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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춤과 함께 60년 김숙자(판소리 명창 김석창 손녀, 전통춤 명인) 1990년 방송내용
  kimsukjap.jpg (사이즈:33.4KB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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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중고제 명창 김석창 손녀 김숙자 가야금 연주 장면(1990년).
김숙자는 전통춤 인간문화재였는데 무악, 판소리, 가야금 등 가무악 전반에 두루 능했음.
* 이는 국악음반박물관 편 [판소리 명창 제4호 - 명창, 소리에 힘을 싣다] 서적(서울:도서출판 채륜, 2014년) 164~181쪽에 실린 글의 초고.

11시에 만납시다-살풀이춤과 함께 60년 김숙자(판소리 명창 김석창 손녀) 편 1990년 방송 내용
채록 정리·주석/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990년 12월 4일 23:00~23:50 KBS-2TV.11시에 만납시다 - 살풀이 춤과 함께 60년 김숙자(전통춤 명인, 1927~1991년) 편 방송,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VHS 비디오테입 관리번호 MIVHS-0410]
김동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밤에는 최근에 중요무형문화재 97호 경기 살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이 되신 김숙자 여사를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우리 전통무용의 정수인 이 살풀이춤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온 그 열정과 애환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객석: 박수.
김동건: 에, 벌씨 그 문화재가 됐어야 하실 분인데 좀 늦은 감이 있다 주위에서 그렇게들 얘기하시드군요. 그러나 우선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김숙자: 감사합니다.
김동건: 네, 소감이 어떠십니까?
김숙자: 한쪽으루는 기쁘구, 한쪽으루는 또 참 슬프구.
김동건: 왜요?
김숙자: 왜 그르냐문 조끔 더 일찍 지정을 좀 시켜 주셨드라면은 많은 이수자를 좀 냉겨 놓고 가지 않는가. 그래서 마, 뭔 일로 그랬던지 제가 관운이 없던지간에 이제래두 지정을 시켜 주셔서 감사하고 또 그 전 부덤 더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어쨌든 저를, 개인 김숙자를 지정시킨 게 아니라 경기 살풀이춤을 지정시켜 주셨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어떡 허면은 경기 살풀이춤이 널리 보급이 되며 또 이수자를 좀 많이 심어 놓고 가나 하는 생각으로 좀 어깨가 무겁습니다.
김동건: 예, 근데 우리의 전통무용의 그 정수라고 하는 살풀이춤은 어떤 뜻을 가진 춤입니까?
김숙자: 그래, 여러분들이 이 춤에 대해서는 참 그 문헌에 남어있지를 않기 때문에 참 곤란한 적이 많어요. 어떤 분은 뭐, 살을 풀어내는 것이 살풀이 아니냐 이런.
김동건: 살이라는 건 뭘 얘기하는 겁니까?
김숙자: 뭐, 태어날 제 살을 끼구 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살을 풀어내는 것이 살풀이춤 아니냐 이러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옛날에는 경기도만은 도당굿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경기도 도당굿에서 전부 뭐, 터벌림이면 터를 닦는 춤. 제석이문 자손을 제석거리에 위하는 춤. 진쇠는 뭐, 참 그 조상을 위해서 참 추는 춤. 올림채는 으, 조상님네들이 오는데 잡귀를 몰어내는 춤. 께끔은 손님굿을, 손님 마마를 위로해 주는 춤. 부정놀이는 부정을 전부 가셔내는 춤. 도살풀이춤 이렇게 돼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도살풀이춤이 대표적인 게 대개 음악을 갖다 도살풀이라고도 허거든요. 그런데 인제 그 도살풀이 음악에 맞춰서 추니깨 도살풀이춤 이래 돼 있어요. 이 춤이 저 하나밖에 추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 굿을 다 하고 난 다음에 신과 모든 분한테 참 기원두 빌었구 자기 소원도 빌었구, 이러구서 인저 끝이 났을 때에 이 살풀이, 도살풀이 음악에 맞춰서 이 살풀이춤을, 경기 살풀이춤을 추었거든요.
김동건: 예.
김숙자: 그러면 그, 이 춤이 끝나문 동네 사람들이 전부 함께 모여서 추었어요. 그랬는데 인제 그 도당굿이 없어지면서, 왜 없어졌느냐 하면은 인저 왜정 때에 그 일본 사람들이 우리, 우리 문화는 전부 없애 버리구 자기네 것얼 맨들라니까 우리 좋은 그 유산은 전부 없애 버렸거든요. 그렁개 그 때 없어졌는데 인제 그 뒤루 기방에서, 인제 그 전에두 없어졌었지만 기방에서 기녀덜이 예술적으루 승화럴 시켰어요. 인제 뭐든지 이 전통예술은 무속에서 우러났지만은 이 도살풀이 음악에 맞춰서 추는 이 경기 살풀이춤만은 참 예술적으로 기원, 그 기방의 기녀덜이 예술적으로 승화럴 시켜서 지켜 내려 왔지요.
김동건: 아, 예. 이 살풀이가 그러면 여러 지방마다 다 다르게 있습니까?
김숙자: 예, 달르지요. 그래 이번에 지정받은 거는, 저는 경기 살풀이루 지정을 받었구.
김동건: 그러면 살풀이 있는 고장이 어디, 어디입니까?
김숙자: 호남에 호남 살풀이라구 또 있습니다.
김동건: 있구요. 그리구요?
김숙자: 예, 그리구 호남 살풀이를 가지구 전국 중에서 전부 인제 춤을 추었지요. 근데 인제 도살풀이만은, 뭐 호남 살풀이춤 추는 분덜은 많지만은, 돌아가신 한영숙씨라던지, 지금 살어 계신 이, 저기 이매방씨라던지 이 저, 강선영씨라던지 전부 이렇게 호남 살풀이를 추거든요. 근데 인제 경기 살풀이춤만은 저밖에는 못춥니다.
김동건: 어떻게 틀립니까 그게?
김숙자: 그것이 이 수건 길이두 틀리구, 음악 자체가 원래는 경기 무악 도살풀이 음악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 음악 하시는 분이 다 돌어가셨어요. 그래 없구 진작에 그 분덜얼 무형문화재 지정얼 시켜줬으면 그 이수자덜이 남어서 그 음악에 춤얼 출 텐데 이수럴 하나두 못시켜 놓은 채 마지막으루 지난 달에 또 한분 계시던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 그냥 민살풀이루다가 그냥 춤얼 추는데 원래 이 도살풀이 그 음악은 12박입니다. 이 호남 살풀이는 4박이구. 그러구 옷 입은 자체두 그냥 벙벙하게 호남 살풀이는 허리발두 안띠지만은 우리의 그 선조들의 그 옛날에는 상위급에 있는 분덜은 여인덜이 치마를 입구 허리패를 안넘겼어요. 그러나 중서부텀 이렇게 보통 여인덜은 허리발을 넘겼어요. 그래서 이 도살풀이 우리 음악에 맞춰 추는 경기 살풀이춤은 하얗게 입구 이 허리발을 꼭 띠지요. 예, 그래서 그 살풀이가 수건 길이두 달르구 음악두 달러구 옷 입은 자체두.
김동건: 춤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음악하구, 음악하구 저, 옷이 달르면 보기에 좀 다르겠습니다만은 이, 춤두 완전히 다릅니까?
김숙자: 완전히 달르지요.
김동건: 아. 그러문 그, 지금으, 음악을 허시는 분들을 에, 문화재로 이렇게 에, 지정을 안해 주셨기 때문에 이수자가 없다. 그렇게 말씀 허셨는데 그러문, 그러문 음악은 어, 어떻게 보존이 돼 있습니까?
김숙자: 예, 음악이 없, 그냥 에, 제가 녹음을 좀 넌 게 좀 있고 또 인제 원래가 춤을 추문 생음악으로 해야죠. 그래서 이 4박 민살풀이, 경기 시나위 아니래도 이 저, 전라도 시나위루두 맞춰서 출 수 있어요.
김동건: 출 수는 있습니까? 아, 그렇군요.
김숙자: 조끔 아수워서 그렇지.
김동건: 네, 예. 그러면 잠시 그 경기 살풀이는 어떤 것인지 춤을 좀 보겠습니다. 네.
김숙자: 예.
김숙자 무용 <경기 살풀이춤>(녹음 반주, 구음:성창순, 성명 미상의 연주자들 대금·가야금·아쟁·장고 반주) 현장 시범 동영상 수록.
김동건: 춤을 잘 구경했습니다. 네, 근데 경기 살풀이라는 것은 어떤 때 춥니까?
김숙자: 어떤 때 춘다구 그라는 거 보담두 지금은 인저, 옛날에는 무속에서 췄지만 지금은 예술로 승화시켰으니깨 아마 무대에 많이 추죠 지금은.
김동건: 요즘은 무대에 추구요, 추고. 옛날에는 어디서 추셨어요?
김숙자: 옛날에는 그 협률사라는 단체라던지 인저 그.
김동건: 아니요. 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에, 최근에 와 가지구 이 무대에서 춘다든가 뭐 이런 방송에서 한다든가 하기 전에 이, 이 우리, 우리 국민들은 옛날에 경기도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이 춤을 추었냐 이런 얘기죠.
김숙자: 경사에.
김동건: 경사에. 어, 경사가 났을 때.
김숙자: 경사에, 예.
김동건: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김숙자: 예순 다섯이에요. 하하.
김동건: 예, 그런데도 아주 춤을 추시는데 날아 다니십니다.
김숙자: 아이구. 하하하하하.
김동건: 예, 몇 년이나 추셨습니까?
김숙자: 여섯 살부텀 배웠으니까요.
김동건: 육십년을 추셨네요. 하하하하하, 예. 음, 그 매번 달르습니까, 춤 추시는 게?
김숙자: 예, 그러문요.
김동건: 똑같습니까?
김숙자: 안그래요. 출 적마다 달라요.
김동건: 네, 네. 그러나 그 원칙은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추시겠죠?
김숙자: 그렇지요. 그러는데 인제 우리 이 예술 계통에서 인저 일종의 인저 말하기를 인저 이 사회에서는 신나게 잘 춘다 이거를 앵긴다구 그라거든요. 앵길 때가 열 번 추면은 한 번이나 두 번 앵겨지지 열 번 다 앵겨지질 않애요.
김동건: 그럼 어떡 헙니까?
김숙자: 그 뭐 그냥 추는 거지, 그냥 허는 거죠. 그러나 내가.
김동건: 에, 어떻게 보면은 별루 추고 싶은 흥이 없으신데도 불구하고 추시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김숙자: 아니지요. 내가 열심히 췄어도 내 마음으로는 안앵겨졌지요. 말하자문 신이 많이 안난 거 같다란 거죠.
김동건: 아, 다시 말해서 별루 신이 안나는데 추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춤을 추고 있으되 그렇게.
김숙자: 춤, 춤뿐이 아니라 전통예술은 마, 가야금산조가 됐든, 판소리가 됐든 열 번 다 앵겨서 잘하진 못해요.
김동건: 지난번에 명고수 한분(1990년 11월 6일 23:00~23:50 KBS-2TV.11시에 만납시다 - 전통 맥 잇는 명고수 송영주 편 방송)을 저희들이 모셨습니다. 그 프로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 분이 평생 북을 쳐오셨는데, 무아지경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두 없구 북 치는 사람두 없구, 그리구 관중두 없구, 그러나 춤 추, 저 노래 부르고 북 치고 있드라. 이런 말씀 하셨어요. 평생에 그런 그 무아지경에서의 북을 친 것이 몇 차례 안된다 그러셨거든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김숙자: 그러문요, 이 춤.
김동건: 무아지경에서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이 꿈 꾸듯이 춤 추신 적이 있으십니까?
김숙자: 그러문요 혼자서. 왜 그러냐문 요렇게 팔을 올려 가지구, 이렇게 해 가지구 들어밀 때 봐서 달르지요? ‘그덩 그더덕 그덩덩’(앉아서 양손 춤사위 시범 보이며) 이것이 만번을 춰야 그 가락이 나온다는 거에요.
김동건: 하아.
김숙자: 그러니까 뭐 지금 배우는 사람덜은 좋지요. 좋은 학원에서 음악, 좋은 음악 틀어 놓구. 옛날에는 토막 장단 쳐 놓구 이렇게 하구 또.
김동건: 장단 누가 쳐줘야 될 거 아닙니까? 요즘 뭐, 녹음을 틀어 놓으면은 언제든지 되지만.
김숙자: 옛날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열 둘.
김동건: 자신이 입으로 외우면서 했습니까?
김숙자: 자신이 외우고 선생님이 외워 주고 혼자 출 땐 자신이 외우고.
김동건: 음음, 그러시군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여섯 살 때부터 춤을 추시기 시작하셨습니까?
김숙자: 저희가 원래 예인의 집안이에요, 그래서.
김동건: 네, 어느 분이 예인이셨어요?
김숙자: 아버지요.
김동건: 아버님이요 무얼 잘하셨나요?
김숙자: 판소리도 잘하시구 무용두, 이 춤두 잘 추구. 인제 춤, 무용이라는 건 근전의 용어구 옛날에는 춤이라구 그랬거든요.
김동건: 춤이죠, 예.
김숙자: 춤을 그렇게 잘 추셨어요.
김동건: 네, 직업적으루 잘 추셨나요?
김숙자: 그러문요. 선생님이시니까.
김동건: 아, 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셨구.
김숙자: 예, 아주 대가셨으니까.
김동건: 음음, 처음에 무얼 배우시기 시작하셨습니까?
김숙자: 옛날에는 지금 같이 한 과목을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전공을 안했어요. 이 전통예술을 배울라면은 판소리, 가야금, 춤, 이런 걸 같이 가르쳤어요. 그래서 옛날에 소리를 배울 때는 단가를 먼저 배웠구, 춤얼 배울 때는 <입춤>이라구 있습니다. 고것이 전통무용의 기본이죠, 고전무용의. 그래서 <입춤>, 그 다음에 <살풀이>, 그 다음에 인제 마, <승무>, 그 다음에 <한량무>, 뭐 그 다음에 전반을 다 배웠죠.
김동건: 으흠,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그거 추고 싶어서 추셨습니까, 여섯 살 때? 그렇진 않겠지요?
김숙자: 어려서는 예, 어려서는 지금 같이 자기네덜이 마, 강제루다가 지금두 배우는 애기덜이 많지만은 자기가 싫으문 싫다구 딱 부모한테 얘기 하잖아요? 옛날에는 부모가 하라면.
김동건: 그걸 못하지요?
김숙자: 예, 하라문 이거 허는 건가 부다. 그러구 했지요.
김동건: 예, 집안 형편은 어떠했든 것으로 기억이 되십니까?
김숙자: 가난했지요. 그러니깨 우리 인제 아버지는 돈벌이라는 걸 모르구. 또 저를 이거를 가르치니까 행여나 조끔 배워 가지구 흉내나 내구 댕기문서 그 다음에 돈벌이나 하러 댕기지 않을까. 이 우려성을 가지구 으, 예술가는 배가 고프구 등이 추워야 참다운 예술이 나오는 법이라구. 아주 청백하기가 짝이 없으셨어요. 그러니까 농사 조끔 지으면은 일본 사람들이 공출로 뺏어 가지, 인저 저희가 육남맨데 식구는 많지 그러니깨 저희 어머니가 바느질품도 연신 팔으셔 가며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김동건: 근데 어렸을 적부터 소녀 명인이라구 이렇게 에, 칭찬을 들으셨다 그러는데 그렇게 춤 잘 추는 소녀다 이런 소문이 나기 시작한 건 몇 살 때부터였을까요?
김숙자: 열 세 살이에요. 열 세 살에 에, 안성, 제 고향이 안성이거든요.
김동건: 경기도 안성이요?
김숙자: 예, 경기도 안성인데 협률사가 들어왔어요.
김동건: 협률사는 무엇입니까?
김숙자: 협률사라면 지끔 극단 같은 겁니다, 창극단.
김동건: 예, 예.
김숙자: 그랬는데 들어왔는데 저희 아버지를 인제 찾어 오셨어요, 협률사에서. 인저 그래 가지구 아, 그 딸두 이렇게 배우구 이런다니까 같이 좀 이렇게 다녀보자구. 그래서 그 때에 첫 무대에 올라섰는데 아, 소리두 잘하구 춤두 잘 춘다구 그 때 인저 이 경기도는 수원에 그 예술가덜이 많이 살았어요. 수원, 오산, 안성, 그러니깨 거기서는 아무개씨 딸이 이거를 예술을 배운단다 이런 소문은 났죠. 그러자 인제 처음 제가 하는 걸 보더니 하, 싹수 있다구, 참말 요거 큰 거물이 되겄다구. 그러니 뭐 지금두 이 못생긴 얼굴에, 어려서 맨얼굴에 버듬두 피구 막 여기는 쑥 나오지 여기는 쑥 나왔지, 촌에서 그 뭐 옷두 남루하지, 우섭지요 뭐. 그런데 아 니가 생긴 게 이렇게 생겼으니까 재주 있으니 예술은 잘할 거다. 인제 선생님덜도 그러시더라구요. 하하하. 근데 역시 인제 선생님 폐는 세 번을 안끼쳤어요. 한 번 가르쳐 줘, 두 번 가르쳐 줘, 세 번째는 영락 없이 선생님 숭내를 냈으니까요.
김동건: 지금 그 에, 전통무용 학원을 설립하시고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은 그러면 배울 때는 인제 예전이고 이제 배우,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 건 언제부터입니까?
김숙자: 제가 스물 일곱, 여덟 살서부텀 가르쳤어요.
김동건: 네, 어디에서 시작하셨습니까?
김숙자: 시작은 충남 대전에서 시작했어요. 대전에서 대전국악학원이라구 거기서 학원을 했지요.
김동건: 그 때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던가요? 그 전쟁 후에 전부 그 참 에, 살기가 어려운 때 아니겠습니까?
김숙자: 배우는 사람두 없을 뿐만 아니라 인제 처음에 인가 낼 제에 어떠한 젊은 여자가 와 가지구 “뭐, 인가를? 그 충청도는 양반 곳인데” 뭐, 춤을 추구 소리를 가르친다구 인가 내달라구 그라니깨.
김동건: 하하하하하.
김숙자: 그냥 우습게 생각했지요.
김동건: 네, 문화재를 몰라 뵙구, 예.
김숙자: 하하하하하하. 그러더니 한동안 몇 해를 하구 나니까 그 때 여성국극단이 전성기였거든요. 그 때는 인저 뭐, 참 환경이 좋은 애덜이야 그걸 배울라구 그 당시에 왔겄어요? 그저 그냥 저희 어머니, 저희 아버지 몰래 저, 도망두 오구 이래 가지구 배우는 애덜두 있구, 또 정히 배운다구 저희 부모를 졸라 가지구 참 와서 배우는 애들이 있구 좀 있었어요, 그 뒤로는.
김동건: 예, 서울로 옮기신 건 언제였습니까?
김숙자: 5.16 혁명 나던 해. 그 화폐 바꾸던 해. 겨울에 올러왔어요. 근데 인저 올라온 동기는 그 때에 에, 문화공보부에서 제1, 1회의 에, 전국 신인 경연대회가 있었어요.
김동건: 무슨 신인 경연대횝니까?
김숙자: 국악.
김동건: 국악이요? 예.
김숙자: 예, 그래서 그 때에 대전서 살먼서 대전국악학원을 허면서 이순신 창무극을 해 가지구 왔어요. 그런데 전국에서 삼백, 한, 육십 프로가 들어왔드라구요.
김동건: 아, 대단한데요.
김숙자: 예, 예. 1회 적이구. 근데 거기서 제가 특상을 했어요. 그러니깨 뭐 돈두 없는 데다가 뭐 의상이다, 소도구다 뭐 굉장하지요. 그 없는 애덜 전부 멕여 가며 이러면서 그라다 보니깨 그 학원 집얼 전부 팔아 먹었어요. 다 올렸어요 그냥 거기에, 특상은 했어두. 그러구 있는 판인데 박초월씨가 돌아가신 그, 으, 박초월씨가 “동생! 그러지 말구 나는 학원 경험두 없구 내가 학원을, 국악원을 하나 맨드니까 무용은 와서 맡어서 좀 같이 하자”구. 그래서 그 해에 제가 겨울에 올러왔어요. 올러와서 아, 낙원동에서 인제 시장이 있을 때 거기서 2층에서 인저 학원을 하는데 그러자 불이 났어요. 불이 나 가지구 인제 나는 나대루 독립을 해 가지구 으, 왕십리에다가 한 70평짜리를 읃어 가지구 2층을 읃어 가지구 무용소를 했지요. 그런데 뭐 그 때만 해두 학생덜이 없지요. 그래서 으, 이런 얘기는 참 창피한 얘기지만 굶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인저 어린 것 하나 데리구 어떻게, 또 우리 형님두 있었구 조카두 내가 데리구 있었구. 그래서 안성장, 평택장, 천안장, 양수리장, 여길 장엘 댕기문서 인저 밤, 계란, 인제 안성에는 기름, 이거를 짜다가 전부 인제 운동화를 신구 그 때만 해두 여자덜이 뭐 그렇게 몸빼, 쓰봉 같은 거 뭐 잠바 같은 거 입, 입은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하구, 그냥 학원은 학원대루 허면서 참 그걸 띠어다가 각 요리집에 덮어 놓구 가서 이것 좀 나 어린 것하구 살으니까.
김동건: 카, 예.
김숙자: 이문은 떠나서 요걸 좀 팔아 달라구 하니까 다 해주드라구요. 그래서 인제 소매루 넘겼죠. 도매루 사다가 그렇게 해 가면서 학원은 그냥 지속해 내려왔죠.
김동건: 으, 음. 그런데두 그런 가운데서도 또 그, 우리 한국무속예술보존회를 만드셔 가지고 에, 그, 우리 민속예술을 보존하는 데 힘 쓰셨다구 그러는데 그거는 언제 만드셨습니까?
김숙자: 그건 칠십년 초서부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깨 우리나라 전통예술은 전부 세습적으로 내온, 내려온 무속에서 있는데 강신무만 성하구 이 세습무가 없어지드라구요. 그래서 제가 곳곳에 댕기문서 세습무를 찾았지요. 찾아 가지구 공간사랑 지면서부텀 몇 년을 참 불러다가 무대에다가 저기, 공연을 시켰지요 연년히. 그러다가 팔, 칠십 구년도에 이렇게 해서는 안되겄다 하구 한국무속예술보존회를 제가 창설을 해서 지금까지 하구 있어요. 그래서 그 때부텀 인저 정부에서 팔십 일년도서부텀 보조금을 조금씩 줘요. 그래서 정기 공연을 늘 시키구 인제 이랬드니 그 한 뒤루 그래두 무속이, 세습적으루 내려온 무속이 참 아, 이것이 우리 것이로구나 하는 그, 청소년들한테두 알려지게 되구 또 문화재 지정두 다 받었어요.
김동건: 네, 예. 그렇군요. 매년 정기 공연을 가지셨습니까?
김숙자: 예, 1년에 두 번, 한 번.
김동건: 아하, 네. 그 저, 정기 공연하실 만한 장소라든가, 이런 여건은 괜찮았습니까?
김숙자: 그거는 인제 제가 개인 주머니를 털어 가지구 해야지요.
김동건: 음, 교통사고를 한 번 당하셨다구 그러던데요.
김숙자: 84년도에 굉장했지요. 교통사고를 당해 가지구, 당해 가지구.
김동건: 몇 년 전이군요. 어디에서 그러셨습니까?
김숙자: 저, 오산에서 그랬어요. 눈, 눈이 많이 쏟어지는데 그것이 차가 인제.
김동건: 무얼 타고 가시다 그러셨습니까?
김숙자: 자가용이에요. 제자 하나가 자가용을 참, 중고를 사 가지구 내일은 내 생일인데 오늘 목욕을 갔다 오셔서 내일 아침 잡숫자구 자꾸 졸러요. 그래서 인제 수안보를 가자 그래서 수안보는 생전 내가 마음으로도 멀드라구요. 그래서 수안보를 가지 말구 온양온천을 가자 그랬는데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에 내 조카딸이, 천안에서 유홍란이라구 크게 제 수제자며 이 질녀가 거기서 학원을 했어요. 그런데 막 두시에 들어가니깨 세시 기차를, 표를 끊어 놨드라구요. 그래서 그러문 우리가 이, 저기, 온천을 가자 그러니까 걔 말로 온천을 가느니 기왕이문 도고를 가자구. 그래 거기 가서 점심을 먹구 이러구서는 인제 저녁에 떠나는데 그냥 눈이 많이 쏟어지더라구요.
김동건: 고속도로에서 그러셨습니까?
김숙자: 예, 고속도로에서 그래 가지구 오다가 차가 막, 1차선, 2차선, 그 분간이 없이 가니까 죽은 내 조카딸이 요기 앉아 가지구 “얘 아무개씨 그 1차선이문 1차선으루 가요.” 그러니깨 그 말이 끝나면서 훅 뒤집히드라구요 차가.
김동건: 하아.
김숙자: 그래 인제 그 자리서 인제 조카딸은 죽구.
김동건: 쯧쯧쯧쯧쯧쯧.
김숙자: 나는 인제 정신을 채렸지요. 정신을 그 때 인제 놨는데 뭐, 조카딸이 죽었는지 그것두 몰르구. 그랬는데 병원인 거 같애요, 눈을 뜨니까. 근데 뭐 여기가 엉망이지요 뭐. 그러니까 막, 빠께쓰루 그 추운데 찬물을 갖다 퍼붓구 이러드라구요. 그래 정신이 나드라구요. 그래서 아무 것두 생각이 안나구 다리가 이렇게 많이 다쳤다는 생각이 나요. 그래서 내가 춤을 못추문 어떡 허나 해서, “여보시요, 여보시요” 그러니깨 의사두 아니에요. 토요일 날이니까. 인저 뭐 닥터나 되겄지요? 그러니까 그 때에 제가 처음으루 파마를 했어요. 그러니 목욕을 하구 그 지경 됐응깨. 뭐 파마가 긴, 길은 머리가 척 늘어졌지 옷두 뭐 털오바를 입었지 옷두 근사하게 입었지. 그랬는데 막 나이는 먹었어두. 그래서 1번 정신 채리문서 “나 춤 출 수 있어요?” 그랬네. 그러니까 이 그 닥터가 양춤에 미친 늙은이루 알었어.
객석: 하하하하하하.
김숙자: 그래 가지구 나보구, “걱정하지 마세요. 맘보두 추구 지루박두 추구 싹 춰요.”
객석: 하하하하하하.
김숙자: 그래서 내가 아, 그럼 맘보, 지루박을 추면은 내가 추는 춤도 추겄다 이래, “정말이에요?” 그랬다구 내가 그 때. “아, 정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못추면 어때요 그까짓 춤.” 이러드라구요. 그러구서 인제 정신을 또 놔 가지구 가물가물하다가 살 만했지요.
김동건: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양반도 그 저, 정신 차리자 마자 첫 번 질문이 춤을 출 수 있겠느냐구 그러니까 을마나 그 양반두 참 기가 맥혔겠습니까?
김숙자: 그렇지요. 예, 머리는 길은 머리에다 늙은이가 파마를 해서 턱 풀르구 이렇게 허구선 떡 정신 차리면서 “나 춤 출 수 있어요?” 그라니까 이게 보나 마나 오산 근방에 어디, 거기에서.
김동건: 하하하하.
김숙자: 양춤을 추러 가서 오다가 이 지경이 됐나 보다. 그래 가지구 쪼가 미우니깨 지루박두 출 수 있구 맘보두 출 수 있다구.
김동건: 근데 제자들의 말에 의하면은 선생님 저, 그 서양 춤도 잘 추신다는데요? 서양 사교춤도.
김숙자: 근데 지끔 뭐 지루박이다 이런 건 뭐 스텝은 알지만은. 옛날에 제정 때에 조금 배웠어요. 탱고, 뭐 부루스, 왈쓰, 인제 도, 도롯도 하하, 이런 거는.
김동건: 하하하하하. 예, 예. 그렇게 그 다리에 부상을 입고도, 그리구두 그 회갑 기념 공연을 하셨다면서요?
김숙자: 5월 달에, 6월 달에 인제 퇴원을 해 가지구 다리 요렇게두 안꾸부러졌는데 인저 발표를 헌다 그러니까 인제 제자덜이랑 전부 미쳤다 그라지요.
김동건: 말리겠지요.
김숙자: 예, 그래서 국립극장 소극장을 얻었어요. 그래서 인제 저기, 딸하구 제자하구 양쪽에 나를 갖다가 무대에다 놓으면은 무대에서 춤을 추었어요. 그러니까 나두 울지, 제자덜두 울지, 또 구경하는 분덜두 울지. 그러문서 나보구 참말루 독한 양반이라구.
김동건: 아프지 않으시든가요?
김숙자: 아픈 거는 느끼질 못하구. 내가 여기서 그 전보덤 못춘다 칭얼 받으문 네 그 팬들한테 그 만치 실망을 준다. 나는 해내야 한다 하는 거밖에는 아무 생각이 안나요.
김동건: 으음, 연습두 하십니까?
김숙자: 연습 안해요.
김동건: 연습은 전혀 안하십니까?
김숙자: 애덜만 시키지.
김동건: 아하. 그러다가 춤을 추실라 그러면 몸이 좀 이, 뻑뻑하다든가 그런 거 없으십니까?
김숙자: 그런 거 없어요 저는. 그런 걸 평생얼 못느껴요.
김동건: 아하, 항상 생각을 하구 계셔서 그런 모양이죠?
김숙자: 그렇지요. 뭐, 춤 추는 사람이니까. 예, 항상 인저 죽어두 뭐 춤하구 평생을 살았으니까 참 죽어서 다시 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춤을 추구, 춤을 추다가 쓸어져 죽는 게 소원이었구, 또 죽어서 다시 예쁜 여자루 태어나서 다시 좀 무용가가 되구 싶어요.
김동건: 다시 춤 추시는 게 소원이시구요.
김숙자: 예.
김동건: 네, 그랬다가 또 그렇게 해서 추시다가 또 돌아가셨다 또 퇴원하셔두 또 춤 추시겠습니까?
객석: 하하하하.
김숙자: 예, 하하하하하.
김동건: 하하하하. 대단하십니다. 예. 그, 춤을 추고 싶으실 때가 있으십니까? 문득 가만히 앉어 계시다가 아, 내가 춤을 추구 싶다 이러실 때가 있으십니까?
김숙자: 그럴 때는 제자덜 보구 보라 그래요. 내 춤 한번 출 테니 봐라.
김동건: 그러면은 아까 말씀 하시기를 신이 나서 앵기면서 춤을 추는, 앵긴다 그런 표현을 하셨어요. 그 앵긴다는 것이 말하자면 흥이 막 묻어난다, 솟아나고, 그런 거 없을 때도 잘 추어야 명인이 아니겠습니까?
김숙자: 그렁개 나는 앵기지 않았는데 보는 사람은 잘 췄다구 하니까.
김동건: 잘 췄다구 생각해요?
김숙자: 예.
김동건: 춤 추실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김숙자: 아, 내가 실수 안하구 여적까지 쌓아 내려왔던 그 계단얼 바루 다시 이렇게 내려가지 말고 올러갈 수 있는 계단을 올러가야지 하는 그 생각은 여기서 잊어 버려지지를 않지요.
김동건: 그 춤을 추면은 출수록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십니까 그러면?
김숙자: 요즈막은 인제 내가 춤을 추문 이 무대를 얼마나 슬 건가. 이제 나이가 먹었으니까. 이 무대를 얼마나 가지구 놀어야 되는 건가 얼마 동안.
김동건: 아하, 그러문 춤 추시면서, 지금 요 근래에는 춤을 추시면서 자신의 춤에 자신이 만족하십니까?
김숙자: 아, 인제서 조끔 인제, 인제 같으면은 건강만 좀 좋구, 인제부텀은 춤을 추겄다 그랬는데, 뭐 건강두 이제 나이 먹었지, 또 힘도 없지 다리 아프지, 그러니까 내 마음껏 항상 추구 나문 찝찝하지요. “아이구 오늘은 앵기지 않었어.” 그러문 보는 사람덜이랑 제자덜이랑 “아이구 선생님 참 앵겼어요. 오늘 앵겼어요. 요러지요.
객석: 흐하하하하하.
김동건: 최근에 그 구라파를 다녀오셨지요?
김숙자: 예, 독일, 독일, 스위스, 로마, 파리. 제가 안갈라구 석달을 싸웠어요.
김동건: 왜요?
김숙자: 아, 뱅기를 20시간을 탄다는데 그 비양기 안에서 꼭 죽지 못살 거 같애요.
김동건: 아하, 그래 타 보시니 어떻든가요? 견딜 만하시든가요?
김숙자: 아, 몰르지요. 그냥 약 털어 먹구 자구.
김동건: 네, 헤헤헤헤헤.
객석: 하하하하하.
김숙자: 하하하하. 타면은 자구 그냥 약, 병원에서 진 거 톡 털어 먹으니깨 몰러요.
김동건: 예. 에, 어, 공연은 어떻든가요 결과가?
김숙자: 그런데.
김동건: 구라파 사람들이.
김숙자: 구라파를 처음 나갔는데 저두 걱정을 했어요. 으, 참 나를 초청을 했는데 ‘세계 마임 훼스티발’얼 하는데 열 나라에서 왔어요. 그러문 우리 한국에서는 처음이란 말이에요. 동양에서는 인제 세 번째랍니다. 일본하구, 이, 저, 인도하구 올해는 한국을 했는데 그 반응이나 없구 그러문은 참 그, 어뜩 하나. 우리는 한참 그 훼스티발 끝날 무렵이에요, 우리 차지가. 그러는데 손님이 제일 많았다는 거에요. 춤을, 그, 이 살풀이춤을 추구 나니깨 아홉 번얼 박수를 치드라구요 기립박수럴. 그래서 결국에 인제 열 번째는 내가 내려갔어요. 내려가서 한 오십명 이렇게 악수럴 허구 이러구 올러오니까 한 2분 동안 기립박수 치더니 그치드라구요. 그렇게 반응이 좋아요.
김동건: 네.
김숙자: 그러더니 불란서 여자래요. 현대무용 헌다는 여잔데 와 가주구 그 한국 학생얼 하나 데리구 올러왔어요. 그래 가지구 뭐 이 아이랑 발른 거며 이 얼굴이 떡 덩어리가 됐어요, 좌우간 울어서. 흑흑 느껴가며 울면서 “선생님 춤은 이렇게 여기(가슴)가 와서 닿구 슬프구 좋구 소름이 끼친다.” 그러면서 선생님 이 손목 좀 한번 만져 보자구. 그래서 만져 보라구. 만져 봐야 뭐 이렇게 뭐 늙어 빠졌잖냐구 내가. 근데 자기가 인제 지금서부텀 돈을 모아 가주구, 선생님의 학원을 알려 달라구. 그러문 와서 배우겄다구 꼭 살풀이춤얼. 그래서 제가 적어 줬지요. 그렇기 그냥 반응이 좋아요.
김동건: 예, 예. 그 참 그, 언어와 습관과 모든 것이 다른 그 구라파에 가서 우리의 그 전통예술이 그, 그것두 보통사람이 아니고 으, 춤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러면 그 어디 선생님 한 분의 영광이겠습니까? 저희들이 모두 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지요.
김숙자: 하하하. 예.
김동건: 그래 아마 그 말이 틀림 없을 겁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 세계에서 제일이다.
김숙자: 예, 그러구 그 캘럴음악의, 음악대학 교수 한분이 에, 공연허는 데마다 쫓어 왔어요. 녹음 그 음악을 팔으라구. 쫓어 댕기문서, 하이구 그냥 뭐 그냥 착착 그 달라 붙으문서. 그러니 다음, 그거를 팔문은 다음 공연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아, 이것두 참 우리나라.
김동건: 복사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김숙자: 시간이 없지요.
김동건: 시간이 없으니까, 예, 예. 이 자리에는 그 김 여사님의 따님이 되시는 그리구 또 이수자인 김운선씨, 그리구 역시 이수자인 양길순씨, 이렇게 두 분이 나오셨는데 제가 잠깐 에, 만나보겠습니다.
김숙자: 예.
김동건: 예, 안녕하십니까.
김운선: 안녕하세요. (중략)
김동건: 그 옆에 계신 양길순씨 좀 (마이크) 받아주시지요. 선생님한테 몇 년이나 배우셨습니까?
양길순: 저는 선생님한테 온 게 13년째요. (중략)
김동건: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네, 선생님의 춤을 이수하신 두 분의 말씀이 저럴진데 저희들은 뭐 정말 참 어떻게 무어라구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입니다.
김숙자: 아이구, 무슨 말씀이세요.
김동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춤을 추시겠지요?
김숙자: 그러문요.
김동건: 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에, 선생님이 가지신 거를 다 제자들에게 전해 주시고, 그리고 그 무대에 스셔서 손만 조금 이렇게 들고 있어도 모든 그 관객이 감동하구 증말 참,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는 그 마음과 혼도 한꺼번에 다 제자들에게 주시구 으, 그리구 은퇴하셔야 됩니다. 예, 고맙습니다.
김숙자: 예, 예. 감사합니다.
김동건: 지금까지 우리 조상의 얼과 그리고 멋과 한이 서린 그 전통무용, 에, 경기 살풀이를 추시기에 평생을 바쳐 오신 우리의 김숙자 여사를 모시고 여러 가지 유익한 얘길 들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주무십시요.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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