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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 산타령 과천패 소완준 명창 손자 소영춘 증언 내용
  soyoungchun20011119p.jpg(사이즈:297.2KByte)
* 상기 사진(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2001년 11월 19일 서울시 을지로3가 초우다방에서 선소리 산타령 과천패 소완준 명창 손자 소영춘 님 증언 장면. 촬영:노재명.
* 상기 사진(2)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6mm 비디오테입 관리번호 MI6V-0338
2001년 11월 19일 15:30~16:30 서울시 을지로3가 초우다방에서 소영춘(소완준 명창 손자) 님 증언 수록. 대담·촬영:노재명.
* 그간 인적 사항을 거의 알 수 없었던 소완준 명창에 대한 정보는 2001년 11월 19일 후손의 증언을 통해 상세히 밝혀졌고 이는 소완준 명창의 후손이 인터넷에서 소완준 명창을 검색하다가 국악음반박물관 홈페이지(hearkorea.com)를 발견하고 전화로 제보하여 이루어짐.
* 2001년 11월 19일 15:30~16:30 서울시 을지로3가 초우다방에서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소완준 명창 손자 소영춘 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음.(2019년 11월 6일 정리/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발표)

선소리 산타령 과천패 소완준 명창 손자 소영춘 증언 내용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선소리 산타령 과천패 소완준(본명:蘇完俊, 본관:진주, 창씨개명:益山完俊) 명창은 1883년 경기도 과천에서 부친 소한손과 모친 최○○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완준 부친 소한손은 고향이 충청남도 공주 또는 경기도 용인이며 소완준과 그의 부모 사진 등 유품은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다. 소완준 호적은 없어져서 오늘날에는 안남아있다.
소완준 아래 동생은 모두 국악인이 아니며 차례로 남동생 소현필, 여동생 소○○, 여동생 소선녀이다. 소현필은 구한말 한때 궁안에서 관복 입고 근무했으며 소선녀는 인물 혈색이 좋아 선녀 같다고들 했다.
소완준은 부인 권○○(고향:과천)과의 사이에서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모두 국악인이 아니며 차례로 장남 소만기, 차남 소임기, 딸 소○○, 소○○, 소○○이다. 소만기는 일제 때 철도청에 근무하였고 소완준 차녀 소○○가 음악전문학교에서 양악을 전공하고 노래를 했으며 양악 음반을 많이 소장했었다.
소만기는 슬하에 장남 소후식 등 3남 1녀를 두었고 모두 국악인이 아니다. 소임기는 슬하에 5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국악인이 아니며 차례로 아들 소후철, 소영춘, 소영환, 소영수, 소영준, 딸 소영숙이다.
소영춘은 1939년 음력 6월 6일 서울 서빙고에서 태어났으며 슬하에 2남을 두었고 모두 국악인이 아니다. 소완준 후손 모두 국악은 안했으나 다들 노래에 취미가 있고 좋아하였다.
소완준은 성품이 호탕하고 호걸형이며 인품 좋고 풍채가 좋았으며 술을 좋아했고 손재주가 많았다. 소완준은 10대 때 이미 명창으로 두각을 나타냈는데, 소완준의 소리 스승은 누구인지 소영춘이 모른다고 한다.
소완준은 과천에서 서울 서빙고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그 이유는 서울 중앙무대에서 소리 활약을 하게 돼서이며 서울 이사 후 소완준 장남 소만기가 서울 철도청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소완준은 한강 배에서 소리를 하며 많이 놀았는데 배도 한척 소유했었다. 소완준은 궁궐을 드나들며 궁안에서도 소리를 했는데, 구한말 궁에서 근무한 소완준 남동생 소현필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소영춘은 말하였다.
소완준은 1930년 무렵 서울 거주시 경성방송국에 여러번 출연하였는데 출연 며칠전 방송국에서 꼭 엽서로 출연 안내문을 보내왔고 방송국에서 인력거를 보내와 소완준이 그 인력거를 타고 방송을 하러 갔다고 한다. 소완준은 주로 홀로 방송에 출연하여 소리를 했다. 소완준은 악기, 춤은 안했으며 소완준이 음반을 취입했다는 말은 소영춘이 못들었다고 한다.
소완준은 과천패, 방아다리패(역삼동쪽), 서빙고패에서 선소리 산타령 등의 소리 활동을 하였다. 소완준은 비슷한 나이의 뚝섬패 한인학(당시 한인핵으로 불림), 여성들(기생 아님)과 많이 교류하며 선소리 산타령 등을 노래했다.
소완준 명창은 1940년경 서빙고에서 황해도 해주로 이주하였고 1944년 해주에서 작고하였다.(2001년 11월 19일 15:30~16:30 서울시 을지로3가 초우다방에서 선소리 산타령 과천패 소완준 명창 손자 소영춘 증언 내용)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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