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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명 논문 "박동진 명창 음원자료 보존 현황 및 가치"<3>
  rjmMIBOOK1663.jpg(사이즈:253.3KByte)
* 이는 2019년 7월 11일(목) 13:00~17:30 공주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인당 박동진 선생 기념 학술세미나'의 노재명 발표 논문입니다.
노재명 등 공저 [박동진 명창의 삶과 예술세계] 서적(충남 공주:공주시청, 2019년, 비매품 한정판) 16~104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박동진 명창 음원자료 보존 현황 및 가치<3>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판소리 설치미술가)

  박동진의 학습 내력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손병두(청양 명창), 조학진(공주 명창 정춘풍→박기홍→조학진 전승 계보), 김창진(서천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주에서 활약한 김석창의 소리제도 박동진이 구사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 소리제들은 모두 충청도 지역 관련 판소리라는 점에서 희귀한 소리라 하겠다.5>
  박동진이 배운 판소리 중 정정렬, 박지홍, 유성준 소리제는 충청도 이외의 지역 명창 소리이고 정정렬, 박지홍, 유성준의 소리는 다른 소리꾼들도 많이 익혔다. 따라서 박동진 판소리의 가장 중대한 가치는 진귀한 충청도 중고제를 일부 품고 있다는 점에 있다.6>  
  판소리 대가 김석창의 충청도 중고제 소리는 아들 김덕순을 거쳐 손녀 김숙자에게 이어졌으나 김숙자는 중도에 목이 상해 판소리를 작파하고 춤 명무로 활동하였다. 김석창은 녹음을 남기지 않았으며 김덕순과 그의 딸 김숙자 역시 판소리 녹음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박동진이 구사하고 전수한 김석창제는 매우 소중하다 하겠다.
  1824년 『갑신완문』 기록에 의하면 팔도 예인(국악인)을 총괄하는 '도대방' 역할자로 충청도 국악인 중에서 선임했다는 기록이 있다. 초기 판소리 명창들 상당수가 충청도 태생이다. 그리고 충청도에서 근대 판소리 5대 명창 가운데 두 명(이동백, 김창룡)이 탄생하였고 판소리가 충청도의 김성옥-김정근-김창룡-김세준-김차돈 가문에서 거의 이루어지다시피 했다는 기록(『조선창극사』 서적)이 있다. 가장 초창기의 판소리 명창으로 알려진 하은담 또한 충청도 태생이라는 설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 출신 박동진 명창이 대표적인 판소리 인간문화재이자 국악계의 간판 스타로 활동한 점, 충청도 중고제 명창 이동백의 수제자 강장원 후임으로 박동진이 국립국악원의 판소리 명창으로 임명된 것도 우연은 아니라 할 것이며 뿌리 깊은 충청도 판소리 문화 역사 흐름에서 이어진 결과라고 하겠다. 전국국악경연대회 정부시상이 다수 폐지될 위기에 놓였을 때 문화부를 찾아가 항의하여 폐지를 철회시킨 것도 바로 박동진 명창이었고, 이처럼 박동진 명창은 그 옛날 팔도 예인 도대방 같은 역할을 하였다.
  충청도 명창들 중에는 아니리, 창조 도섭을 잘하는 이들이 예로부터 많았고 특히 김석창은 아니리와 붙임새로 고명하였다는 기록이 있고7> 박동진이 그 김석창의 소리제도 구사했는데 박동진의 아니리와 창조 도섭, 말인 듯 소리인 듯 끊어질 듯 이어가는 충청도식 붙임새가 바로 그러한 김석창을 비롯한 충청도 명창들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박동진 명창 판소리에서 약간의 흠이라면 비슷한 조로 부르는 소리가 많이 나와서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판소리 역사상 박동진 명창의 가장 큰 공로는 완창 붐을 일으켜 판소리를 토막소리로 익히던 1960년대 분위기를 바꿔 바탕소리로 전수되는 데 이바지하였다는 점, 맹활약과 특유의 욕 익살 등으로 판소리를 대중화한 점이라 생각된다.
  최근 국악계에서 국악을 대중화 한다는 취지로 국악을 서구식으로 과다하게 왜곡 변질시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박동진 명창은 정통 판소리로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이러한 노력과 결실은 앞으로 국악의 대중화 시도에 있어서 많은 후학들에게 두고 두고 큰 참고가 되리라 여겨진다.
  또한 전승이 끊어진 판소리를 박동진이 복원 공연한 것도 큰 업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예전 판소리 어전광대들이 지녔던 풍모를 되살려 격식에 맞춰 점잖은 창의(氅衣)에 갓을 쓰고 공연을 하여 판소리 명창의 품격을 다시 올려 세웠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강력한 신분 계급 구조로 철저히 억눌린 민중, 빈부 격차로 처참하게 사는 사회 약자층의 심정을 대변하여 세상의 나쁜 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는 다른 성악에서 찾기 어려운 호령조, 호통조로 무척 강한 발성을 사용한다. 억울한 서민, 비참한 민중의 삶과 마음을 최대한 멀리까지 실어 보내야 했기에 화난 사람처럼 피 끓는 목소리, 세상을 향해 꾸짖는 성음, 호통치고 호령하는 소리를 힘껏 낸 것이라 하겠다.
  특히 공주 황호통 명창이 우렁찬 호통 기운이 많은 창법을 구사했는데 공주 출신의 박동진 명창의 강인한 발성도 황호통을 비롯한 여러 명창들의 호령조, 호통조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판소리 명창들은 춘향가에서 신분 계급 병폐와 권력자의 부정부패를 수면 위에 드러냈다. 수궁가에선 본인이 더 살기 위해 남을 속여 신체 장기를 빼앗으려는 지배계층의 과욕과 횡포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궁가가 표면에 나타내는 것은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면모지만 은유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된 내용은 소외계층의 열악한 삶이다. 지배계층이 억누르고 외면하는 것을 마이크, 스피커가 없던 시절 소리꾼들이 산에서 목소리를 연마해 증폭시켜서 통성으로 목놓아 소리쳤다.
  약이 귀했던 조선시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병든 가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고, 이러한 전통은 20세기까지 이어져 대금 명인 박종기와 판소리 명창 김창룡의 부인이 본인 다리살을 잘라 목숨이 위태로운 가족에게 먹여 살렸다. 그리고 나쁜 사람들은 어린이를 헤치거나 갓 죽은 사람 무덤을 파헤쳐 시체 장기를 가져 가서 병을 고치려 하기도 했었다. 수궁가는 바로 그러한 시대상,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헤치고 권력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성을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흥보가에서는 부모 유산을 형제간에 나눠도 충분히 부자인데 더 부자이고 싶어 동생에게 아무 것도 안주고 내쫓고 곡식을 얻고자 찾아와 비는데 때리는 놀보 부부를 통해 거부의 과욕, 빈부 격차, 서민의 가난함을 표현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제가 조선시대에는 더욱 심해서 죄진 부자가 맞아야 될 매를 가난한 사람한테 돈 주고 떠넘겨서 죄인이 매를 안맞고 엄한 사람이 매를 대신 맞는 매값 금전 거래까지 흥보가에 들어있다. 조선시대 농민들이 착취되는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고, 그 부자 죄인 매를 대신 맞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 흥보는 그 일감 마저 빼앗긴다.
  허준은 음식을 안먹고도 침을 삼켜 생존하는 비법을 『동의보감』에 남겼는데 조선시대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 연구한 결실이었다고 보여진다. 최근 학계 분석에 따르면 조선 상당수 양반은 하루 5끼를 먹었다 한다.
  적벽가에선 전쟁 희생양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다. 여러 판소리 중에서 적벽가는 호통, 호령 통성이 가장 강하게 발성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의 살벌한 분위기, 군인들의 기세등등한 면모를 표출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부르기가 어려워 예로부터 적벽가를 잘하면 진정한 명창이라 하였고 박동진 명창이 바로 이 적벽가로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적벽가는 왕 앞에서도 당당히 호령조로 부른 명창들의 기개가 두드러지는 판소리이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지배자로 인해 민중이 참혹한 상황에 직면하는 이야기, 임진왜란 같은 내용의 노래를 귀담아 듣고 소리광대에게 조선시대 왕은 벼슬까지 내리는 겸허함과 포용력이 있었다.
  판소리가 오랫동안 여러 국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혀온 것은 음악적인 완성도도 높지만 표방하는 정신이 정의롭고 고귀해서라고 할 수 있다. 최하위 신분으로 약자들의 처지와 분노를 노래로 만들어 목숨 걸고 수련하여 용기있게 최고 권력자들을 향해 외친 명창들은 소리 의인이었다. 이러한 정신과 기상을 말살하려 일제 때 일본이 판소리를 없애고자 명창들에게 아편을 퍼트려 요절케 하였고 권번 문화로 변질시켰다.
  심청가에선 시각장애의 어려움, 인신 매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부자가 더 부자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돈 주고 사서 제물로 바치는 자본주의 만행을 꼬집고, 시각장애를 극복하여 앞을 보게 된다는 인생 역전 이야기를 통해 기쁨과 희망을 준다.
  조선시대 억울한 일을 당한 민중이 호소할 방법이 별로 없었고 시각장애의 불편함을 대다수 사람들은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그러한 이야기를 적은 책을 구해 보기도 힘들었다.
  그럴 때 천대받던 소리광대들이 각고의 수련 노력으로 자신의 몸 자체를 앰프와 스피커로 변화시켜 전국을 유랑하며 그러한 사회의 실태를 목 놓아 외치고 다닌 것이다. 저 멀리 고위관료, 임금 귀에까지 닿기를 바라며 온몸을 진동시켜 소리를 있는 힘껏 멀리 강력하게 던졌다. 감미로운 발라드를 못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 위기에 놓인 이들을 대신해 세상을 향해 혼내고 알려야만 하는 의협심과 사명감이 막중했기에 혹독한 수련으로 폭포수 소리를 뚫을 만큼의 강한 통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지 여유있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술 마시며 유흥으로 재밌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소리꾼이 유명해지고 출세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해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했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 바로 판소리이고 홍익인간 이념, 이것이 판소리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박동진 명창이 작곡한 신작판소리 충무공 이순신, 유관순전 등이 바로 그러한 판소리 정신의 맥을 잇는 대표적인 근현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8>
  대개 중년이 되면 새로운 가사를 외우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박동진 명창은 중년 이후 창작한 신작판소리를 비롯하여 실로 엄청난 분량의 여러 판소리 완창 가사들을 암기하여 능숙하게 공연했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적인 기억력과 천부적인 예술성을 잘 보여주는 점이라 하겠다.


6.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 모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022
햇님국극단의 여성국극 마의태자 공연 안내 인쇄물.
출연: 김경애 일행. 박동진 작곡.
1954년. 크기: 가로 19cm, 세로 26cm.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2]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021
햇님국극단 여성국극 '님은 하나이기에' 공연 안내 인쇄물.
출연: 김경애·오정숙·이소자·김성진 일행. 조건 작, 이유진 연출, 박동진 작곡.
1950년대 중반. 크기: 가로 8cm, 세로 17cm.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3~4]
1968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스케치 - 판소리 興夫歌 완전錄音…二日 VUNC 통해 放送”(박동진 흥보가 완창 방송) 기사.
1969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판소리春香歌 발표회”(1969년 5월 20일 8시간 동안 국립극장에서 박동진 춘향가 완창 공연) 기사.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문헌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5]
판소리 명창 박동진 1970년 무렵 공연 장면. 고수: 이정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6]
판소리 명창 박동진 1970년 무렵 공연 장면. 고수: 김득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7]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LP음반 관리번호 MI12LP-0729~0733
박동진 애창곡집-판소리 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 LP음반 5종 세트.
地球레코-드公社 JLS-120461-1~5(5LP), 1971년 녹음 제작. 앞표지에 박동진 명창 사진 수록. 북:한일섭. 녹음기술 담당:최성락. 뒷표지에 박동진의 약력이 실려있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8]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036
국립창극단 제17회 공연(추석맞이 대공연) - 창극 흥보가 공연 안내 인쇄물
연출:이진순, 창 지도:김연수, 미술:김정환, 분장:이기송, 조연출:김현진, 악사:김득수·한일섭·정달용·김용기·박덕용. 도창:박초월·박동진, 놀보:박후성, 놀보처:성창순, 흥보:조상현, 흥보처:한농선, 마당쇠:성순종, 제비왕:김연수, 시위관:신평일·박봉술, 선전관:김동준, 상제:박동진, 도승:강종철, 동자:김혜리, 장군:강종철, 상여꾼:신평일·박봉술·김동준 외. 그외 다수 출연.
일시: 1972년 9월 22~25일 낮 3:30, 밤 7:30, 장소: 서울 국립극장.
총 6쪽. 주요 출연자들 사진 등 수록.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9]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038
국립창극단 제18회 대공연-창극 배비장전 안내 인쇄물
1973년 2월 15~19일 서울 국립극장 공연. 총 6쪽.
배비장:박후성, 도창:김소희·김연수·박초월, 배비장 모친:박귀희, 제주 목사:박동진, 방자:장영찬, 애랑:남해성, 정비장:강종철, 월선:성창순, 비장:허희·성순종·정권진, 사령:신평일·박봉술, 고직:최영길, 수노:조통달, 호방:김동준, 선인:김득수, 도사공:조상현, 아낙:한농선. 국악 반주:한일섭·한갑득·박동현·김한국·김득만·이정성, 연출:이진순, 미술:김정환, 안무:전황.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0]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관리번호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3825~3836
박동진 판소리 충무공 이순신 CD음반
지구레코드 JCDS-0788(3CD), 1973년 녹음, 2006년 제작, 북:박후성, 감수:이은상, 해설서 집필:노재명, 앞표지 박동진 사진 제공:국악음반박물관.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035
국립창극단 제20회 공연 - 판소리 흥보가 연창 공연 안내 인쇄물
소리:박동진·박초월·김소희·박귀희·강종철·장석원·허희·남해성·한농선·조상현·이선옥·조통달·김길자·정경화·김종엽·이정일·한정하. 고수:박후성·김명환.
일시: 1974년 7월 5~6일, 장소: 서울 국립극장.
총 8쪽. 김창구·이보형·성경린·한만영 글, 출연자들 사진, 공연 순서, 집필자 미상의 간단한 용어 해설 글, 주요 대목 사설 등 수록.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2]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LP음반 관리번호 MI12LP-0109~0114
판소리 赤壁歌 6集-Pan So Rie JUKBUKGA Vol.6
唱: 朴東鎭 鼓手: 金東俊(Chang: Bak Dong Jin, Kosoo: Kim Dong Jun)
유니버어살레코드 80720~80725(6LP 박스물), 1974년 스테레오 녹음 제작. 표지에 박동진의 약력과 사진 2장 수록.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3]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LP음반 관리번호 MI12LP-0734·2793·2794·2975·3016
오아시스 민요 시리즈-인간무형문화재 제5호 朴東珍 赤壁歌(판소리)
오아시스레코오드社 OL-1775, OL-8071(1LP/초판), 1976년 STEREO 녹음, 1976년 2월 27일 제작. 앞면 30분, 뒷면 29분 45초 수록. 앞표지에 박동진 사진 수록. 고수 성명 미상. <적벽화전>~<군사 점고> 녹음 수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5장 중 1장은 현재 우리소리도서관에 대여 전시중.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4]
오른쪽부터 국악인 이생강·안향련·박양덕·신영희·박귀희·박동진·안숙선·김일구 등의 모습. 1970년대 후반 신재효 생가앞 기념 사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5]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행사 인쇄물 관리번호 MILIVEP-0183
박동진 판소리 흥보가 감상회 안내 인쇄물.
일시: 1984년 12월 17일 오후 2시, 장소: 서울 충무로2가 설파소극장.
주최: 동아문화센터. 이 행사는 무료 공개 강좌 형식으로 진행.
이 공연은 총 6회에 걸쳐서 이어진 판소리 흥보가 완창의 첫번째 안내 인쇄물. 31쪽짜리 인쇄물. 판소리 흥보가 초입~<흥보가 매품 팔러 가는 대목> 한글 사설 수록.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6]
1986년 11월 미국 시카고 국악 공연 기념 단체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국악인 박동진·박귀희·오은주·김소희·이생강 모습.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7]
1995.8.11.19:00~22:00.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공사 KBS홀 앞마당에서 열린 ‘광복 50주년 기념 국악 큰잔치’ 공연. 박동진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고수:장덕화) 장면. 왼쪽부터 차례로 박동진·장덕화 모습.
촬영: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0248.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8]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1916~2003년) 명창 증언 장면. 당시 박동진은 중고제 명창 이동백, 충청도 출신의 명고수 지동근 등에 대해서 많은 회고담을 들려 주었다.
1999년 8월 19일 충청남도 공주시 무릉동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에서 노재명 촬영.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19]
공주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에서 '명인 명창의 발자취를 따라서'(충청도 편, 판소리 중고제 유적지 순례공연 - 박동진 편) 행사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 사진. 왼쪽부터 임경일·정혜원·김양숙·송경주·노재명 모습.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위원장:권오성).
기획 자문:노재명, 진행:정혜원·백재선·송경주 등, 협조:이자균·임경일·김희라·김은정 등. 행사 참여 기념 음반·서적 제공: 나라음악큰잔치·서천군.
선착순 모집. 교통비, 식비, 관람료, 기념 음반·서적 무료 제공. 명창과 귀명창의 대화 시간, 귀명창들의 판소리 경연, 판소리 학자 강연, 유적지 및 관계 행사 관람, 차·김밥 등의 간식과 중식 제공.
날짜: 2007년 10월 20일(토) 오후 2시, 장소: 공주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소리: 김양숙·정순임·신성수·고한돌 외, 대금산조: 전윤허(장고:신성수).
시나위 합주: 전윤허(대금) 윤도희(가야금) 배기연(거문고) 신성수(장고).

박동진 관련 사진·자료[20]
노재명 판소리 설치미술(50) 김석창 명창 판소리 춘향가 중 <신연맞이> 공연 장면 형상화 작품.
2019년 5월 10일~6월 13일 완성. 2019년 7월 11일 공주문예회관 소공연장 '인당 박동진 기념 학술 세미나' 노재명 논문 "박동진 명창 음원자료 보존 현황 및 가치" 책자에 발표 수록.
재료: 나전칠기 자개장, 박헌봉 귀명창 문패 등 혼합. 크기: 가로 150cm, 세로 29.7cm, 폭 120cm.
김석창은 공주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각도 마부, 말, 사투리가 다양하게 나오는 춘향가 중 <신연맞이> 마부타령을 잘했다. 박동진이 부른 춘향가 <신연맞이> 말 사설이 바로 이 김석창제라고 한다. 박동진 판소리의 가장 중대한 가치는 이 김석창제를 비롯해서 진귀한 충청도 중고제를 일부 품고 있다는 점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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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재명 편저 『20세기 국악 100년 자료집(1) 판소리 음반 사전』(서울:이즈뮤직, 2000년) 참고.
2> 노재명, “박동진 명창의 신작판소리 이순신전” 『'박동진 판소리 충무공 이순신' 음반 해설서』(서울:지구레코드 JCDS-0788, 3CD, 1973년 녹음, 2006년 제작, 북:박후성, 감수:이은상, 앞표지 박동진 사진 제공:국악음반박물관)
3> 이 '심청전 창:이동백·김창룡·정정렬·조학진·임소향·문련향, 고:한성준' 복각 LP음반의 문제점과 오류들을 노재명이 바로 잡아 노재명 저서 『판소리 음반 걸작선』(서울:삼호출판사, 1997년)에 모두 제대로 고증 정리해 놓았다.
4> 노재명, “명인 명창 박물관(1) 판소리 명창 박동진” 『월간 국악 2002년 1월호』(서울:국악중심)
5> 노재명, 『‘빅타 유성기원반 시리즈(13) 30년대 판소리 걸작집-이동백·임방울·임옥돌·방진관·심상건·정광수’ 음반 해설서』(노재명 기획, 서울:서울음반 제작, SXCR-101, 1LP, 1993년 / SRCD-1142, 1CD, 1994년)
노재명,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2) 판소리 명창 김창룡·그 손녀 김차돈’ 음반 해설서』(노재명 기획, 서울:엘지미디어/LG소프트 제작, LGM-AK002, 1CD, 1995년)
노재명,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5) 심상건 가야금산조와 병창' 음반 해설서』(노재명 기획, 서울:엘지미디어/LG소프트 제작, LGM-AK005, 2CD, 1995년)
노재명, “판소리 명창 이동백 단가 연구” 『한국음반학 제8호』(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1998년) 85~177쪽.
노재명 편저 『중고제 판소리 흔적을 찾아서』(서울:도서출판 채륜, 2012년)
6> 노재명 집필 『꽃피는 중고제 판소리』(충남문화재단·국악음반박물관 편, 서울:도서출판 채륜, 2016년)
7> 정노식,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175쪽.
8> 노재명 편저 『나라음악큰잔치 국악 도서(1)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201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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