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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한국답게 해준 두 거장, 성우향·묵계월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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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월간 문화재 2014년 6월호』(서울:한국문화재보호재단) 12~14쪽 기획 특집-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추모 편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한국을 한국답게 해준 두 거장
지난 5월 별세한 무형문화재 성우향·묵계월 명창
글·사진 제공/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금년 5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성우향 명창이 별세하였다. 다음날 2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묵계월 명창이 타계하였다.
국악이 이 땅의 음악이면서도 이 땅에서 외면받고 천대받던 시절부터 작고할 때까지 일평생 온몸을 바쳐 국악을 지켜온 국악계 대명사, 특급 국민가수 ‘국창’(國唱)들이다.
민족문화가 짓밟힌 일제시대, 총칼과 굶주림으로 고통받은 6.25 전쟁 등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도 국악을 놓지 않은 두 거장! 1세기 가까이 한국을 한국답게 해준 명창들이다.
한국인이 갓 쓰고 한복 입고 한국어로 부르는 명창의 소리보다도 한국인이 노란 가발 쓰고 양복 입고 낯선 외국어로 부르는 테너의 노래에 더 익숙한 사회 풍토 속에서 여기는 한국 땅이라는 문화 인식을 각성하게 해준 분들이다.
경제고 속에서도 집에 토굴을 파고 소리를 끊임없이 연마한 판소리 대가 성우향
성우향(본명:성판례) 명창은 국악 명가문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국악 스승이자 큰아버지인 성차옥은 판소리 명고수이자 정가, 피리 명인이고 그 아들 성구봉은 판소리 명창이다.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계향은 판소리와 가야금 명인이며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금향은 판소리 명창이고 성우향 명창의 고종 사촌 언니 주난향도 판소리 명창이다. 성우향 명창의 판소리 스승 정응민과 성우향 명창의 할머니는 10촌 사이가 된다.
성우향 명창은 1933년(호적:1935년) 전남 화순군 화순면 교리 118번지에서 태어났는데 화순은 국악 명인명창이 많이 탄생한 곳이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국악이 대중음악이었다.
사실상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국악을 듣고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우향 명창은 가문과 고향의 분위기가 국악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었고 음악 소질을 타고났으며 동네에서 국악을 동요처럼 따라 부르며 자랐고 아홉 살 때부터 판소리, 가곡, 시조를 정식으로 학습하였다.
이러한 음악 영재의 탄생과 조기 교육 환경은 오늘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매우 비옥한 터전이었다고 하겠다.
성우향 명창은 성차옥, 안기선, 김막동, 조상선, 정광수, 염금달, 강도근, 한애순, 정응민, 박초월, 박록주, 김여란, 김숙자, 성금연, 김명환 등에게 판소리, 남도민요, 정가, 가야금, 전통춤을 사사했다.
성우향 명창은 여러 국악 학습 중에서도 정응민 문하에서 익힌 보성소리를 가장 특기로 하였으며 그 가운데 춘향가로서 2002년에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보성소리라 함은 명창 정응민이 젊은 시절 여러 대가들한테 물려받은 고형의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평생을 연마하여 이루어낸 소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를 보성소리라 하는 것은 정응민이 일찍이 중앙무대 활동을 중단하고 전남 보성에 은거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이다.
정응민 명창의 제자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도 수제자를 꼽자면 단연 성우향이 으뜸이라 할 것이다.
성우향 명창은 판소리를 배우고 득음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중년에 경제고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도 했는데 경제고 속에서도 집에 토굴을 파고 소리를 끊임없이 연마했다. 판소리만은 놓지 않았고 가장 고생하던 1970년대에 가장 의욕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판소리 완창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수많은 음반을 취입했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으며 그 분주한 상황에서 길러낸 제자가 500명이 훨씬 넘는다.
성우향 명창의 보성소리는 전통사회 왕에게 벼슬을 받은 어전광대들의 기품있는 판소리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적 구성이 치밀하고 사설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아니리가 깔끔하다. 다양하게 가사를 놓아가는 붙임새,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 완자걸이 등의 기묘한 장단붙임이 쓰인다. 혀자침, 세우목, 아구성 등의 성음이 자주 사용된다든지, 옛날식 고제에서 쓰였던 빠른 장단인 세마치, 빠른 중모리,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가 자주 쓰인다든지, 소리를 구기지 않고 반듯이 펴서 통성의 덜미소리로 들고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청아하면서도 우렁차고 기세등등한 고음으로 온몸을 진동시켜 거침없이 뽑아내는 발성은 성우향 명창의 독보이다.
구성지고 천진한 성음, 공들여 닦은 소리, 근현대 경기민요의 간판스타 명창 묵계월
묵계월(본명:이경옥) 명창은 1921년 서울시 중구 을지로6가(현재의 광희동2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리에 흥미가 있어 9세 무렵 명창들에게 다니며 귀동냥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동네 주민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대견하게 여겨 이웃의 묵씨 가문에 건의하여 소리꾼 육성 뒷바라지를 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묵씨 집안의 수양딸로 들어가게 되었다.
묵계월은 다섯 자매 중 넷째였고 친부는 매듭장 일을 하였는데 국악하는 것을 친부가 반대하였으나 주위에서 수차례 설득하고 권유하여 소리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하게 되었다. 친부는 묵계월이 19세 때 64세로, 친모는 묵계월이 25세 때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묵계월이 10살 무렵 이광식한테 소리를 배우러 다닐 때 양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깨워 소리 공부를 하도록 보내며 정성을 다 했고 묵계월이 이광식에게 소리를 배운지 1년 지나 양모가 장고를 사 주었다. 묵계월이 수양딸로 들어간 묵씨 집안의 10살 많은 언니가 경기민요 소리꾼이라 묵계월은 이 언니의 음악 영향도 받았다.
묵계월 명창은 이광식에게 여창·남창 지름 시조, 12잡가를 익혔고 조선권번에서 주수봉에게 여창·남창 지름 시조와 12잡가, 김윤태에게 서도소리, 이문원에게 송서 <삼설기>, 최정식에게 경기소리, 한성준에게 무용 <승무>를 사사했다.
묵계월 명창이 첫 스승 이광식 문하에서 수업받을 때 맨처음 시조를 배웠고 장고 잡고 치는 법을 익혔는데 서양 노래 학습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1달 후 시조 첫마디 약간 흉내낼 정도였으나 시조 1곡을 깨우치니 지름시조의 원리도 깨닫게 되어 재미를 붙여 스승의 귀여움을 받았다. 6개월간 시조를 모두 익히고 잡가 공부에 들어갔으며 총 1년 반 정도 이광식에게 전통성악 기법 위주로 학습했는데 묵계월은 빠르게 배운 편이다.
묵계월 명창이 조선권번에서 학습할 당시 오전에 경기소리, 오후에 서도소리 강의가 있었고 권번에서 맨처음 가르쳐 준 것은 인사성, 예의범절, 말씨였다. 조선권번 출신 ‘보배’라는 50여세 된 잡가 명창이 소문을 듣고 13~14세의 묵계월 집을 찾아와 소리해 보라고 한 후 일부 소리를 고쳐 주며 유망한 소리꾼이 될 거라고 격려한 바 있다.
1937년 11월 8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묵계월 명창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서울 긴 잡가 <소춘향가>(小春香歌) 등을 부른 기록이 있다. 이미 1930년대, 10대 나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묵계월 명창은 1930년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80여년 동안 현역으로 방송, 공연, 음반 취입, 후진 양성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1975년 안비취, 이은주 명창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묵계월, 안비취, 이은주, 그리고 김옥심 명창은 경기민요 대가 이진홍 명창의 뒤를 이어 경기소리의 간판스타로 큰 활약을 하였다.
묵계월 명창은 구성지고 천진한 성음, 공들여 닦은 공력, 엄격한 자기 관리, 해맑은 미소, 천부적인 음악성으로 인기를 모았다.
근래에 별세한 묵계월, 성우향, 이은관 명창 등 건강하게 활동하다 떠난 명창들의 생전 얼굴을 떠올리면 어린 아이 같은 맑은 웃음, 늘 긍정적인 표정의 미소가 생각난다. 이 점이 바로 명창 본인들에게는 건강, 장수 비결이었을 것이며 본인들의 공연에 운집한 모든 관객들한테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 보여진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 갖게 되는 직업을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최상의 결실을 이루어내고 본인뿐 아니라 한 민족, 더 나아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이들의 감성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었던 것. 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답고 값진 삶인가. 삼가 두 고인의 명복을 빌며 두 명창의 소리가 잘 전승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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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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