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earkoreaTV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국악 음반    
매체별 유성기음반(SP) | 10인치 장시간음반(LP) | 12인치 장시간음반(LP) | 컴팩트디스크(CD) | 카세트테입(MC) | 디지털오디오테입(DAT) | 릴테입(Reel Tape)
마이크로카세트테입(MCT) | VHS 비디오테입 | 8mm 비디오테입 | 6mm 비디오테입 | 레이저디스크(LD) | 시디롬(CD-Rom) | 디브이디(DVD) | 기타자료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우향 명창 별세 1주기 공연의 노재명 집필 추모사(2015년)
  suhrjm20151028cc.jpg (사이즈:297.8KByte)
suhrjm20151028cc.jpg
* 이는 2015년 10월 28일 오후 7시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우향 명창 별세 1주기 추모 공연 팜플렛에 실린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 집필·낭독 추모사의 초고.

[추모사] 한국을 한국답게 해준 판소리 대가, 성우향 명창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성우향 판소리 인생 80년사-판소리에 팔린 판례』 저자)

  2014년 5월 1일 새벽에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성우향(본명:성판례) 명창께서 별세하셨습니다.
  국악이 이 땅의 음악이면서도 이 땅에서 외면받고 천대받던 시절부터 작고할 때까지 일평생 온몸을 바쳐 국악을 지켜온 국악계 대명사, 특급 국민가수 ‘국창’(國唱)이십니다.
  민족문화가 짓밟힌 일제시대, 총칼과 굶주림으로 고통받은 6.25 전쟁 등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도 국악을 놓지 않은 거장! 8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을 한국답게 해준 명창이십니다.
  한국인이 갓 쓰고 한복 입고 한국어로 부르는 명창의 소리보다도 한국인이 노란 가발 쓰고 양복 입고 낯선 외국어로 부르는 테너의 노래에 더 익숙한 사회 풍토 속에서 여기는 한국 땅이라는 문화 인식을 각성하게 해준 판소리 대가이십니다.
  성우향 명창은 국악 명가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첫 번째 국악 스승이자 큰아버지인 성차옥 씨는 판소리 명고수이자 정가, 피리 명인이고 그 아들 성구봉 씨는 판소리 명창입니다.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계향 씨는 판소리와 가야금 명인이며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금향 씨는 판소리 명창이고 성우향 명창의 고종 사촌 언니 주난향(주송사) 씨도 판소리 명창입니다. 성우향 명창의 판소리 스승 정응민 명창과 성우향 명창의 할머니는 10촌 사이입니다.
  성우향 명창은 1933년(호적:1935년) 전남 화순군 화순면 교리 118번지에서 태어났는데 화순은 국악 명인 명창이 많이 탄생한 곳이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국악이 대중음악이었습니다.
  사실상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국악을 듣고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우향 명창은 가문과 고향의 분위기가 국악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었고 음악 소질을 타고났으며 동네에서 국악을 동요처럼 따라 부르며 자랐고 아홉 살 때부터 판소리, 가곡, 시조를 정식으로 학습하였습니다.
  이러한 음악 영재의 탄생과 조기 교육 환경은 오늘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매우 비옥한 터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성우향 명창은 성차옥, 안기선, 김막동, 조상선, 정광수, 염금달, 강도근, 한애순, 정응민, 박초월, 박록주, 김여란, 김숙자, 성금연, 김명환 명인 등에게 판소리, 남도민요, 정가, 가야금, 전통춤을 사사했습니다.
  성우향 명창은 여러 국악 학습 중에서도 정응민 명창 문하에서 익힌 보성소리를 가장 특기로 하였으며 그 가운데 춘향가로서 2002년에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보성소리라 함은 정응민 명창이 젊은 시절 여러 대가들한테 물려받은 고형의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평생을 연마하여 이루어낸 소리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를 보성소리라 하는 것은 정응민 명창이 일찍이 중앙무대 활동을 중단하고 전남 보성에 은거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입니다.
  정응민 명창의 제자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도 수제자를 꼽자면 단연 성우향 명창이 으뜸이라 할 것입니다.
  성우향 명창은 판소리를 배우고 득음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중년에 경제고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도 했는데 경제고 속에서도 집에 토굴을 파고 소리를 끊임없이 연마했습니다. 판소리만은 놓지 않으셨고 가장 고생하시던 1970년대에 가장 의욕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판소리 완창을 연달아 발표하셨습니다. 수많은 음반을 취입하셨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하셨으며 그 분주한 상황에서 길러내신 제자가 500명이 훨씬 넘습니다.
  성우향 명창의 보성소리는 전통사회 왕에게 벼슬을 받은 어전광대들의 기품있는 판소리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 구성이 치밀하고 사설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아니리가 깔끔합니다. 다양하게 가사를 놓아가는 붙임새,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 완자걸이 등의 기묘한 장단붙임이 쓰입니다. 혀자침, 세우목, 아구성 등의 성음이 자주 사용된다든지, 옛날식 고제에서 쓰였던 빠른 장단인 세마치, 빠른 중모리,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가 자주 쓰인다든지, 소리를 구기지 않고 반듯이 펴서 통성의 덜미소리로 들고 나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청아하면서도 우렁차고 기세등등한 고음으로 온몸을 진동시켜 거침없이 뽑아내는 발성은 성우향 명창의 독보입니다.
  성우향 명창의 생전 얼굴을 떠올리면 소녀 같은 맑은 웃음, 늘 긍정적인 표정의 미소가 생각납니다. 이 점이 바로 본인에게는 건강, 장수 비결이었을 것이며 본인의 공연에 운집한 모든 관객들한테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 보여집니다.
  성우향 명창과 가까웠던 분들 말씀을 들으면 모두 한결같이 본인이 성우향 명창과 가장 친했고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기억하십니다. 그 이유는 성우향 명창께서 판소리에 최선을 다했듯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분 한분 모두에게 진실된 마음과 열성을 다해 정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매사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고 그러한 천성적인 강인한 에너지로 판소리 일가를 이루셨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 갖게 되는 직업을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최상의 결실을 이루어내고 본인뿐 아니라 한 민족, 더 나아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이들의 감성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었던 것. 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답고 값진 삶인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성우향 명창의 소리가 잘 전승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5-11-13
  뒤로

Powered by GodoTech
Copyright (C) 2000 국악음반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