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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무지고 당차고 따뜻한 여장부, 판소리 명창 차복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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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월간 미르 2012년 6월호 통권 269호](서울:국립극장) 32~33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 차복순의 동초제 수궁가
야무지고 당차고 따뜻한 여장부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2012년 6월 30일 오후 3시 국립극장에서 차복순 명창의 판소리 수궁가 완창 공연이 열린다.
2000년 심청가 완창, 2005년 흥보가 완창 발표회에 이어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완창 공연이다. 그의 판소리 일생을 통틀어 두고두고 회고될 중요한 시점의 발표회라 생각된다.
평소 공연 활동을 왕성하게 해온 젊은 명창이지만 공식적인 완창은 7년만이다. 이제 그의 나이 38살이 됐다. 20대 때 소리판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귀명창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의 무르익은 30대 후반 소리를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 되리라 기대된다.
김연수-오정숙-이일주-차복순으로 이어지는 동초제 수궁가
수궁가는 병든 용왕을 살리기 위해 수궁의 자라가 세상 밖으로 나가 약이 되는 토끼를 유인해 오고 토끼가 용왕을 속여 수궁에서 살아 나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살기 위해 서로 속이고 속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들 세상살이를 풍자하는 판소리라 하겠다. 판소리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내용은 소외계층의 열악한 삶, 인간세계 어두운 단면이다. 지배계층이 억누르고 외면하는 것을 그 옛날에는 마이크, 스피커가 없었으니 산에서 목소리를 연마해 증폭시켜서 통성으로 목놓아 소리쳤다.
춘향가로 권력자의 부정부패, 심청가로 시각 장애 어려움과 인신 매매 문제, 적벽가로 전쟁의 희생양 민중, 흥보가로 매값 금전 거래와 서민 가난의 심각성을 알렸다. 수궁가는 속여서 빼앗으려는 신체 장기, 파란만장한 여러 인생사를 노래한다.
토끼가 평소에 포수한테 쫓기고 맹수한테 쫓기다가, 자라의 유혹에 속아서 수궁에 들어가고, 수궁에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고, 세상에 다시 나와서 사람의 덫에 걸려 죽을 뻔하고, 독수리 밥이 될 뻔하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날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토끼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살이 희노애락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 공연되는 수궁가는 김연수-오정숙-이일주-차복순으로 이어진 동초제 판소리이다. 동초제는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년) 명창이 여러 스승들 문하에서 익힌 소리를 다듬어 확립한 소리제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명칭이다. 김연수 명창은 이 수궁가를 대부분 동편제 대가 유성준한테 배웠다. 따라서 이 수궁가의 근본은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유성준으로 전승된 소리라 하겠다.
김연수는 매사에 철두철미했고 확실한 사설, 확실한 발음을 추구했고 자신만의 확실한 창본을 정리했다. 김연수는 자유분방했던 옛 판소리를 근대 청중의 취향에 맞게 정형화 시켰다. 그리고 정형화 된 소리제를 갈고 닦아 거의 실수없이 확실하게 대중에게 감동을 전달하였다.
김연수는 제자 복이 많았다. 수제자 오정숙이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 판소리를 스승 이상으로 거의 완벽하게 전승하여 전국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오정숙의 수제자 이일주 명창 역시 엄청난 노력으로 스승을 능가할 정도의 기량을 쌓았고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오늘날 활동하는 젊은 소리꾼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 상당수가 이일주 명창의 제자이고 이 동초제 계보는 현재 판소리계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놀라운 점은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가 오정숙, 이일주 명창을 거치면서 음악적으로 더욱 풍성해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승인 김연수 명창의 목구성을 뛰어넘은 오정숙, 그리고 이일주는 스승 오정숙의 발발성 단점을 보완하고 자신의 가문 이날치 명창의 서편제와 부친인 이기중 명창의 중고제 성음을 가미하여 동초제를 한층 발전시켰다.
힘 있고 청아한 성음, 타고난 음악성, 집념의 소리꾼 차복순
이일주 명창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수제자만 하더라도 수 십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차복순은 일급 제자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에서 태어났다. 남원여자고등학교,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대학원 한국어문학과에서 스승인 이일주 명창의 생애와 예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 장원(문화관광부 장관상), 같은 해에 국창임방울국악제 명창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 최연소 수상자로 국악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각종 판소리 공연, 강의 면에서도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차복순은 이일주 문하에서 동초제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를 사사했고 이성근에게 박동실제 열사가, 전인삼한테 강산제 춘향가를 학습했다. 현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 (사)동초제보존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남대학교와 전주우석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차복순의 꿈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좋은 소리를 하고 판소리대학을 설립하여 먹고 사는 걱정 없이 고제 판소리를 연구하고 여럿이 함께 즐겁게 공연 다니는 것이라 한다.
차복순 판소리의 매력은 우선 힘 있고 청아한 성음, 타고난 음악성, 끊임 없는 노력에 의해서 구축되었다고 하겠다. 그가 이일주 명창의 대표적인 문하생인 송재영, 장문희 같은 쟁쟁한 선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 행복이자 평생 부담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자가 있기에 긍정적인 긴장감, 노력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리라 생각된다.
또한 천부적인 음악가 근성, 부지런함, 끈기, 욕심, 고집, 순수함,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넘치는 인정, 안주하지 않는 학습 의욕, 예술에 대한 마르지 않는 처절한 고민들이 오늘 그녀의 모습 상태로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본다.
특히 이번에 공연될 수궁가는 차복순 특유의 재기발랄함, 귀염성, 화사함, 섬세함, 순진한 구석을 두루 느껴볼 수 있는 판소리가 되리라 본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겨울 땔감으로 솔방울 주우러 다니고 맨발로 맨땅을 뛰어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가슴에 품고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녹수청산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 자연 풍경을 선천적으로 해맑은 그녀가 동화책 읽어 주듯이 꾸밈없이 무위자연으로 들려 주리라 생각한다.
강아지를 아기 다루듯 세심하게 키우는 마음, 토끼를 빼닮은 초롱초롱한 눈동자, 자라를 닮은 우직한 성품, 공력 가득한 호랑이 성음, 전무후무한 특수부대 교관 같았던 김연수-오정숙-이일주 명창의 엄격한 가르침을 이어받은 집념의 소리, 죽도록 병 들었을 때도 이를 악물고 이겨낸 차복순의 소리!
늘 귀명창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차복순 명창이 식음을 전폐하고 이번 수궁가 완창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글을 위해 그에게 새삼 질문을 하는 게 방해가 될 것 같고 혹여 서로 가식이 들어갈지 몰라서 그냥 평소 알고 느낀 점들만 여기에 그대로 적었다.
토끼, 자라와 함께 녹수청산에서 마음껏 뛰어놀 야무지고 당차고 따뜻한 여장부 차복순 명창의 이번 수궁가 완창은 판소리가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공연이 될 것이다. 이 공연은 총 3시간 30분 걸리고 이 공연에서 고수는 조용안, 김청만 명고수가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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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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