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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가야금·태평소 명인 윤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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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한국무용음악 명인과 기록물』(도서출판 채륜, 2017년)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아쟁·가야금·태평소 명인 윤윤석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윤윤석(尹允錫)은 1939년 전라북도 여산의 국악 가문에서 태어난 아쟁·가야금·태평소 등의 명인이다. 아쟁산조 독주와 시나위 합주, 그리고 창극, 남도민요, 무용 반주음악 활동을 많이 하였다.
  윤윤석은 가야금 연주자인 부친 영향으로 11세 때 국악에 입문하여 가야금과 판소리를 학습했고 6.25 한국 전쟁 피난시 부산에서 다음과 같이 국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부산(釜山) 거리에 꼬마 창극(唱劇)이 나타났다. 十五·六세의 소년이 장구를 치면 옆에 동갑인 듯한 소년이 목노아 남도소리, 굿거리, 짓거리, 가요를 멋드러지게 넘긴다. 이 장구 소리에 구경꾼들이 왁하고 구름떼 같이 모여든다.
  알아보니 一행 七명 어린이들의 이름은 尹潤石, 姜昌德, 金夢용, 姜明基 外 女兒 一名인데 이 어린 것들을 다리고는 지배인은 강유복(姜有福 三五)이라는 사람이다.
  이 一행은 여수(麗水)에서 二일 전에 배로 부산에 왔는데 배운 것이 창극이라 이 재주를 가지고 임시 부산 거리에 나타나 돈버리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로 종일 벌으면 한 수여만원 된다고 한다.
  다시 차차 어지러워지는 부산 거리 생존 방법 시비는 고사하고 처량한 남도(南道)소리에 부산한 부산 거리가 더욱 부산타.”(1952년 1월 10일자 『경향신문』 ‘新版 돈버리 出現 南道소리 少年을 미끼로’)

  다음은 고음반에 기록된 윤윤석 명인의 약력이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2016~2020
한국 민속악 대전집
대금:윤길원, 아쟁:윤윤석, 피리:곽태천, 가야금:권혁태, 해금:이기설, 장고:김병환, 호적:안상태, 효과:정준남.
홍익민속예술원 제작, 유니버어살레코드 제조 UL-國樂-1~5(5LP 박스물), 1972년 녹음, 1972년 10월 제작. 총 28쪽짜리 해설서(글:김종철·이창배·김동민·정주영, 각종 국악기 사진·설명, 곡목 해설, 연주자 사진·약력 등 수록) 포함. 기획:이용배.
* 음반 해설서 27쪽 기록: 아쟁 윤윤석(만 34才)
國樂協會內에서도 가장 模範的이며 진지한 藝術人의 姿勢를 허트리지 않기로 이름난 氏는 언제나 보수를 초월한 犧牲的인 奉仕에 앞장서는데 國樂人들의 많은 好感을 사고 있으며 아쟁에 있어서는 他의 追從을 不許하는 獨特한 地位를 確保함은 勿論 胡笛 또한 上級 實力.
特히 本作品에서의 아쟁산조 독주에서 들을 수 있는 고혹적인 音律은 可히 一品이라는 衆評.

  윤윤석은 19세 때 한일섭 문하에서 아쟁을 사사했다. 윤윤석은 아쟁산조 가락을 만든 한일섭 명인을 만나 일주일 동안 아쟁산조의 우조 부분을 배우고 나머지는 직접 독자적인 가락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 후 스승인 한일섭과 번갈아가며 아쟁산조를 연주하고 장고 반주를 하면서 산조의 즉흥성을 익혔다.
  윤윤석은 19세 때 부친이 별세하자 임춘앵 여성국극단 악사로 입단하여 아쟁, 철아쟁, 가야금, 태평소, 거문고, 꽹과리, 장고 등 여러 악기를 연주했다. 1984년 전주 대사습 장원, 1990년 신라문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윤윤석은 평소 무대 밖으로는 잘 나서지 않았고 본인 이름을 내 건 독주회도 거의 열지 않아서 ‘얼굴 없는 연주자’라는 별호를 얻기도 했다.
  윤윤석은 1977년 녹음 제작된 ‘아쟁산조(아쟁:윤윤석, 고수:장덕화)’ 음반(아세아레코드社 ALS-506, 1LP)을 발표하는 등 여러 음반을 취입했는데 특히 1998년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음반(CKJCD-004, 1CD, 2001년 지구레코드 제조, 2001년 녹음, 섭외·기획·해설 집필:노재명)에서 아쟁 반주를 맡아 절정에 오른 기량을 녹음하였다.
  윤윤석은 1999년 회갑을 맞아 음악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열었고 2001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음반 취입을 끝으로 더이상 연주 활동을 하지 못했고 2006년에 별세하였다. 윤윤석의 아들 윤서경이 그 뒤를 이어 가문의 국악 맥을 잘 이어가고 있다.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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