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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명창 녹음 고찰(글/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
  rjm20161107smklas.jpg(사이즈:258.5KByte)
* 이는 2016년 11월 7일(월) 14:00 전라남도 순천시 장천동 로얄관광호텔 웨딩홀 4층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판소리 등록 13주년 행사' 책자 29~72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 "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명창 녹음 고찰" 논문과 송만갑 명창에 관한 노재명 판소리 설치미술 발표.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송만갑 고음원 감상, 해설, 송만갑 자료 전시회 개최.
이 논문을 통해 지금까지 발견된 1906년 송만갑 명창 녹음들이 처음으로 모두 학계에 소개됨.

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명창 녹음 고찰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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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소리 명창 송만갑 생몰연대
2. 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첫 녹음 분석
1) 송만갑 단가 <소상팔경>
2)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
3) 송만갑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3. 송만갑 명창 주요 사진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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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에서는 송만갑(宋萬甲, 1865~1939년) 명창의 일생 및 다양한 예술 활동 중에서 그의 출생 시기, 1906년 첫 녹음과 판소리 특징, 송만갑 명창 주요 사진자료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본다.


1. 판소리 명창 송만갑 생몰연대

  송만갑 명창 출생 시기는 학자에 따라 1861년, 1865년, 1866년 등 여러 설이 있다. 그의 별세 시기는 이견 없이 1939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등에 보도된 바와 같이 1939년 1월 1일 오후 10시 서울 상왕십리 741-24에서 타계한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송만갑의 구례 제적등본에는 송만갑이 1866년 4월 16일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으나 1937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송만갑·이동백·김창룡·정정렬 명창 인터뷰 특집기사 ‘명창에게 듣는 왕사’를 보면 1937년 당시 송만갑이 73세, 이동백(1866~1949년)이 72세로 송만갑이 이동백보다 한 살 연상이라고 구술하였기에 1865년 출생했다고 보여진다. 호적의 생년월일과 실제 출생 시기가 다른 사례는 요즘에도 많이 볼 수가 있다.
  이동백 생몰연대는 필자의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143~171쪽 이동백 명창 편에 자세히 고증하여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필자는 송만갑 생몰연대가 1865~1939년이라고 판단된다.
  송만갑 출생지는 학자에 따라 순천, 구례, 남원, 진주 탄생설이 존재한다.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송만갑 명창은 직접 본인이 밝힌 고향 순천 낙안에서 태어나 구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남원에서도 상당 기간 거주했고 나이 들어 다시 고향 순천 낙안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진주 탄생설이 존재하는 까닭은 송만갑 명창이 인기 있었던 진주 지역에서도 장기간 살면서 많은 활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순천 낙안에선 국창 송만갑 탄생지를 기념하는 ‘낙안읍성국악제전국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고 구례에서는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를 매년 열고 있다.
  그리고 순천과 구례가 송만갑 출생지 문제를 놓고 갈등이 빚어진 바 있다.(2009년 1월 12일자 [연합뉴스] 보도. 전승현 기자 글 “국창 송만갑 선생 출생지 놓고 논란”)
  예전 판소리 명창들은 거의 다 전국을 떠돌며 공연 활동을 했기에 이렇게 출생지가 기록에 따라 다르게 적혀있거나 불분명한 사례가 아주 많다.
  송만갑 명창과 당대 쌍벽을 이룬 중고제 명창 이동백의 경우도 대표적인 출생 유력지가 충청남도 서천, 보령, 경기도 평택 이렇게 세 곳이고(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 143~171쪽 이동백 명창 편)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명창 이동백 집안이 본래 세거하기는 충청북도 진천이었다 한다.
  한국의 작곡가 안익태가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 살았었다는 역사를 기념하려는 기록 정신과 순수한 뜻에 의해 한국에도 없는 안익태 박물관과 안익태 거리가 스페인의 그 섬에 조성되어 있다.
  송만갑 출생 유력지들의 각 지자체가 각기 송만갑 국창의 업적과 유적지를 온전히 보존하고 잘 기록하는 방향으로 서로 상생 보완되는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2. 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첫 녹음 분석

  판소리 명창 송만갑은 1906년, 1913년, 1926년, 1930년, 1934년 50여종 유성기음반에 약 5시간 분량의 녹음을 남겼다.(노재명 글 ‘국창 송만갑 판소리-제1회 낙안읍성국악제전국대회 기념’ 음반 해설서, 국악음반박물관·사단법인 동편제판소리보존회 제작 NCM-091128, 1CD, 2009년 11월 28일 유성기음반 복각 제작, 음원·각종 자료 제공:국악음반박물관, 제작 감수:송순섭, 녹음 시기:1913·1930·1934년)
  이 가운데 녹음이 가장 희귀한 송만갑 첫 녹음 1906년 유성기음반들을 발굴하여 여기 지면을 통해 학계에 처음으로 집중 분석 소개한다.
  1906년 송만갑 명창이 미국 빅타음반회사에서 취입한 유성기음반 중 단가 〈소상팔경〉(Victor Record 13526), 판소리 춘향가 한 대목이자 남도민요인 〈농부가〉(Victor Record 13536),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Victor Record 13537A) 이렇게 3종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같은 시기에 녹음된 Victor Record 13538 유성기음반 쪽판 역시 송만갑 녹음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아직 음반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1906년에 녹음된 미국 빅타음반회사의 한국 유성기음반 쪽판들은 대단히 희귀한데 송만갑의 1906년 녹음 음반은 이렇게 4종 중에서 지금까지 3종이 확인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송만갑 명창의 음반은 특별히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미국 빅타음반회사 13500번대 유성기음반은 1906년 11월 말부터 12월 3일에 녹음되었다. 미국 빅타음반회사에서 제작된 이 송만갑 유성기음반들 레이블에 1895년 2월 19일부터 1908년 8월 11일까지의 음반 제조 관련 각종 특허번호가 기록되어 있는 점, 1910년 한일병합 이전의 국가명 '한국‘이라는 글자가 인쇄된 점, 양면판이 아닌 초기 쪽판으로 만들어진 점, ‘PRICE 60¢ - in U.S.A.’라고 표시되어 있는 점, 1915년 미국 빅타음반회사의 한국음악 양면판과 레이블 디자인·제품번호 체계가 다른 점 등으로 봐서 미국 빅타음반회사의 이 송만갑 유성기음반들은 1907~1908년에 제작된 것이라 하겠다. 이는 한쪽 면에만 소리가 새겨져 있는 초창기 음반인 일명 '쪽판'으로 제작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거리, 당시 교통 상황, 그리고 미국 음반회사가 그 무렵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음악을 유성기음반으로 제작한 점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멀리 한국까지 와서 몇 사람의 한국음악만 녹음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음반으로 제작하지 않고 경비 절감, 효율성 등의 차원에서 인근 나라들에도 들려 녹음한 후 미국으로 갔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이 송만갑 유성기음반들이 1906년에 녹음되고 1907~1908년에야 제작된 것이라 하겠다.
  당시에는 녹음을 하면 단명한다거나 하는 소문이 돌고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국악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러한 음반 취입을 꺼리는 명인 명창들이 많았는데 송만갑 명창은 당대로선 용감하게 녹음을 남긴 셈이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판소리 유산을 남기게 된 것이다.
  1906년 녹음된 미국 빅타음반회사 음반은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을 지녀서 일제시대 군소 음반회사가 제작한 음반보다 음질이 더 양호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 발굴 소개하는 송만갑 유성기음반들은 오래된 제작 연대에 비해서 모두 보관 상태가 좋은 편이라 감상에 큰 지장은 없을 정도이다. 송만갑 명창은 고음 통성을 위주로 불러서 초기 나팔통 취입 방식의 녹음시 다른 명창들보다 더 선명하게 취입되는 유리한 점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송만갑 명창의 1906년 녹음 쪽판은 한국에서 취입되고 미국 음반회사에서 제작되었으며 북 반주자는 미상(강경수일 가능성 있음), 각 음반당 총 수록시간은 3분 정도씩이다.
  미국 빅타음반회사의 이 쪽판 레이블에 판소리 명창 송만갑을 '창부'(唱夫)라고 표현한 부분이 주목되는데 당시는 음반, 신문 등에 판소리 명창을 창부라 칭한 기록들이 많다.
  이 송만갑 쪽판 음반들은 국악음반박물관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고 지금까지 단 1장씩만 발견,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어 현재 국악음반박물관에 원본, 복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이는 1906년 녹음된 판소리 명창 송만갑의 유성기음반으로는 유일하게 발견된 음반들이다.
  한국음악 녹음 역사 초기에 해당되는 1896년~1900년대 후반에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 음악가들이 취입한 유성기음반 중에서 송만갑의 이 쪽판 유성기음반들이 가장 명반으로 꼽힌다. 한국음악 녹음 역사 초기인 1896년~1900년대 후반 국창 반열에 오른 대가가 독창으로 음반을 취입한 사례는 송만갑 명창의 이 음반들이 거의 유일한 경우이다.
  1906년 녹음된 송만갑의 이 쪽판들은 당대 음악 기량이 단연 뛰어났던 국창 송만갑의 첫 녹음이자 그의 장기였던 곡이고 이는 판소리 역사상 최초의 녹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 유일하게 발견된 이 송만갑 <소상팔경>, <농부가>, <박타령> 쪽판의 상태 또한 파손된 부분 없이 상당히 양호하다. 당시 기술상 유성기음반 쪽판 1장에 3분 정도밖에 녹음이 담기지 못했기 때문에 송만갑이 평소 가장 자신있게 불렀던 대표 명곡들이 엄선되어 취입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송만갑제 판소리의 표목 같은 소리이자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송기덕으로 전승된 이 동편제 가문의 교과서적인 소리라 하겠다.
  판소리 귀명창이기도 했던 고종·순종은 일찍이 송만갑·이동백 같은 명창들의 유성기음반은 장차 조선의 국보가 될 것이고 이들의 판소리야말로 조선이 지닌 최고의 재산이며 자랑이라 하였다.
  특히 1906년 국민가수 ‘국창’(國唱)으로 꼽혔던 송만갑 최초의 녹음인 이 유성기음반 쪽판들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러한 국보급 음반이라 평가된다. 음악적 완성도, 당대 최고 음악가의 첫 녹음이자 장기로 했던 곡이라는 점, 판소리 장르의 최초 녹음, 초희귀성, 극히 양호한 음반 상태 등의 측면에서 이 송만갑 쪽판들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국악 녹음집을 통틀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음반이고 가히 국보라 할 만한 것이다.

1) 송만갑 단가 <소상팔경>(1906년 녹음 쪽판)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6346(오은호 제공 음원자료 복사본)
Victor Record 13526 Korean Male Song With Drum 단가短歌 Tan-Ka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甲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송만갑의 이 단가 <소상팔경>은 동편제 판소리 명창들의 교과서적인 대표곡이다. 이 <소상팔경>은 충청도 양반 출신의 명창 정춘풍이 지었다는 단가로서 그 후배 동편제 명창들이 즐겨 불렀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전승이 끊어져 부르는 이가 없다.
  이 단가 쪽판은 1906년 송만갑 명창이 미국 빅타음반회사에서 생애 처음 녹음한 음원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단가는 판소리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곡이고 지금까지 발견된 미국 빅타음반회사의 송만갑 쪽판 가운데 가장 음반번호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 단가 <소상팔경>을 작곡한 정춘풍 명창의 창법은 수제자 박기홍에게 많이 전수되었다. 박기홍은 시대상 녹음을 충분히 남길 수 있는 시기에 활동했지만 음반을 전혀 취입하지 않았다.
  매우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출중한 기량을 어느 정도 느껴볼 수 있는 녹음이 있는데 그의 제자 박록주가 남긴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과 같은 유성기음반들에서 박기홍의 뛰어난 면모를 일부 발견할 수 있다. 박록주가 이 <대관강산>을 박기홍 문하에서 배웠다는 사실은 국악학자 이보형이 박록주와의 대담시 파악하여 알려진 것이다.
  필자는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1929년 녹음)을 1996년 컴팩트디스크로 복각 기획하고 오늘날의 소리꾼이 복원하여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관계 연구 논문에 자료 제공과 자문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지난 20년간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의 우수성과 특징을 부각시켜 보고자 했다. 필자는 방송, 혹은 이 박기홍제 단가를 대외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 때마다, 판소리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단가를 들려 주었다.
  필자가 그간 강조해온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선 초입부 내두름을 요즘처럼 자극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말하듯 별 욕심 없이 툭 던지듯이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박기홍에게 비판받았던 송만갑처럼 대마디 대장단으로 마디를 뚝뚝 끊어서 소리를 가지고 나가지 않고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처럼 한 음을 가지고 소리를 길게 늘려 장단을 몇 마디씩 넘나들며 진행하는 것도 주목된다. 정응민, 박록주, 김여란, 성우향 등의 명창이 늘 강조한 것처럼 소리를 억지로 만들지 않고 소리를 구기지 않고 빨래줄 피듯이 좍좍 펴서 소리를 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에서는 별 기교를 부리지 않는데도 장중하며 상당히 격조 높은 성음과 골격이 크고 점잖은 기법이라는 게 느껴진다. 근래의 정가보다 더 기품이 있는데 이 녹음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단아하게 차려 입은 선비가 차분히 산행을 하며 풍류를 즐기는 멋스러움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폭포수 소리를 제압하고 거대한 산을 진동시키고 왕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천하를 호령했던 옛 명창들의 대범한 기개가 이 녹음에 담겨있다.
  도인 같이 잡다한 유혹에 흔들림 없이 품행을 올바로 했다는 박기홍의 면모는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에서도 느껴지는데 소리의 구성과 흐름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맑고 깨끗하다. 박기홍의 청빈한 생활과 인격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이는 스승 정춘풍의 영향이 짙었으리라 보여진다.(‘박록주 판소리’ 음반 해설서 25쪽, 엘지미디어 LGM-AK008, 2CD, 1996년 유성기원반 복각 제작, 음반 기획·해설·사설채록:노재명)
  박록주는 1929년에 일본 콜럼비아 음반회사에서 <대관강산>과 함께 단가 <죽장망혜>도 녹음했는데 이 <죽장망혜> 또한 <대관강산>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어서 박기홍의 소리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 두 단가 녹음은 요즘 단가들보다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며 창법 또한 요즘 단가 발성과 다른 면이 있다.(노재명 저서 [판소리 음반 걸작선] 서울:삼호출판사, 1997년, 153쪽)
  박록주는 일제 때 박기홍제 <대관강산>을 4번 유성기음반에 남겼는데 그 가운데 1929년 일본 콜럼비아 음반회사에서 취입된 것과 1930년 일본 빅타 음반회사에서 녹음된 것은 백점봉의 단가 <별조유람가>와 닮았고 1933년 오케이 음반회사에서 박록주가 남긴 <대관강산>, 1934년 다이헤이 음반회사에서 박록주가 취입한 <대관강산>은 또 사뭇 다르다.
  백점봉은 1928년과 1932년에 각각 단가 <별조유람가>와 <몽유가>를 녹음했는데 이 소리들은 본래 사설과 뼈대가 같은 하나의 단가로서 앞서 녹음된 <별조유람가>는 고형의 모습을 지닌 백점봉 집안의 소리이고 <몽유가>는 거기에다 후에 정정렬 시김새를 첨가하여 부른 것이라고 이보형은 분석하고 의견을 낸 바 있다.(이보형, “백점봉 소리제 소고” [한국음반학 제12호] 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2002년)
  박록주 역시 백점봉의 경우처럼 정정렬 사사 후 박기홍제 <대관강산>에 정정렬 스타일을 가미하여 부른 듯하다. 즉, 박록주의 1929년 <대관강산>은 박기홍제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이고 1933년, 1934년 박록주의 <대관강산>은 약간 통속적으로 변모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주목되는 것은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콜럼비아 녹음)과 백점봉의 <별조유람가>가 충청도 양반광대 정춘풍이 지었다는 단가 <소상팔경>(송만갑 송기덕 김록주 등 녹음), 그리고 박록주의 <죽장망혜>(1929년 콜럼비아 녹음),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와 소리 진행 방식이나 곡조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 박록주의 1929년 녹음 <죽장망혜>, 백점봉의 <별조유람가>,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도 정춘풍의 작품 내지는 정춘풍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곡일 가능성이 있다.
  그 가운데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은 백점봉의 <별조유람가>, <몽유가>와 제목만 다를 뿐 한 곡이나 거의 다름 없고 박록주의 1929년 녹음 <죽장망혜>,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도 한 곡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을 때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춘풍의 더늠 <소상팔경> 외에 이렇듯 정춘풍 단가류가 2곡(별조유람가=대관강산, 죽장망혜) 더 있었던 것이라고 추측된다.(노재명 글, '경기 판소리' 음반 해설서, 경기도국악당 교욱부연구부/티앤씨매니저먼트 TNC-250309, 1CD, 2005년 1월 제작)
  정춘풍, 김세종은 송흥록 계열의 동편제와 다른 동편제를 제각기 개척한 명창들이다. 송흥록 계열은 민속적인 색채가 강하고 호통조의 고음 중심으로 소리를 짰는데 정춘풍과 김세종은 정가풍의 창법도 많이 도입했고 김세종은 이론 체계가 잘 정립된 학구적인 색채, 정춘풍의 소리풍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도교적인 색채가 담겼다고 보여진다.
  송만갑 명창의 1906년 단가 <소상팔경> 녹음은 내두름부터 호기있게 내던지는 창법을 구사하며 대마디 대장단으로 소리를 끊지 않고 정춘풍-박기홍-박록주 계열의 단가 <대관강산>처럼 장단을 넘나들며 소리를 진행해 나간다. 이런 방식은 송만갑의 여타 단가 녹음들과는 완연히 차별화 된 특징으로서 정춘풍이 지은 본래 <소상팔경> 곡조에 맞게끔 충실하게 부른 것이라고 판단된다. 발성은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송기덕으로 전승된 이 동편제 가문의 스타일을 가미하여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송만갑이 단가 <소상팔경>을 유성기음반에 녹음으로 남긴 것은 미국 빅타음반회사에 의해 1906년 취입된 이 쪽판이 유일하다.

2)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1906년 녹음 쪽판)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245(원문 기록 중 ‘唱夫宋萬’은 唱夫宋萬甲의 오류, 음반 뒷면에 ‘H’라는 양각 기록 있음)
Victor Record 13536 Korean Male Song With Drum 롱부가農夫歌 Nongpu-Ka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등에 의하면 송만갑의 장기로 바로 이 <농부가>를 첫손으로 꼽았다. 송만갑의 이 1906년 쪽판 녹음은 2013년 ‘노재명 반락’ 음반과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일부가 복각 공개된 바 있다.(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전통음악 음반 이야기 ‘반락’ 음반, 한국문화의집 CD-008, 1CD, 해설·음원·녹음·사진 제공·사설 채록:노재명, 2013년 제작)
  송만갑은 말년에도 성량이 풍부하고 통성의 힘이 여타 명창에 비해 월등히 좋았는데 그의 가장 젊었을 때 녹음인 이 <농부가>를 들어보면 통성이 더욱 엄청나게 강하게 나온다. 이 녹음 당시 송만갑 명창의 나이 42세였다.
  송만갑은 1906년, 1913년, 1926년에 <농부가>를 세 차례 녹음하였으며 1913년에 일축음반회사에서 녹음된 초판~삼판까지 포함하여 총 5종의 송만갑 <농부가> 유성기음반이 제작되었다. 이 5종의 송만갑 <농부가> 유성기음반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곳은 국악음반박물관이 유일하다.
  송만갑의 1906년, 1913년, 1926년 <농부가> 녹음 모두 각기 다르게 불렀다. 5명창 중에서도 송만갑이 <농부가>를 가장 많이 음반에 취입하였는데 그가 당시 애국가 같은 의미를 지닌 단가 <진국명산>과 더불어 이 <농부가>를 즐겨 부르고 대중의 환호를 받았던 점은 그가 어전광대(고종으로부터 정3품 감찰 직함을 받음)인 동시에 민중의 명창이었음을 잘 말해 준다.
  송만갑 명창이 이처럼 음반에 즐겨 취입한 <농부가>는 민요, 판소리 춘향가 대목, 창극으로도 널리 불리는 곡이다. 근대 5대 명창이 유성기음반에 남긴 민요는 <성주풀이>(김창환·김창룡), <농부가>(이동백·송만갑·김창환·김창룡·정정렬), <새타령>(이동백)이다. 이 중에서 <농부가>의 경우는 5대 명창이 모두 녹음을 남겼다. 이는 <농부가>가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고 중시 되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대명창들이 <농부가>를 그렇게 필수적으로 불렀고 인기가 많았던 것은 농자천하지대본을 중요시했던 한국 전통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전국민 상당수가 농민이었던 농경사회에서 <농부가>는 애국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흥을 돋구어 주는 <농부가>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대중이 알고 즐겨 불렀던 그 곡을 목소리 좋은 명창이 기가 막히게 불렀을 때 대중은 열광했을 것이다.
  이처럼 왕부터 대중까지 만족시킬 수 있었던 그의 폭넓은 예술 역량은 그가 주장한 다음과 같은 소리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극창가(판소리 성악가)는 주단 포목상과 같아서 비단을 달라는 이에게는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는 이에게는 무명을 주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가장 잘 알고 좋아했던 <농부가>를 가장 잘 부르고 가장 즐겨 불렀던 송만갑이야말로 왕과 더불어 대중 상당수를 감동시킨 당대 한국의 진정한 국민가수였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면모에 관한 실증 자료가 바로 이 <농부가> 유성기음반이라 하겠다.
  북 반주자는 음반에 표시가 안되어 있는데 강경수일 가능성이 있다.(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전통음악 음반 이야기 ‘반락’ 음반, 한국문화의집 KOUS-014, 1CD, 음원 해설·녹음:노재명, 2015년 제작 해설서 7쪽 노재명 글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


3) 송만갑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1906년 녹음 쪽판)

음원·사진 제공: Center for Korean Studies in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USA.(Audio Recordings in the Nam Young Chung Collection No.49)
Victor Record 13537A Korean Male Song With Drum 박타령朴鉅歌 第一丈 (No.1) Pak-Taryóng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甲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이 녹음은 전형적인 동편제 판소리이다. 성음 하나 하나가 공력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어서 소리 구비 구비에 육중한 철근 덩어리를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려 내던지는 듯한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박타령〉은 송만갑이 1906년뿐 아니라 1913년, 1930년에도 취입하였고 그가 특기로 즐겨 부른 소리이다. 1906년, 1913년 송만갑 명창의 녹음들은 1926년 이후부터 1930년대에 취입된 송만갑의 여러 판소리 음반들에 비해 소리 진행 속도가 더 빠르다. 특히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은 1913년, 1930년에 취입된 송만갑 〈박타령〉 음반보다 더욱 빠르게 불렀다.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을 들은 소리꾼들은 세마치, 또는 중모리 장단이라고 의견을 각기 달리 나타냈다.
  최승희 명창은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을 중모리라 하였으며, 모보경 명창은 이를 처음에 세마치로 보았다가 나중에 중모리라 하였다. 그리고 원미혜 명창은 이를 중모리로 보았고, 박지영 명창은 이를 처음에는 중모리라고 의견을 냈다가 나중에는 세마치로도 들린다고 하였다. 원미혜 명창은 1906년 송만갑 명창의 〈박타령〉 녹음을 들어보면 이 소리는 중모리로 불러야겠다는 소리꾼 의도가 느껴진다고 하였다.
  필자는 송만갑, 김정문 명창 등의 여러 판소리 고음반들을 비교 고려하여 1906년, 1913년, 1930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을 모두 세마치라고 보았다.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은 자진 진양조(세마치)인데 요즘 중모리 속도와 비슷하다.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을 들어보면 아홉째 박을 고수가 치지 않고 다섯째 박만 집고 가며 중모리의 특징적인 눈이 보이지 않는다.
  송만갑 명창이 같은 때 녹음한 단가 〈소상팔경〉(Victor Record 13526) 중모리는 이 1906년 〈박타령〉보다 더 빠르게 불렀고 이 〈박타령〉하고 다르게 장단을 진행한다.
  1913년 송만갑 명창이 녹음한 춘향가 중 〈십장가〉(NIPPONOPHONE 6150~6151)도 지금의 일반적인 중모리 속도로 부르지만 세마치 장단으로 되어 있고 송만갑 명창이 취입한 음반은 거의 다 지금보다는 훨씬 빠르게 소리를 불렀다. 중모리 단가도 지금의 중중모리 속도로 하였다.
  세마치가 유독 많은 보성소리 고제를 구사한 성우향 명창도 처음에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 보성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서울 고수들이 세마치를 중모리인 줄 알고 반주하여 여러번 난감한 바 있다고 수차례 회고하였다.
  1906년, 1913년, 1930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 가운데 취입 시기로 보나 음악 특징으로 봐서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이 동편제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점차 송만갑 본인 소리제로 변화, 다소 통속화되어 구축된 것 같다.
  판소리는 장단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부를 때마다 다르게 즉흥 작편곡하는 점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큰 묘미를 주고 이것이 가장 두드러진 본연의 특색이다. 이런 판소리의 창조적인 즉흥성 장점이 현대에 들어와 녹음과 방송 기록의 발달, 무형문화재 규정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멸되어 가고 있다.
  과거에는 이동백 같은 옛 명창들이 고수가 잘못 반주하면 무대에서도 바로 지적했다는 일화들이 전해져 오는데, 요즘은 판소리 완창을 마치는 마지막 대목에서 흔히 사용되는 엇중모리 장단도 고수가 중모리로 오인하여 잘못 반주한 경우도 2001년 목격한 바 있고 이러한 오류를 대부분 거의 말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장단을 초월해 이렇게도, 달리 저렇게도 부를 수 있고 또 그것을 듣고 다양하게 해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이 점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자유분방하고 자연미 있는 한국 민속음악의 특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06년 송만갑 〈박타령〉 녹음은 송만갑 후기 녹음보다, 요즘 소리보다 고박하고 잔기교를 배제하며 우렁찬 통성으로 불렀는데 명창들이 흔히 말하는 “소리를 던진다”, “반듯하게 펴서 들고 나간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창법이라 하겠다.(국악음반박물관 편 [판소리 명창 제6호-20세기 초반 명창 소리를 만나다] 서적, 서울:도서출판 채륜, 2016년, 395~407쪽 노재명 글 “부록 CD 송만갑·신경봉·오태선·이동백·신경연 가사·음악 분석·해설” 이 CD음반에 송만갑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1906년 녹음 쪽판 복각됨)

3. 송만갑 명창 주요 사진자료 모음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5701
송만갑 전신 사진. 현존하는 송만갑 사진 가운데 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서 1930년대 송만갑의 만년 모습. 송만갑 오른편에 걸려있는 설명에 ‘國唱 宋萬甲’이라는 문구가 보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5697
조선가요연구소의 [정선조선가요집](일본 콜럼비아사, 1931년)에 실린 송만갑 사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삼천리 1931년 4월호](서울:삼천리사)에 실린 ‘송만갑 자서전’ 글과 송만갑 명창 사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4)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1930년 11월 28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노래 뒤에 숨은 설움(4) 국창 가수의 고금록-송만갑 편” 기사.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5)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판소리 명창 송만갑 모습. 1939년 5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6)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5689
창극 ‘배비장전’(동양극장)에 출연하기에 앞서 분장 중인 이동백과 송만갑(오른쪽).
1937년 3월 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7)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1265
아래 왼쪽부터 김창룡, 송만갑, 김창환. 위 왼쪽부터 박록주, 심상건, 한성준.
1926년 11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8)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0662
1937년 조선성악연구회 단체사진. 맨아래 우측에서 두번째 갓 쓰고 서있는 이가 송만갑 모습.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9)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0681 1938년 5월 27일 조선성악연구회 5주년 기념 단체 사진.
맨위 중앙에 갓 쓰고 서있는 이가 송만갑 모습.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0)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 유성기음반 쪽판(1906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2245(원문 기록 중 ‘唱夫宋萬’은 唱夫宋萬甲의 오류, 음반 뒷면에 ‘H’라는 양각 기록 있음)
Victor Record 13536 Korean Male Song With Drum 롱부가農夫歌 Nongpu-Ka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1)
송만갑 단가 <소상팔경> 유성기음반 쪽판(1906년 녹음)
오은호 제공 자료.
Victor Record 13526 Korean Male Song With Drum 단가短歌 Tan-Ka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甲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2)
송만갑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유성기음반 쪽판(1906년 녹음)
미국 마노아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제공 자료.
Victor Record 13537A Korean Male Song With Drum 박타령朴鉅歌 第一丈 (No.1) Pak-Taryóng
한국젼라도 韓國全羅道 챵부송만갑 唱夫宋萬甲 Recorded in Korea
VICTOR TALKING MACHINE CO. Camden,N.J.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3)
송만갑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자탄>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970
NIPPONOPHONE 6126 雜曲 波逢空房自歎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4)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09
NIPPONOPHONE 6132 農夫歌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5)
송만갑 판소리 수궁가 중 <고고천변>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09
NIPPONOPHONE 6133 鱉出陸地歌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6)
송만갑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모 행상가>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704
ROYAL RECORD NIPPONOPHONE 6214 雜曲 沈淸母行喪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7)
송만갑 판소리 수궁가 중 <백로횡강가>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704
NIPPONOPHONE ニツポノホン 6215 雜曲 白鷺橫江歌 宋萬甲 長鼓朴春載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8)
송만갑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가 심청이를 안고 귀여워하는 데>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689
닙보노홍 K176B(6127) 심봉사사랑하는데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19)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남도민요 <농부가> 유성기음반(1926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2348
졔비標朝鮮레코-드 B137-A 農夫歌(上) 宋萬甲 鼓韓成俊
졔비標朝鮮레코-드 B137-B 農夫歌(下) 宋萬甲 鼓韓成俊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0)
송만갑 단가 <진국명산>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95
Columbia 40145-A(21005) 短歌 鎭國名山 宋萬甲 鼓韓成俊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1)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십장가 뒤의 풍경>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95
Columbia 40145-B(21008) 春香傳 十杖歌 宋萬甲 鼓韓成俊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2)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46
Columbia 40175-A(21009) 春香傳 離別歌(上) 宋萬甲 鼓韓成俊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3)
송만갑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19
Columbia 40219-A(21006) 興甫傳 박타령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4)
송만갑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가 수궁에서 나오는 데> 유성기음반(1930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019
Columbia 40219-B(21007) 水宮歌 톡기타령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5)
송만갑 단가 <진국명산> 유성기음반(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80
Victor Junior KJ-1001-A 短歌 鎭國名山진국명산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6)
송만갑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유성기음반(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80
Victor Junior KJ-1001-B 春香傳 離別歌리별가 宋萬甲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7)
송만갑 단가 <역려과객> 유성기음반(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2195
Victor Junior KJ-1005-A 短歌 逆旅過客역려과객 宋萬甲 杖鼓韓成俊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8)
송만갑 아들 송기덕의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 유성기음반(191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700
NIPPONOPHONE ニツポノホン 6128 雜曲 全羅道六字歌 宋基德 長鼓朴春載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29)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5022
6.25 전쟁 발발 무렵 서울에서 열린 5명창 추모 합동제사 기념 사진. 이 제사에서는 스님들이 염불 천도를 해주었으며 추모 공연은 없었고 제사 후 참석자들 전원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함.
이때 강장원, 고일연, 김광식, 김윤덕, 김재선, 박귀희, 박도화, 박록주, 박석기, 박헌봉, 백점봉, 성금연, 성순종, 신숙, 오태석, 이동안, 이정업, 임유앵 임춘앵 자매, 임종선, 정남희, 정득만, 조봉란, 조상선, 조소옥, 지영희, 5명창의 부인들과 친척 자손 등이 참석했으며 송만갑의 아들 송기덕과 송영덕, 송만갑의 조카 송억봉(송업봉?)은 당시 오지 않았다 함.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0)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3565
송만갑의 유성기음반을 CD로 복각한 ‘판소리의 전설 5명창’ 음반.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14) 판소리의 전설, 5명창
소리:이동백·송만갑·김창환·김창룡·정정렬, 고수:한성준·이흥원.
명인기획/엘지미디어(LG소프트) LGM-AK014(1CD), 녹음:1929·1930·1931·1932년, 제작:1996년. 녹음 고증·음반 기획·해설·사설 채록:노재명.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국창 송만갑 자료 특별 전시회 장면(2001년 12월 1일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송만갑 판소리 관계자료 전시회.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2)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 관리번호 MICD-5035
국창 송만갑 판소리(제1회 낙안읍성국악제전국대회 기념)
국악음반박물관·사단법인 동편제판소리보존회 제작 NCM-091128(1CD), 2009년 11월 28일 유성기음반 복각 제작 배포. 음원·각종 자료 제공:국악음반박물관, 제작 감수:송순섭. 음반 해설, 송만갑 희귀 사진 등이 실려있는 총 24쪽짜리 해설서 내장(글:노재명). 녹음시기:1913·1930·1934년.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3)
노재명 설치미술 '판소리 7'(2016년 11월 7일 순천시 장천동 로얄관광호텔 웨딩홀 4층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판소리 등록 제13주년 기념 행사의 노재명 논문 "최초의 판소리 음반, 1906년 송만갑 명창 녹음 고찰" 원고 내 발표 작품)
제작: 1989년 12월 31일~2016년 9월 5일.
재료: 한지, 고려시대 장군 도자기, 조선시대 명주 초립, 20세기 전반 안경, 조선시대 소나무 한말통과 반말통 등 혼합.
크기: 가로 34.5cm, 세로 67cm, 폭 23.5cm.
작품 설명(위부터 아래로): 동편제 판소리 거장 송만갑 명창 인형, 송만갑 명창 초상화.

송만갑 관련 사진자료(34)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0418.
지리산 진입로에 있던 ‘국창 송만갑 선생 추모비’ 모습. 1990년 노재명 촬영.

201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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