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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동의 시기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판소리만은 놓치 않았던 보성소리 대가, 성우향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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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제19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춘전 성우향 수상 편』 책자(서울:조선일보사, 2012년 11월 26일 오후 5시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7층 글로리아홀 시상 행사 인쇄물) 36~39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촬영:노재명.
2012년 11월 2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7층 글로리아홀에서 열린 방일영국악상 시상식 모습.
행사 당일 고열로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입원하신 성우향 명창을 대신하여 아드님 진성환 님이 대리 수상하셨습니다. 쾌유를 기원합니다.
격동의 시기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판소리만은 놓치 않았던 보성소리 대가, 성우향 명창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판소리 명창 성우향』 저자)
성우향 명창은 국악 명가문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국악 스승이자 큰아버지인 성차옥은 판소리 명고수이자 정가, 피리 명인이고 그 아들 성구봉은 판소리 명창이다.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계향은 판소리와 가야금 명인이며 성우향 명창의 사촌 언니 성금향은 판소리 명창이고 성우향 명창의 고종 사촌 언니 주난향도 판소리 명창이다. 성우향 명창의 판소리 스승 정응민과 성우향 명창의 할머니는 10촌 사이가 된다.
성우향 명창은 1933년(호적:1935년) 전남 화순군 화순면 교리 118번지에서 태어났는데 화순은 국악 명인명창이 많이 탄생한 곳이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국악이 대중음악이었다.
사실상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국악을 듣고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우향 명창은 가문과 고향의 분위기가 국악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었고 음악 소질을 타고났으며 동네에서 국악을 동요처럼 따라 부르며 자랐고 아홉 살 때부터 판소리, 가곡, 시조를 정식으로 학습하였다.
이러한 음악 영재의 탄생과 조기 교육 환경은 오늘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매우 비옥한 터전이었다고 하겠다.
성우향 명창은 성차옥, 안기선, 김막동, 조상선, 정광수, 염금달, 강도근, 한애순, 정응민, 박초월, 박록주, 김여란, 김숙자, 성금연, 김명환 등에게 판소리, 남도민요, 정가, 가야금, 전통춤을 사사했다.
성우향 명창은 여러 국악 학습 중에서도 정응민 문하에서 익힌 보성소리를 가장 특기로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춘향가로서 2002년에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보성소리라 함은 명창 정응민이 젊은 시절 여러 대가들한테 물려받은 고형의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평생을 연마하여 이루어낸 소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를 보성소리라 하는 것은 정응민이 일찍이 중앙무대 활동을 중단하고 전남 보성에 은거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이다.
정응민은 큰아버지인 정재근에게 박유전제 심청가・적벽가・수궁가 등을, 김찬업에게 김세종제 춘향가 등을 배웠다. 그리고 이동백과 송만갑에게도 소리를 배웠다. 이런 소리 내력을 가진 정응민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소리를 자신에게 맞게 고치고 집대성하여 보성소리를 탄생케 했다.
정응민 명창의 제자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도 수제자를 꼽자면 단연 성우향이 으뜸이라 할 것이다.
1942년 성우향 명창은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판소리 명창 조상선, 임소향, 한일섭, 박후성 등과 함께 전국 순회 공연을 하였다. 그 때 성우향 명창은 조상선, 임소향의 수양딸이었는데 두 명인한테 매도 맞고 많이 혼났다고 한다.
성우향 명창은 판소리를 배우고 득음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중년에 경제고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도 판소리만은 놓지 않았고 가장 고생하던 1970년대에 가장 의욕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판소리 완창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수많은 음반을 취입했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으며 그 분주한 상황에서 길러낸 제자가 500명이 훨씬 넘는다.
득음의 단계에 이르고 귀명창들의 진심어린 추임새를 듣기까지 보낸 세월은 참으로 고독한 시간이었다고 성우향 명창은 회고한다.
1953~1957년 성우향 명창은 전남 보성군 영천면 회천리 정응민 문하에서 흥보가를 제외한 판소리 네 바탕을 배웠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성우향 명창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초에 정응민을 다시 찾아가서 춘향가와 심청가를 복습하였다.
성우향 명창이 처음 정응민을 찾아 갔을 때 정응민은 “서울 가서 신식 소리 배우시오”라고 하며 거절하였다. 그래도 성우향 명창은 정응민 집에서 홀로 끈질기게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응민이 “소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라고 말하며 “이리 오너라” 하고 성우향을 제자로 받아 주었다.
성우향 명창은 정응민한테 판소리를 배우러 들어가기 전에 미리 사설과 장단을 단단히 외우고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정응민으로부터 소리를 받는 학습이 끝나면 그 집 뒤에 있는 대나무숲으로 가서 반복하여 연습했다.
정응민은 성우향에게 춘향가를 가르칠 때 이렇게 말했다. “이 소리는 조선 8명창의 한분인 대명창 김세종 선생님 제이다. 동편제 소리로, 통성으로 우조를 주로 쓰니 단단히 각오하여라” 했다 한다. 정응민은 작고하기 전에 성우향에게 유언을 남겼다.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 것 그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정응민의 말에도 나타나 있듯이 보성소리는 정응민 당대에는 대중적인 소리라기 보다는 아주 오랜 기간 극도로 귀가 잘 훈련된 극히 일부 귀명창들의 취향에 적합한 명품 소리, 귀족적인 방안소리였다. 만일 정응민이 최고 수준에 이른 그러한 어전 소리를 꼿꼿한 정신력으로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린 그런 소리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성소리는 음악적 구성이 치밀하다. 그리고 사설이 매우 잘 다듬어져 있어서 아니리가 깔끔하다. 정응민은 목이 궂었으므로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보성소리는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 완자걸이 등의 기묘한 장단붙임이 쓰인다. 또한 혀자침, 세우목, 아구성 등의 성음이 자주 사용된다든지, 고제에서 쓰였던 빠른 장단인 세마치, 빠른 중모리,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가 자주 쓰인다든지, 통성의 덜미소리로 소리를 들고 나가는 것 등이 보성소리의 특징이다.
정응민제 보성소리는 가사가 간략하면서도 점잖고 음양 조화가 재밌고 그래서 질리지 않고 목이 다양하고 이면에 잘 맞는다고 성우향 명창은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성우향 명창은 숙명처럼 판소리에 뛰어 들어서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데 후회한 적은 없다고 한다. 높은 예술성과 세상 살아가는 진리가 담긴 판소리를 만난 것은 본인에게 후회스러운 일이라기 보다 다행한 일로 생각된다고 한다. 그리고 판소리라는 멋진 예술을 가꾸고 지켜 나가는 일이 매우 행복하고 보람있다 한다.
성우향 명창은 노년에도 틈만 나면 산속에 들어가서 백일 공부를 했다. 지금도 소리 공부가 가장 재밌고 본인한테 가장 잘 맞는 취미 생활이라 한다.
어떤 매력에 이끌려서 판소리에 몰두하였을까? 성우향 명창은 늘 좋은 목이 나오면 아마 재미가 없을 것이라 한다. 목이 풀렸다 잠겼다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신명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성우향 명창은 기쁨을 찾는다. 몸이 붓고 말을 전혀 못할 정도로 수련을 하면 고통스럽지만 좌절을 이겨내고 갈망했던 소리를 얻으면(득음) 그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득음을 하고 나면 소리를 할 때 엄청나게 우렁찬 소리가 나와서 온몸이 진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성우향 명창은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성우향 명창은 판소리에 매진하면 할수록 뛰어난 예술성에 반하고 이렇게 멋진 예술이 혹시 없어지거나 쇠퇴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성우향 명창은 평생 탐구한 판소리를 제자들에게 다 주고 가는 것이 소원이다. 판소리 전문학교를 만들어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곳에서 후학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 한다.
성우향 명창은 지금도 산에 들어가서 백일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하루 종일 목이 다 쉬도록 소리를 해야만 잠이 편히 오는 체질이라고 말한다. ‘팔십 평생 판소리에 모든 정신이 팔린 판례’(성우향 명창의 본명)였다고 한다.
녹음이 남아있는 역대 여류 명창 가운데 성우향 명창 만큼 남성을 능가하는 웅장하고 큰 판소리를 구사한 이는 극히 드물다. 녹음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일제시대에 활동한 웬만한 여류 명창들보다 성우향 명창의 소리 기량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앵긴 성우향 명창의 보성소리는 판소리를 업으로 하는 명창들에게 조차 경이로움을 넘어서 때론 낯설게 받아 들여지기도 한다.
성우향 명창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4년 춘향가, 1976년 심청가 공연 실황 녹음은 보성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특히 고음 통성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곳곳에서 뿜어내는 멋들어진 아구성은 암수의 조화랄까, 건조함에 윤기를 주듯, 고기 반찬에 잘 익은 동치미 같은 시원하고 아주 후련한 맛을 준다. 꼭 들어가야만 하는 성음이다. 바로 이러한 아구성과 같은 고제 창법이 보성소리의 핵심 요소이고 진정한 멋이라 할 수 있다.
성우향 명창의 인자한 성품은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올해 팔순을 맞은 성우향 명창의 이번 방일영 국악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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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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