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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제16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현정 이보형 수상 편』 책자(서울:조선일보사, 2009년 11월 17일 오후 5시 조선일보사 편집동 7층 TV스튜디오 시상 행사 인쇄물) 52~53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2009년 11월 4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이보형 국악학자 연구자료실 내부 모습. 촬영:노재명.
움직이는 한국 음악 대사전, 이보형 선생님
글/노재명(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986년 필자가 국악에 입문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보형 선생님의 글이 필자에게는 국악 교과서나 다름이 없다.
1980년대 이보형 선생님이 몇몇 잡지에 기고한 “흩어진 소리, 날아간 소리” 등의 한국 고음반 수집 경험 글은 필자에게 고음반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보형 선생님의 글들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을 모이게 하여 한국고음반연구회가 결성되도록 하였다.
1990년 이보형 선생님이 발표한 논문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연구”를 보고 판소리 발생론 등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바 있고 읽을 때마다 과연 대학자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논문은 민속음악 전반을 몸소 조사, 체험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논문의 핵심이 이미 1977년 한 월간지의 “민중 예술 판소리”라는 이보형 선생님 글에 소박하게 실려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 다시금 감탄을 연발한 적이 있다.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도 없고 기록 장비도 열악하고 자료 하나 구하기도 값비싼 상황이고 통신이나 교통도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은 1970년대 당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전국에 걸친 조사 작업 등을 통해 그 정도의 식견을 지니고 그러한 명문을 집필했다는 것은 마치 선진 별의 우주인이 와서 써놓은 것만 같은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이보형 선생님의 진가는 학술대회, 공연 해설 현장과 방송에서 더욱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학술 토론, 공연 해설과 방송시 국악 전반에 대해 막힘이 없이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은 움직이는 한국 음악 대사전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최대한 아름다운 한국의 언어로서 국악의 면모를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아주 역력하다.
이는 국악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광범위한 인접 학문까지 두루 섭렵한 결과일 것이고 이보형 선생님 자택 전체를 덮고 있는 관계 서적과 자료가 그간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종 명예직이나 시간이 허비될 만한, 학문과 무관한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학술 조사와 논문 집필에 중점을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저서가 극히 적고 산더미 같이 많은 논문과 만리장성 같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를 발표해온 이보형 선생님의 발자취는 공명심보다 진지한 학술 탐구에 몰입한 거목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매우 존경스러운 부분으로서 득도를 향한 수도승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진정성이 많은 후학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래서 현재 국악계에서 논문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보형 선생님의 지침을 받으러 찾아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오늘날 국악학계를 움직이는 중추적인 젊은 동력 상당수가 이보형 선생님 그늘에서 배출되었다.
이보형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국보급 유성기음반(SP)과 장시간음반(LP)만으로도 국립 국악 기관이나 대형 방송국 자료실을 능가한다. 거기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장을 누비며 기록한 국악인과의 대담 공책이 큰 책장을 가득 채우고 넘은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현장 조사 녹음 테입과 각종 국악 공연 안내 인쇄물, 희귀 문서자료 또한 이보형 선생님 연구실 내부 사방의 벽면에 가득하다.
특히 이보형 선생님이 평생을 바쳐 국악인들의 증언과 음악을 기록한 방대한 양의 공책과 현장에서 녹음한 국악인들의 증언 및 음악 테입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업적이다. 이보형 선생님의 이 자료는 장차 국악인들의 증언 기록 공책의 총 영인본 출판과 국악인들의 녹음 음반화 제작이 한 묶음 전집으로 추진되어야 할 무척 중대한 기록물이다.
1970년대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와 판소리 유파 발표회, 1980년대 뿌리깊은나무 국악 전집 음반물 등 이보형 선생님의 각종 기획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1982년에 제작된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전집 음반물은 전세계 주요 도서관에 소장되고 판소리의 위대함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표본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초석이 있었기에 판소리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인정받는 데 있어서 세계가 이의 없이 동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마 논문 집필로 밤을 하얗게 지새울 이보형 선생님! 일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 하고 운동과 음식 조절 등 자기 관리와 절제를 실천하고 계절이 바뀌면 소풍도 즐기고 모임에서 판소리와 팔도 민요를 흥겹게 연창하는 멋도 있고 학문에 임할 때는 엄격해도 일상에서는 농담도 좋아하고 가끔은 그림 전람회도 구경하고 틈틈이 서화도 익히며 유연하고 풍류 넘치는 풍모를 지닌 선생님! 모든 면에서 행동으로 교훈을 선사해 준 이보형 선생님! 바로 필자가 존경하는 대한국인이다.
우주상에서 단 한명 나올까 말까 한 대학자 이보형 선생님의 방일영국악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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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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