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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판소리 명창 성우향』(경기 고양:지구레코드, 1998)에 실려있는 글이다.
판소리 명창 성우향 증언<2>
증언/성우향
대담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나는 어려서 전남 화순에서 협률사 공연시 임상문씨의 줄타기를 본 적이 있다. 그후로 김봉업씨, 김영철씨가 줄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김봉업씨는 대접을 머리에 얹고 타는 것을 언뜻 보았고 김영철씨 줄타기는 몇번 보았다. 한번은 김영철씨가 줄을 타는데 반주 악사가 없어 임방울 선생님이 장고를 치면서 소리를 해준 적이 있다. 임방울 선생님은 소리로는 천하 명창이나 북, 장고 반주는 영 아니었다. 김영철씨는 옛 줄광대들 보다는 재담과 소리가 적었다. 박영구씨, 이정업씨, 한진옥씨가 줄타는 것은 보지 못했다. 지금은 고수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정업씨는 나이가 들어 줄을 타지 못하게 되자 박초월 선생님이 소리북을 해보라고 권유하여 고수가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전남 화순 지역의 국악인과 내가 주로 교류한 전라도 국악인들이 사용한 주요 변(은어)은 이러하다. 세습 국악인:산이 또는 동관(동간), 비국악인 집안 출신:비개비, 판소리:패기, 소리 잘한다:학습이 좋다, 돈:이돌, 쌀:새미, 여자:해주, 남자:떼들 또는 떼짜(떼자), 기생:생짜(생자), 영감:감영, 노인:구망, 어린 꼬마 애들:자동, 얼굴:벤대(변대), 눈:저울대, 코:흥대, 입:서삼집, 밥:서삼, 음식 반찬:서금(석음), 고기:사지것, 닭:춘이, 개:서구, 술:타리(탈이), 떡:실억, 옷:버삼, 은어(곁말/변말):변, 장고:고장, 징:웽이 또는 울음쟁이.
아니리, 발림, 추임새, 꽹과리, 북, 북채, 부채, 아들, 딸, 손, 발, 신발, 버선, 화장실, 공연 사례금은 변이 없다. 이런 변은 동관들끼리만 알고 비개비는 모르는 말이고 동관이 비개비에게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다. 6.25전쟁 때 한 비개비가 변을 수첩에 적어서 외우고 다니다가 공산당으로 몰려서 끌려가 곤욕을 치룬 일이 있다고 한다. 변은 이제 국악계에서 잘 통용되지 않고 젊은 국악인들은 이런 말을 거의 모른다.
김채만씨의 부인이 당골이라는 건 모르겠으며 그 얼굴도 못봤다. 김계화씨는 박계향씨의 친척으로 우스게 재담을 잘한다. 김중자씨의 모친 이농주씨는 몇해 전에 작고하였다. 백점봉씨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1942년 나는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조상선 선생님, 임소향 선생님, 한일섭씨, 박후성씨 등과 함께 전국 순회 공연을 하였다. 이때 조상선 선생님은 임소향 선생님과 살았는데 나는 당시 두분의 수양딸이었다. 그때 너무 어린 난 철이 없어서 두분께 매도 맞고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조상선 선생님은 정정렬씨의 수제자로서 목은 안좋았으나 제자를 잘 가르치는 소리 선생으로 유명했다. 조상선 선생님이 단가 <여객같은>을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이 <여객같은>을 하는 것은 많이 보았다. 조상선 선생님 문하에서 나는 1∼2년 동안 창극 소리를 몇마디 배웠는데 ‘흥보전’ 중 <흥보 자식노래> 등을 익혔다.
1943년 무렵 나는 남원의 어떤 공연장에서 전설적인 5명창 이동백 선생님이 잡가 <새타령>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동백 선생님이 생전에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를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고 근래에 음반(Victor 49033-B/KJ-1248-B, 1928년 녹음)을 통해서 그 소리를 들어 보았는데 동편제 소리에 가까웠고 중모리에 우조-평조(끝에 계면조 약간)로 되어 있었다. 단가는 요즘처럼 느리게 부르면 안되고 이동백 선생님과 같은 옛 어른들처럼 거뜬거뜬하게 불러야 제맛이다.
이동백 선생님의 제자인 강장원씨의 소리가 지금 많이 생각난다. 강장원씨는 단가 <초한가>, 판소리 적벽가 중 <삼고초려>, 수궁가를 특히 잘 불렀으며 성음이 좋고 소리를 옳게 앵기게 잘 했으나 빛을 못봤다. 강장원씨 생전에는 그 소리를 건성으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명창이었다. 김정문씨와 조상선씨가 이동백 선생님한테 소리를 배웠다는 말은 못들었다.
1948년 나는 전남 화순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에는 전남 광주에서 정광수 선생님 문하에서 판소리 수궁가를 일부 배웠다.
그리고 1950년 무렵에 전남 화순 읍내에서 가까운 물통굴(벼락바위)마을 염금달 선생님 댁에서 한달 가량 판소리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데>를 배웠다. 염금달(男) 선생님의 고향은 전남 순천인 것으로 기억되며 그분의 소리 스승은 들은 바가 없고 한승호씨 또래 정도되는 분이다. 나중에 내가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서 이 염금달 선생님의 <황성 올라가는 데>를 불렀더니 좋다고 그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다시 길을 가다 주막에 들어서 잠을 잘제∼” 하는 이 소리를 정응민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심청가 바디에 삽입시켜 부르게 되었다.
염금달 선생님은 나에게 판소리를 배운 바 있는 염금향씨와 친척간이다. 그리고 염금향씨의 손녀 조정희(이화여대 국악과 2학년)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조정희는 나에게 배우기 전에는 어려서 친할머니인 염금향씨에게 소리를 배웠다 한다. 염금향씨의 말에 의하면 옛날 대명창 염계달씨가 염금향씨의 큰할아버지뻘 된다고 한다. 염금향씨는 박춘성씨한테도 소리를 배웠는데 목구성이 좋고 소리를 옳게 잘한다.
1952년 나는 전북 남원 강도근 선생님 문하에서 1∼2개월 동안 판소리 흥보가 중 <떴다 보아라>∼<제비노정기>를, 한애순 선생님 문하에서 1∼2개월 동안 판소리 심청가 일부를 배웠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52년에 나는 국악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나는 강도근 선생님이 불렀다는 단가 <백발가>는 들어보지 못했다.
1953년 나는 전주에서 열린 전국명창대회에 참가하여 2위를 하였다. 그때 1위 수상자는 대금 명인 강백천씨의 딸 강산홍씨였다.
1953∼1957년 나는 전남 보성군 영천면 회천리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 흥보가를 제외한 판소리 네 바탕을 배웠다. 나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초에 정응민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서 춘향가와 심청가를 복습하였다.
정응민 선생님은 북을 뉘어 놓고 북가락을 직접 매겨 가며 소리를 가르쳐 주셨다. 나도 정응민 선생님의 수업 방식을 이어받아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 정응민 선생님은 남녀에 따라 아니리, 소리, 발림을 달리 가르치셨다.
광주에서 김준섭씨의 처인 박의숙씨가 부르는 보성소리 수궁가 중 <약성가>를 듣고서 좋은 소리제임을 간파한 김명환 선생님이 나를 보성의 정응민 선생님에게로 데리고 가서 소리를 배우게 하였다.
내가 언젠가 택시에 탔는데 운전사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 운전사가 마침 김명환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어떤 연유로 부자간에 헤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아들이 부친인 김명환 선생님과 오래전에 헤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연락처를 알려주어 김명환 선생님 작고 직전에 부자 상봉이 이루어진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김명환 선생님은 아들을 둘 두었는데 그때 되찾은 아들은 꼬마 때 잃어버린 장남(현재 50대 초반)이라고 한다. 하여간 그렇게 우연히 아들까지 상봉시켜 드리고 나니 나와 김명환 선생님의 인연도 각별하다고 생각되었다.
김명환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상궁접은 중모리(12박)를 반으로 잘라서 6박으로 나가는 장단으로서 엇중모리와 비슷하며 옛 명창들이 단가를 할 때 쓰던 장단”이라고 한다.
춘향가에서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하는 대목이나 판소리가 끝날 때 어질더질하는 소리가 중모리 반장단이다. 그 대목들을 중모리로 반주하면 1박이 남는다. 예전에는 단가 <어화 청춘>도 엇중모리 6박으로 불렀었다.
만일 상궁접이 엇중모리 장단이라면 그 장단은 매우 가곡 풍의 느낌이 든다. 김창룡씨의 단가 <대장부한>, 방진관씨의 판소리 적벽가 중 <삼고초려>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마치 가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김창룡씨와 방진관씨의 소리는 평조로 평탄하게 나가는 대목이 많다. 김창룡씨의 소리를 들어보니 그 분은 목이 아주 좋아서 성음에 기름이 잘잘 흐른다. 목을 되게 쓰지 않으며 쉽고 자연스럽게 발성한다. 그래서 느낌이 껄끄럽지 않고 좋다. 억지로 기교를 부려서 감정을 안넣어도 성음에 감정이 실려있다. 그리고 김창룡씨는 보성소리와 마찬가지로 진양조 대목을 대개 세마치(자진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 심청가를 배울 때 정응민 선생님의 소리와 발림이 너무나 애절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운 적이 많았다. 내가 처음 정응민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서울 가서 신식 소리 배우시오”라고 하며 거절하셨다. 그래도 나는 정 선생님 댁에서 홀로 끈질기게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 선생님이 “소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라고 말씀하시고 “이리 오너라”하며 나를 제자로 받아주셨다.
정응민 선생님한테 배우러 들어가기 전에 미리 사설과 장단을 단단히 외우고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정응민 선생님으로부터 소리를 받는 학습이 끝나면 선생님 댁 뒤에 있는 대나무숲으로 가서 반복하여 연습했다.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번 꼭 시험을 봐야 했다. 그걸 ‘광 바친다’라고들 했는데 선생님을 앞에 모셔놓고 나이 어린 사람부터 연장자까지 차례로 돌아가면서 광을 바쳤다. 광 바칠 때 정응민 선생님 댁 근처에 살던 동네 한량들이 몰려와서 구경을 했고 그 가운데 북 솜씨가 특출난 사람은 북반주도 해주었다. 정응민 선생님 동네는 수십년 동안 거의 매일 소리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모두 귀명창이었다. 광 바칠 때 정응민 선생님은 제자들의 소리를 차례로 듣다가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고 그 자리에서 세심하게 다시 가르쳐 주셨다.
정응민 선생님은 처음에 힘든 소리로 목을 세게 다루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첫 수업시간부터 가장 부르기 어려운 적벽가를 가르쳐 주셨다. 내가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 배운 판소리를 순서대로 말하자면 적벽가 중 <천여척>∼<조자룡 활 쏘는 데>, 수궁가 중 초입∼<범 나오는 데>, 춘향가 전바탕, 심청가 전바탕 순으로 익혔다.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는 단가를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정응민 선생님은 나에게 춘향가를 가르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소리는 조선 8명창의 한분인 대명창 김세종 선생님 제이다. 동편제 소리로, 통성으로 우조를 주로 쓰니 단단히 각오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정응민 선생님은 작고하시기 전에 내게 유언을 남기셨다.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라. 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 것 그대로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 소리를 배울 때 소리방에는 정 선생님과 김명환 선생님, 위계향씨(박춘성씨의 남편), 그리고 내가 둘러앉아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김명환 선생님은 북반주를, 위계향씨는 사설을 정리했다.
위계향씨는 얼마전에 작고했고 그 사촌 위계열씨는 판소리에 능한데 현재 생존해 있다. 나는 예전에 위계향씨가 만년필로 써준 정응민 선생님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소리책을 현재 소장하고 있다. 정응민 선생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울 때 위계향씨에게 노트를 사주어야 소리책을 써줬는데 당시는 그런 물자가 귀했고 나는 돈이 없어서 노트를 사지 못했다. 그런데 위계향씨가 그런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한테 사설을 적어주고 남은 노트 여분을 뜯어서 소리책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에는 녹음기도 없고 형편도 어려워서 그렇게 힘겹게 공부를 했다. 먹을 게 없어서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고 나면 배가 고파 밭에 나가 무우를 잘라서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이따금 정응민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소리에 지친 나를 특별히 불러 닭을 몰래 삶아주기도 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눈물겹게 고마운 일로 기억된다.<계속>
2000년5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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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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