(도창), 조학진(주막 주인)은 심봉사와 인사를 나누는 봉사들 역을 맡았다. 이 대목은 재담소리이기 때문에 주로 아니리로 되어 있고 끝부분에 김창룡(도창)과 정정렬(심봉사)의 진양조 소리가 잠시 불린다.
<방아타령>에서는 도창을 김창룡이, 방아 찧는 아낙네 역은 임소향과 문련향이 맡았고 심봉사 역은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이 번갈아 담당했다. 이 창극 심청전 음반의 취입자 전원이 동원된 녹음인 것이다. 심봉사와 방아 찧는 아낙의 재미있는 재담이 아니리로 길게 이어진 뒤 중중모리로 방아타령이 불린다. 정정렬, 이동백, 김창룡, 조학진,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 순으로 앞소리를 메기고 이 창극 심청전 음반의 취입자 전원이 뒷소리를 받는 식으로 취입되었다.
<심맹인 목욕>은 김창룡(도창)과 정정렬(심봉사)이 취입했으며 중모리로 불린다. <무릉태수 만나는 데>(자진모리-중모리)에서는 도창과 무릉태수 역을 김창룡이, 심봉사 역을 정정렬이 맡아 녹음했다.
<안씨 맹인 상봉>은 김창룡(도창), 정정렬(도창과 심봉사 역), 임소향(안씨 맹인 역)이 취입하였다. 이 대목 끝부분에 김창룡이 녹음한 심황후 자탄하는 장면은 빠른 중모리로 불린다. <맹인연 참례>는 김창룡(도창과 사령 역), 이동백(도창), 정정렬(심봉사)이 녹음했으며 세마치 장단으로 불린다.
<황후 부친 상봉(1)(2)>는 김창룡(도창), 이동백(심봉사), 문련향(심황후)이 취입했으며 장단은 세마치-자진모리-중중모리로 되어 있다. 이 대목은 이동백의 장기로 잘 알려져 있다. <맹인 개안>은 심봉사가 눈을 뜬 뒤에 다른 봉사들도 덩달아 눈을 뜨게 되는 대목으로서 이 창극 심청전 음반의 취입자 전원이 모두 참여하여 녹음했다.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 조학진, 정정렬, 김창룡, 조학진, 김창룡 순으로 앞소리를 메기고 이 창극 심청전 음반의 취입자 전원이 뒷소리를 받는 식으로 취입되었다. 이로서 이 창극 심청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노재명 저서 『판소리 음반 걸작선』(서울:삼호출판사, 1997년) 79~83쪽.
이렇게 '심청전 창: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고:한성준' 복각 LP(신나라레코드 RO-600, 3LP, 1989년 복각 제작)의 문제점과 오류들을 바로잡아 고증한 내용이 『판소리 음반 걸작선』 책에 실린 후 문제의 복각 음반이 ‘폴리돌 심청전(창:이동백 정정렬 김창룡 조학진 임소향 문련향, 북;한성준)’이라는 CD(신나라뮤직 NSC-073, 2CD, 2004년 발매)로 다시 제작됐으나 해설서의 일부 오류가 여전히 보이고 Polydor X-609 유성기음반 1장은 구하지 못해 이 재발매 CD에도 누락되어 있다.
이 창극 심청전에서 이동백은 도창, 심봉사, 선인 역을 맡았고 김창룡은 도창, 심봉사, 도화동 주민, 중, 선인, 무릉태수, 사령 역을 했으며 정정렬은 도창, 심봉사, 중, 선인, 황봉사, 윤봉사, 정생원 역을 맡아 취입했다. 조학진은 도창, 오봉사, 주막 주인 역을 맡았고 임소향은 곽씨부인, 심청, 뺑덕이네, 도화동 주민, 안씨 맹인 역을 담당했으며 문련향은 심황후, 장승상부인, 선인옥녀, 도화동 주민 역을 취입했다.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은 분위기에 따라 도창과 심봉사 역을 서로 번갈아가며 녹음을 했다. 해학적이고 기쁜 대목에서의 심봉사는 주로 이동백과 김창룡이, 힘겹게 살아가는 심봉사의 처량한 신세를 묘사할 때는 대체로 정정렬이 맡아 극적인 효과를 살렸다. 이 창극 음반의 전체 구성은 정정렬이 짠 것으로 보인다.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의 도창은 아니리를 하는 듯한데 어느새 장단이 붙어있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장단을 달아놓은 것 같으면서도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소리를 이끌어간다. 이점이 5명창이 구사하는 도창의 매력이다.
임소향은 이 창극 심청전에서 여주인공 배역을 도맡아 녹음했다. 문련향의 경우에는 조연급 배역을 주로 맡았는데 그의 녹음은 극히 적어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창극으로서의 전체적인 짜임새는 허술한 면이 있지만 일류 명창들의 소리를 한자리에서 2시간 이상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음반도 능가할 수 없는 이 음반만의 장점이다. 이 음반에서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과 같은 대명창들은 명창대회에서 서로의 기량을 뽑내며 자웅을 겨루듯 제각각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개성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간혹 발견되는 창극에 서툰 노대가들의 실수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리고 이 음반이 취입된 1935년 당시 조선성악연구회의 창극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듣는 이의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1935년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 등이 녹음한 창극 심청전과 창극 적벽가는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가 낸 한국음악 음반 가운데 가장 걸작반이자 더 나아가 판소리, 창극 음반 역사상 가장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이 창극 심청전과 창극 적벽가 음반이 각별히 귀중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음반은 무엇보다 판소리 5명창 가운데 3명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다. 그리고 송흥록→송광록→송우룡 계열이 아닌 동편제 남성 명창 가운데 일제 때 유일하게 녹음을 남긴 조학진의 소리(정춘풍제)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녹음이 드문 임소향과 문련향의 소리를 접할 수 있다는 점, 명고수 한성준의 북가락을 장시간 동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음반은 높게 평가된다.
1935년에 녹음된 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창극 심청전 22장짜리 유성기음반 전집 초판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곳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국악음반박물관이 유일하다. 국악음반박물관에 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창극 심청전 22장 유성기음반 초판 전집이 다 미사용급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이 창극 ‘심청전’ 유성기음반 전집물에서 조학진 명창의 동편제 심청가를 들을 수 있는데 조학진은 이 전집에 <심청 인당수>, <심낭자 용궁행> 등의 걸작 녹음을 남겼다. 본 서적의 부록 CD에 조학진 녹음의 원음을 제대로 복각하여 수록했다.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 제작된 창극 음반을 들어보면 조학진의 녹음이 5명창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5명창과 번갈아가며 도창이나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조학진이 그 기량과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학진은 음반 취입시 소리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한정된 녹음시간을 초과하여 여러번 취입을 망쳤다는 일화가 있으며 그래서 나중에는 녹음 기피증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일본 폴리도르음반회사에서만 음반을 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폴리도르 창극 유성기음반 전집에 조학진의 녹음이 많이 담겨져 있지는 않다. 특히 창극에서 여러 명창이 번갈아 소리를 녹음하는 대목에서 녹음에 익숙하지 않은 조학진이 자주 실수를 해서인지 그러한 녹음 부분에서는 조학진이 거의 제외되어 있다.
(1) 조학진(도창) 임소향(심청) 심청가 중 <심청 인당수>(1935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657
Polydor 19247-A(8772BF) 唱劇 沈淸傳全集(十三)(沈淸臨溏水) 曹學珍·林素香 鼓-韓成俊
조학진의 이 녹음은 이선유 심청가 창본의 가사와 유사하다. 이 대목에서 조학진의 창법이 이선유가 여타 판소리에서 들려준 창법과 닮은 점들이 있다.
조학진은 도창, 임소향은 심청 역을 맡아 녹음했다. 조학진의 도창은 동편제, 자진모리에 평조·우조로 불린다. 임소향은 정정렬에게 서편제 심청가를 사사한 것으로 보인다.
조학진은 이 녹음에서 장작 패는 듯한 김창룡의 창법과 비슷한 점도 보이고 아구성도 구사하는데 아구성은 성우향보다 약하게 사용했다. 이는 판소리가 고제→중고제→동편제→서편제로 점차 변화되고 유행이 바뀌면서 고제와 중고제에서 진했던 아구성이 약화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조학진 후대 명창 성우향이 조학진보다 강한 아구성으로 소리했다는 점은 성우향의 보성소리가 굉장히 고형의 판소리임을 말해 준다. 고제 아구성이 보성소리엔 강하게 남아있어서 보성소리가 흔히 동·서편제라고만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고제와 중고제 소리가 무척 많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녹음 채록 사설: (자진모리) 조학진/도창 – 한 곳을 당도허니, 이난 곧 임당수라. 광풍이 대작허며 어룡이 싸우난 듯, 분접이 다투난 듯, 벽력이 나리난 듯 대천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가 돛도 잃고 닻도 끊고 용총도 끊고 치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쳐 안개 뒤섞여서 잦아진 날, 갈 길이 천리 만리 남고 새면이 검어 어둑 점글어져 천지 적막헌디 바람이 그저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 도사공 영좌 황황 대겁 혼불부신, 고사기계를 채려 놓고 북을 달아 놓고서 북을 둥둥둥 두리둥둥 두둥둥둥둥 두리둥 울리면서, “헌원씨 배를 무어 이제불통한 연후에 하후씨 본을 받아 다 각기 위업하야 막대한 공 이 아닌가.” 북을 둥 두리둥둥 두리둥둥. “하후씨 구년지수 배를 타고 기달려, 오복으 정한 공수 구주로 돌아들 적, 오자서 분노할 제 노가로 건너주고 해성의 패한 장사 오강으로만 돌아들 제 배를 타고 기다렸고 공명의 탈조화난 동남풍 빌어내어 조조의 십만 대병 주유로 화공헐 적에 배 아니면은 어찌하며 도연명은 전원에 왔고 장경은 강동 갈 제 그도 또한 배를 타, 임술지추칠월의 종일위지소여허니 소동파의 질검이며 계도난예화장풍 오희월녀 채련주 경세우경년의 상고선이 이 아닌가.” 북을 둥 두리둥 둥둥둥둥. “여보 심낭자! 시 늦어가오. 때 늦어가오. 어서 급히 물에 들라. 여봐라.” 심청이가 이 말을 듣더니마는 앉었다가 벌떡 일어나서 두손 합창허고 무릎을 꿇고 하누님전으 비는구나.
임소향/심청 - “아이구 하느님. 심청이 죽는 양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허오. 앞 못보는 병신 부친 눈 뜨기를 위로하야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이 감동허여 부친 눈을 밝히소서.”
조학진/도창 – 허더니마는 입었던 초매 무릅을 쓰고 혼비중천에 정신을 잃고 소소리쳐 뚝 떨어져 물에 가 ‘풍’.
(2) 조학진 심청가 중 <심낭자 용궁행>(1935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657
Polydor 19247-B(8773BF) 唱劇 沈淸傳全集(十三)(沈娘子龍宮行) 曹學珍 鼓-韓成俊
조학진의 이 소리는 동편제, 엇모리에 평조·계면조로 불린다. 녹음을 들어보면 조학진의 소리는 아편 중독 성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학진도 스승 박기홍의 영향을 받아 맑고 깨끗한 소리 활동을 한 듯하다.
조학진의 이 소리는 전반부의 경우 이선유, 박록주, 강도근과 유사하나 후반부는 이선유, 박록주, 강도근과 달리 독특하고 길게 불린다. 이선유, 박록주, 강도근의 이 대목 소리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이선유·송만갑→김정문→박록주·강도근 계통인 것으로 보이며 조학진의 이 소리는 박기홍제인 것으로 생각된다.
조학진의 이 소리는 김창룡, 정응민, 박동실의 소리제와 비교하면 엇모리에 평조·계면조로 부른 점은 같으나 사설이 약간 다르며 곡조는 많이 다르다. 김창룡의 소리는 중고제 특성이, 조학진과 정응민 소리제는 동편제 특성이, 박동실제는 서편제 특성이 나타난다.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석에 몸이 팔려서 인당수에 재물로 던져졌으나 옥황상제가 심청의 효성에 감동하여 사해 용왕을 불러 심청을 살리라 하고 용궁에 데려 오라고 명한다. 심청이가 용궁에 들어가니 여러 음악들이 울려 퍼지고 사방을 살펴보니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 있다. 뜻밖의 장면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엇모리 장단, 평조와 계면조를 섞어 불러서 용궁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살렸다. 시종 엇청으로 다양한 성음 변화를 주면서 화려하고 신비로운 수궁 풍류를 요모조모 그려낸다.
이 대목은 온갖 풍류가 울려 퍼지는 대목이기 때문에 <수궁 풍류>라고도 한다. 심청가 외에 수궁가에서도 <수궁 풍류>가 불리는데 토끼의 속임수에 속은 용왕이 토끼에게 사과하는 뜻에서 풍악을 울리게 하는 대목에 <수궁 풍류>가 나온다. 수궁가 중 “왕자진의 봉피리~” 하는 <수궁 풍류>는 심청가의 이 대목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심청가와 적벽가는 중고제와 동편제에서 중요한 소리였다. 조학진이 1935년 폴리도르 창극 ‘심청전’과 ‘적벽가’ 유성기음반 전집물 취입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조학진의 귀중한 고형의 박기홍 스타일 동편제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성준이 섭외·기획한 듯하고 그리하여 북 반주까지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녹음 채록 사설: (아니리) 조학진/도창 – 대개 소자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시는 배라. 사해 용왕을 불러서 분부를 허셨겄다. 사해 용왕이 겁을 내아 원참군과 백만인갑이며 무수한 시녀들로 백옥에 등대하야 과연 그 시를 기달렸더니 옥 같은 심낭자가 천하 중으 떨어지니 여러 시녀 고이 받아 교자에다 모시고 용궁을 들어가는데 용궁 흥미가 똑 이렇십니다.
(엇모리) 조학진/도창 – 천상 선관선녀 심소제를 보랴고 좌우로 벌여 섰다. 태을진은 학을 타고, 안기생 난을 타. 구름 탄 적송자, 사자 탄 갈선웅, 고래 탄 이적선, 청의동자 홍의동자 쌍쌩이 모였네. 수궁을 들어가니 집치레도 찬란하다. 괘용골이 위량하고 영광이 조일이요 적어삼어작와허니 서기 반공이라. 동으로 바래보니 삼백 척 부상 같이 일륜홍이 붉었고 서으로 바래보니 약수 삼천 멀고 먼 길 일상 청조가 날아들어 남으로 바래보니 대붕이 비진한 수여람이라 봄 안개 둘렀고 북으로 바래보니 일발청산 주일작이 주작이 열렸고 웅천상지삼광이요 비인간지가 오복이라. 수궁을 들어갈 적, 광한전에 잔치하고 수궁 음식을 들였이되 시상 음식이 아니다. 대구포 포유반으 만년주를 부어 놓고 앵무잔 야광받침 천일주를 부어놔. 난초 지초 홍유기실 기린 이포로 안주 놓아 한가온데 삼천벽도를 둥그렇그 고였난데 기린 채봉 외사머리 진향을 진배한다. 안기생 적송자 천도수시를 진배하고 늙지 않난 불로초며 죽지 않난 불사약을 사이사이 진배하고 풍악 소리가 낭자한다. 황황동정 북 소리는 적병을 하소하고 둘썩 부넌 피리 소리는 쌍봉황이 지져 울고 소상반죽 젓대 소리는 나의 설움을 자아내고 뻐꾹 성진의 해금 소리는 연풍을 자랑한다. 오현금 거문고는 남은 율쌍을 노래하고 남창은 율려하고 여창은 기묘라. 남녀창 우계 비나리 백가일쌍의 수궁 비념을 떡쿵이라고 드는 소리 수궁이 으근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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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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