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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나경자
  nkj20160423kj.jpg(사이즈:123.6KByte)
* 이는 2016년 4월 23일 16:00~16:40 김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휴게실에서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이 판소리 원로 나경자 명창을 인터뷰한 내용을 2016년 5월 4일 정리하여 국악음반박물관 홈페이지(http://hearkorea.com) 명인실에 발표한 것.
* 상기 사진 설명: 판소리 원로 나경자 명창 대담 장면. 2016년 4월 23일 김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휴게실에서 노재명 촬영.

판소리 명창 나경자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나경자(본명, 아호:志香) 명창은 1948년 음력 1월 18일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서 부친 나형숙, 모친 전종순 사이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나경자 명창은 점암면에서 출생하고 과역면에서 성장하였다.
나경자 명창의 일가친척은 모두 국악과 무관하다. 나경자 명창의 바로 밑 여동생 나경미가 현재 부산에서 대중음악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나경자는 어려서 고흥 장날 포장 치고 박봉술 일행이 공연하는 창극 '장화홍련전', '흥보전'을 보고 반해서 국악에 입문하게 됐다.
나경자는 당대 대명창 박초월에게 편지를 보내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1주일간 밥을 굶으며 호소하여 결국 부모의 허락을 받아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경자 명창은 14세부터 10여년간 인간문화재 박초월에게 단가 <진국명산>, <죽장망혜>, <강상풍월>, <철인가>(박헌봉 작사, 박초월 작곡), 춘향가 토막소리, 심청가 토막소리, 적벽가 중 <고당상>, 수궁가 완창, 흥보가 초입~<제비 후리러 나가는 데>를 사사했다. 박초월제 흥보가에는 본래 <제비 후리러 나가는 데> 뒤가 없다고 한다.
1962년 무렵 나경자는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국악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판소리 유관순전을 불러 공보부장관 특상으로 선정되어 국립극장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였다. 나경자는 1960년대에 스승 박초월이 대도레코드회사로 음반 취입하러 가자고 하여 박초월, 성우향, 한농선, 조통달, 김선초, 김옥주, 성우춘 등과 함께 창극 '춘향전', '심청전', '수궁가'를 녹음하였다.
성우향 등 나경자의 선배 되는 이들은 나경자보다 앞서 박초월에게 소리를 익혔는데 성우향 등 박초월의 큰 제자들은 서울 운니동 박초월 학원에서 판소리를 사사했다.
나경자가 박초월에게 학습할 당시 박초월 국악 학원은 서울 낙원동에 있었는데 이는 가야금 명인 성금연 국악 학원의 길 건너편이었다. 나경자 명창은 그 곳에서 이매방에게 <살풀이>와 <승무> 등, 김숙자에게 <도살풀이> 등, 장홍심에게 <승무>, <부채춤>, <검무>, <장검무>, 전사섭에게 설장고, 전사종에게 꽹과리, 서공철에게 가야금산조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와 가야금병창 심청가 중 <방아타령>을 배웠다.
그 당시 나경자는 조통달과 함께 박초월의 판소리 무형문화재 후계자로 문화재관리국 명단에 올랐다. 그리고 1970년대에 MBC 진필호 프로듀서 연출로 방송된 창극 '춘향전'에서 나경자는 춘향, 장영찬은 몽룡, 창극 '심청전'에서 나경자는 심청, 창극 '흥보전'에서 나경자는 놀보 아들, 박후성은 놀보 역을 맡았다.
나경자는 혼인 후 국악 활동을 축소하였고 일본에서 10년 이상 살았으며 1995~2000년 호주에서 영주권자로 거주하였고 외국에서 국악 공연 봉사 활동을 하였다.
나경자는 2000년 귀국 후 1년 6개월 동안 전주에서 익산 조통달 판소리 전수소를 왕래하며 조교 역할을 하고 매일 2~4시간씩 박초월제 판소리를 복습하였다. 그리하여 나경자 명창은 2006년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고수경연대회에서 판소리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나경자 명창은 나이 들어 뒤늦게 한국에 나타나 판소리 활동을 다시 하게 되니 뒷말도 많았으며 자존심 접고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싹을 자르려고 예선에서 일부러 탈락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나경자 명창은 근래에 어디 가면 전정민 명창의 제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박초월제 판소리 후배인 전정민 명창이 제자들에게 나경자 명창이라는 실력있는 선배가 있다고 늘 좋게 이야기하여 전정민 명창의 젊은 제자들이 아는 것이라 한다.
나경자는 현재 고향인 고흥에서 살면서 고흥군립 창악부 단장으로 국내외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판소리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나경자는 스승 박초월을 닮아 판소리 춘향가 중 <박석고개>를 특기로 즐겨 부른다.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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