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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289~300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다양한 판소리 성음들의 올바른 이해와 미학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판소리는 사람의 몸 자체가 악기인 성악 예술이다. 사람 생김새가 조금씩 다 다르듯이 명창들의 악기인 목소리, 울림통, 음색도 조금씩 다 다르게 마련이다.
판소리의 경우는 명창의 몸 일부분, 목 자체가 악기로서 머리와 감정에 그 신체 악기가 신경이라는 고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소리와 매우 미비한 감정의 변화도 음악 진행에 중요하고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이 연주자의 신체와 분리되어 있는 다른 악기들보다도 훨씬 다양한 음색과 그에 따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 명창의 성음이라고 하는 것은 악보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수치로도 나타내기 어려운, 듣는 이의 느낌을 최대한 말로 나타낸 것으로서 수리성, 철성, 발발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들이 있다.
또 같은 수리성이라 하더라도, 같은 철성이라 하더라도 모두 똑같은 느낌을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더 좋은 수리성, 조금 못한 수리성이 있고 아주 듣기 싫은 철성, 독특해서 듣기 좋은 철성 등으로 또 세분된다. 이는 같은 파란색이라 할지라도 진한 청색, 연한 청색이 있고 같은 쪽빛 염색이라 하더라도 약간씩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소리의 경우에는 명창들이 무어라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고 들으면 어떤 것인지 그 독특한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판소리 녹음을 악보로 채보했다 하더라도 그 녹음을 모르는 사람이 나중에 그 악보만 보고 노래를 할 경우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다른 서양의 성악 예술도 그렇지만 판소리의 경우는 그 편차가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판소리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가곡이나 범패와 같은 성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선조들의 소리 미학은 이와 같은 성악 예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대개 판소리에 가장 적합한 목 성음은 수리성이라고 명창들은 말한다. 그러나 수리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하면 정확하게 설명을 못한다. 소리가 청아하면서도 약간 쉰 듯한, 그러면서도 확실히 쉰 것은 또 아닌, 그런 게 수리성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뿐이고 또 그럼 누가 수리성이냐고 하면 선뜻 누구라고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필자가 수많은 명창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확실한 답변을 들은 건 박송희 명창이 수리성이라고 꼽은 단 한사람이 인간문화재 박초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우향 명창에게 지금까지 들어본 소리 중에서 가장 목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안향련의 성음이 가장 좋았다는 응답이 가장 시원스러운 답변이었다.
정확한 통계 수치로 나온 결과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여러 원로 명창들과 대담을 나누면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판소리 하면 우선 떠올리는 고정 관념인 팍 쉰 소리가 결코 우리 선조들이 선호했던 음색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성음이 판소리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던 수리성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원로 명창들의 표현대로 ‘쉰 듯한’이 좋다는 것이지, 결코 팍 쉰 상태를 좋은 것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쉰 김치와 같이 자극성이 강한 음식에 우리 입맛이 익숙해진 게 몇 백년 안된 근대의 일이라고 하니 이런 맥락과도 우리의 소리 미학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쉰 듯한 음색이 가미된 성음을 선호했는가? 아마도 청아하기만 한 음색 한가지 요소만으로는 불안정하다고 느낀 것 같다. 단순 구조보다는 복합 구조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고 안정감을 준다고 느낀 듯하다.
청아한데다가 약간 쉰 듯한, 흠이라면 흠일 수 있는 상반된 요소가 가미되므로 해서 음양이 조화된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약간 쉰 듯한 음색이 상대적으로 청아한 음색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여긴 듯하다. 마치 이동백 자신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약간의 실수, 흠집들이 완전무결한 나머지 부분을 더욱 웅장하고 청아한 느낌이 나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얄미울 정도로 너무 극도로 청아한 소리는 거부감을 줄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약간 쉰 듯한 음색이 가미된 성음, 약간 미련이 남는 소리를 더 편안하게 느끼고 값어치 있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명창들은 목에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들뜨지 않고 안정된 상태의 음색, 그러면서도 이모저모 오미(五味)가 있는 종합 선물 세트 상태를 구성이 있다고 본다. 그 구성진 목에서 빠질 수 없는 요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쉰 듯한 음색인 것이다. 달고 맵고 짠 음색만 있어서는 무미건조하고 단순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쓰고 신 맛도 있어야 된다고 본 것이다.
서양에서는 고음을 중시하지만 우리나라 성악에서는 고음보다는 안정된 저음을 더 해내기 어려운 것, 더 멋있는 것,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서양의 무용은 최대한 높히 하늘을 향해서 추는 춤이 많고 발가락 하나라도 최대한 땅에 닿지 않게 하려는 동작이 많지만 우리의 무용은 땅을 향한다고 할 만큼 낮게 가라 앉히는 춤사위가 많은 것도 그와 같은 미학, 같은 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고음이 아무리 곱고 화려해도 그것만으로는 건조하고 그와 함께 바다 같이 넓고 든든한 저음도 아주 좋아야만 암수가 잘 조화됐다고 여긴 것이다.
또 우리가 장승과 같은 조각이나 전통 건축물에 붙여져 돌출되어 있는 구부러진 나무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잘 생기면 잘 생긴대로 못생기면 못생긴 그 나름대로 가능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그 자체의 미학을 찾았다. 음악에서도 보면 수수하면 수수한대로, 환장할 정도로 빛이 나고 감칠 맛이 나면 나는대로 그 자체가 지닌 모습을 멋스럽게 여기고 향유할 줄 알았다.
판소리 하면 무조건 쉰 소리가 나게끔 모든 사람의 성대를 한가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풍토는 근래에 생긴 일이다. 옛 유성기음반이 이와 같은 점을 증명한다.
불과 몇 십년 전 녹음인데도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아주 다양한 판소리가 존재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처럼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명창들마다 색깔이 아주 독특하고 제각기 다 다르게 소리를 했다. 그렇게 다양함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특이한 점들을 귀명창들이 뷔페 요리 먹듯이 각각의 맛을 다 즐길 줄 알고 멋스럽게 여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고음이 아무리 곱고 화려해도 바다와 같이 넓고 든든한 저음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는 건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약간 쉰 듯한 느낌이 없는 고음 위주의 극도로 곱고 청아한 철성은 판소리 하기에 좋지 않은 성음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철성에 가까운 서양의 소프라노, 플룻 음색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이게 동서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대금은 저음 단단하고 고음이 청아하면서도 플룻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갈대청이 장착돼 있어 문풍지 떨리듯 떨리면서 ‘쉰 듯한’ 독특한 수리성과 같은 음색이 있다. 이점이 플룻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대금만의 특징이다.
원로 명창들은 철성에 가까운 사람으로 판소리 명창 이중선, 소프라노 조수미 등을 꼽는데 철성이라고 해서 또 아주 안된다는 법은 없어서 6.25 때 월북한 판소리 명창 조상선도 철성이었으나 그의 철성은 귀명창들이 독특하게 느끼고 매우 즐겼다.
또 누구나 판소리를 하기에는 정말 안된다고 여겼던, 목을 아주 안좋게 타고난 정정렬은 수 십년 동안의 독공을 통해 그런 궂은 목의 단점을 극복하고 온갖 화려한 기교로 중무장하고 하산하여 귀명창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판소리나 산조나 음정이 불안하게 발발 떨리는 발발성은 치명적인 것으로 고치기도 어려운, 아주 안좋은 성음으로 보았으나 이 역시 또 백퍼센트 안된다는 법은 없다. 6.25 때 월북한 가야금 명인 정남희 같은 이가 발발성이었으나 그는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나 공력으로 중무장하고 어느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발발성이 가미된 아주 독특한 음악으로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것이 다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 우리의 심성이 아닐까? 음치도 노력하면 명창이 될 수 있는 환경, 획일화보다는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 어떤 최고의 가치에 이르지 못했다고 못난이 취급 당하거나 ‘왕따’ 당하지 않고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사회,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이룬 무릉도원이고 그런 정신이 우리의 음악 미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심성인가?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얼마나 아까운 우리가 잃어버린 보물인가?
명창 이동백은 명고수 한성준과의 대담시 판소리 성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李] 사내가 부르는 노래란 건 亦是 사내다워야 하지. 노래가 사내다울랴면 그 목소리가 사내다워야 하고 그렇다고 목소리가 까다라워선 또 못 쓴단 말야. 平凡한 것이 좋으나 또 고것이 그냥 平凡해 버려선 못 써. 平凡하면서도 거게 色다른 맛이 있어야 그 목소리가 값이 나간단 말요. 허허 韓參奉은 이런 것쯤은 잘 알고 있는데 내 잔소릴 너무 늘어 놓았군.
[韓] 천만예요. 모다 오른 말이죠.
[李] 또 잔소리가 나옵니다만 목소리란 上, 中, 下의 소리가 分明하고 男聲, 女聲의 區別을 똑똑이 하야죠. 그리고 배우는 사람에게 늘 注意시키는 게지만 목소리를 꼭 五行대로 허얀단 말요. 金聲은 쇠소리니깐 쩡르랑 소리가 나야 하고 木聲은 나무 패듯 와짓끈 해야 하고 水聲은 잔잔하여 平平한 맛이 있어야 하고 火聲은 불이 확 나듯 高喊 치는 맛이 있어야 하고 土聲은 땅과 같이 목소리가 두터운 맛을 주어야 한단 말요.
[韓] 李先生의 下聲은 다들보가 다 울린다구 허잔습니까.
[李]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나만이 소리할 줄 안대서가 아니라 소리의 眞價를 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폭폭허니까 한단 말요. 소리도 實感이 있어야 한단 것은 高低 長短이 소리 內容과 合致되어야 해. 例를 들면 春香이가 李道令 떠나는 直前에 우는 것과 떠난 後 혼자 房안에 앉어서 우는 것이 全혀 달러야 하거던. 떠나기 前엔 多少 소리를 높여서 울겠지만 떠난 後 혼자 앉어서 우는 것은 새살부리는 調로 가늘게 우는 것이 實感이 있잖겠오?”(“李東白 韓成俊 對談-歌舞의 諸問題” [春秋 昭和十六年 三月號] 京城:朝鮮春秋社)
이동백에게 판소리를 배운 바 있는 명창 정광수는 아래와 같은 사계육성(四階六聲)이 창(唱)의 기본이 된다고 하였다.
1.항성(項聲) 2.흉성(胸聲) 3.복성(腹聲)
4.단전성(丹田聲) 5.척상성(脊上聲) 6.후세성(喉細聲)
정광수는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통성(筒聲)은 통통하게 둥굴게 내는 목성음을 다분(多分)히 말하기도 하는데 원래 원칙(原則)에 따르면 사계(四階)로 통하는 트인 목 음조(音調) 공성(功聲)을 일컫는 말이다.
사계육성이 트이들 못하며는 큰 공력(功力)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흉복단전(胸腹丹田) 성이 트이지 못하며는 우렁차게 엄우조라던가 중고조가 제대로 불확실한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일이다.
애원성(哀怨聲)에 토사수격(吐絲垂格), 또는 탄전성(呑轉聲)이 참으로 성가(成家)되면 비요(秘要)와의 비곡(秘曲)을 이루어서 흉금(胸襟)을 울리게 한다.”
그리고 정광수가 언급한 성음으로는 중앙성(中央聲), 거성(擧聲), 호령성(號令聲), 중상성, 애원성(애련성), 목다루의 이름으로는 잠긴목, 삼궁접이, 구슬다루, 반드름, 도래목, 재친목 등이 있다.(정광수 편저 [전통문화 오가사 전집] 서울:정광수, 1986년, 5∼7쪽)
[게우사], [조선창극사], 신재효 <광대가> 기록, 원로 명창들의 증언 등을 참고하여 역대 명창들의 성음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 여러 가지 무척 다양한 성음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서덕염: 풍월성
권오성: 원담소리
하은담: 옥당소리
방덕희: 우레목통
김한득: 너울가지
권삼득: 권마성,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 같다, 천품의 절등한 고운 목청은 듣는 사람의 정신을 혼도케 하였다
황해천: 자웅성(雌雄聲)
송흥록: 귀곡성(곡귀성), 단장성
모흥갑: 고동상성, 덜미소리, 아귀성(아구성), 설상(雪上)의 진저리친 듯, 전치 몰락의 순음(脣音), 학의 울음소리 같다
송광록: 창전벽해 걸릴 데가 없었다
방만춘: 아귀상성 살세성
고수관: 만년에 화류병에 걸려서 코먹은 소리(鼻音)로 <사랑가>를 하였으므로 비음으로 방창하여 후세에 전하였다
조관국: 한거성
조포옥: 고등세목
송항록: 중항성
송계학: 옥규성
박유전: 안구성, 목청이 절등하게 곱다
송우룡(아명 송우렁): 아명 자체가 타고난 성음이 우렁찼음을 의미. 허나 중년에 성대가 상함
김거복: 성량이 크고도 아름다운 것
윤영석: 성음이 거대하되 탁성과 중성은 없고 세세상상성으로 질러 내여서 사람을 경탄케 하였다
서성관: 성음이 양성
황호통: 목청이 양성이고 우렁차게 호통 기운이 많으므로 호통의 별명을 얻어서 호통으로 행세
송재현: 성음이 미려
배희근: 성음이 거대
김찬업: 성량이 홍종(洪鍾)과 같아서 호랑이 별호를 얻었다
신학조: 세살성
송만갑: 둥글고 맑은 통상성
한경석: 성음이 낭랑
이동백: 성음이 극히 미려, 하성 웅장, 성량이 웅혼함
김채만: 목청이 퍽 곱다
정정렬: 썩 좋지 않은 목
진채선: 성음이 웅장
강소춘: 웨장목의 성량은 남창을 압도할 만하였다
정응민: 타고난 목이 좋지는 않으나 성음이 분명
임방울: 천구성, ‘방울’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의 뛰어난 성음을 의미
오수암: 수리성
조상선: 철성
신영채: 목이 좋아 구성이 있어 방안소리는 당시에 신영채를 덮을 사람이 없었다
이기중: 수리성
이화중선: 성음이 절등하게 미려, 쇄옥성
박록주: 성량이 거대
박초월: 수리성, 대통 속에서 나오는 된소리, 청이 무척 높다
박봉술: 꺾인목(젊어서 손상된 부러진목 성음), 목 손상 후 상성이 안나와서 주경야독하여 터득한 희성은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이중선: 철성에 가까운 성음
박귀희: 발발성
조순애: 천구성, 수리성
안향련: 여자 중 일류 성음, 철성에 가까운 성음인데 목이 나고 튼튼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목구성
이 가운데 오래전 명창인데도 모흥갑의 목에 대한 평가 기록이 가장 많은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절륜한 성음을 지녔었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삽화라 하겠다.
고등세목은 성우향의 말에 따르면 최상성, 가장 높은 청, 상성 위에 한층 더 높은 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중항성은 목이 실한 것, 튼튼하고 좋은 것, 목의 폭이 넓은 것을 뜻하는데 상청이 모자란 사람은 이 중항성으로 주로 많이 소리를 한다고 한다.(1999.11.28 성우향 증언)
상기 성음 가운데 원담소리, 우레목통, 덜미소리, 한거성, 웨장목(외장목)은 크고 우렁찬 성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고 풍월성, 옥당소리, 너울가지, 옥규성, 안구성 같은 표현은 지금은 알기 어려운 용어이다.
옥당소리와 옥규성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운 미성을 말하는 것 같다. 너울가지는 너울거리는 가지의 율동 같은 곡조를 말하는 것인지 그러한 형상의 너울거리는 부드러운 성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박록주, 김여란, 정광수 같은 초기 인간문화재 생존시 이러한 전문용어에 대한 고증, 또 그들이 알고 있었던 여러 성음에 대한 조사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아깝게도 학계에서 그러한 작업은 별반 이루어지지 못했다. 불과 3년 전에 작고한 정광수 명창이 자신의 저서에 기록한 성음 용어 조차 현재로선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명고수 김명환은 “이동백이나 강산판(정응민제)은 하성, 중앙성이 많이 있어요”라 하였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82쪽)
이는 ‘이동백의 하성이 웅장’하다고 표현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기록, ‘이동백의 하성은 대들보가 다 울린다’고 한 명고수 한성준의 언급과 일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김명환은 봉황조 성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봉황조란 것은 봉황 두 마리가 서로 속살거리는 성음이여. 긍게 평조 성음도 아니고 계면 성음도 아니고 그 중간에 은은헌 그런 성음이제. 이것이 까딱 잘못 혔다간 기양 계면으로 돌아가 버리고 까딱 잘못 혔다간 기양 평조로 돌아서 버링게 그 중간쟁이지. 둘이 뭐 하나 성공헌 재밌는 일 있어 갖고 넘 들을까 싶응게 둘이 속작속작 주거니 받거니 좋은 기분으로 서로 사랑 실어 갖고 그 속삭거리는 그 성음이여.”(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58쪽)
명창 최승희의 말에 따르면 봉황조는 좋아하는 사람끼리 속삭이듯이 하는 소리로서 춘향가 중 <사랑가> 중에서 “이얘 춘향아 이리 오너라” 하는 부분에 쓰인다고 한다.(2000.12.22 최승희 증언)
바로 이 봉황조 성음이 황해천의 ‘자웅성’(雌雄聲)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신재효의 <광대가>에 황해천 명창은 “적막공산 밝은 달에 다정하게 웅창자화(雄唱雌和) 두우제월(杜宇啼月) 맹동야(孟東野)”라고 암새와 숫새가 사이좋게 서로 노래하는 듯한 성음을 구사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판소리에 노랑목, 떡목 등이 있는데 각 단어에 대한 보충 설명은 본 책의 ‘판소리 특수 용어’ 쪽에 정리되어 있다.
명창들이 일반적으로 안좋게 여기는 것으로는 지나치게 현란한 기교에 치우치는 노랑목, 청중이 무슨 소리인지 잘 들리지 않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고 잘 내지 못하는 암성, 발발 떨며 내는 발발성, 코를 울려 내는 비성, 떡처럼 뭉쳐 목이 확 트이지 않고 잠겨있고 윤기가 없이 빡빡하고 탁해서 답답한 느낌을 주는 떡목, 내시 성음 내지는 멋없이 뻣뻣하고 우악스럽게 내는 고자목 등이 있다.
수리성, 양성, 철성에 대해서는 명창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른데 수리성의 경우는 다들 판소리 하기에 좋은 목이라고 하면서도 ‘쉰 듯한’ 성음, 혹은 ‘탁하고 쉬어 버린’ 성음이라고 견해 차이를 보인다.
또 양성, 철성의 경우는 판소리 하기에 적합하다고 보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상반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양성은 아주 맑고 깨끗한 성음을 의미하는데 극도로 진한 양성일 경우에는 바짝 마른 건조한 목이라 판소리에서는 소리하기에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 적절한 양성일 경우에는 대개 판소리 하기에 좋다고 본다.
철성은 쉰 듯한 느낌 없이 고음 위주의 지나치게 곱고 맑은 소리를 대체로 말한다. 또다른 견해로는 쇠망치 같이 단단하고 딱딱한 소리라고도 한다. 이 한자를 철성(鐵聲)이라고 보면 쇠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 쇳소리처럼 강하고 높은 목소리라고 풀이할 수 있고 그렇다면 쉰 듯한 느낌 없이 고음의 곱고 맑은 소리라는 것, 쇠망치 같이 단단하고 딱딱한 것이라는 두 견해가 일부 일치되는 점이 있다. 그런데 철성은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는 좋지 않은 목으로 보고 또 일부 한편에서는 판소리에 적합한 성음이라고 보기도 한다.
동편제 명창 송만갑의 여자 수제자 김연수는 판소리 성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김연수 자신은 본래 수리성과 양성이 섞인 성음이고 중성도 많이 나오는 목을 지녔는데 젊어서 목이 아주 좋았다 한다.
수리성은 여러 구성이 있는 성음을 말하고 양성은 높이 지를 수 있는 목을 말한다고 한다. 수리성, 중성, 하성, 양성이 다 있어야 소리가 잘된다고 한다.
철성은 판소리 하기에 좋지 않은 목이고 반면에 수리성은 못생겨도 귀여운 사람처럼 귀여운 맛이 있는 애원성, 쉰 듯하면서도 지르면 다 올라가고 은은하게 나오는 목을 말한다고 한다.
이중선이 철성, 양성이라 한다. 이화중선은 아편을 하고 그래도 목소리가 천성적으로 아주 좋아서 힘을 안들이고 줄줄 잘했다고 한다. 이중선은 남도민요 <육자배기>를 잘 불렀다 한다.”(2001.1.14 김연수 증언)
다음은 판소리 성음에 대한 최장술 명창의 증언 내용이다.(이보형 조사 자료)
“판소리에는 수리성이 있는데 오수암, 정정렬과 같은 목이 수리성이다. 양성은 되발아진 소리이고 철성은 송만갑과 같은 소리이며 또 판소리에 아귀성이 있다. 또 방울목, 생목이라는 말이 있고 다루친다는 말이 있다.”
판소리 성음에 대해 최승희 명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목성음에는 철성, 양성, 수리성이 있는데 철성은 쨍쨍하고 강철같은 목소리이며 양성은 상청이 잘 나고 깨끗하고 호짓게 나오는 목소리이며 수리성은 탁하고 근성있는 목소리인데 소리꾼은 수리성을 지녀서 소리를 하면 좋다. 정정렬의 성음이 수리성이다.
소리목에는 방울목, 고자목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방울목은 둥그렇게 떠내는 목이며 고자목은 목구성 없이 땍땍 나오는 목으로서 소리하기에 안좋은 목이다.”(2000.12.22 최승희 증언)
정미옥 명창은 판소리 성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이보형 조사 자료)
“옛날에 판소리 명창들이 소리를 잘하면 목에 구성이 있다고 했고 구성이 없으면 작대기목이라고 했다. 또 영글고 둥글게 다루를 잘 치는 목은 방울목이라 했다.
또 명창들이 옛날에 득음이 된 목은 귀성이 있다고 하였고, 음량이 크고 소리가 잘 나면 항성이 좋다고 하였으며, 높은 소리가 잘나면 상성이 좋다고 하였고, 낮은 소리가 잘 나면 하탈성이 좋다고 하였고, 중간 소리가 좋으면 중하성이 좋다고 하였다.
귀성이 있고 걸걸한 좋은 목성음은 수리성이라 하였고, 애련하고 한있는 목성음은 애원성이라 하였다.”
원로 국악인 강순영 등의 증언에 따르면 우조, 계면조, 평조 판단 구분은 가락, 곡조로 하는 게 아니고 성음, 음색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하였다.
전도성은 소리를 배우기 전에 먼저 우조, 계면, 평조에 대한 이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야 소리를 알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원술 증언, 이보형 조사 자료)
여자 명창 가운데 박록주 명창은 유창하면서도 꿋꿋하고 모지락스러운 느낌(정노식 기록 등), 김소희 명창은 청아하면서도 다소 야멸차고 딱부러진 느낌(박송희 증언 등)도 있는 성음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판소리 가운데 특이한 성음으로는 아편 중독에 의한 특유의 음색이 있는데 원로 명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편을 많이 하면 양성처럼 바짝 마른 음색이 들어간다고들 말한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우향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스승 정응민은 “해지기 바로 직전 석양이 있는 오후 5∼6시 무렵이 사람이든 기계든 작동이 가장 잘 되고 이 시간대가 일반적으로 판소리 성음도 가장 좋다”고 했다 한다. 그 시간대를 사계절로 본다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좋은 때인 추석에 해당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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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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