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는 『제11회 국립남도국악원 학술회의-남도 굿, 삼현육각과 예인을 만나다』(전라남도 진도:국립남도국악원, 2014년 6월 28~29일) 90~16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화순의 음악 문화와 예인(3)
- 현지조사와 실증자료 중심 연구 -
글·사진 제공/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
1. 화순 음악 문화
(1) 화순의 음악 환경
(2) 화순 국악 명인
2. 화순 관련 국악인 대담 내용
(1) 판소리 명창 박송희
(2) 판소리 명창 성우향
(3) 판소리 명창 성창순
(4) 판소리·전통춤 명인 성희경
(5) 판소리 명창 신유경
(6) 무악 명인 조도화
(7) 판소리 명창 조순애
(8) 발탈·판소리·국극·민요 명창 조영숙
3. 화순 능성신청 조사 내용
(1) 능성신청 위치와 사진자료
(2) 능성신청에 대한 증언자료
4. 화순 관련 국악 주요 음반과 문헌, 맺는말
(1) 화순 관련 국악 주요 음반
(2) 화순 관련 국악 주요 문헌
(3) 맺는말
-------------------------------------------
(7) 판소리 명창 조순애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4955
1998.7.7.14:30~18:00.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박송희 판소리 전수소 근처 찻집.
판소리 명창 조순애 증언 장면. 촬영:노재명.
조순애 명인은 1929년 9월 21일(음력, 호적:1929.9.22)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또는 석고리:불분명함, 본적 신고:서울)에서 아버지 조명수, 어머니 박모암 사이의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조순애의 본명은 조순희인데 집안 어른들이 순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그리고 과묵하고 얌전한 성품을 지녀 주변사람들은 조착실이란 별호로 부르기도 한다.
조순애 집안은 대대로 능주에서 살아온 토박이로서 많은 국악 명인들이 배출된 유명하고도 유서깊은 가문이다. 조순애의 좋은 목구성과 특별한 음악재능은 바로 이같은 가문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
조순애의 부친 조명수는 능주 사람으로서 가야금 산조와 풍류의 거장이었다. 조명수는 아주 미남이었고 멋덩어리였기에 별호가 조떵어리 또는 조떵구로 불렸는데 조순애 나이 9세 때(1937년) 아버지 조명수가 작고하여 조순애는 부친이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을 못봤다 한다. 조명수가 판소리 명창 김연수와 친구로 지냈다 하니 조명수의 출생시기는 1907년 무렵일 것이고 그렇다면 조명수는 31세 무렵에 작고했을 것이다.
조순애는 부친 조명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조명수한테 배운 제자는 누가 있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내력은 들은 바 없고 조명수의 가야금이나 사진 등의 유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조명수가 일제 때 영화 유충렬전에 왕으로 출연한 적이 있으니 그 필름이 남아있다면 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당시 조명수가 이 영화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크게 욕봤다고 한다. 조명수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했는데 지금 판소리 활동을 하는 임향님의 부친이 서울서 조명수를 따르는 여자들의 연애편지 심부름을 많이 했다.
조순애의 모친 박모암 역시 능주 사람인데 국악은 하지 않았다 한다. 박모암은 1남 4녀 중 셋째딸인데 위로 언니 2명, 밑으로는 차례로 남동생 박기채, 여동생이다. 이 가운데 박기채만 국악을 했는데 공창식과 정응민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박기채는 원산 권번에서 소리 사범을 하였고 조순애도 그 때 원산에서 살았다. 박기채는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고 박기채 부인은 국악을 하지 않았다. 박모암 여동생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조순애의 친남동생은 작고했으며 여동생들과 이복 남동생은 생존해 있는데 조순애 외에 형제들은 모두 국악을 하지 않았다.
피리·태평소의 대가 조계남과 판소리 명창 조몽실은 조순애의 당숙어른 뻘이며 판소리 명창 박기채는 조순애의 외삼촌, 판소리 명창 조동선과 능주의 피리·장고 명인 조도화(조동선의 남동생)는 조순애의 육촌 오빠, 판소리·경기민요·발탈·국극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조영숙(조몽실 딸)은 조순애의 육촌 여동생이다.
예전에 조순애가 살던 능주면과 가까운 이양면에서 박현옥의 모친(성명 미상)이 굿을 아주 잘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대금 명인 한주환이 5∼6년간 능주면 잠정리에서 연주 활동을 한 바 있다. 이때 조순애의 외삼촌 박기채, 조순애의 육촌 오빠 조도화 등이 한주환과 어울렸다.
조순애는 12세부터 3년간 능주면 잠정리에서 외삼촌 박기채한테 판소리 심청가와 적벽가 토막소리를 배웠다. 조순애는 박기채가 당시 40대였다고 기억하기도 하고 조순애보다 20여세 연상이었다고 기억하기도 하였다.
이때 조순애와 동갑인 능주 사람 조봉례, 오옥석도 함께 배웠는데 조봉례는 조도화의 여동생이며 오옥석은 조도화의 누나 조모씨의 딸이자 조봉례의 조카딸로서 조봉례는 부산에서, 오옥석은 김제에서 살고 있다. 조도화 형제는 4남매, 2남 2녀인데 차례로 조모씨(오옥석 모친), 조동선, 조도화, 조봉례(여)이다.
조순애는 박기채 문하에서 학습할 때 약 3개월 동안 그 어른을 모시고 남자 학습생 2명과 함께 강진의 어느 산으로 소리공부를 들어갔다. 이때 강진에서 판소리 명창 김채만의 부인이 씻김굿 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굿을 무척 잘했으며 김채만은 당시 작고한 뒤였고 그 부인과 딸이 강진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박기채는 정응민제 심청가가 특기였는데 방안소리는 잘했으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큰 무대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기채의 부인은 국악을 하지 않았다.
조순애는 14∼15세 무렵에 친구들과 함께 2개월 가량 능주면 잠정리에서 명무이자 명고수였던 김막동한테 승무를 배웠다. 조순애는 이때 배운 춤을 이제 나이가 들어 거의 못춘다고 한다.
조순애는 16세 때 조봉례, 오옥석과 함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였다. 당시 조상선 앞에서 입단 시험을 본 후 합격해야 그 단체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조순애, 조봉례, 오옥석은 서울 종로 우미관에서 시험을 보았다. 이때 세 사람 모두 합격하였는데 시험이 끝난 후 조상선이 조순애한테 장래가 유망하다고 칭찬했다.
조순애는 동일창극단에서 21세까지 약 5년간 공연 활동을 하다가, 몇달 동안 집에서 쉬고 다시 그 단체에 들어가 23세까지 있었다. 조순애는 여기에 몸담고 있으면서 판소리 명창 장판개의 아들 장영찬과 함께 조상선한테 소리를 배웠다. 이때 조순애가 익힌 소리는 단가 <적벽부>와 <여객같은>, 판소리 춘향가 중 <비맞은 제비같이>∼<하루 가고>, 창극 논개전의 소향 역과 선화공주의 공주 역 소리 등을 배웠다. 조상선은 정정렬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는데 작곡력이 매우 뛰어났다. 조순애는 조상선이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와 열사가를 부르는 것은 못봤으며 이동백한테 배웠다는 말은 못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순애는 동일창극단 활동 당시 조상선 문하에서 <단오노래>, <칠석놀이>, <추석노래>, <널뛰기>, <사철가>와 같은 조상선 작곡의 신민요도 배웠는데 조순애와 같은 조상선의 제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이 민요들이 널리 알려져 자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조순애는 이 신민요들이 지금은 부른지 오래되어 뜨문뜨문 기억난다고 한다. 그리고 조순애는 구음이나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과 같은 옛 민요는 특별한 스승없이 어려서 많이 들어 자연스레 부를 수 있게 됐고 특이한 사설과 성음은 여러 선생들이 하는 걸 듣고 땄다.
동일창극단에는 조순애 활동 당시 조상선, 장영찬, 조봉례, 오옥석 외에도 판소리 명창 강남중, 공기남, 정남희, 임소향, 강장원, 정광수, 박초월, 박귀희 같은 이들이 활동했었는데 이때 임소향은 창극 무대에서 춘향모로 유명했다.
조순애는 동일창극단 등 단체 생활에 여념이 없던 6.25 전쟁 발발 무렵 서울 조계사(또는 대각사:불분명함)에서 열린 5명창 추모 합동제사에 참가한 바 있다. 이 제사에서는 스님들이 염불 천도를 해주었으며 추모 공연은 없었고 제사 후 참석자들 전원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이때 강장원, 고일연, 김계룡(?, 단체 사무일 담당), 김광식, 김세준(?), 김유난(?, 국악 애호가), 김윤덕, 김재선, 박귀희, 박도화, 박록주, 박석기, 박헌봉, 백점봉, 백모씨(만담가), 성금연, 성순종, 신숙, 심상건(?), 오태석, 이동안, 이정업, 임유앵·임춘앵 자매, 임종선, 정남희, 정득만, 조봉란, 조상선, 조소옥, 지영희, 5명창의 부인들과 친척 자손 등이 참석했으며 송만갑의 아들 송기덕과 송영덕, 송만갑의 조카 송억봉(송업봉?)은 당시 오지 않았다.
이 가운데 고일연은 조순애보다 4∼5세 연상이며 소리는 전혀 못했고 국극 무대에서 단역을 주로 맡았으며 현재 생존해 있다. 김재선은 조순애보다 20세 이상 연상이고 박도화는 조순애보다 3세 가량 연상이며 오래 전에 작고했다. 백점봉은 충청도 사람으로서 조순애보다 20세 이상 연상인데 조순애는 그의 판소리는 못들어봤다 한다. 임소향은 고향이 대구일 것이라고 조순애가 말하였다.
성순종은 김연수한테 판소리를 배웠고 신숙은 경상도 사람으로서 김소희와 비슷한 연령이며 미인이었고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잘했으며 1950년대 후반에 작고했다. 신숙은 1940년대 국극 선화공주가 처음 발표될 때 첫번째로 공주 역을 맡았다. 임종선은 조순애보다 20세 가량 연상이며 관악기 악사였다. 조봉란은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 그 모친은 이북 사람이다. 조봉란은 조상선 문하에서 소리를 배웠고 조순애보다 5∼6세 연하이며 1980년대 초반에 작고했다.
조봉란은 연극 전문인이었지만 소리를 꽤 잘했고 그 후손이 있으나 국악은 하지 않는다. 조봉란은 호적상 조상선의 여동생이고 조봉란 친모(조상선 계모)는 평양 사람이다. 조소옥은 <육자배기>를 잘했고 1960년대에 작고했는데 조순애는 그의 판소리는 못들어봤다 한다.
조순애는 23세 때 동일창극단을 나온 뒤 2∼3년간 집에서 쉬다 조상선, 박록주가 이끌던 국극사에 입단하였다. 그 국극사에서는 20대 후반까지 2년 가량 활동하다가 나와서 새한여성국극단(단장:김경애)에 입단하여 2∼3년간 활동하였다.
새한여성국극단에는 조순애 활동 당시 김순자, 변녹수, 백숙자, 김행, 장난희, 박옥순, 한성숙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한다. 백숙자는 조순애보다 5∼6세 연하로서 소리는 전혀 못했고 연극 전문인이었으며 김행은 조순애보다 5세 가량 연상이며 소리는 약간 했고 역시 연극 전문인이었다. 그리고 장난희는 소리는 전혀 못했으며 연극 진행자였고 국극 공연시 꼽추 역 등을 맡았다. 박옥순은 조순애보다 7∼8세 연하이며 소리는 약간 했고 국극 공연시 사령 등의 단역을 주로 맡았다. 한성숙은 조순애보다 5세 가량 연하로서 소리는 약간 했으며 연극 전문인이었다.
새한여성국극단에서 조순애가 활동할 당시 김진진의 이모 임춘앵이 1940년대 조상선이 작곡한 국극 선화공주의 곡조를 토대로 하여 그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렸으며 이 단체에서는 박동진 작곡의 국극(사씨남정기 등)도 자주 공연했다. 조순애는 이 당시 찍은 국극 활동 사진을 몇 장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창극단 공연시 입은 의상은 사용 후 그때그때 단체에 반납했기 때문에 옛 무대 옷은 지금 소장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조순애는 새한여성국극단을 나와 집에서 몇 달 쉬다가 명창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서 4∼5년 동안 단가 <강상풍월>, 판소리 춘향가 토막소리, 수궁가와 흥보가 전판을 사사했고 <추월강산>과 심청가는 안배웠다.
당시 박초월 문하에 성우춘, 김선초, 조통달, 김경숙 등이 있었고 한성준의 제자 장홍심이 박초월 학원(종로)에서 무용을 가르쳤다. 성우춘은 전주 사람으로서 조순애보다 4∼5세 연상이며 지금 판소리 활동을 하는 성창순, 장영찬의 부인 성희경과 친척간이다. 김선초는 명고수 김세준의 딸로서 1925년 무렵에 출생했으며 판소리,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살고 있다. 김선초 밑에 김채돈(김차돈)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김채돈은 조순애보다 2∼3세 연상이며 미인이었고 현재는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다. 조순애는 30대 후반에 김선초·김채돈 자매를 보고 그 뒤로는 못보았다. 김선초·김채돈은 판소리 명창 김창룡의 손녀인 셈이며 김창룡의 손자 중에는 김인태가 현재 KBS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김선초·김채돈 자매는 예전에 새한여성국극단에서 조순애와 함께 활동한 바 있는 김순자(일명 문재네)와 사촌간이며 김인태와 김모씨(일명 포천댁)는 형제간이다. 김선초, 김채돈, 김순자, 포천댁 김모씨의 후손 가운데 국악을 하는 사람은 없다. 포천댁 김모씨는 조순애보다 3∼4세 연하이다.
조순애는 30대 중반에 박초월과 일본 공연을 가기 전에 박초월 학원에서 장홍심한테 검무를 배웠는데 지금은 그 춤을 대부분 잊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순애는 장홍심 문하에서 검무를 배우기에 앞서 30대 초반에 1∼3달 가량 서울 김취란 자택에서 그를 독선생으로 모시고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배웠다. 그때 익힌 산조 가락은 성금연류와 같았는데 지금은 연주를 거의 하지 못하며 당시 병창은 안배웠다. 김취란은 명고수이자 줄타기의 명수였던 이정업의 부인으로서 경상도 사투리를 썼고 조순애보다 7∼8세 연상이었으며 그의 스승은 누구인지 모른다 한다.
조순애는 박초월 문하에서 나와 2∼3년간 집에서 쉬다가 명창 박록주를 찾아가 2∼3년 동안 단가 <백발가>와 <편시춘>, 판소리 흥보가와 숙영낭자전 전판을 사사했다. 이러는 와중에 김여란이 박록주에게 조순애를 자신의 후계자로 달라고 청하여 조순애는 김여란 문하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하여 조순애는 김여란한테 몇 달 동안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부터 <신연맞이>까지 익혔고 단가는 안배웠다.
조순애는 여러 스승한테 배운 판소리들 가운데 자신의 성대로 봐서는 김여란과 박초월의 소리제가 맞지만 마음은 박록주제에 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그냥 듣기엔 김여란제가 가장 좋았다 한다. 박록주는 소리를 바쁘게 하는 편이며 여자지만 남자소리를 하는 명창이었고 김여란은 아주 느리게 부르는 편이었고 그래서 배우기가 어려웠다. 박초월은 청이 무척 높았는데 1950∼60년대에는 다들 청이 대체로 높았다. 조순애는 그 땐 김여란의 소리가 너무나 익히기 어려워 배우다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까운 소리를 놓쳐 버렸다 싶어 후회가 된다.
조순애는 30대 때 며칠간 한갑득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거문고산조 진양조를, 서용석한테는 아쟁산조 진양조를 잠깐 배웠는데 두 산조 모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성음이 잘 나오지 않아 성이 안차 중도에 작파했다.
조순애는 1960년대 후반, 그러니까 당시 나이 40세 무렵에 명고수 김동준과 혼인하면서 국악 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물론 가정 살림하는 중간중간에 공연, 음반 취입 등을 조금씩 하기는 했지만 예전에 비한다면 음악 활동을 거의 중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순애의 남편 김동준은 1925년 전남 화순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박동실, 박봉술, 김연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소리뿐 아니라 북, 장고, 가야금으로도 명인이었고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로 활동하다 1990년 작고하였다. 김동준은 가야금 명인 유대봉과 자주 어울려 서로 우스게 재담을 잘했다. 김동준은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으며 그 가운데 1950년 무렵 태어난 장녀 김영화만 국악을 했는데 김윤덕한테 가야금을 배웠으나 지금은 작파하고 일본에서 가정 살림을 하고 있다.
김동준의 첫째 동생 김동섭은 1925년 무렵 태어났는데 국악은 하지 않았다. 둘째 동생 김동식(김동진)은 한주환과 강백천 문하에서 대금산조를 배웠는데 대금을 반대 방향으로 불어서 사람들이 인정을 잘 안해줬으나 대단한 명인이었으며 형 김동준보다 1년 앞서 작고했다. 셋째 동생 김동표는 강백천한테 대금산조를 배워 그 음악으로서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으며 1999년에 환갑이 된다. 막내 여동생 김향옥(본명:김수련)은 1945년 전주에서 태어나 어려서 오빠 김동준에게 단가, 판소리,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여러 여성국극단에서 공연 활동을 했으며 김오채 등에게 설장고, 꽹과리 등을 사사했다. 김동표와 김향옥은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순애는 1950년대 후반(30세 전후)에 김효순, 한농선과 함께 신세기레코드에서 남도민요 <칠석놀이> 유성기음반(Sinseki N213∼214, 1SP)에 자신의 첫 녹음을 남겼다. 당시 <칠석놀이> 외에도 다른 소리가 더 취입됐을 것으로 보이는데 조순애, 김효순, 한농선이 이때의 음반 취입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바가 거의 없고 이 녹음 외에 이들이 함께 남긴 것은 더 발견된 자료가 아직 없는 상태다. 다만 이때 김효순이 독창으로 취입한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어사와 장모> 유성기음반(Sinseki N227∼230, 2SP, 고수:미상)은 자주 발견되는 편이다.
1967년 무렵 조순애는 스승인 박초월 등과 함께 대도레코드에서 입체창 춘향전 중 <농부가>를 취입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조순애는 입체창 흥보전(대도레코드 TLM-714:이 음반표지 기록은 오류인 듯함, 12인치 3LP)에서 전반부 흥보 역을, 입체창 수궁가(대도레코드 TLM-723∼725, 12인치 3LP)에서는 용왕 역을 맡아 취입했다. 이때 전반부 흥보 부인 역은 성우춘, 후반부(둘째 박타령∼끝) 흥보 역은 김선초, 후반부 흥보 부인 역과 토끼 역은 김춘시, 나머지 배역은 박동순, 양옥진 등이 맡았으며 대금 연주는 박초월의 조카 서용석이 했고 북 반주자(또는 아쟁 연주자:불분명함)로 정철호가 참가했다 한다. 그리고 이 당시 취입된 <농부가>는 입체창 흥보전과 수궁가의 녹음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취입한 것인데 박초월, 성우향, 한농선, 박봉선, 김옥주가 이에 앞서 1960년 무렵 취입한 창극 춘향전 음반(대도레코드 TLM-713∼717, 10인치 5LP)의 녹음에 함께 덧붙여져서 1968년 4월 음반화 되었다.(대도레코드 STLM-708∼712, 12인치 5LP) 대도레코드에서 나온 이 입체창 음반들은 모두 박초월과 그의 제자들이 소리를 한 것이다.
이 가운데 김춘시는 김원술의 딸로서 1940년 무렵 출생했고 박동순은 박초월의 조카로서 조순애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는 정도의 나이 차이였다. 양옥진은 조순애와 같은 나이 정도였으며 작고했다. 김옥주는 전주 사람으로서 조순애와 박동순의 중간 나이 정도 되는데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창극 ‘순교자 이차돈’ 음반(정철호: 이차돈, 성창순:달님, 황수옥:법흥왕, 허숙자:백봉국사, 조애랑:평강공주, 조순애:이차돈 모, 박미연:별님, 조상현:선마로, 서라벌무용단 제공, 대도레코오드사 제조 STLK-7004, TR-3947, 2LP, 1971년 녹음 제작)에서 아쟁은 윤윤석, 대금은 서용석이 맡았다. 이 음반은 정철호 작곡집이고 정철호 소개로 조순애가 취입하게 되었는데 조순애는 이차돈 모 역할의 대사 두 마디를 했다.
황수옥은 판소리를 안배웠고 연극 전문인이고 조순애보다 7~8세 연하이다. 허숙자와 박미연도 판소리를 안배웠고 연극 전문인이고 조순애보다 10세 이상 연하이다. 조애랑은 판소리를 조금 배웠고 연극 전문인이고 조순애보다 7~8세 연하이며 전라도 사람이다.
조순애는 1973년 5월 23일 제3회 판소리 유파 발표회에 참가하여 소리를 한 바 있다. 이때 초기 판소리 인간문화재와 그 제자들이 함께 판소리 공연을 했는데 그 가운데 이선옥은 박초월의 제자로서 조순애보다 5∼6세 연하인데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김소희의 동생 김경희는 1990년 무렵에 작고했다.
1977년 조순애는 박송희, 성창순과 함께 대도레코드에서 남도민요 음반(대도레코드 DS-00-7231∼2, 12인치 2LP)을 취입했다. 여기에는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 <보렴>, <성주풀이>, <진도아리랑>, <새타령>, <방아타령>, <강강수월래>, <농부가>, <남원산성>, <휘여능청>, <널뛰기>, <달맞이>, <까투리타령>, <구음살풀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의 뒷표지에는 반주자가 김동준(장고 꽹과리), 서용석(대금 새납), 윤윤석(아쟁 가야금)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순애와 박송희의 기억에 의하면 실제는 장덕화(장고), 이생강(대금 새납), 윤윤석(아쟁 가야금)이 반주했으며 <농부가>에서는 박송희가 소리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꽹과리를 쳤다. 조순애의 증언에 의하면 이 남도민요 음반은 이생강의 주선으로 왕십리에서 녹음한 것이라 한다.
1989년 조순애는 박송희, 신유경과 함께 뿌리깊은나무에서 남도민요 음반(12인치 1LP)을 냈다. 여기에서는 서용석(대금), 윤윤석(거문고), 장덕화(장고)가 반주를 했으며 장덕화의 주선으로 취입을 하게 됐다. 이 민요 음반은 1994년 11월에 다시 콤팩트디스크로 제작된 바 있다.(뿌리깊은나무/신나라레코드 CDD-012, 1CD) 이 녹음집에는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이 들어있다.
그리고 1997년 조순애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김동표의 음반(국립문화재연구소 NCPR-9602, 1CD, 비매품)을 제작할 때 구음과 장고 반주를 녹음한 바 있다. 조순애는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표한 민요 녹음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낸 구음 녹음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상기 음반들과 ‘조순애의 국악세계’ 음반(노재명 연출·섭외, CKJCD-002, 1CD, 고수:장송학, 음반 해설·사설 채록:이보형·노재명, 1998년 녹음, 1999년 지구레코드 제조)에 취입된 것 외에 조순애는 1998년 4월 MBC-AM 좋은아침 우리가락에 출연하여 단가 <여객같은>과 <적벽부>, 판소리 흥보가 중 <떴다 보아라>, 창극 논개전 중 <소향이가 논개에게 죽지 말라고 만류하는 데>, 구음, 남도민요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을 기록 보존용으로 남긴 바 있다. 이 가운데 흥보가 중 <떴다 보아라>(박록주제) 녹음은 조순애가 현재 부를 수 있는 소리 중 음반화 되지 않은 것이기에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그리고 1998년 8월 19일 조순애가 자택에서 조상선 작곡의 국극 선화공주 중 <헛소문이든 아닌 소문이든>(중모리 무반주)을 부르는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되어 현재 국악음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디지털 6mm 비디오테입 소장 관리번호:MI6V-0230) <헛소문이든 아닌 소문이든>은 서동에게만 시집가려고 하는 선화공주를 왕비가 서풍과 혼인시키려 하니 공주가 안가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 외에 조순애는 여러 국악 라디오방송에 출연하고 여러 국악 공연에 특별 출연하여 남도민요 등의 녹음을 수차례 남겼다. 조순애는 현존 남도명창 가운데 독집 음반을 안남긴 이로는 박보아의 소리가 꼭 녹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몇 차례 강조를 하였고 조금앵이 언니인 조농옥의 판소리 춘향가를 녹음해둔 것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장송학 명고수는 조순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천구성을 타고 났다. 70세를 넘기고, 더구나 오랫동안 활동을 안하다가 그만큼 소리할 사람이 없다. 어느 누구든 소리를 하면 대체로 흠이 다 있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흠을 잡을 데가 없다. 난 그의 음반 취입을 시작할 때 무척 긴장이 됐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조순애에게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녹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반주를 더 잘해주고 싶었고 그와 제대로 장단을 맞추어본 것도 꽤 오래 전의 일이기에 부담이 컸다. 그런데 녹음에 들어가서 그가 소리를 너무나 잘하고 별다른 실수없이 무사히 취입이 끝나 이제 속이 무척 후련하다.”
조순애는 현재 서울 홍제4동에 살면서 이따금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조순애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사람은 정의진, 채수정 등이다. 그리고 조순애는 김죽파가 생전에 가야금산조를 연주할 때 장고 반주를 자주 해주었고 그 산조 가락을 많이 들어봐서 현재 박현숙이 보내오는 가야금 제자 3∼4명에게 구음으로 그 가락들을 전해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화순 능주 일대를 유명한 국악의 고장으로 꽃피운 유능한 예술 집안 조씨 가문이 배출한 국악인들은 어느덧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국악을 등지고 후손에게는 그 가업을 물려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히 조순애 명인이 1998년 고희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그간 덮어두었던 소리들을 꺼내어 최선을 다해 음반에 남겨주었다. 본 음반은 그 찬란하고도 유서깊은 화순 능주 조씨 가문의 국악 발자취에 대한 여운을 길게 남기는 의미있는 기록물로서, 소중한 예술로서 우리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조순애는 본래 왼손잡이고 그래서 소리북의 북채를 왼손으로 친다. 조앵무는 현재 전주에서 살고 있는데 조순애보다 5~6세 연상이고 국악인은 아니고 국악인들과 교류만 하는 사이다. 옛날 정남희 제자 조앵무와 동명이인이다.(1995.5.21.15:00∼15:20, 1998.7.7.14:30∼18:00, 1998.7.21.21:40∼21:55, 1998.7.22.14:00∼21:00, 1998.8.19.14:00∼18:30, 1998.8.27.13:45∼15:00, 1998.9.8.10:00∼14:00, 1998.11.24.09:30~09:40, 2001.3.25.14:00~16:30, 2001.7.7.17:00~22:00, 2014.5.24.20:30~20:35.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가회동 박송희 판소리 전수소, 전화 통화,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4동 조순애 자택과 근처 음식점,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MBC 본사 7층 1스튜디오, 경기도 고양시 지구레코드 녹음실,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훈스튜디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 국악음반박물관. 조순애 증언)23>
(8) 발탈·판소리·국극·민요 명창 조영숙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3796
1996.10.24.16:00~18:30.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다방.
발탈·판소리·국극·민요 명창 조영숙 증언 장면. 촬영:노재명.
조영숙(본명)은 1934년 음력 3월 3일(호적 기록 동일) 전라남도 광주 황금정(지금의 금남로 부근)에서 부친 조몽실과 모친 강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 강순분 나이 34세 때 조영숙을 낳았고 조영숙은 생후 10개월 뒤 원산에서 성장하였다.
조몽실은 18세 때 혼인했고 당시 강순분은 16세였다. 조몽실은 조영숙 나이 20세 때 1953년 무렵 50세로 작고하였고 강순분은 조영숙 나이 40세 때 74세로 별세했다. 조몽실과 강순분은 조영숙을 낳기 전인 강순분 나이 19세 무렵에 아들을 낳았으나 낳자 마자 죽었다.
조몽실은 딸 조영숙에게 판소리르 가르치고자 했는데 강순분이 반대하였다. 조영숙이 국악 단체에 들어가자 강순분은 딸 조영숙을 3년 동안 보지 않았다. 만일 조영숙 모친이 지금의 인간문화재 조영숙을 본다면 국악 하길 잘했구나 할 거라고 한다.
조영숙은 임춘앵 단체에서 부친 조몽실에게 단가 <운담풍경>만 사사했다. 이 <운담풍경>은 나중에 강장원 명창이 깨껴 주었다. 이는 조영숙이 부친한테 <운담풍경>을 배운 상태에서 강장원을 찾아가 소리를 배울 때 매끄럽게 다듬고 살을 붙이고 윤기가 나게 깎아 주었다는 걸 의미한다.
조몽실이 임춘앵 단체에서 제자에게 판소리 심청가 중 <추월만정>을 가르치는 걸 조영숙이 귀동냥으로 듣고 익힌 바 있다. 조몽실 수제자는 김준섭·양옥진이다. 양옥진은 고향이 목포 혹은 진도이며 소리를 잘했고 조순애와 비슷한 나이 또래이고 작고했다. 조영숙의 말에 따르면 조몽실은 유성기음반을 취입한 바 있다 한다.
조몽실의 친형 조정만(?)은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고 조정만(?)의 아들은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둘째와 셋째는 작고하였고 큰아들과 딸 1명이 나주에서 살고 있으며 딸 1명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들 모두 국악은 하지 않는다. 조도화 사촌 조원석은 서울의 유명 고등학교 교사로 교무주임을 역임하였고 조정환의 아들이다.
조몽실(曺夢實)은 화순 동복의 창녕 조씨 집성촌 가문 출신이고 명창 조상선(趙相鮮), 조상현(趙相賢)과 다른 성씨이다. 조영숙 윗대는 본래 ‘병’자 항렬(조병○)인데 조몽실, 조명수 이름은 그 항렬대로 지어지지 않았고 조영숙 대는 ‘환’자 항렬(조○환), 조영숙 아랫대는 ‘규’자 항렬(조규○)이다. 조경환 명창 이름은 조영숙이 들어본 것 같다고 한다.
조영숙 고조부가 무속 가문과 혼인하여 집안에서 파문당했고 그 고조부 이후 후손들이 줄줄이 무속인과 혼사가 이루어졌다 한다. 조영숙 조부는 조종엽(?)이고 그 조종엽(?) 동생은 조상엽(?)이다. 조영숙 외할머니는 김막내이다.
조몽실 모친의 거주지는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화개리였고 조몽실은 광산 송정리에서 임방울과 친하게 지냈다. 당시 조몽실 건강이 안좋으니 임방울이 조몽실을 조몽실 모친에게 데려다 준 바 있다.
박기채는 조영숙의 친외삼촌이다. 조영숙 조모가 안씨이고 조몽실은 가야금 명인 안기옥의 사촌 동생이다.
조영숙 위로 배다른 언니 조해숙이 있는데 조해숙은 원산에서 살았고 남북 분단 후 이산가족이 되어 북한 쪽에 남게 되었다. 조해숙은 안기옥이 몸 담은 북한의 조선국악협회 소속이었다.
조해숙은 1927년 무렵 능주에서 태어났고 판소리·양금 명인으로서 조몽실·박기채·박동실 문하에서 판소리를 사사했다. 조해숙은 조몽실 조카딸, 조영숙 고모 딸, 조영숙의 사촌 언니, 호적상 조영숙의 언니이다. 본래 조씨가 아닌데 모친 성 따라 조씨, 조해숙으로 하여 조몽실 호적에 조몽실 딸이 되었다.
조영숙은 1950년 12월 8일 사리원에서 조해숙과 헤어진 후 지금까지 못만났다. 1960년대 말에 조해숙이 북한에서 방송한 것을 조영숙 아는 사람이 듣고 말해 주었다 한다. 조영숙이 조해숙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을 현재 가지고 있다.
조영숙은 6.25 한국 전쟁 때 국민학교 교사를 했고 1951년 9월 광주의 임춘앵 창극 단체에 입단하여 11년간 활동하였는데 당시 임춘앵에게 연극소리, <입춤>, <승무>를 사사했다. 임춘앵 단체는 ‘여성국극동지사’였다가 나중에는 ‘여성국극 임춘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영숙이 임춘앵 단체에서 첫 출연한 작품은 임춘앵 작곡 국극 ‘공주궁의 비밀’ 군졸(1) 역할 대사 두 마디였다. 그 후 조영숙은 임춘앵 단체에서 임춘앵 작곡 국극 ‘반달’의 방자 같은 삼마이 역할, 1954 무렵 임춘앵 작곡 국극 ‘백호와 여장부’ 덕잽쇠(덥적쇠) 역할, 조상선 작곡 국극 ‘선화공주’ 철새 역할, 1954년 무렵 국극 ‘춘향전’ 방자 역할을 맡았다. 덕잽쇠 역할을 맡고 조영숙은 무척 좋았다고 한다.
당시 국극 ‘춘향전’에서 춘향은 신숙, 이도령은 임춘앵, 향단은 김경수였던 것으로 조영숙은 기억한다. 한일섭은 조영숙의 큰이모 아들이다.
조영숙은 ‘여성국극동지사’, ‘여성국극 임춘앵’ 활동 후 ‘햇님여성국극단’에서 3년, ‘송죽여성국극단’에서 1년~1년 6개월, ‘김연수 우리국극단’에서 5년간 활동하였다.
조영숙은 빨치산 교전을 피해 광주로 갔다가 입단한 임춘앵 창극 단체에서 판소리 사범으로 있던 부친 조몽실을 만났는데 부친이 처자식 못돌보고 각지로 공연을 다녀 조영숙은 부친 조몽실 얼굴이 긴가민가 하였다 한다. 조영숙은 꿈에 부친이 보이고 채씨가 배에 노적 가득 싣고 오는 것을 꾸고 채씨와 혼인하였다.
판소리 명창 김창룡 손자 중 김인태가 KBS 탤런트로 활약하고 있다. 김창룡 아들 김세준은 슬하에 장녀 김희옥(작고), 차녀(하와이 거주)를 두었다. 김희옥은 조영숙보다 3세 연하이다. 조영숙의 말에 의하면 김선초는 김세준 동생의 딸이라 한다. 김희옥과 김채돈은 친사촌 사이고 김희옥과 속칭 포천댁(순자네)은 육촌 사이, 김희옥과 속칭 문재네(서울 거주)는 친사촌 사이다. 김채돈은 본래 김차돈인데 김창룡 후손들이 김채돈이라고 호칭했다 한다.
김강남월 명창은 1940년대 후반에 부산 동래에서 작고했다. 김강남월의 여동생 김봉선은 전황 부인으로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김봉선은 1932년 생이고 삼성국극단에서 연주 활동을 하였다.
안기선 명창은 안향련 명창의 부친이자 가야금 명인 안기옥의 일가 친척이고 판소리·전통춤 명인 안채봉은 안향련의 고모이다. 안기옥 아들은 기타를 연주했다. 전일도 명창은 조영숙이 잘 모른다고 한다.
최옥삼은 월북 일행에 본의 아니게 휩쓸려 있던 조영숙이 남쪽으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왔고 최옥삼 본인도 월북 일행 속에서 빠져 나오려 했으나 못나오고 이북으로 가게 되었다. 박동실 모친은 조영숙 모친과 친형제 같이 친하게 지냈다.
조영숙은 1954~1955년 무렵 2년간 서울 낙원동 박초월 집 맞은편에 있던 강장원 국악학원에서 이용길(당시 학생)과 함께 강장원 명창한테 단가 <초한가>, <만고강산>, <호남가>, <운담풍경>, 판소리 수궁가 중 초입~<별주부 부인 만류>, 남도민요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보렴>을 사사했다. <흥타령>은 강장원이 안가르쳐 주었다 한다. 조영숙은 강장원이 <백발가>(젊어 청춘)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는 같은데 그 단가는 배우지 못했다 한다.
조영숙은 1972년 무렵에 1년간 진도 조영숙 숙소에서 장영찬한테 단가 <공도난이>, 판소리 흥보가 초입~<가난타령>, 적벽가 <군사 설움타령>~끝, 심청가 <가군의 손길>~<장승상댁에 가는 데>, 춘향가 <춘향집 가리키는 데>, <천자 뒤풀이>, <방치레>를 사사했다.
조영숙은 1980년 1년간 서울 국립창극단에서 단체로 성우향 명창한테 판소리 춘향가 초입~<신연맞이>를 배웠고 1995년 11월 무렵부터 1998년 무렵까지 서울 남해성 전수소에서 남해성한테 심청가 초입부터 <심청이가 선인 따라가는 데>, <범피중류> 등을 사사했다.
조영숙은 1954년 무렵에 잠깐, 1982년부터(혹은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이동안에게 단가 <만고강산>, 민요 <신고산타령>, <전라도 육자배기>, <성주풀이>, <함경도 뗏목소리>, <지경 다지기소리>, <주춧돌 놓기>, <액맥이타령>, <수비풀이 소리>, <재인광대 소리>, 발탈 등을 배웠다.
<전라도 장타령>은 조영숙이 19~20세 때 지영희와 방태진이 하는 것을 보고 익혔는데 그 소리에는 경기 장타령이 가미되어 있었다. <전노래>(돈노래)는 조영숙이 30여세 때 김유앵 가사를 듣고 습득하게 되었다.
조영숙은 20대 중반 때 김소희, 조금앵, 박옥진 등과 함께 서울 남산 KBS에서 방송을 하였고 서울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창극 ‘장화홍련전’ 음반을 취입했다.
조영숙이 현재 구사할 수 있는 국악은 국극 ‘선화공주’(임춘앵제), 국극 '바보온달'(박동진 작곡), 단가 <운담풍경>(조몽실제), <초한가>와 <호남가>(강장원제), <만고강산>(이동안제), 심청가 중 <주과포혜>(장영찬제), <추월만정>(조몽실제),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장영찬제), 수궁가 중 <약성가>(강장원제), 신민요 <동백타령>, 임춘앵 작곡 신민요, 경기민요(이동안제), 발탈(이동안제), 구음 등이다. 조영숙은 장영찬 판소리가 본인의 목에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조영숙 명인은 이름이 별반 안알려져 있을 때 1998년 MBC 방송 출연 소개, 2005년 적벽가 공연 기획, 2006년 ‘조영숙의 국악세계’ 음반 취입 주선 등으로 많이 도와준 국악음반박물관을 잊지 못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다.
조영숙은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조영숙은 발탈을 직접 만든다고 한다.(1996.10.24.16:00~18:30, 1996.11.8.11:00~15:00, 1998.8.28.13:30~14:30, 1998.8.29.13:25~13:30, 1998.8.31.19:35~19:40, 1998.9.8.10:00~14:00, 2005.8.27.16:00~20:00, 2013.4.8.14:00~16:30, 2014.5.24.20:35~21:25, 2014.5.29.20:50~21:20.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다방, 서울 여의도 서울음반, 한국방송공사 KBS 별관 주변 식당과 찻집, 전화 통화,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MBC 본사 7층 1스튜디오와 지하식당,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음식점, 서울시 성북구 보문로 발탈전통극보존회. 조영숙 증언)
3. 화순 능성신청 조사 내용
(1) 능성신청 위치와 사진자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유배지가 있다. 1632년 능주목으로 승격되기 이전에는 능주가 유배지였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능주가 목사골이 되면서 그 품격에 맞는 각종 가무악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런 흐름 속에서 차츰 조직된 것이 능성신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1998년 3월 15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228번지 능성신청 자리를 노재명이 조도화 명인과 동행하여 현장에서 그린 능성신청 위치도. 조도화 명인의 증언을 토대로 그림.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4863
1998년 3월 15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228번지 능성신청 자리 모습.
증언:조도화, 촬영:노재명.
(2) 능성신청에 대한 증언자료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4947
1998년 3월 14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조도화 명인 자택.
능주 삼현육각의 마지막 고인 조도화 명인의 피리 연주 모습. 촬영:노재명.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관리번호 MIPHOTO-04905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능주 씻김굿 고인 조도화 명인이 사용한 피리 2종 모습.
촬영:1998년 3월 14일 노재명.
능주 무악 명인 조도화의 증언 가운데 능성(능주의 옛 지명) 신청에 대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능성신청은 현 행정구역 상으로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228번지 300여평 부지에 있었다.
조도화는 능성신청이 풍수상 좋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말하였다. 능성신청 부지 내에는 건물이 대방 사용 1채, 청지기(신청 지킴이) 사용 1채, 곳집(창고) 사용 1채가 있었다.
능성신청에서 매달 음력 14일과 30일, 매년 정월 대보름, 추석에 제사를 지냈는데 평상복을 입고 절을 하였고 위패에는 대방 아무개, 이런 식으로 이름을 썼다.
신청은 마을의 중요 행사(굿/제사)를 관장했던 곳이자 예인들의 교육이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한일합방이 되자 신청 건물은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그 결과 신청은 문을 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청을 지킨 이는 줄타기의 명수 조떼깔(조때갈·조상엽·조종엽)이었다. 조도화와 친인척간인 조떼깔은 나막신을 즐겨 신었기 때문에 ‘떼깔 떼깔’ 신발소리에서 생긴 별명이었다.
능주 장날(음력 14일)이었다. 맨상투 차림으로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장에 갔던 조떼깔. 그날 일본 순사가 상투를 자르라고 상투를 흔들고 두루마기에 먹물을 뿌려버렸다. 이 수모를 당하고 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조떼깔은 마당에 거적을 깔았다. 물 한그릇을 떠다 놓고 절을 한 다음 가위로 상투를 잘랐다. 잘린 상투를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다. 결국 나라가 망하자 신청에 모셔둔 봉안(역대 신청 어른들의 위폐를 모셔둔 선생안)을 모두 싸들고 영벽정(목사, 이속 양반들이 풍악을 울리며 풍류를 즐기던 능주의 운치있는 정자) 아래 강가로 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울면서 봉안들을 모두 불태웠다. 봉안을 모두 태우고 집에 돌아온 조떼깔은 마당에 거적을 깔고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할 뿐이었다 한다.
그런 조떼깔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것은 열살이 채 안된 그의 아들이었다. 그 조떼깔의 아들은 다름 아닌 전라도 시나위의 마지막 대가로 일컬어지는 피리, 대금, 태평소의 명인 조계남이다.(1998.3.14.15:00~20:00,1998.3.15.09:00~15:30.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187-1 조도화 자택과 그 근처 음식점. 증언:조도화. 국악음반박물관/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 조도화 명인 편. 대담·녹음 촬영·기록:노재명)24>
4. 화순 관련 국악 주요 음반과 문헌, 맺는말
(1) 화순 관련 국악 주요 음반
화순과 관련된 국악인들의 주요 음반은 다음과 같다. 명인, 종목, 음악 내용, 연대를 고려하여 목록으로 정리해 보았다.25> 이 가운데 대표적인 자료 몇가지를 본 논문 발표시 학술 행사 현장에서 공개 감상, 시청하며 설명한다.(주난향 단가 <인호상이>, 성우향 판소리 춘향가 중 <자진 사랑가>, 조도화 피리 굿거리 연주, 능성신청 영상: hearkoreaTV.com & 유튜브로도 확인 가능)
[능주 씻김굿]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카세트테입(MC) 관리번호 MIMC-0977~0980
1990.1.9.전남 화순군 능주면. 박정녀 조도화 일행의 능주 씻김굿<1>~<4>
MBC 소장 자료 복사본(1998.5.7.노재명 DAT→MC→MC 1:1 복사)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비디오테입(VHS) 관리번호 MIVHS-0069
1997.1.14.14:00~14:50.케이블TV 채널 37번 문화예술전문방송 A&C코오롱TV.
1984년 촬영 ‘한국의 미’(KBS 제작) 능주 씻김굿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비디오테입(6mm) 관리번호 MI6V-0202~0209
1998.3.14.15:00~20:00,1998.3.15.09:00~15:30.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187-1 조도화 자택과 그 근처 음식점. 조도화 증언과 음악<1>~<8> 보충 증언:조도화의 처 양분녀. 국악음반박물관/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 조도화 명인 편. 대담·녹음 촬영·기록:노재명.
1.조도화 사진 자료
2.피리 연습 장면
3.단가 편시춘(무반주)
4.판소리 고법 사사 내력
5.판소리 장단과 고수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설명
6.판소리 심청가 중 <봄이 가고>
7.옛 판소리 명창들에 대한 증언
8.구음 굿거리-살풀이
9.구음 굿거리 1~3장, 그 음악에서의 징 반주에 대한 설명
10.피리 굿거리 1~3장<1>
11.피리 시나위(신아위)<1>
12.피리 오관청<1>
13.피리 굿거리 1~3장<2>
14.피리 시나위(신아위)<2>
15.피리 오관청<2>
16.장고 장단의 겹가락과 구음에 대한 설명
17.화순 지역의 당골들에 대한 증언
18.조도화 가족의 무속 혈연관계 증언
19.조도화 집과 그 인근 지역의 모습
20.조도화가 동네 사람들 점 봐주는 장면
21.단가 편시춘(조도화 자신이 직접 장고 반주하며 창한 것)
22.판소리 심청가 중 <봄이 가고>(조도화 자신이 직접 장고 반주하며 창한 것)
23.구음 중중모리-자진모리-굿거리에 대한 설명(조도화 자신이 직접 장고 반주하며 창한 것)
24.장고 장단 중모리에 대한 설명과 중모리 장고 연주 장면
25.능주 씻김굿과 판소리, 민속춤의 반주 장단(장고 연주) 진양조-중중모리(소리 반주)-중모리-중중모리(춤 반주)<1>-자진 굿거리<1>-중중모리(춤 반주)<2>-자진 굿거리<2>-자진모리(춤 반주)<1>-휘모리(춤 반주)<1>-자진 굿거리<3>-자진모리(춤 반주)<2>-휘모리(춤 반주)<2>-자진모리(춤 반주)<3>-휘모리(춤 반주)<3>-엇모리-살풀이<1><2><3>
26.능주 씻김굿의 절차와 특징에 대한 설명
27.일제 때 사라진 능성신청이 있던 자리 현장 답사 장면(조도화 현지 증언)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디지털오디오테입(DAT) 관리번호 MIDAT-0299~0301
1998.3.14.15:00~20:00,1998.3.15.09:00~15:30.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187-1 조도화 자택과 그 근처 음식점. 조도화 증언과 음악<1>~<3> 보충 증언:조도화의 처 양분녀. 국악음반박물관/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 조도화 명인 편. 대담·녹음 촬영·기록:노재명.
[단가, 판소리, 창극]
○ 주난향(주송사) 단가 <호남가>, <명기명창>(고수:한성기, 녹음:1933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832
Taihei 8042-A 短歌 湖南歌 朱蘭香 長鼓韓成基
Taihei 8042-B 短歌 名妓名唱 朱蘭香 長鼓韓成基
○ 주송사(주난향) 단가 <인호상이>, 춘향가 중 <서방님>(고수:강만수, 녹음:1935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0083
Columbia 40639(1 KR331) 短歌 引壺觴而 朱松史 鼓姜萬壽
Columbia 40639(2 KR332) 春香傳 서방님 朱松史 鼓姜萬壽
○ 전일도 판소리 흥보가 중 <유색황금눈>(고수:지동근, 녹음:1935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905
Okeh 1877(K201) 興甫傳 春風暢華 群鳥飛來하는데 全一道 長鼓池東根
○ 전일도 판소리 심청가 중 <중타령>(고수:박종기, 녹음:1935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0325
Taihei C8171-A(K686) 沈淸傳 大佛救生(一名중라령)(上)
太平文藝部補詞 全一道 長鼓朴宗基
Taihei C8171-B(K687) 沈淸傳 大佛救生(一名중라령)(下)
太平文藝部補詞 全一道 長鼓朴宗基
* ‘중라령’은 중타령의 오자이다.
○ 전일도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고수:박종기, 녹음:1935년)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0263
Taihei C8195-A(K713) 興甫傳 박타령(上) 全一道 杖鼓朴宗基
Taihei C8195-B(K714) 興甫傳 박타령(下) 全一道 杖鼓朴宗基
○ 김연수·박록주·정남희·김준섭·김옥련 창극 ‘심청전’(1942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Okeh 20133~20148(16SP)
唱劇 沈淸傳(1~32) 金演洙·朴綠珠·金玉蓮·丁南希·金俊燮 伴奏오케-古樂團
○ 공기남·임소향 일행 창극 춘향전(녹음시기 미상)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2394
FOLKLORE ET MUSIQUES DEL'UNIVERS - MUSIQUE DE COREE
recueillie et enregistree par la Radiodiffusion Nationale de Pyong-Yang
프랑스 BAM 제작 LD-5738(1LP), 녹음·제작 시기 미상. 뒷표지에 프랑스어·영어 해설 글 수록. 정남희 가야금산조, 최옥삼 단소산조, 김관보 서도소리, 조광희 태평소 연주, 안기옥 거문고산조, 공기남·임소향 창극 소리 등 수록.
SIDE B) FAREWELL DUET BY TCHUN-HIANG AND MONG-LION
2.TCHUN-HIANG DJUN(TCHUN-HIANG:SIN Ou-Sun, MONG-LION:GONG Gui-Nam)
3.ATTEMPT OF THE GOVERNOR TO SEDUCE TCHUN-HIANG(창:GONG Gui-Nam)
8.MONG-LION'S RETURN(the servant:RIM So-Hiang, MONG-LION:GONG Gui-Nam)
○ 신유경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1950년대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243
King Star K6188 短歌 쑥대머리 唱申惟京 演奏킹스타-國樂團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성우향 명창 1974년/1980년대 판소리 춘향가 완창 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0150~0152, MICD-3912~3919
성우향 판소리 춘향가 완창(고수:김명환·김득수·이준식)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지구레코드 제작 JCDS-0511/JCDS-0795~0798(5CD 박스물), 1974/1980년대 녹음, 1995년/2007년 제작. 해설서(글·사설 채록:이보형·노재명) 내장.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성우향 명창 1976년 판소리 심청가 완창 공연 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0971~0986
성우향 판소리 심청가 완창 공연(고수:김명환·김동준)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지구레코드 제작 JCDS-0654~0657(4CD 박스물), 1976년 공연, 1998년 제작. 해설서(글·사설 채록:노재명) 내장.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성우향 명창 1977년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 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1307~1310
성우향 흥보가(고수:김명환)
지구레코드 JCDS-0697~0698(2CD 박스물), 1977년 공연, 1998년 12월 제작, 1999년 1월 31일 발매. 노재명 저서 『판소리 명창 성우향』(경기 고양:지구레코드, 1998년) 내장.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성우향 명창 1986년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 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2324~2338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우향 춘향가 완창 공연(고수:김명환)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코웰뮤직/록레코드/KD미디어 제작 COWR-006(5CD 박스물), 1986년 공연 실황, 2002년 제작. 해설서(글·사설 채록:노재명) 내장.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성우향 명창 2000년 판소리 공연 음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1952~1956
명인명창(5) 판소리 3명창 특별공연 실황 - 최승희·성우향·박송희(고수:송원조)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지구레코드 제작 JCDS-0747(1CD), 2000년 공연 실황, 2001년 제작. 해설서(글:노재명) 내장.
○ 국악음반박물관 기획 박송희 명창 단가 음반(2001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2214~2216
인간문화재 박송희 단가(북:박근영)
코웰뮤직 COWR-005(1CD), 2001.11.20.10:50~15:30.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한국음반스튜디오 4층 녹음, 2002년 제작. 기획/음반 해설: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녹음기사:진관섭. 총 59분 23초. 각 단가 녹음 앞에 박송희 곡 설명 육성 수록. 이 음반은 표지 디자인 등이 바뀌어 재발매된 바 있음. 박송희에 대한 글, 수록곡 사설, 박근영 약력 등이 실려있는 총 16쪽짜리 해설서 내장.
1.인생백년(3:09) 2.진국명산(4:15) 3.적벽부(4:52) 4.호남가(5:35) 5.백발가(4:16) 6.편시춘(4:20) 7.여객같은(3:31) 8.한로가(7:13) 9.운담풍경(5:00) 10.강상풍월(4:05) 11.만고강산(4:15) 12.벗님가(2:20) 13.쑥대머리(5:54)
[가야금 산조·병창]
○ 한성기·주난향 가야금병창 남도잡가 <흥타령>(1934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684
Kirin C157-B 南道雜歌 興打鈴 韓成基 朱蘭香 伽倻琴伴奏
○ 가야금산조·가야금병창 독주·창:정달용(정달영, 1960년대 후반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0434
KOREAN FOLK SONG 가야금散調·가야금倂唱 獨奏·唱:鄭達用
新響音盤製作所 LKM-3011 LKM-30009(1LP), 1960년대 후반 녹음 제작. 장고 반주자:성명 미상, 녹음기술 담당:이청. 앞표지에 정달영(=정달용) 사진 수록, 뒷표지에는 수록곡 사설이 실려있음.
SIDE 1) 가야금散調 1.진양조 2.중모리 3.중중모리 4.자진모리 5.휘모리
SIDE 2) 가야금倂唱 1.단가(죽장망혜) 2.심청가 중에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니··· 3.중중모리(심봉사 좋아라고 얼씨구나 절씨구) 4.중모리(황성 올라간다)
○ 오갑순 가야금병창 독집(1960년대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1849
吳甲順 가야금병창 독집 豊年노래
三和레코-드公社 SL-10102(1LP), 1960년대 녹음 제작. 앞표지에 오갑순 사진 수록. 뒷표지에는 이병우 사진(사진 설명 원문:작곡가 이병우), 수록곡 가사가 실려있음. 녹음기술 담당:朴技師.
SIDE 1) 1.豊年노래(376)(반야월 작사, 이병우 작곡) 2.김매기(374)(임일남 작사, 이병우 작곡) 3.독수공방(373)(반야월 작사, 이병우 작곡) 4.이야옹타령(372)(반야월 작사, 이병우 작곡) 5.까투리타령(371) 6.봄노래(370)(임일남 작사, 이병우 작곡) 7.야월삼경(369)(반야월 작사, 이병우 작곡)
SIDE 2) 1.고고천변(367) 2.골패타령(364) 3.백발가(368) 4.사랑가(366) 5.화초타령(365)
[대금산조, 대금시나위, 아쟁산조]
○ 한주환(대금) 방태진(태평소) 시나위, 한주환 대금산조(1950년대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0379
胡笛(太平簫)과 大琴散調 大琴韓周煥 太平簫方泰根
成音製作所 DG가34, SEL-13-34(1LP), 1950년대 릴테입 녹음, 1971년 7월 1일 MONO 제작. 뒷표지에 집필자 미상의 대금·태평소에 대한 설명과 한주환·방태진 약력, 사진 수록. 장고 반주자:성명 미상.
第一面) 胡笛과 大琴 倂奏(신아위)
第二面) 大琴 獨奏(산조)
○ 한일섭 아쟁산조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녹음시기 미상)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0869
21세기를 위한 KBS-FM의 한국의 전통음악 시리즈(24) KBS 소장 희귀작품집
KBS문화사업단 기획, (주)서울음반 제작·발매 SRCD-1278(1CD), 1995년 제작. 심의번호:9504-2751~2757. 녹음시기와 녹음장소는 모두 미상이다. 국문 해설지 1쪽이 들어있으며 집필자는 미상이다. 음반 뒷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트랙이 잘못 기록되어 있다.
2.한일섭 아쟁산조(장고:이정업) 진양조(5:30)-중모리(4:55)-중중모리(3:50)-자진모리(3:40)
* 실제로는 트랙이 다음과 같다.
2.아쟁산조 진양조 3.아쟁산조 중모리 4.아쟁산조 중중모리 5.아쟁산조 자진모리
○ 김동진 대금산조(1978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12인치 장시간음반(LP) 관리번호 MI12LP-0399~0400
伽倻琴散調·大琴散調
가야금:권혁태·정한희, 대금:김동진, 장고 반주자:성명 미상.
新世界레코드社 S민-4034(1LP), 1978년 STEREO 녹음, 1978년 4월 25일 제작. 앞표지에 권혁태(왼쪽)·정한희 가야금 연주 장면 사진, 뒷표지에는 김동진 대금 연주 장면 사진 수록.
SIDE 2) 대금산조 1.진양조(9:20) 2.중모리(4:05) 3.중중모리(4:28) 4.자진모리(3:13)
[민요]
○ 김소희·조명수·김세준·임소향 민요 <성주풀이>, 김소희·조명수·임소향 민요 <농부가>(1936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103
Victor 빅타-大衆盤 KJ-1068(KRE175) 民謠 성주푸리 金素姬·曹明洙·金世俊·林素香 伴奏 杖鼓·奚琴·洞簫·觱篥
Victor 빅타-大衆盤 KJ-1068(KRE176) 民謠 農夫歌 金素姬·曹明洙·林素香 伴奏 매구·洞簫·奚琴·탐부린·小鼓·杖鼓
○ 화순 민요 음반(1993년 제작)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1017, MICD-4293
한국민요대전 전라남도(20) 해남군/화순군/추자도
문화방송 기획·발행 MBCD-030(1CD), 1993년 10월 비매품 한정판 제작.
현지답사·녹음진행:이정란·선영란·최상일·김호경 외.
화순군 2.논매는 소리(1) 세허리나보세(3:08)
3.논매는 소리(2) 방아타령(3:40)
4.논매는 소리(3) 개타령(2:02)
5.풍장소리(꾸름마 훨훨)(1:48)
6.논매는 소리(4) 산아지타령(3:42)
7.논매는 소리(5) 매화타령(4:27)
8.논매는 소리(6) 양산도(3:38)
9.논매는 소리(7) 사거리(4:05)
10.목도소리(0:38)
11.떡타령(1:10)
12.반데기타령(1:26)
13.상여소리(11:48)
[농악]
○ 한천농악 1998년 공연 실황 동영상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VHS 비디오테입 관리번호 MIVHS-0498(방송 수신 녹화:노재명)
1999.1.11.12:00~13:30.A&C코오롱TV(예술·영화TV).라이브 국악
전남 화순군 한천농악(1998.6.28.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국정원 공연 실황)
[거문고 정악·산조 독주]
○ 임석윤 거문고 독주(1973년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1296~1300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자료 시리즈(4) 임석윤 거문고 독주
국립문화재연구소 기획·제작, (주)서울음반 제조 KICP-009~013(5CD 비매품 한정판), 1973년 5월 녹음, 1998년 12월 23일 제작, 1998년 12월 28일 발행. 행정간행물 등록번호:28810-86864-57-9821, 기획·진행:박상국·임장혁·이동영, 국문 해설:송혜진, CD 디렉터:양정환, CD 디자이너:이달우, 국·영문 해설지(총 14쪽) 내장. 앞·뒷표지에 임석윤 사진 수록.
[CD 1(49:07)] 임석윤 거문고 독주 1~9.평조회상 상령산~군악
[CD 2(46:17)] 임석윤 거문고 독주 1~2.여민락 1~2장
[CD 3(58:12)] 임석윤 거문고 독주 1~5.여민락 3~7장 6.윗도드리 7.밑도드리 8.취타
[CD 4(49:41)] 임석윤 거문고 독주 1~7.가곡(계면조) 초수대엽~태평가
[CD 5(42:22)] 임석윤 거문고 독주 천년만세 1.계면가락도드리 2.양청도드리 3.우조가락도드리
임석윤(거문고) 장덕화(장고) 백락준류 거문고산조 4.진양조(13:46) 5.중모리(11:03) 6.엇모리(2:59) 7.자진모리(5:31)
(2) 화순 관련 국악 주요 문헌
국악음반박물관이 그간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는 화순과 관련된 국악 주요 신문 기록은 다음과 같다.
○ 1928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 “兩學院 同情 - 音樂會 盛况”
1928년 6월 6일 능주 청년회관 강당에서 열린 조명수 명인 가야금병창, 판소리 명창 조경환 적벽가 등의 공연 보도 신문기사.
당시 조명수, 조경환과 함께 공연한 판소리 명창 김석주도 화순(능주)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 1962년 4월 5일자 『동아일보』 “名唱名人(5) 가야금 成錦鳶”
성금연이 소녀 시절에 능주 명인 조명수 문하에서 가야금산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 1925년 6월 2일자 『동아일보』 “饑饉 救濟 演奏”
1925년 5월 29~30일 광주 기근 구제 연주회 출연자 한성태·전일도·안영윤·안기옥·안학희·조연화 등의 국악인 보도 기사.
○ 1929년 10월 18일자 『동아일보』
정남희·공창식 가야금병창 단가 라디오 방송 기록.
○ 1934년 3월 4일자 『동아일보』
주난향 판소리(고수:지용구) 라디오 방송 기록.
○ 1924년 11월 27일자 『동아일보』 "饑饉 救濟 音樂 盛况裡에 終了"
1924년 11월 21일 마산에서 열린 한수동 가야금 공연 보도 기사.
○ 1931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南鐵沿線 一百마일(8)"
'능주라면 아리랑의 주인공이든 여배우가 살림 들어간 곳인 것이 얼른 머리에 떠돈다', '구례는 조선의 명창 송만갑이 생긴 곳으로 전라도 육자백이 한마디 못하는 이가 없다는 명창의 고을'이라는 기록이 있다.
○ 1965년 6월 8일자 『동아일보』 "名唱과 修練"
공창식 명창이 화순 운주사에서 판소리를 수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 1961년 9월 29일자 『동아일보』 "장고의 神童 登場"
1961년 9월 28일 서울 덕수궁 중화전 앞 뜰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오갑순이 농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8세 오갑순의 장고는 장래가 촉망되는 열연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장고의 신동 8세 김덕수의 설장고에 관객들의 흥분과 갈채가 집중되었고 그 부친 김문학(54세)과 가락을 맞췄다고 한다.
화순 출신 명창의 판소리, 능주 무악, 화순 민요에 대한 연구 자료집 문헌으로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 강동원 편저 『화순 무가 사설집 - 굿소리』 서적(전라남도 광주:민출판사, 1992년)
○ 강동원 편저 『화순의 민요』 서적(전라남도 광주:도서출판 민, 1993년)
○ 박흥주, “능주 사람들”(1995.12.28.16:00~22:00.서울시 대학로 두레극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무산된 조도화 일행의 능주 망자혼사굿 공연용 4쪽짜리 해설 인쇄물) 2~3쪽.
○ 박흥주, “전라도 굿 - 능주의 혼인맞이굿”(1995.12.28.16:00~22:00.서울시 대학로 두레극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무산된 조도화 일행의 능주 망자혼사굿 공연용 14쪽짜리 해설 인쇄물) 10~12쪽.
○ 노재명, “능주 씻김굿 명인 조도화”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국악 현장 조사보고서(2000년 5월 18일 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조도화 명인 대담 정리 글 소개).
○ 노재명 편저 『국보 인간문화재 성우향 판소리 인생 80년사 - 판소리에 팔린 판례(소녀 판례가 판소리 명창 성우향이 되기까지)』(서울:국악음반박물관, 2011년) 구술:성우향, 대담·편저:노재명. 1994년 3월 7일~2011년 2월 4일 17년간 69번의 대담 내용 수록.
(3) 맺는말
앞서 소개한 화순 명인명창 대담자료 가운데 성우향 명창의 경우 가문의 국악인들에 대해서 처음에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몇 년간 교류하면서 가족 같이 친숙해진 후 1998년 취중에 언급하여 그 화순의 국악 명가문 혈연 관계가 비로소 처음으로 상세히 밝혀지게 되었다.
판소리 명창 주난향과 주송사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본 논문에 처음으로 밝혔다. 이는 두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다음과 같은 흑백사진들이 동일한 사람인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주난향으로 기록된 사진.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주송사로 기록된 사진.
주난향(주송사) 명창과 고종 사촌 여동생 성우향 명창의 판소리를 비교해 보면 성음이 서로 많이 닮았다. 이 명창들의 목소리가 화순 태생의 대표적인 여성 판소리 성음이라 할 수 있다.
화순이 여타 고장에 비해 많은 국악 명인 명창들이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업적과 가치를 조명하고 기리는 예술계, 민간, 지자체, 학계의 작업이 아직 미흡하다. 능성신청과 국악 명인 생가 복원, 국악 박물관·공연장 조성이 과거 국악 성지였던 점에 견주어 많이 부족하다.
화순 고향에 묻히고 싶어했던 판소리 인간문화재 명창이 최근 별세 후 타지역에 잠들었다. 아직도 본인이 화순 국악 명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는 명인들이 있고 대외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꺼리는 명인들이 있다.
6.25 직후 월북한 국악인들 상당수가 화순 출신과 관련이 있고 전통음악인에 대한 사회의 냉대 분위기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국악 성지 화순에서 앞으로 국악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발전, 역대 명인 명창들에 대한 회고와 업적 재조명 작업이 활성화 되길 기원한다.
2001년 가정에 은거 중인 송만갑 명창의 수제자를 수소문하여 찾아간 적이 있다. 송만갑 별세 직후 언론 보도에 송만갑의 일급 제자로서 맥을 이을 대들보로 소개된 바 있는 명창이다. 그런데 판소리를 그만두고 국악계를 떠나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온 그 명창에게 인터뷰 후에 소리 한 곡을 청하였는데 딱 진국명산 네 글자 기억난다고 하였다.
과거 엄청난 소리 공력을 지녔었다 하더라도 며칠, 몇 개월, 몇 년, 몇 십년 놓아 두고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리면 그리 될 수가 있다. 국악의 중심지였던 화순! 그 아름답고 소중한 가무악을 보다 관심 갖고 되찾고 아끼고 더욱 발전시켰으면 참으로 좋겠다.
---------------------------------------------------------------------------------------------------------------------
1> 1925년 8월 29일/9월 4일자 『동아일보』, 1984년 2월 7일자 『매일경제』
2> 1925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和順音樂 盛况裡에 終了”
3> 2011.6.25.19:30~21:0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아쟁산조 명인 박종선 편(진행:노재명) 방송의 박종선 증언 내용.
4> 노재명, “판소리 명고수 김동준”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 해설서』(지구레코드 JCDS-0575∼0577, 3CD, 1968년 녹음, 1997년 제작) 22쪽.
5> 노재명, “대금 명인 김동표 증언” 『'산조 모음(거문고:한갑득 가야금:김죽파 대금:서용석 장고:김동준)' DVD음반 해설서』(지구레코드 제작, SKC 제조 JMDVD-002, 1DVD, 1986년 녹음 촬영, 2004년 1월 제작, 2004년 9월 말 발매) 17~18쪽.
6> 노재명, “판소리 명창 김영자” 판소리 자료 집성 전문지 『판소리 명창(제3호)』(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12년 10월) 132~135쪽. 2002.10, 2010.10.5.10:00~11:00.김영자·노재명 대담 내용.
7> 노재명, “판소리 명창 박송희” 『‘인간문화재 박송희 단가’ 음반 해설서』(코웰뮤직 COWR-005, 1CD, 2001년 녹음, 2002년 제작. 기획:노재명) 2~10쪽.
8> 노재명, “가야금 명인 강태홍” 『봉장취 연구와 복원 재현 연주회』 서적(서울:동북아음악연구소, 2009년 11월 발행) 25쪽.
9> 2011.6.18.19:30~21:0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전통춤 명인 이매방 편(진행:노재명) 방송의 이매방 증언 내용.
10> 2012.2.12.18:00~19:3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 명창 홍정택 편(진행:노재명) 방송의 홍정택 증언 내용.
11> 노재명, “아쟁·고법·작곡·태평소 명인 한일섭”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 해설서』(지구레코드 JCDS-0575∼0577, 3CD, 1968년 녹음, 1997년 제작) 21쪽.
12> 노재명, “판소리 명창 한승호 증언” 『'산조 모음(거문고:한갑득 가야금:김죽파 대금:서용석 장고:김동준)' DVD음반 해설서』(지구레코드 제작, SKC 제조 JMDVD-002, 1DVD, 1986년 녹음 촬영, 2004년 1월 제작, 2004년 9월 말 발매) 1~2쪽.
13> 2013.4.18.14:00~16:30.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현대슈퍼빌 로비에서 가야금산조 인간문화재 문재숙·노재명 대담 내용. 2011.3.30.13:30~16:30.국악방송 스튜디오 노재명 진행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편 방송 녹음, 2013.8.12.12:00~15:30.서울시 중구 정동 음식점과 노재명 차안에서 황병기 증언 내용.
14> 노재명, “판소리 명창 남해성” 판소리 자료 집성 전문지 『판소리 명창(제2호)』(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10년 12월) 102~105쪽. 2006.3.31.11:30~12:30.남해성·노재명 대담 내용.
15> 2012.8.26.18:00~19:3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판소리 명창 조상현 편(진행:노재명) 방송의 조상현 증언 내용.
16> 노재명, “월북 국악인 음반·사진·문헌·관련 증언자료” 『월북 국악인 연구』 서적(서울:국립국악원, 2013년, 부록 CD음반 내장,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음원·사진자료·글 제공, 부록 CD음반 해설·사설 채록:노재명) 331~410쪽.
17> 노재명 대담·정리, “박송희 증언” 『‘판소리 3명창(최승희·성우향·박송희) 2000년 특별공연 실황’ 음반 해설서』(국악음반박물관/지구레코드 JCDS-0747, 1CD, 2001년 제작) 29~37쪽.
18> 노재명 편저 『국보 인간문화재 성우향 판소리 인생 80년사 - 판소리에 팔린 판례(소녀 판례가 판소리 명창 성우향이 되기까지)』(서울:국악음반박물관, 2011년) 구술:성우향, 대담·편저:노재명. 1994년 3월 7일~2011년 2월 4일 17년간 69번의 대담 내용 수록.
19> 2012.6.28.13:00~18:00.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국악방송 스튜디오에서 노재명이 성창순 명창을 인터뷰하고 2012.7.22.18:00~19:3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진행:노재명)에 방송된 내용 중에서 발췌.
20> 노재명, “판소리 명창 장영찬”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 해설서』(지구레코드 JCDS-0575∼0577, 3CD, 1968년 녹음, 1997년 제작) 17~19쪽 판소리·전통춤 명인 성희경 증언 내용.
21>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비디오테입(6mm) 관리번호 MI6V-0372. 2002.11.14.12:50~15:00.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박송희 판소리 전수소, 인사동 음식점. 신유경 증언 내용, 대담·녹음 촬영·기록:노재명)
22> 노재명, “능주 씻김굿 명인 조도화”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국악 현장 조사보고서(2000년 5월 18일 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조도화 명인 대담 정리 글 소개).
23> 노재명, “조순애 명인의 생애와 예술” 『‘조순애의 국악세계’ 음반 해설서』(노재명 연출·섭외, CKJCD-002, 1CD, 고수:장송학, 음반 해설·사설 채록:이보형·노재명, 1998년 녹음, 1999년 지구레코드 제조) 6~13쪽.
24> 노재명, “능주 씻김굿 명인 조도화”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 명창 발굴 프로젝트-국악 현장 조사보고서(2000년 5월 18일 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조도화 명인 대담 정리 글 소개).
25> 노재명 저서 『판소리 음반 사전』(서울:이즈뮤직, 2000년)
노재명 저서 『가야금병창·거문고병창 음반 사전』(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00년)
노재명 저서 『한국민속기악 음반 사전』(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01년)
노재명 저서 『정악 음반 사전』(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02년)
노재명 저서 『한국민요 음반 사전』(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03년)
노재명 저서 『한국 종교·민속놀이·연극·춤·풍물 음반 사전』(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2004년)
|
|
2014-06-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