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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일헌 김무형 Vol.1 시조' 음반(시조창ㆍ장고:김무형, 대금:전인근, 녹음 담당:마로, 그리니시음악공작소 녹음ㆍ제작 20100702-2mrcd.co.kr, 1CD, 2010년 5월 23일 녹음, 2010년 7월 제작) 해설서 6~7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2010년 5월 23일 서울 홍제동 그리니시음악공작소에서. 김무형(시조창ㆍ장고) 평시조 <이화에> 음반 취입 장면. 촬영:노재명.
[김무형 시조창 CD음반 출반 축사]
21세기 순수한 풍류 가객을 만나다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국악이 대중음악이었던 한국전통사회에선 전국민 대부분이 국악 한곡 정도는 기본으로 부를 줄 알았다. 국악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라면서 한국어 자연히 알듯이 그냥 자연스럽게 국악을 터득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몇 전공자만이 교수, 인간문화재 등등 무엇 무엇이 되기 위해 국악을 공부한다. 국민 대다수가 모국 고유의 음악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 국악 공연장을 많이 다니다 보면 무엇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한 전문인과 유명한 아무개, 너무나 똑같이 화장된 복사판 소리에 문득 싫증이 날 때가 있다.
어렸을 때 공연장이 아닌 정자나무 아래와 논밭, 일상생활에서 보았던 평범한 분들의 순수한 노래 성음이 그리울 때가 많다.
전통사회에서 사람마다 변화무쌍하게 다 다르게 노래한 국악의 특색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해 스승과 토씨 하나까지 똑같이 흉내만 내는 오늘날의 세태에 염증을 느끼곤 한다. 출세 목적으로 공부한 노래가 아니라 자기 수양으로, 그냥 마냥 좋아서 부르고 불러 자기 개성이 강하게 실린 노래가 그리운 것이다.
이러한 때 근래에 인터넷 매체 트위터(http://twitter.com/hearkorea)를 통해 김무형이라는 분이 시조창 음반을 취입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궁금하여 녹음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토록 갈망했던 순수한 시조창 성음, 출세 목적으로 때묻지 않은, 진정으로 이 소리가 좋아서 하는 성음을 듣고 싶어서였다. 기획사와 가객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소리를 꼭 듣고 싶다 특별히 부탁하고 방문하였다.
예측대로 화려한 기교는 없으되 현대 무대용 화장을 하지 않은 깨끗한 옛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목구성은 대단히 미성이고 욕심없이 거뜬거뜬 유창하게 소리를 내는 풍모가 멋들어졌다.
이미 수련을 많이 하여 별다른 실수 없이 예정된 녹음일정 4시간 안에 놀랍게도 컴팩트디스크 1장 분량을 무리없이 마쳤다. 국악을 일평생 수 십년간 연마한 원로 인간문화재들도 그 정해진 시간 안에 그 만큼 녹음한 경우가 흔치 않은 일이다. 녹음을 마치고도 입밖을 떠난 소리에 대해서도 잘한 부분이든, 미흡한 부분이든 초연하고 소탈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대화시 김무형 가객의 풍류 가득한 어투와 여유있는 미소도 참으로 멋스러웠다. 시조창뿐 아니라 바둑, 술, 사람 좋아하는 풍류 넘치는 분이었다. 1954년 태생, 올해 57세이니 성악가로서는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때이고 녹음 시점도 좋았다고 하겠다.
이 분은 이후권(정경태 석암제 계보) 문하에서 시조창을 사사했으며 부산에서 살고 있는데 석암 정경태 계보의 시조창뿐 아니라 오늘날 이 지역 영제 시조창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제 시조창 전승과 부흥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예로부터 한국 민족은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자장가>를 듣고 자라고 저승 가는 길에도 <상여소리>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렇게 늘 노래와 같이 살았다. 일제 때부터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한의 민족이라 왜곡하였지만 실은 풍류 넘치는 흥의 민족이다.
밭을 갈 때, 나물 캘 때, 무거운 나무를 운반할 때나 아무리 힘든 노동을 해도 푸념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각 상황에 맞는 노래를 슬기롭게 만들어 불렀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때도, 걸인이 구걸을 할 때도 거기에 걸맞는 개성있는 음악이 다 있었다. 구걸이 구슬플만도 한데 어찌 그렇게 흥겹게 부를 수 있었던가.
정자나무 아래 홀로 앉아 먼산 바라보며 쉴 때, 그리고 목욕탕 물속에서 때를 불릴 때도 시조창 <청산리 벽계수야>, 서도소리 <관함세기> 등을 부르곤 하였다.
멀리서 벗이 오면 음식 대접과 함께 둘러 앉아 거문고, 시조창, <정선아리랑>, <육자배기> 같은 민요 가락을 주거니 받거니 술잔 돌리듯 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한국의 음악 상당수가 본래 누구한테 무대에서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을 위한 음악, 생활 현장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음악이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현대에 와서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유의 풍류 문화를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제 동네 골목에서 어린이들의 전래동요를 듣기 힘들다. 걸인들의 <각설이타령>도 들은지 오래다. 농촌의 노동요, 장례식장의 <상여소리>, 공중목욕탕에서 시조창이나 <관함세기>를 더 이상 듣기 어렵다.
이러한 음악은 이제 생활 현장 속에서 거의 살아 숨쉬지 않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겨우 생명만 이어가듯이 무형문화재 제도로 국가의 보존 관리를 받고 있다.
풍류 가득했던 한반도는 이제 주로 노래방에서 시간 정해 놓고 빨리빨리 고속으로 노래 메들리를 토해내고 느리고 느린 시조창은 어디에서도 설 곳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순수함을 지닌 가객 김무형 같은 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 분이 시조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 분은 정말 이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좋아하지 않으면 시조창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예부터 시조창은 누구한테 크게 박수받는 음악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수양으로 하는 것이었다. 빛의 속도처럼 빠른 인생! 그 속도감과 정반대로 마치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느긋하게 뽑아내는 여유와 초연한 음색, 잔잔하게 흐르는 시조창에는 한국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잘 스며있다.
단 한줄의 시를 읽어도 정성껏 음미하고 멋스럽게 읊을 줄 알았던 한민족! 시조창은 느리지만 깊이가 있고 가객의 아름다운 성음, 음색을 풍부하게 음미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전호흡을 같이 하듯이 시조창의 길고 여유있는 호흡을 따라 이 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빛의 속도로 지나가던 세월의 시간이 약간은 느려지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변에 안보이던 꽃들도 눈에 들어오고 스트레스도 줄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1세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풍류 넘치는 순수 가객이 많이 속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고속 지구촌 인생살이 속에서도 또다시 한반도에 느리고 느린 여유있는 시조창이 울창하게 번성하기를 희망한다. 김무형 가객의 시조창 음반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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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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