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earkoreaTV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국악 음반    
매체별 유성기음반(SP) | 10인치 장시간음반(LP) | 12인치 장시간음반(LP) | 컴팩트디스크(CD) | 카세트테입(MC) | 디지털오디오테입(DAT) | 릴테입(Reel Tape)
마이크로카세트테입(MCT) | VHS 비디오테입 | 8mm 비디오테입 | 6mm 비디오테입 | 레이저디스크(LD) | 시디롬(CD-Rom) | 디브이디(DVD) | 기타자료

 
판소리 명창 김록주 심청가 유성기음반
  kimrokjuspp.jpg (사이즈:162.0KByte)
kimrokjuspp.jpg
* 상기 사진 설명:
- 김해 출신 판소리 명창 김록주 타계 신문기사. 1928년 2월 15일자 [매일신보] 보도. 김록주 사진 수록. 이 기사에는 김록주 명창이 1927년 음력 12월(18일)에 별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1928년 1월 13일자 [매일신보]와 1928년 1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김록주 명창이 1928년 양력 1월 10일에 대구에서 별세했다고 함.
[판소리 명창-창간호](서울:국악음반박물관, 2005년) 197쪽 등에 이러한 김록주 명창 타계 신문기사가 소개된 이후 국악계에서 김록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함. 김록주 출생 시기가 1898년이라는 것이 김석배의 "김해 김록주 명창 연구" [국어교육연구 제42집](서울:국어교육학회, 2008년 2월) 328쪽에 밝혀짐.
- 김록주 판소리 심청가 중 <중타령> 유성기음반(1926년 녹음, 박용찬 수집반)
졔비標朝鮮레코-드 B160-B (沈淸歌) 중타령 金綠珠
https://youtu.be/91-oMZTDUU0?si=wwxFmF9v0AJPiJ1r
- 판소리 명창 김록주. 조선연구회 편저 [조선 미인 보감](서울:신구서림, 1918년) 수록 사진.
* 이는 노재명 저서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서울:태림스코어, 2021년)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판소리 명창 김록주 심청가 유성기음반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록주(金綠珠, 1898~1928년)는 경상남도 김해 출신으로서(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 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246쪽) 전라남도 장흥 출신 김록주(金綠珠, 1922~1997년)와 동명이인이다. 김해 김록주(이하 ‘김록주’로 명시)는 판소리 명창이자 <승무> 등의 전통춤 명무였다.(조선연구회 편저 [조선 미인 보감], 서울:신구서림, 1918년)
  김록주는 김정문, 송만갑 문하에서 판소리를 사사했다.(1928년 1월 13일자 [매일신보] / 장안과객 “팔도 명창 가곡평” [삼천리 제6권 제7호] 서울:삼천리사, 1934년 6월 1일, 150쪽) 송만갑이 살았던 전남 구례의 면화공동판매소에서 1924년 8월 22~23일 열린 전남 광주중학원소녀음악무도단 공연 행사에 김록주가 기부금을 냈는데(1924년 8월 30일자 [동아일보]), 이는 스승 송만갑 등과의 인연으로 행해진 것 같다.
  김록주 여동생 김홍주도 전통춤 명무로 일본에서 고전무용, 국악 활동을 했다.(1990년대 후반 진옥섭→노재명 제공 자료들) 김록주 조카이자 김홍주 딸인 김만리가 가문의 예술을 이어 무용 연출가로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 등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김록주, 김홍주 자매가 국악인이고 성음과 예술성이 특출했으며 신들린 듯한 높은 경지의 소리를 들려줬던 것으로 봐서 이들은 경남 지역의 유서 깊은 국악 세습 가문, 무악에 종사한 예인 집안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만일 세습무 계통의 예인 후손일 경우 경상도 해안의 별신굿 무악을 담당했을 수 있고 그렇다면 김석출 일가와 친척지간일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 민속음악인 대부분이 무속 가문 출신이고 거의 그들끼리 혼사가 이루어졌는데, 경상도 해안 지역의 무악을 담당한 김석출 집안과 경상도 바다 인접 고장 태생의 김록주가 성씨도 같고 출신지도 상호 가까운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경상도 무악 가문 출신의 김금화, 이소향 등 판소리, 가야금병창 여성 명인들이 남성 이상으로 힘이 세고 강한 발성을 구사했다고 김석출 명인이 증언한 바 있는데,(노재명 저서 [조선성악연구회 발자취를 따라서], 종로구 우리소리도서관·국악음반박물관 편, 서울:채륜 발행, 2017년, 169~170쪽, 1998년 9월 23일 대구시민회관 김석출 증언 내용) 김록주도 그렇듯 건장한 체형, 큰 성량, 강력한 발성을 지녔고 그래서 특히 동편제 판소리를 구사하기에 적합했다고 할 수 있다.
  경상도 출신 소리꾼 중에 학습이 부족한 경우 의도하지 않아도 판소리 성음이 본능적으로 경상도 특유의 메나리조로 미끄러져 소리가 이상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이들이 상당수 있는데, 김록주 명창은 그런 점 없이 정확히 정통 동편제 본연의 칼날이 선 성음을 누구보다도 제대로 구사했다.
  일찍이 판소리에 입문하여 학습이 단단하며 음감이 좋고 음악성이 출중했기에 지역 토리의 성음에 젖지 않고 극복하여 득음할 수 있었다고 짐작된다.(노재명, "유성기음반에 나타난 남원 관련 명창들의 판소리" [음반으로 보는 남원 동편소리의 전통과 세계], 전북 남원:국립민속국악원, 2002년. 부록 CD 동편제: 국악음반박물관 음원 제공) 김록주는 1926년에 일동축음기 주식회사(제비표조선레코드)에서 단가, 판소리, 남도잡가 유성기음반 13장 분량을 녹음했다. 취입 목록이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고 나머지 음반 8장은 아직 목록이나 실물이 드러나지 않았다.

[실물 발견]
졔비標朝鮮레코-드 B118-A 春香傳 (사랑가)     金綠珠 鼓韓成俊
졔비標朝鮮레코-드 B118-B 春香傳 (자진사랑가) 金綠珠 鼓韓成俊
* <긴 사랑가>(사랑 사랑), <‘정’자 노래>, <자진 사랑가> 녹음 수록. 이 김록주 녹음은 송만갑, 김정문, 이화중선, 박록주의 동일한 대목 소리와 닮아 같은 계열의 동편제라 할 수 있음.
졔비標朝鮮레코-드 B160-A (短歌) 簫湘八景 金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60-B (沈淸歌) 중타령 金綠珠

[실물 미발견]
졔비標朝鮮레코-드 B128-A 三國誌 (죠죠군사서름가)上 金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28-B 三國誌 (죠죠군사서름가)下 金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29-A 륙자백이上     金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29-B 자진륙자백이下 金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35-A 꼿사거리上 金綠珠 朴綠珠
졔비標朝鮮레코-드 B135-B 꼿사거리下 金綠珠 朴綠珠

  김록주의 갑작스러운 요절, 그리고 음악 기획은 좋았으나 구식 녹음 방식을 사용한 제비표조선레코드의 열악한 음질로 인한 판매 부진과 그에 따른 경영난 탓에 신보 목록 홍보, 김록주 음반 출시가 원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록주 음반을 비롯한 제비표조선레코드 음반들이 1906년과 1911년에 녹음된 초기 쪽판 만큼이나 대단히 희귀한 실정이다.
  1928년 1월 13일자 [매일신보]에는 당시 이미 13종의 김록주 음반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13종의 김록주 유성기음반이 발매된 것은 맞는 듯하다. 모두 동편제로 녹음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발견된 <중타령> 외에도 김록주 심청가의 다른 대목 녹음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학계에선 제비표조선레코드 목록이 B1~169번 일부분만 규명되었고 그 이후 음반 번호는 존재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국악음반박물관이 발굴하여 소장 중인 다음과 같은 제비표조선레코드 실물들이 발견되어 제비표조선레코드 B170~185 음반도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노재명 저서 [한국무용음악 명인과 기록물], 평택시 지영희국악관·국악음반박물관 편, 서울:채륜 발행, 2017년. 부록 CD 한국무용음악 걸작 녹음집: 국악음반박물관 음원 제공)

● 박월정 민요 <방아타령>, <양산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680
졔비標朝鮮레코-드 B179-A 방아타령 朴月庭
졔비標朝鮮레코-드 B179-B 양산도   朴月庭
● 이여순(대금) 김인호(해금) 김여관(피리) 한성준(장고) 일행 기악합주 <굿거리>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430
졔비標朝鮮레코-드 B185-A (合奏) 굿거리 大琴李汝順 嵆琴金仁湖 嘴金汝寬 鼓韓成俊
● 이여순(대금) 김인호(해금) 김여관(장고) 한성준(피리) 일행 기악합주 <당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430
졔비標朝鮮레코-드 B185-B (合奏) 塘鶴 大琴李汝順 嵆琴金仁湖 鼓金汝寬 嘴韓成俊

  이러한 실증자료들이 발견되었기에 제비표조선레코드 B170~185, B186~주변 제품번호에 김록주 명창의 알려지지 않은 음반 8장이 발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김록주 음반은 무척 희귀한데 본 책에 소개하는 심청가 <중타령>과 단가 <소상팔경>이 담겨있는 유성기음반 1장과 춘향가 중 <사랑가> 유성기음반 1장이 발견된 상태다. 최근 이진원 국악학자에 의해 김록주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유성기음반(제비표조선레코드 B118)이 처음 발굴되었다.
  연극인이자 판소리 귀명창이었던 이기세(1925~1930년대 제비표조선레코드·빅타레코드 기획자), 유능한 판소리 신인과 숨은 명창들을 대거 음반 취입에 주선한 것으로 보이는 한성준 명고수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김록주 명창의 녹음이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록주가 녹음한 1926년은 일축조선소리반이 대대적으로 한국 음악 녹음 작업을 한 1925년과 나팔통 기계식 녹음에서 전기식 녹음으로 전환하여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가 의욕적으로 한국 음악을 대량 녹음한 1928년의 중간 공백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여서 이기세, 한성준 같은 이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녹음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칫 김록주 녹음이 하나도 못남을 뻔했는데 극적으로 음반화된 것이라 여겨진다.
  김록주는 제비표조선레코드에만 녹음을 남겼고 김록주의 음반 제품번호 중 <사랑가> 음반이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가장 앞선 번호이므로 김록주 최초의 녹음이 <사랑가>일 가능성이 있다.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에 김록주의 장기로 춘향가가 언급되어 있고 <사랑가>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곡이기에 김록주가 제일 먼저 <사랑가>를 취입했을 수 있다.
  김록주 명창은 판소리 여성 명창들 중 단연 역대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마치 남성 군인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지녔던 스키타이 여전사같이 웬만한 남성 명창을 훌쩍 뛰어넘는 기량을 보였다. ‘여자 송만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대 국악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약물 과다 중독으로 요절하고 말았다.(노재명, “약물 중독에 의한 특이한 판소리들1” [판소리 명창-창간호], 서울:국악음반박물관, 2005년)
  김록주는 김천에서 모르핀 중독으로 경찰에 검거되는 등 심한 약물 중독 상태였다(1926년 11월 5일자 [동아일보]). 그가 퇴폐적이었기에 모르핀에 중독됐다기보다는 당시 국악인들 사이에서 아편이 유행했는데 후유증의 심각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배, 술처럼 일종의 멋쟁이들 기호품이라는 잘못된 소문, 음악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 기분 좋아진다는 권유와 호기심, 기생 신분의 사회적 괴로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아편을 대량 재배하고 고의로 국악인들에게 퍼트려 절명케 한 측면도 있었다. 그리하여 중독되어 폐인이 돼 가는 상황, 검거, 재판 과정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지속 보도하여 기생인데다 마약까지 하는 국악인들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궁극적으로는 일반인이 국악계, 국악은 상종하지 말아야 될 몹쓸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여 대중음악이자 모국 음악 언어인 국악을 멀어지게 한 것이라 하겠다.
  기생들이 한맺힌 처지를 개선하고 결속을 다지고자 힘을 모아 발행한 잡지 [장한 제1~2호](서울:장한사, 1927년 1월과 2월)에 김록주는 “사랑하는 동무여”라는 글을 발표했다. [장한] 창간호 앞표지의 새장 속에 갇힌 기생 사진 옆에 적혀있는 '조롱 속에 이 몸을 동무여 생각하라'는 문구처럼 그 기고문에 동료들을 생각하는 김록주의 넓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별세하기 직전 유서처럼 남긴 이러한 글과 노력이 여성 계몽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1) 김록주 심청가 중 <중타령>(1926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관리번호 MIMC-0306(박용찬 수집 기증 국립예술자료원 보관 유성기음반 복사본). 졔비標朝鮮레코-드 B160-B (沈淸歌) 중타령 金綠珠

  김록주가 요절하기 2년 전인 1926년에 녹음한 자료다.(노재명 저서 [판소리 음반 사전], 서울:이즈뮤직, 2000년) 고수는 한성준으로 보인다. 김록주가 29세 때 녹음한 것인데 지금 그 나이면 청춘이지만 당시 한국의 평균 수명과 연령별, 직업별 활동력을 감안하면 김록주는 이 음반 취입 당시 판소리 활동이 왕성하고 원숙한 중견 이상의 명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남성적인 창법을 구사했고 동편제의 진수를 보여준다. 김록주의 심청가 중 <중타령> 녹음을 들어보면 송만갑과 유사한 성음인데 사설이나 소리제는 송만갑의 심청가 중 <중타령> 녹음과 일부 차이가 있다.
  김록주의 심청가 중 <중타령>은 박록주가 남긴 녹음과 유사하다. 김록주와 박록주 모두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 판소리를 배운 바 있는데 심청가 중 <중타령>은 김록주와 박록주가 김정문에게 배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송만갑과 제자 김정문이 심청가 중 <중타령>을 다소 다르게 불렀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문은 이 소리를 녹음하지 않았다.
  또 한가지 가능성으로 어쩌면 김록주, 박록주가 부른 심청가 중 <중타령>은 박기홍의 영향을 받은 소리인지 모른다. 박기홍이 김록주, 박록주 출신지인 경상도 지역에서 판소리를 많이 가르쳤고 김록주, 박록주가 남긴 단가 <소상팔경>, 심청가 중 <중타령>에서 박기홍 소리제 특징이 일부 발견되기 때문이다. 박록주는 박기홍에게 소리를 배운 적이 있고 김록주 또한 송만갑에게 사사하기 전에 송만갑 선배 박기홍에게 판소리를 공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계면조에 메나리조를 가미해서 불렀다.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므로 엇장단인 엇모리로 되어있으며 내두름을 반가운 성음으로 내고 첫 가사를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라고 반복하여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새 인물 등장을 강조하며 분위기가 바뀌게 됨을 표현했다. 김록주 명창의 거침없이 신들린 듯 내지르는 신기, 환각적인 아편 성음이 더해져 신비한 느낌을 준다.
  김록주가 사망하기 14개월 전 녹음인데 당시 극심한 약물 중독 상태였고 그럴 경우 대부분 성음이 심하게 망가지는데, 이 녹음을 들어보면 김록주는 몸이 아프고 손상된 상태에서도 성음은 무너지지 않고 시퍼런 서슬로 엄청난 통성을 냈으니 가히 천하장사 같은 체력을 타고난 최고의 여성 명창임을 실감케 한다.

녹음 채록 사설: (엇모리)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저 중의 거동 보아라. 저 중의 호사 봐라. 굴갓 쓰고 장삼 입고 실띠 띠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소상반죽 열두 마디 용두 새금 철죽장 쇠고리 다 짓고 처저얼철 처얼철 흔덜 흔덜 흐늘거리고 올라가. 바람결으 장삼 소매는 펄렁펄렁, 흐늘거리고 올라가. 저 중의 거동 봐라. 청산은 암암허고 달빛은 잔잔헌디 설월이 돋아온다. 백양사 빗긴 길로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올라가. 제 손수 염불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해를 가려 올라간다. 한 곳을 당도허니 풍편에 무슨 소리, 사람을 구하라거날 저 중이 깜짝 놀래어 뒤로 주춤 물러서며는 “허 이것 웬 소리.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 저문 날으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의 울음이냐. 여호가 변하였구나. 날 호리랸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그 곳을 찾어간다. 끼듯 끼웃 끼웃 호홈, “이 울음이 웬 울음.” 한 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 하나 개천물에 들어서 거의 죽게가 되었거날 저 중의 급한 마음 구리백장사투를 얼른 애뚜룸이 들어 내던지고 행전 닷님 벗고 바지 가래를 다르르 말아 자감에 떡 붙이고 징검징검 징검징검 징검징검 징검징검 징검 등지고 개천 안을 들어가 심봉사 고추상투 애뚜리들 훨훨 닫어 개천물에 내다노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얼씨구 좋네.”

2026-01-28
  뒤로

Powered by GodoTech
Copyright (C) 2000 국악음반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