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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야금 명인 지수복 증언 내용
  jsbh20111104.jpg(사이즈:85.1KByte)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2011년 11월 4일 부산시 동구 수정2동 548-1(2층) 부산중앙국악원, 중앙국악관현악단 건물 모습.
국악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프로그램(방송 진행:노재명) 지수복 명인 편 현장취재 장면.
지수복 명인 가야금산조 연주 장면. 지수복 명인 손도장. 지수복 명인(우측)과 노재명 대담 방송 장면.
* 2011년 11월 4일 부산시 동구 수정2동 548-1(2층) 부산중앙국악원, 중앙국악관현악단 건물에서 노재명이 지수복 명인을 인터뷰하고 2011.11.20.18:00~19:30.국악FM방송 노재명 진행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에 방송된 내용 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2017.10.5 정리/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발표)
* 지수복 명인: 2017년 11월 29일(양력) 오전 11시 20분 별세. 빈소는 부산 인창병원 장례식장 302호, 발인은 2017년 12월 1일, 장지는 영락공원.

판소리·가야금 명인 지수복 증언 내용
대담·채록/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 명창 100’ 안녕하십니까. 노재명입니다. 21세기 최고의 가무악 대가들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해금·피리·태평소 대가였던 인간문화재 지영희 명인은 슬하에 따님들이 많았는데요. 따님 대부분이 부모인 지영희·성금연 명인에게 국악을 배웠습니다. 지수남, 지수복, 지성자, 지미자, 지순자, 지윤자, 지명자 같은 분들이 바로 지영희 명인의 따님으로 가야금, 판소리, 무용 등을 익혔고 그 가운데 지수복, 지성자, 지순자 씨가 현재 활발하게 국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설적인 관악기 대가 지영희 명인의 따님 중에서 지수복 명인을 만나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지수복 명인을 만나기 위해서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전수소에 와있습니다. 지수복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수복: 안녕하세요.
노재명: 예, 어떻게 건강하신가요?
지수복: 예, 건강합니다.
노재명: 집안의 국악 명인들이라든가 선생님이 살아나오신 얘기, 또 가무악에 두루 능하시기 때문에 오늘 90분 방송이 좀 모자랄 듯한데요. 원래 욕심껏 하자면 한 3부작 정도 선생님 특집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오늘 그 많은 얘기 중에서 주로 선생님 그동안 음악을 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집중적으로 저희가 많이 여쭙고 연주를 청하겠습니다 선생님.
지수복: 예.
노재명: 우선은 음력으로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나요?
지수복: 음, 저 호적에는 4월 5일인데요. 음력으로 2월 25일.
노재명: 2월 25일이요.
지수복: 예.
노재명: 그리고 띠로는 소띠가 맞으시구요.
지수복: 소띠, 정축생 맞습니다.
노재명: 예. 정축생이시면 1937년.
지수복: 예, 37년 생입니다.
노재명: 올해 75세가 맞으시구요.
지수복: 예, 맞습니다.
노재명: 예, 태어나신 주소지가 어떻게 되시나요?
지수복: 평택 만호리.
노재명: 고향은 평택에서 나셔 가지고 나중에 서울 봉익동에 사셨는데 봉익동에는 그러면 몇 살 때 이주해 오셨나요?
지수복: 어렸을 때 와서 나는 기억이 없어요. 어, (부친 지영희 명인이) 서울서 사셨는데 할머니가 평택에 사셨거든요. 그래 거길루 가 가지구 저를 낳았답니다.
노재명: 예, 그래서 서울 생활하시다가 이 곳 부산에 오신 것은 몇 살 때세요?
지수복: 제가 서른 한 두 살에 왔을 거 같습니다. 그래 가지고 계속 부산에서 있었지요.
노재명: 그리고 아까 제가 소개해 드린 대로 부모님께서 국악 활동하셨는데 부친께서는 성함이 지영희 선생님이 맞으시구요.
지수복: 예, 예.
노재명: 모친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지수복: 저희 생모는 정경순이라고 따루 계시고 그러구 성금연 그 선생님은 서모세요. 국악 가야금이며 판소리는 성금연 선생님한테 인제 처음으로 시작을 했어요.
노재명: 친모 정경순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시집을 오셨나요?
지수복: 그 이웃에 계셨나 봐요.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꼭 그 어머니 아니면 장가 안간다구 떼를 써서 인제 그래 결혼을 했는데 굉장히 빨리 하셨어요. 열 네 살에 시집을 와서 열 다섯 살에 우리 언니, 그러니까 지수남 언니를 낳았어요.
노재명: 형제간은 아까 제가 잠깐 소개를 했습니다만 10남매가 맞으시구요.
지수복: 예, 딸이 일곱이에요. 어머니한테 둘, 성금연 그 어머니한테 다섯. 그래서 일곱이고 아들이 하나, 그러니까 둘 낳았었는데 다섯 살 때 막내가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8남매가 남은 거지요. 근데 그 중에 인제 또 지수남, 그 언니하고 지미자하고 또 별세를 했지요.
노재명: 그 중에서 국악 활동하신 분들이 지수남 씨.
지수복: 다에요. 다했어요.
노재명: 그렇게 장녀를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거의 다 하셨고요.
지수복: 예.
노재명: 그래서 부친 되시는 지영희 선생님은 피리·태평소 그런 관악기, 또 해금 명인이셨고 성금연 명인은 가야금산조·병창, 또 판소리도 잘하셨었구요.
지수복: 예.
노재명: 그렇게 인제 국악을 부모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입문을 하셨는데 그 입문하실 때 가족 여러분이 모두 찬성을 하셨나요?
지수복: 아, 우리 생모님이 반대하셨죠. 그니까 왜정 시대 때죠. 제가 나이 일곱 살 아마 그, 그 무렵인 거 같애요. 근데 내가 기억하기루는 그 한성준 씨라구 계세요. 그 분인 거 같애요. 그 거기를 데리구 갔는데 우리 어머니가 나는 안시킨다구. 막 몌칠 굶구 막 그래 가지구는 안가리켰어요. 그래 6.25 후에 배우기 시작한 거에요 제가.
노재명: 그러니까 아마 그런 인연은 부친 되시는 지영희 선생님께서 젊으셨을 때
지수복: 거기 계셨대요.
노재명: 예, (한성준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 악사로 계셨기 때문에 그런 인연이 되셨던 거 같구요.
지수복: 예, 예. 또 그 무용을 많이 알구 계시는 게 최승희 씨하구 같이 단체를 다녔거든요. 최승희 씨 단체에 우리 아버지가 악사로 다녔어요. 왜정 시대 때 그러니까 만주고 일본이고 다 다니셨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춤에 대한 것도 훤하시고 그리구 인제 뭐 <꼭두각시>니 그런 거 전부 아버지가 그 음악을 만들어서 무용을 짰다는 얘기가 있어요.
노재명: 예, 그러니까 월북하신 무용의 대가 최승희 씨 그 분의 반주 악사를 하셨던 분이 부친 되시는 지영희 선생님이시구요.
지수복: 예.
노재명: 자라실 때 아주 대가족이셨구요. 형제분들이 10남매셨고 또 부모님, 이모님들까지 국악을 하셨던, 어떻게 보면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하셨을 거 같은데 어렸을 때 집안 분위기가 어땠었는지 회고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음, 그 때는 아버지가 같이 단체를 다녔어요. 임춘앵 씨 단체, 여성국극동지사라구 거기 다녔거든요. 6.25 사변 나구 나서 뭐 한 4년 훈가. 그래 가지구 거기 같이 다니다가 편안해지니까 서울에 그냥 단체를 안다니구 계셨어요. 그러니까 그 때는 인제 녹음기가 없어서 무용을 생음악으루 했거든요. 그래서 인제 그 무용 반주하러 다니시느라구 서울에 계셨구. 그 서울에 계시니까 또 학원을 하게 되셨구. 그래 학원 하면서 무용하고 장단하고는 아버지가 가르켰구, 가야금은 어머니(성금연)가 가르켰고 판소리하고 그랬어요.
노재명: 예, 말씀을 듣다 보니까 언급해 주신 부모님 지영희, 성금연 명인 생각이 나구요. 그래서 아까 그 말씀해 주신 대로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국악을 배우셨는데 특히 그 성금연 명인한테 가야금산조를 배우셨죠?
지수복: 예.
노재명: 그래서 여기서 잠깐 그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앞부분 진양조, 중모리를 부탁드려 봅니다.
지수복: 예.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진양조-중모리(가야금:지수복, 장고:강봉천)
노재명: 방금 들으신 연주는 지수복 명인께서 이 현장에서 직접 들려주신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진양조와 중모리 장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장고 장단은 아드님 되시는 강봉천 씨가 맡아 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성금연 명인께서 이 가야금산조를 가르쳐 주셨구요. 또다른 판소리나 다른 것도 배우셨죠 성금연 선생님한테?
지수복: 예, 판소리하구 병창하구 다 배웠죠.
노재명: 그 단가는 어떤 소리를 배우셨나요?
지수복: 음, 제일 먼저 <운담풍경>을 배웠는데 지성자하구, 그 또 사촌동생 지춘자가 있어요 인제 세상을 떠났는데. 개하구 나하구 서이를 가르키는데 성자가 아직 어리니까 발음이 안되는 거에요. 그래 밤나 혼나고 나는 콧소리를 한다고 혼나고 그러면서 배웠어요. 허.
노재명: 지수복 선생님께서 그 성금연 명인한테 배우실 때가 몇 살 때신가요?
지수복: 음, 그러니까 열 한 다섯 살 때부터 시작을 했나 봐요. 음, 다섯 살 때부터 해가지구 한 3~4년 배웠을 겁니다. 판소리두 그 심청가 그러문 그 중에 눈대목 그죠? 재밌는 대목만 배웠거든요. 심청가, 춘향가 그렇게 배웠어요. 수궁가두 배웠어요. “화사자 불러라” 그 생각이 나니까.
노재명: 예, <토끼 화상>이요.
지수복: 예, 예. “토끼 화상 그린다.”
노재명: 그리고 가야금병창은 어떤 부분을 배우셨나요?
지수복: <녹음방초>
노재명: 예, 예전에는 산조하고 병창을 반드시 이렇게 앙상블로 같이 배웠었구요.
지수복: 예, 예.
노재명: 또 산조 전에는 가야금풍류를 기본적으로 배웠는데요.
지수복: 예, 맞습니다.
노재명: 그때 성금연 선생님한테 풍류도 배우셨나요?
지수복: 예, 그럼요.
노재명: 예, 성금연 명인이 어떤 분이셨는지 모친이자 은사님이신데 그 성품이나 지도 방식, 예술성에 대해서 좀 회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그 가리킬 때는 무서웠든 거 몰랐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너그러우셨든가 봐요. 응, 굉장히 다정하고 그 어려운 것두 몰랐는데 인제 그 다음에 박귀희 선생님, 김소희 선생님은 막 잘 못하면 막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으니까. 응, 그 분들은 엄했구나. 그 후에는 그걸 느꼈는데 그 어렸을 때는 그런 거 몰랐어요. 예.
노재명: 그러시고 지금 말씀해 주시는 지수복 선생님께서 혼인은 언제 하셨나요?
지수복: 좀 일찍 했어요. 스물 두 살에.
노재명: 예, 그 낭군님께서는 국악 하시는 분은 아니시구요.
지수복: 예, 아니구. 사업 하시는 분이에요.
노재명: 예,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어요?
지수복: 그 어쩌다 보니까 됐어요. 허하하하하. 그래 따라서 여기 부산에두 내려와서 살게 됐구요. 근데 인제 그 냥반이 살았을 때는 마, 되게 (국악 하는 걸) 반대하셨거든요. 근데 인제 돌아가시고 나니까 세상 재미가 없어요. 인제 아버지가 그 전부터 “얘, 거기 학원을 해라. 학원을 해라.” 그래서 “저는 국악 밥 안먹어요.”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 밥 먹고 있어요 국악 밥을. 그래 내가 항상 우리 아버지가 보면 “얘, 요년 밥을 안먹어?” 그럴 거라고. 하하하하하.
노재명: 하하하하하하. 슬하에 자제분은 몇 남 몇 녀 두셨어요?
지수복: 아들만 셋 뒀어요.
노재명: 예, 그리고 그 중에서 강봉천 씨가 현재 작곡가로 활동을 하고.
지수복: 예, 느닷없이 그렇게 그 뭐야 국악에 취미가 있드라구요. 예, 그런데 소리를 가리키니까 안돼요. 소리 영 못하드라구. 그래 인제 박귀희 선생님 댁에 갔을 때 선생님이 “야! 얘, 판소리를 가르키지 그랬냐?” 그러는데 “얘, 안돼요 판소리.” 거 아무거나 유행가를 시켜보는데 진짜 안됐든가 봐요. 아무 소리 안하시드라구. 흐하하하하.
노재명: 하하하하하. 그러면 그 삼형제 중에 강봉천 씨가 몇째 아드님이세요?
지수복: 막내지요. 늦게 낳아서 막내에요.
노재명: 예, 그러시고 며느님 되시는 신은주 씨가 또 가야금 2008년도에 대통령상 수상하시고 지금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이요 활약을 하고 계십니다.
지수복: 예.
노재명: 예, 여기서 잠깐 지수복 명인의 자제분 말씀을 듣고 다음 순서 이어갈까 합니다. 자녀분들은 어머니 지수복 명인을 평소에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작곡가로 활동 중인 아드님 강봉천 씨, 지수복 명인의 며느님 되시는 가야금 활동하고 계시는 신은주 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지수복 명인의 아들 강봉천 인터뷰 내용, 박대성류 아쟁산조 중중모리(아쟁:강봉천, 장고:신은주) 녹음 삽입.
지수복 명인의 며느리 신은주 인터뷰 내용, 신은주 가야금병창 단가 <호남가>(장고:강봉천) 녹음 삽입.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시는데요.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전수소에서 방송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내용은 지수복 명인에 대한 아드님 강봉천 씨, 며느님 되시는 신은주 씨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자녀분들 이렇게 평상시에 어머니, 또 예술가로서 지수복 명인을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정이 굉장히 화목하신 거 같습니다.
지수복: 예, 뭐 반대 안하고 잘 따라주니까.
노재명: 예, 지영희 선생님께서 굉장히 국악계의 실기 면에서나 이론 면에서, 또 아주 정의롭게 국악을 아주 깨끗한 판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던 분인데 그 부친 생각하시면은 만감이 교차하실 거 같애요. 지독하게 가르칠려고 노력도 하셨을 거고 그 분께서.
지수복: (가르치려는) 욕심이 많았지요.
노재명: 예, 부친에 대해서 회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예, 먼저 우리 아버지는 신식 공부를 안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만 마치고 서당 공부를 허신 분이거든요. 그런 분이 어떻게 오선보를 그리면서 시립관현악단을 이끌고 지휘자로두 활약을 하셨나. 저는 참 그게 신기해요. 근데 항상 보면은 쪼끄마한 책상을 한편에 놓으시고 가야금, 동생이 어렸을 때 손이 짧으니깐 가야금을 일부러 맞췄답니다 작게. 그걸 항상 무르팍에다 놓구 작곡을 하셨고 편곡을 하셨고 그러든 모습, 음, 그래요.
노재명: 예.
지수복: 그러구 으, 저 어렸을 때는 물론 저 하나였잖아요. 제가 그러니까 열 아홉 살에 그러니까 아홉 살에 해방이 되었구 해방되고 몇 년 후에 지미자를 처음으로 애기를 안게 됐어요 어무니, 아버지가. 그래서 열 몇 살 동안은 제가 외동딸로다가 구여움을 굉장히 받었는데 그 후로는 동생들한테 치여서 아부지 옆에 잘 가지두 않았구 또 성인이 돼서는 아무래도 그냥 바라만 봤지요. 아버지가 아 대단하시다. 그것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책이구 뭐구 굉장히 많은 일을 하셨어요.
노재명: 예.
지수복: 그 다음에 미국에 제가 한번 갔는데 무슨 지순자가 가방을 큰 가방에 아부지 쓰든 해금, 그리구 악보가 잔뜩 들었어요. 그래서 이게 뭐냐 그러니까 아버지 작곡한 거래요. 하와이에 가서 계속 이것만 작곡을 허셔서 그거를 내가 챙겨 올 걸 지금 그 악보가 다 어디 가있는 줄 몰라요. 그게 좀, 좀 안타까워요.
노재명: 예, 지난 그 2011년 11월 16일에 평택문화원에서 지영희 명인에 대한 추모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그 날도 지금 말씀해 주고 계시는 지수복 명인께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그런 가족의 증언을 또 참석해서 해주셨는데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런 안타까운 심정, 이렇게 회고를 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음악을 한곡 청해서 듣고 또 다음 순서 이어갈까 합니다. 이번에는 지수복 선생님하고 며느님하고 평소에 얼마나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시는지를 이중창으로 남도민요 한번 청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수복 명인하고 며느님 되시는 신은주 씨가 남도민요 <성주풀이>, <남원산성> 이렇게 아드님 강봉천 씨의 장고 장단으로 한번 들려주시겠습니다.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남도민요 <성주풀이>, <남원산성>(소리:지수복·신은주, 장고:강봉천)
노재명: 예, 감사합니다. 시어머님과 며느님이 같이 불러주신 남도민요 <성주풀이>와 <남원산성> 음악이었습니다. 여기서 장고 장단은 지수복 명인의 아드님 되시는 강봉천 씨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부친 되시는 분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굉장히 꼼꼼하고 학구적이고 또 양심적이고.
지수복: 예, 맞어요.
노재명: 이렇게 하시다 보니까 자제분으로서, 그 배우시는 제자분으로서 굉장히 좀 힘들기도 하셨을 거 같습니다.
지수복: 미웠지요. 예, 한마디로 아버지는 아주 미웠어요. 근데 그게 제 나이가 사십이 넘어서야 이제사 우리 아버지가 왜 그렇게 나를 시킬라구 애를 썼을까. 여기다가 깊이 박어 주신 거야. 넣어 주신 거야. 그래서 그걸 안잊어 버리구 그걸 해냈다는 거 아닙니까. 거기서 진심으로 아부지한테 감사를 느꼈지요 그 때서야.
노재명: 지영희 선생님께서 제자분들한테 물려주신 이어주신 장단이 경기 도당굿 장단들.
지수복: 그렇지요.
노재명: 봉등채, 올림채, 가래조, 그런 특이한 장단들, 푸살 이런 장단들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런 장단을 혹시 지수복 선생님께서도 공부하신 적은 없으시구요?
지수복: 없지요. 그냥 뭐 굿거리, 뭐 시제 급한 거 그 몇가지만 배웠지 그렇게 깊이 안들어갔고 옛날에는요 소리하는 사람만 그 소리만 했지. 북 같은 건 잘 안잡았거든요. 음, 그래서 장단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허허허허허허.
노재명: 예.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시는데요.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학원에서 방송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궁금한 선생님의 그 국악 곡목이 많아서요. 이번에는 가야금병창을 또 청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혹시 가능하시면 며느님하고 같이 춘향가 중에 <사랑가> 좀 부탁드려 봅니다.
지수복: 예.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가야금병창 춘향가 중 <사랑가>(가야금병창:지수복·신은주, 장고:강봉천)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시는데요.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전수소에서 방송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임춘앵 선생님 단체에서도 활동하셨다고 하셨죠?
지수복: 예, 그리고 김경애 씨라고 햇님 단체에도 있었구요 그래요.
노재명: 그 때 그 목소리가 중저음이 굉장히 중후하시고 그래서 남성 역할 많이 하시고 그랬을 때에 그 여성 관객들도 아주 좋아하셨을 거 같애요 반응이.
지수복: 그렇지요. 예, 그 때는 그랬어요. 하하하하하하.
노재명: 거기에 소속되어 있던 분들이 김경수 씨도 계셨고.
지수복: 예, 예, 예. 김진진이, 김경수.
노재명: 예, 그러구 그 햇님창극단, 김경애 씨가.
지수복: 예, 예, 김경애 씨.
노재명: 이끄셨던 그런 단첸데.
지수복: 예, 임춘앵 씨 그 단체에 같이 있었어요. 근데 그 분이 인제 햇님창극단으루 오셔 가지구 저를 데려 갔어요. 그러는 바람에 내가 인제 아버지 슬하에서 해방된 거에요. 그 때서야. 임춘앵 씨 단체에두 같이 있었구 고만두고 학원 할 때두 집안에 갇혀 있었구. 그래 마, 김경수 씨가 와서 날 주라 내가 성공시켜 줄께. 주십시요 이래 가지구는 마, 데려갔잖아요 저를. 그 바람에 다시 단체를 다, 다니게 됐구 아버지 슬하를 떠나게 된 거에요.
노재명: 예, 그 햇님창극단에는 김경애 씨, 김정희 씨, 또 조애랑 씨, 오정숙 씨.
지수복: 예, 맞습니다. 에, 그러구 박송희 씨, 아까 조순애 씨라구 그랬나요?
노재명: 예, 조순애 씨.
지수복: 예, 그 분하구 다 같이 있었어요 저 햇님에.
노재명: 아 김경애 씨가 그렇게 햇님 단체에 이끄시다가 새한여성국극단.
지수복: 그래 제가 또 새한국극단으로 간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노재명: 예, 거길 또 조직하셔서 거기 또 활동을 하셨구요.
지수복: 예, 예.
노재명: 예, 그러구 그 뒤에 박초월, 김소희 명창한테 판소리를 배우셨죠?
지수복: 예, 예.
노재명: 그때는 어떤 소리를 배우셨나요?
지수복: 그러니까 음, 박초월 선생님한테는 수궁가하구 흥부가를 배웠어요.
노재명: 예, 그 분이 아주 장기셨죠 수궁가, 흥부가.
지수복: 예, 예. 그리구 김소희 선생님한테는 심청가하구 춘향가.
노재명: 예, 그러면 당대에 최고의 거장들한테 선생님께서 춤이면 춤, 가야금이면 가야금, 판소리도 대가 선생님들한테만 다 배우셨는데 특히 그 여성 명창으로는 박초월, 김소희 명창이 그 당대 대표적인 그런 분입니다.
지수복: 근데 내가 김소희 선생님을 참 좋아했거든요. 그래 김소희 선생님한테 배우러 갈라 하니까 아버지가 안된대요. 왜 그러냐 하문 박초월 선생님하구 김광식 씨하구 같이 사셨거든. 그러니까 (지영희·김광식이) 의형제 아니에요.
노재명: 예.
지수복: 그래 “거긴 안된다.” 박초월 선생님한테 가라고 그래 그리 갔어요. 그리 가서 배웠고 인제 나중에 인제 김소희 선생님한테 그여 갔어요.
노재명: 예, 그렇게 해서 국악 활동을 계속하시다가 혼인하시고 낭군님이 국악을 못하게.
지수복: 예, 이 부산으로 오니까 다 조용하게 그냥 살았어요. 살았는데 부산에서 충열사 정화 사업을 한 다음에 그, 거기 모신 분들을 기린다 해가지구 정발 장군하구 뭐 뭐 뭐 저기 동래 부사 그런 걸 했는데 우리 국악을 싹 뺐드래요. 그러니까 인제 그 당시에 부지부장으루 계시든 송순섭, 지금 적벽가 인간문화재시죠. 그 분이 막 찾아가서 “왜 우리 국악을 빼느냐. 우리두 한다.” 이래 가지구 하기루 됐는데 사람이 읎거든요. 그래 어띃게 연줄 연줄 한 게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래 가지구 인제 연극 좀 해달라니까 아이구 내가 해주는 밥을 먹구 있으면서 그거를 한 게 이 국악으루 다시 들어오게 된 거에요.
노재명: 예, 부산에서 활동을 중단하고 계시다가 송순섭 명창께서 손을 내미셨는데 제가 송순섭 선생님한테 지수복 명인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본인이 이곳 부산 불모지에서, 국악 불모지인데 국악 활동을 해볼라고 해도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데 아마도 지수복 명인 아니었으면 국악 활동이 부산에서 힘들었을 것이다,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었어요.
지수복: 하하하하, 예.
노재명: 그래서 여기서 잠깐 지금 언급해 주신 판소리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 인터뷰 말씀을 듣고 다음 순서 이어갈까 합니다. 송순섭 명창의 인터뷰를 통해서 지수복 명인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송순섭 명창 인터뷰 내용 녹음 삽입.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시는데요.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전수소에서 방송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내용은 평소 지수복 명인과 친하게 지내시고 오래전부터 부산에서 국악 활성화 공연 등을 같이 하셨던 판소리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수복 명인의 요번에는 판소리를 춘향가 가운데 <이별가> 혹시 가능하시면 부탁드려 봅니다.
지수복: 예, 하하하하.
노재명: 이 <이별가>는 어느 분한테 배우신 건가요?
지수복: 김소희 선생님한테요.
노재명: 만정 김소희 선생님한테요.
지수복: 만정제, 예.
노재명: 20대 때 배우신 춘향가 가운데 <이별가>입니다. 여기에서 북 장단은 아드님 되시는 강봉천 씨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소리:지수복, 장고:강봉천)
노재명: 예, 지수복 선생님 올해 연세가 75세이신데요. 방금 이 방송 현장에서 불러주신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 대목이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훌륭한 부모님 지영희 선생님, 성금연 명인 이렇게 그 분들께서 인간문화재로 활동을 하시다가 억울한 모함이라고 할까, 국악계에 환멸을 느끼셔 가지고 문화재 증서를 반납을 하시고 미국으로 가시고 거기서 작고하셨는데요.
지수복: 예.
노재명: 그 때 미국으로 가실 때 그렇게 못돌아오실 줄은 모르셨겠지만 나중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을 때 지수복 명인의 심정이 어떠셨는지 그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그 민속예술연구원, 근데 우리 옛날부터 오로지 국악만 배우신 분들은 당신 성함을 못적을 그런 분들이 더 많았어요. 그런 분들이 앞으로는 자격증 없으면은 국악을 가리킬 수 없다는 그런 얘기가 나오셨지.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 만든 게 그게 민속예술연구원이에요. 근데 그게 좀 머리 잘못 쓰는 사람한테도 이용을 당하셨구 또 이 국악계에서는 “성금연, 지영희가 국악협회를 또 만들었다” 이렇게 됐지요. 그래서 그 때 한참 시끄러웠어요.
노재명: 예.
지수복: 그래 그 국악협회 지부장으루 계시던 분이 그 성금연 선생님한테 인간문화재라구 봐주니까 이건 드러워서 어쩌구 이러구 막 막말을 했든가 봐요. 그래서 그 싸움이 벌어졌든가 봐요. 그래서 재판소까지 갔구 우리 아버지가 하실 때는 물론 좋은 뜻으루 그런 뜻으루 하신 거에요. 근데 인제 그 쪼끔 이상하게 돌아간 것두 있구 또 시기를 받은 것두 있구 그래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인제 그 하와이에 있는 이모가 “그렇게 거긴 뭐하러 있냐구 건너와.” 이래 가지구 모시구 가는데 아부지는 끝까지 안갈라구 그러셨지. 안갈라구 그러셨는데 있을 데가 마땅치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그냥 가신 거구.
노재명: 자녀분으로서 굉장히 안타까우셨을 거 같습니다, 그런 장면 목격하실 때. 가지 않으셨으면 여기 한국의 민속악이 많이 정립되고요.
지수복: 예, 그러니까 그게 잘못 알려져 가지고 그 좋은 인간문화재를 포기하고 왜 가냐구 사람들이 그래요. 그래서 “알지 못하문 말을 마십시요.” 우리 한국의 국악인들이 아버지를 거기 보냄으로써 손해를 본 거를 생각해 보세요. 아마 손해 본 게 많을 겁니다.
노재명: 그럼요, 예. 아마 전통사회에서 성장하신 그런 인간문화재 명인으로써 오선보를 거의 유일하게 하실 수, 그릴 수 있는 분이셨고 민속악, 정악, 춤, 가무악을 다 잘 아시고 정립하시고 후학들한테 많은 국악을 지도하셨던 큰 어르신인데 작고하실 때까지도 녹음기를 떼지 않고 많은 기록을 하셨고 작곡, 또 자필로 많은 기록을 남기셨구요.
지수복: 그러게 말이에요. 예, 예. 근데 그게 어디 갔는지 묻혀버렸어요.
노재명: 예, 기록을 많이 남기셨는데 상당수 그 원고 글 쓰신 게 많이 뿔뿔히 흩어지기도 하고 많이 훼손되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다 보니까 부모님도 참 훌륭하신 분들이고 또 형제도 굉장히 많으시고 자녀분들하고도 화목하게 지내시구요. 또 이 부산 지역에서 송순섭 명창 같은 참 실력 있고 의리 있고 인정 있으신 그런 분하고 부산지부 지부장, 부지부장 이렇게 같이 활동도 하시고 이렇게 하신 걸 뵈니까 그 송순섭 선생님 중년 이후에 같이 활동하시면서 서로 정말 고귀한 존재실 거 같고 인간적으로 복이 많으신 거 같애요.
지수복: 예, 그래요.
노재명: 예, 이번에는 지수복 명인께서 평상시에 즐겨 부르시는 남도민요를 저희가 청해 볼까 합니다.
지수복: 하하하하.
노재명: 혹시 가능하시면 <육자배기>서부터 그리고 <자진육자배기>, <개고리타령>, <흥타령> 이렇게 이어서 부탁드려 봅니다.
지수복: 아이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될지는 모르지만 하하하하하.
노재명: 예 잘 부탁드립니다.
지수복: 예.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남도민요 <긴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개고리타령>, <흥타령>(소리:지수복, 장고:강봉천)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십니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지수복 명인의 국악 전수소에서 방송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음악은 지수복 명인께서 지금 이 현장에서 들려주신 남도민요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개고리타령>, <흥타령> 이렇게 이어서 불러 주셨습니다. 여기서 장고 장단은 강봉천 씨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기서 학원 하신지는 거의 한 30년.
지수복: 여기서는 10년 넘었고 저 밑에서 했거든요. 거기서는 한 20년 했구. 한 30년 됐어요.
노재명: 예, 그러면 여기서 잠깐 판소리와 가야금의 원로 지수복 명인에 대해서 제자분의 인터뷰 말씀을 듣고 다음 순서 또 이어가겠습니다. 지수복 명인의 제자 되시는 천주미 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지수복 명인 제자 천주미 인터뷰 내용 녹음 삽입.
노재명: 방금 들으신 내용은 지수복 명인의 제자 되시는 천주미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제자분들이 열심히 국악을 배우고 노력하는 모습, 그냥 바라만 보셔도 굉장히 든든하고 흐뭇하실 거 같습니다.
지수복: 예, 그렇죠. 사랑스럽죠. 대견하구.
노재명: 예, 국악을 일평생 해보시니까 감회가 어떠신지 잘했다는 생각이 드시는지 아니면 어떤 느낌이신지 궁금합니다.
지수복: 예, 국악 하는 게 참 잘했다고 느껴요. 그 전에는 절대 안한다구 그랬는데 왜 그랬냐 그러면 그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 학원에서 조교로 붙들려서 그냥 학원은 징역살이, 그게 여기 백혀져 있잖아요.
노재명: 하하하, 예.
지수복: 근데 이렇게 하구 보니까 몇 년만에 찾어 오는 사람두 있어요. “선생님 그동안에 안녕하셨어요?” 하고 나이 드신 분두 있구. 허 그러문 내가 이걸 하구 있으니까 저런 사람이 날 찾어 오지. 내가 이런 걸 안했으문 엄한 발고락 잡고 천장이나 쳐다 보지. 그 뭐 내가 할 일은 없는데 그래두 제자들이 뭐 명절 때 집에 오문 꼭 들르잖아요. 그지요?
노재명: 예.
지수복: 예, 그리구 찾어 와주구 기쁜 일이나 뭐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모이게 되구. 그러니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지요 그러문.
노재명: 예, 국악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잊혀지지 않는 기뻤던 순간이 있었으면 회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음, 뭐 여기 와서 몇 번 공부하고 나니까 음치루다가 남편이 밤나 벌금 내구 따라다녔는데 자기 집안의 잔치에서 자기가 그냥 독점해 가지구 노래를 하구 그랬대요. 그래 가지구 “그 선생님 좀 업어 주러 가야 되겠다.” 그랬다구 그래서 아이구 그게 제일 보람이라구. 내가 듣기에는 그거 같이 좋은 게 어딨어요. 참 내가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자기가 판을 쳤대요. 흐흐흐흐흐.
노재명: 하하하. 그래서 본인의 개인적인, 사회적인 영광 이런 거보다 제자분들이 잘 되셨을 때 그걸 가장 기뻐하시는 거 같습니다.
지수복: 예, 그렇지요.
노재명: 예, 이번에는 지수복 명인의 <살풀이 구음>을 이 현장에서 청해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모든 가무악이 압축이 된 그런 음악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아드님 강봉천 씨의 장고 장단으로 지수복 명인의 <살풀이 구음> 부탁드립니다.
2011.11.4.09:00~16:00.부산시 동구 수정동 중앙국악원에서. 지수복(소리) <살풀이 구음>(장고:강봉천)
노재명: 판소리, 가야금 분야의 원로 지수복 명인 오늘 여기 부산 국악 전수소에서 직접 불러주신 <살풀이 구음>이었습니다. 장고 장단은 아드님 되시는 강봉천 씨였구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가 원래 이게 춤 반주로 이렇게 뒷받침이 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앞에서 춤이라도 춰 드렸으면 좀 덜 쓸쓸하셨을 텐데요.
지수복: 흐하하하하.
노재명: 홀로 구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판소리, 창극, 가야금산조, 병창, 전통춤,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을 하셨구요. 그간 수많은 일들을 겪어 오셨는데요. 이렇게 종합해서 생각해 보시면 지금 연세가 75세이신데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수복: 쩝, 글쎄요. 잠깐 다녀가는 여행? 눈 깜짝하는 사이에 칠십이 넘어 팔십을 바라보더라구요. 근데 주위의 친구는 하나, 둘씩 다 읎어지구. 나 혼자 외롭게 남아있으니까 “아이 참 난 왜 이렇게 오래 살까.” 그런 생각두 들구요. 이젠 여정이 끝날 때두 됐는데, 흐하하하하.
노재명: 아니요 아직 75세시면은 아직도 백살 이상 사실 수 있는 그런 연세신데요.
지수복: 아이구 흐하하하하하.
노재명: 인생을 앞으로 살아나갈 젊은이들에게 인생 살아나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조언 말씀 어떻게 살면 좋다, 어떻게 살면은 행복하겠다 이런 도움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수복: 글쎄요, 저기 딱 부닥쳐서 가, 가령 소리를 배운다, 가야금을 배운다 그게 아마 자기 인생하구 같이 동반해서 딱 가는 길이에요. 근데 그걸 안하겠다구 멀리 하니까 거기에 대한 거는 없어지고 없어지는 그 밑자락 잡구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니까 그런 말이 있죠. 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구.
노재명: 예.
지수복: 그러니까 어떤 고난이 닥치드래두 자기가 일단 하고자 했던 일은 자기 인생 그 같은 동반길에 갈 수 있는 거니까 그거를 매달리면 좋겠다는 거지요. 쪼끔 하다가 말면은, 왜냐 그러면은 학교 졸업장 가지구 시집 갈라구 우선 국악이고 뭐고 쪼끔 하는데 그러지 말고 후배라든지 제자라든지 그렇게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을 끄끝내 떨치지 말구 주저앉지 말구 그대로 계속 꾸준하게 가문은 아마 끝이 있을 겁니다.
노재명: 예.
지수복: 저는 그게 너무 답답했거든요. 내가 왜 이거를 안하구 있었을까. 근데 지금은 결혼 하구두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국악 하는 사람은 끝까지 자기가 했든 국악을 놓지 말고 계속 그 길로 가문은 제발 주저앉지 않기를.
노재명: 예, 그래서 선생님 본인께서 국악을 잠시 놨던 그 기억 때문에 더 안타까워서 아쉬움에 그런 말씀을 해주신 거 같구요.
지수복: 예, 그렇지요.
노재명: 아쉽게도 마칠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요. 앞으로 계획 말씀,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어쨌든 국악을 많이 사랑해 주시구 공연 같은 것두 많은 동참을 바라구요. 많이 밀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노재명: 네, 감사합니다.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오늘은 판소리, 가야금산조와 병창 분야의 원로 지수복 명인과 함께 했는데요. 국악계 거장이셨던 부친 지영희 명인, 모친 되시는 성금연 명인에게 국악을 두루 배우셨고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 났지만 부산에 주로 은거하면서 후계자 양성에 주력하셨고 국악 보전과 전승에 헌신하고 계시는 지수복 명인의 말씀과 음악을 대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후덕한 미소, 화통한 말씀, 멋진 음악을 선사해 주신 명인의 모습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오늘 자상한 말씀, 그리고 상당수가 처음 방송된 지수복 명인의 음악들, 긴 시간 귀중한 말씀과 음악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지수복: 예, 감사합니다. 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재명: 앞으로도 선생님 건강하게 사시구요.
지수복: 예.
노재명: 무대와 또 음반, 방송, 여기 부산에 국악방송이 또 개국이 됐으니까요 부산 국악방송에도 또 출연해 주시구요. 앞으로도 또 음악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복: 예, 감사합니다.
노재명: 예, 감사합니다.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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