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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2년 5월 10일 19시부터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판소리 명창 박록주 추모 공연 팜플렛에 실린 서문입니다.
[박록주 추모 공연 추모사]
박록주! 그 큰 그림자 되새기는 자리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약 일백년 전이네요, 한 시골 가난한 집에 어여쁜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가 열두살 소녀가 되었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판소리를 배우러 가게 되었답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도 매혹적인 건지 순박하고 철모르는 소녀는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함께 소리를 배우던 동료들이 너무 힘든 나머지 중도에 모두 포기를 했지만 그 어린 소녀는 놀랍게도 끝까지 홀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거의 모두 책임져야만 했던 이 소녀도 차츰 고통스러워 했고, 성장하면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간절히 죽고자 해도 뜻대로 죽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후 소녀는 점차 시들어 가는 판소리를 양 어깨에 홀로 짊어진 듯 있는 힘껏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가꾸어 갑니다.
그가 다 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명창, 국창이라고 했습니다. 인간문화재, 국보라고 했습니다.
치마만 둘렀지 소리로나 기개로나 남자들보다 더 대범하고 당차게 판소리를 잘 지켰고 국악인을 무시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활동했습니다.
본인은 소리를 잘 안가르쳐 주는 스승들한테 엄하고도 힘들게 배웠지만 자신의 제자들한테는 판소리를 조금이라도 많이, 세심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썼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자신은 말년까지 가난했지만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판소리의 왕이었지만 그는 영화 보는 것도 퍽 좋아했고 자전거도 잘 탔고 여러 가지 호기심이 많았고 노년에도 소녀처럼 웃음 짓는 그런 분이었답니다.
지금은 남자보다 여자 명창이 더 많지만 남자들이 하던 판소리를 여자가 처음 하고자 했을 때는 남장을 하고 공연을 해야 했지요.
그 만큼 판소리는 남자들만이 하는 것으로 여긴 때도 있었고, 국악인을 무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에 많은 판소리 명창들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박록주! 이 명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판소리는 아주 초라한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강직하고 안돌아가실 것 같았던 그분이 이 세상에 안계신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얼마 안된 어제 일 같은데 이제 하늘엔 온갖 우주선, 인공위성이 새처럼 날아다닙니다.
아마 지금 살아계시다면 우주선 타고 달나라 가고 싶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
박록주! 그 큰 그림자 되새겨 보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그림자 안에만 우둑허니 앉아있었는데 이제 그림자 밖으로 잠시 나가서 그 큰 족적 차분히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판소리를 아끼시는 여러분들도 그 큰 그림자 되새겨 보는 자리에 부디 많이 참석하시어 거인의 아름다운 체취를 느껴보시기 바라옵니다.
2002년5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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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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