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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365~373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판소리계의 은어들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고 상처를 주는 상스러운 말 가운데 ‘엿 먹어라’ 하는 욕이 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욕설 중에 성기와 관련된 원초적인 말이 많은데 엿은 남사당패에서 사용하던 은어(隱語)로 여성의 성기(性器)를 가리키는 것이다. 달콤한 맛의 엿과 여성의 생식기를 동일시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엿 먹어라’는 외국인들이 흔히 욕으로 쓰는 영어(Fuck you)와 같은 뜻인 셈이다.
그러한 은어는 본래 특수 집단에서 사용되던 말인데 이를 테면 남사당을 비롯해서 무당, 심마니, 백정, 도박꾼, 소매치기 같이 다소 폐쇄적이거나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가 생계에 필수적인 직업인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소매치기 은어는 범죄를 위한 안좋은 언어들이 많지만 백정 은어 중에는 참으로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도 있는데 예를 들면 소를 잡을 때 쓰는 도구 가운데 소 이마를 때리는 뾰족한 망치를 은어로 ‘촛대’라 하였는데 비록 생계 때문에 소를 죽이지만 극락 가는 길에 빛을 밝혀 주고자 했던 사람들의 번뇌, 아름다운 마음이 은어에 담겨있다.
비록 천대받는 직업이었지만 자신의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사람의 먹거리로 죽게 되는 짐승에게 미안함과 속죄하고 예를 다하려 한 마음 씀씀이, 동양의 종교적인 깊은 철학과 한국인의 고운 심성이 가축 생명의 생사를 다룬 옛 백정들의 여러 은어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면모는 전통사회에서 신분상 비록 천대받았지만 춘향가의 진실된 사랑, 심청가의 지극한 효심 등 사회 계몽을 꾀하고 홍익인간 개념을 몸소 실천했던 명창들의 심성, 직업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괄세받는다고 사회를 향해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 사회, 국가, 인류, 다음 세대를 향한 깊은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 자체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살았던 우리네 민족의 따뜻한 인간미와 오래된 역사에서 쌓인 지혜와 삶의 철학이 있어 자연스레 풍겨져 나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대개는 다른 분야의 직업인들과는 은어가 안통하는데 예외적으로 은어가 유사한 경우도 있어서 언젠가 동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 김석출 명인이 길가에서 소매치기들이 은어를 주고 받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는데 동해안 무속인들, 국악계에서 사용하는 은어와 비슷한 것이 있어서 알아 듣고는 소매치기 대상이 될 뻔한 사람에게 알려 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한다.
특수 집단에서 은어를 사용하는 것은 표준말을 쓰게 되면 일반인들이 알아 듣게 되고 자신의 천대받는 직업이 드러나고 그리 되면 활동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은폐하기 위해서이다.
국악인들, 판소리계에 몸담았던 소리꾼, 고수도 철저하게 짜여진 신분사회 속에서 살면서 광대라는 타고난 신분 때문에 사회적인 멸시를 받았던 터라 그들만의 은어, 곁말, 이른바 ‘변말’, ‘변’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판소리계 은어는 판소리가 쇠퇴하고 판소리 인구가 줄어들고 신분사회가 붕괴된 후 이 집단의 상당수 사람들이 세습 광대 신분을 버리고 다른 직업 쪽으로 이동하고 직업에 귀천이 없어진 후 굳이 자신의 신분을 감출 필요도 없게 되면서 차츰 기능을 잃어 이제 판소리계에서 그런 말을 쓰는 사람도 거의 없고 관계 은어 대부분이 사라져 가고 있다.
사라지고 있는 이런 은어가 오늘날 새삼 중요한 까닭은 지금은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아니리, 발림, 더늠, 추임새, 상궁접 같은 판소리 전문 용어들이 혹시 이 광대 집단의 은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그렇다면 판소리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보편적인 말로 굳어져 버린 것이 예전엔 판소리 광대들의 은어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의 판소리 전문 용어가 되었을 수가 있다. 남사당패에서 은어로 사용된, 음식 의미가 아닌 다른 뜻의 엿이라는 은어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전파되어 보편성을 지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남사당패 은어 가운데 무용을 발림이라 바꿔서 말을 소통한 흔적이 남아있다. 발림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판소리에서 명창이 어떤 상황을 묘사할 때 연기, 몸짓, 춤 추는 행위를 오늘날 발림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광대 집단의 은어였던 셈이다. 그러하니 그들의 은어 세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가 그간 조사, 수집한 판소리계 은어들을 아래에 한데 모아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 이 언어들은 지역간 다소 차이는 있지만 판소리를 비롯한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민속음악, 무속 등 국악의 민속 분야 사람들 사이에 상당 부분 서로 통했던 은어이다.
참고로 육지의 무당들과 달리 제주도 무속인 ‘심방’들에겐 옛부터 은어가 없었다고 한다.(이중춘, 김만보 증언)
[심화영 증언]
심정순, 이동백, 김창룡, 한성준 같은 옛 명인들은 충청도 국악인들끼리 통하는 은어를 사용했으나 심화영(1913년 출생)은 그런 말을 잘 모른다고 한다.
[김차돈 증언]
예전에 국악인들이 사용한 은어 가운데 김차돈(1924년 출생)이 기억나는 것으로는 밥:서삼, 입:서삼집, 코:흥대, 장고:고장, 눈:저울대, 징:웽이 정도라고 한다.
일제시대 5명창들은 이런 은어를 잘 안썼다고 한다. 김세준은 이와 같은 은어를 사용했고 그 부친 김창룡이 이 은어를 하는 건 김차돈이 못봤다 한다.
충청도 국악인들은 이런 은어를 별로 안썼고 전라도 국악인들은 많이 썼는데 충청도, 전라도 국악인들 사이에 이런 은어는 서로 통했다 한다.
[박송희 증언]
박송희(1927년 출생)가 과거에 국악계에서 사용한 은어는 은어:변, 아이들:자동, 노인:구망, 기생:째생 또는 생짜, 징:울음쟁이, 고기:사지것, 밥:서삼, 입:서삼집, 코:흥대, 눈:저울꼴, 얼굴:굴얼 또는 밴대, 저 얼굴을 보니 많이 굶었겠다:저 굴얼을 보니 많이 먹어굶 했겠다, 구성:성구, 미련하다:련미하다 등이라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습 국악인들 뿐만아니라 한량들도 이런 국악인들의 은어를 잘 알고 서로 사용했다 한다.
[성우향 증언]
성우향(1933년 출생)이 태어난 전남 화순 지역의 국악인, 그리고 주로 교류한 전라도 국악인들이 사용한 주요 은어는 이러하다고 한다. 세습 국악인:산이 또는 동관(동간), 비국악인 집안 출신:비개비, 판소리:패기, 소리 잘한다:학습이 좋다, 돈:이돌, 쌀:새미, 여자:해주, 남자:떼들 또는 떼짜(떼자), 기생:생짜(생자), 영감:감영, 노인:구망, 어린 꼬마 애들:자동, 얼굴:벤대(변대), 눈:저울대, 코:흥대, 입:서삼집, 밥:서삼, 음식 반찬:서금(석음), 고기:사지것, 닭:춘이, 개:서구, 술:타리(탈이), 떡:실억, 옷:버삼, 은어(곁말/변말):변, 장고:고장, 징:웽이 또는 울음쟁이.
아니리, 발림, 추임새, 꽹과리, 북, 북채, 부채, 아들, 딸, 손, 발, 신발, 버선, 화장실, 공연 사례금은 변이 없다고 한다. 이런 변은 동관들끼리만 알고 비개비는 모르는 말이고 동관이 비개비에게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다. 6.25 전쟁 때 한 비개비가 변을 수첩에 적어서 외우고 다니다가 공산당으로 몰려서 끌려가 곤욕을 치룬 일이 있다고 한다. 변은 이제 국악계에서 잘 통용되지 않고 젊은 국악인들은 이런 말을 거의 모른다고 한다.
[송순섭 증언]
송순섭(1936년 출생)의 조상이나 후손 중에서 국악을 한 이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송순섭은 세습 국악인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처음엔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고 나중에 한참이 지나서야 그런 사람들과 오랜 시간 많이 어울리게 되면서 그런 말을 알아 듣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이산용 증언]
이산용(1943년 출생)이 작은 이모인 김숙자(전통춤 인간문화재), 외조부 김덕순(국악인으로서 판소리 명창 김석창의 아들)한테 들은 국악계 은어는 다음과 같다 한다. 세습 국악인:산이, 비국악인 집안 출신:쇄니, 가짜 무당:더러니, 노인 혹은 할머니:구망, 어린이:자동, 고기:사지, 밥:서삼, 입:서삼집, 코:흥대, 눈:저울, 발:디딤, 돈:이돌, 쌀:미새, 장고:고장, 징:웽이, 꽹과리(쇠):짝쇠, 방구:구방, 똥:구성, 화장실:구성간, 사망:귀사, 자랑하는 것:조낸다, 국악 공부:학습.
그리고 필자가 조사, 수집한 황해도 은률탈춤 피리 삼현육각 악사 인간문화재 김영택 명인의 은어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판소리계의 은어와 유사한 점이 있어 서로 참조가 된다.
[김영택 증언]
김영택(1919년 출생)이 젊어서 황해도의 세습 국악인들과 교류할 때 사용한 주요 은어는 다음과 같다 한다. 이는 평안도 등 여타 이북 전지역의 산이들과도 다 통하는 말이었다 한다. 다음과 같은 산이들의 말은 동일지역의 무당, 장돌뱅이, 걸인 등 특수집단들의 은어와는 서로 각기 달랐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대물림하여 땅재주, 줄타기, 작대기재주, 삼현육각, 탈춤, 서도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광대는 산이라 했고 탈춤패, 삼현육각패 등 산이들의 한 조직에서 으뜸가는 재주꾼(우두머리)은 모개비라 했다 한다. 산이가 아닌 사람은 비개 또는 비개비, 죈내라 했는데 죈내는 놈이라는 의미의 천칭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대기재주와 땅재주는 패고, 줄타기는 거미, 재담소리 중 나오는 이야기 말(아니리 설명)은 마달, 의사소통 때의 말은 남서(또는 서남), 입은 버삼집(또는 서삼집, 서남), 목성음과 창은 피기, 소리꾼은 피기꾼, 만신은 권달, 기생은 짜생(또는 생짜), 걸인은 가열, 할머니는 버털이, 할아버지는 감영이, 장가들기 전인 사람과 시집가지 전인 사람은 돌쟁이, 장가든 사람은 쇈이, 시집간 사람은 해이, 춤추기는 발림, 굿은 정에, 피리는 고초, 대금은 가룻대, 해금은 거이발이, 장고는 고장, 북은 타구, 예쁘다와 좋다란 의미는 간이다, 옷은 버삼, 돈은 건이(거니), 돼지는 유구지, 닭은 뚝쟁이, 쌀은 백세미, 밥은 골숭(걸승), 머리는 두산이, 눈은 저끔이, 코는 마탈이(마타리), 손은 ‘살피’라고 했다 한다. 해금을 거이발이라 한 것은 해금을 연주할 때의 손놀림이 마치 게의 발놀림 같기 때문이라 한다.
또 어떤 연희에서 아무리 잘 놀아줘도 돈이 더이상 안나온다든지 관중의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싶을 땐 이제 이건 그만하자란 의미로 고수가 접서라(또는 접시라, 접시구)라는 은어를 추임새로 했다고 한다. 입을 닫고 말을 그만하자는 의미로는 앞서 언급한 말들을 섞어서 ‘서남을 접시자’라 했으며 재주가 좋다란 말은 ‘패고가 간이다’라 했다 한다.
술, 귀, 발의 은어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태평소는 중국에서 온 악기라서 그런지 이북에선 옛부터 변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다.
* 김영택 명인: 2000년 6월 27일 별세.
끝으로 심우성이 [남사당패 연구](서울:동문선, 1989년)에 밝힌 남사당의 은어를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또한 판소리계 은어와 유사한 점이 있고 서로 비교 참고가 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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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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