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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이응관 스님과 정응민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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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제8권](서울:문학사상사, 2004년,
필자:김주하 노재명 신중현 이보영 임지훈 정동영 황미나 외)
69~7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제목: 심신을 청결하게 하는 시-이응관 한담(闲谈)
글: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이응관 스님의 시 <한담(閑談)>
인간사(人間事) 어느 구석에
불 사르지 않고 일궈 낸 밭이 있었던가.
(중략)
혼자서
암, 혼자서
마쳐버릴 살림살이지.
- 이응관 <한담(閑談)> 제4회 삼오문학상 대상작
1993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날 모친이 좋은 시를 발견했다며 보여준 것이 바로 이응관 스님의 <한담>이었다.
본인의 모친은 199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목수>로 당선된 신희숙(申喜淑) 시인으로 평소 본인과 모친은 여러 문학 작품에 대해 종종 담소를 나누곤 한다.
본인이 종사하는 국악 분야의 가곡, 가사, 시조 창에도 주옥 같은 문학 작품이 많거니와 고금동서 명작시가 엄청나게 많지만 본인은 이 <한담>이 우선 떠오른다.
이 시를 놓고 재밌게 얘기를 나눈 모친과의 추억이 있기에, 그리고 이 시가 본인의 정서에 잘 맞기에 그렇다 할 것이다. 또 이 시를 통해 어제의 나를 되돌아 보고 오늘의 나를 거울 바라다 보듯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또한 1994년 본인의 첫 번째 저서 [신중현과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책에도 이 시를 언급한 바 있어 이 시에 대한 인연과 기억은 각별하다 하겠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국악 하면 왠지 들어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버리는 문화 풍토였기 때문에 본인은 국악 원액만 가지고는 아니되겠다 싶어 그렇다면 우리 대중음악 가운데 전통음악 요소가 가미된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자 해서 1994년 국악적인 록 음악을 추구한 신중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그러한 우리나라 대중음악 연구서를 냈던 것이다. 그리고 굴곡 많은 신중현의 인생사 부분에 이 <한담>이라는 시를 인용했던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응관 스님은 이 <한담>을 발표하고 나서 몸 담고 있던 절의 큰스님한테 꾸지람을 듣고 이후 다른 작품은 발표하지 않고 불교에 전념하고 있다 한다. 그 큰스님은 끊임없이 심신을 수양하고 공부해야 될 사람이 세상에 나가 부질없는 일을 했다며 나무랬다는 것이다.
본인이 불교신자라서 이 시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은 아직 종교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아내와 장모님이 독실한 불교신자이고 처삼촌은 불교박물관 관장이며 처사촌은 얼마전 스님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스님이 쓴 <한담>과 본인의 여러 인연 또한 한층 각별한 느낌이다.
본인은 국악 분야에 지금까지 18여년을 몰두해 왔다. 요즘 텔레비젼에 나오는 어느 광고의 ‘그냥 친구가 좋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국악의 매력에 왠지 이끌려 별 욕심 없이 깊이 몰입하고 지칠 줄 모르고 빠져 들었다.
무엇 때문에 국악이 좋은가 하고 거창한, 특별한 이유를 대라면 딱히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고 그야말로 그냥 좋다일 뿐이다.
왜 날 사랑하나요 하고 물으면 아름다워서, 예뻐서, 성격이 좋아서, 착해서, 똑똑해서요 이런 답보다는 그냥이란 말이 더 적절한 답일 수 있을 것이다. 두뇌에 의한 판단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일 게다. 글쎄 어머니가 왜 좋나요 하면 뭔 이유를 구구절절 댄다는 게 좀 우습고 너무나 사랑하기에 몇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국한시키기에는 아쉽고 아까운 것과 같은 이치일 듯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본인은 국악 일이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면서 다소 지치고 고독함이 느껴지곤 하였다.
아무리 좋은 음반을 만들어도 500장이 채 안팔리는 현실. 무술 세계로 표현하자면 태권도 9단 정도 수준의 이 분야 최고봉 명인들을 엄선하여 음반을 기획해도 반응은 참으로 싸늘하기 일쑤였다. 만일 지구보다 문명이 훨씬 발달되어 있는 초능력 우주인이 존재한다면 높은 수준의 음악을 그들은 알아볼 것이고 아니사곤 못베길 것인데 역시 안팔리는 걸 보면 이 우주에 지구인보다 우월한 생명체는 없는 게 아닌가 싶기까지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본인은 이따금 이 <한담>을 되내이며 내가 지금 어딜 향해 가는가, 왜, 어떻게 등을 곰곰히 떠올려 본다.
정기적으로 비디오나 오디오를 청소해 주는 클리너처럼 본인은 방향을 잃을 때, 감정 조절이 흔들릴 때, 욕심을 덜고자 할 때, 중심을 잡고자 할 때 이 <한담>을 되뇌곤 한다.
창을 직접 잘하는 명창은 못되어도 판소리를 잘 들을 줄은 아는 귀명창이고자 늘 염원하는 본인은 자동차, 도시 기계 소음 등 여러 소리에 귀가 노출이 돼서 판소리를 빨아들이는 감각이 흐틀어지는 걸 바로잡기 위해 대명창 정응민의 녹음을 주기적으로 듣곤 한다.
중앙 무대, 관중의 환호를 등지고 시골에 묻혀 농사를 손수 지으며 오로지 후학 양성에만 힘쓴 정응민 명창. 그리하여 타임캡슐에 넣어 보관해 놓은 듯 관중 눈치 보지 않은, 세파에 물들지 않은 조선조의 웅장한 포효를 아주 제대로 그대로 품었던 정응민 명창.
오늘날 판소리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정응민. 20세기 판소리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스승 송만갑을 오히려 능가하는 서슬 시퍼런 정신이 살아있는 소리, 고독을 이겨낸 소리. 그 정응민의 소리를 통해 본인은 귀를 청소하고 정신을 올바로 고쳐 잡곤 하는데 이응관 스님의 <한담> 또한 본인에겐 바로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앞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려가다가도 문득 뒤를 돌아다 보게 하고 밤 새우고 초를 재며 바삐 일하다가도 잠시 여유를 갖게 한다. 혼란과 조급함으로 서성이다가도 ‘구름밭 갈고 새 깃 흔적 무심히 지우는 허공의 넉넉함’을 닮고자 마음을 차분하게, 너그럽게 가져 보게 된다.
'화전 일구어 감자 먹고 낮잠' 자는 이가 부러워 몇 해 전에 전원에다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으나 아직 도시 문명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남았는지 도심 아파트와 시골 전원집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역시 ‘마음만 낸다고 아무나 하는 짓’이 아니었다.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는 분명 과욕 때문일 것이다.
눈시울이 적셔질 만큼 맑은 공기에 안겨 행복해 하면서도 오히려 점차 도심 생활의 물질적 편리함에 더욱 몸이 끌리는 지금도 여전히 정응민 명창의 판소리 수궁가, 그리고 이응관 스님의 <한담>이 나의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
어제와 오늘 못이룬 그것. 내일 혹은 먼훗날이라도 ‘화전 일구어 감자 먹고 낮잠’ 좀 자보고 싶다. 그리고 홀연히 깨어 흙벽 바라보고 싱긋이 웃을 수만 있다면.
2004년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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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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