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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329~334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악기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 소리북. 1931~1946년 무렵 제작.
소리북에 이같이 지명과 사람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예는 극히 드문 편.
청주 지역에서 활동한 박씨 광대라면 박행충은 박팔괘의 일가일 가능성도 있음.
명창들의 소리 수련과 음식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허준(許浚)의 [동의보감]에 의하면 뱀, 지네, 두꺼비 따위의 독과 그 독이 든 음식물을 먹고 생긴 병에 성질이 평(平)한 ‘패고피’(敗鼓皮, 오래된 북가죽)가 좋다고 한다. 누렁소의 가죽으로 만든 것, 특히 오랫동안 써서 해진 것이 더 좋고 그 헌 가죽을 태워 가루내서 물에 타 먹으면 해독이 된다고 한다.
오래된 북의 가죽, 산의 뱀 등이라 하면 우선 소리꾼이 떠오른다. 산에서 뱀, 지네, 두꺼비 등으로 인해 독이 올랐을 때 오래된 북 가죽으로 그 즉시 응급 처방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춘 사람은 바로 산공부 중인 명창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오래된 지혜는 전통사회에서 소리꾼들이 산공부 중에 약이 귀한 비상시 스스로 터득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1610년에 지어진 [동의보감]의 ‘패고피’ 처방은 판소리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성악 명창, 국악인들의 문화 가운데 민간요법 일부를 기록한 것일 수 있고 400여년 전에 국악인들이 그러한 슬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전통사회에서 무당, 광대, 한의사가 혈연 관계가 있고 직업상 서로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지혜와 기록물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명창 박봉술의 부친 박만조, 박봉술의 형 박봉래와 박봉채는 판소리와 한약방을 겸했고 명창 신치선의 부친 등이 한의원을 했고 전통사회 국악계 인맥 상당수가 한의사와 혈연 관계가 있는데 이 깊은 연관성에 대해서는 명고수 김명환도 증언한 바가 있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70쪽)
판소리 명창들이 산공부 수련시 각종 약초를 캐먹은 것,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다양한 약 이름이 나오는 <약성가>가 있는 것도 전통사회 광대와 한의사의 깊은 관련성 때문에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암튼 명창들은 산에서 독공하다가 뱀에게 물리거나 여타 독에 올라 위급한 상황이 되면 [동의보감]에 언급되어 있는 바와 같이 소리 연마에 사용하고 있던 바로 곁에 있는 북의 헌 가죽을 태워 가루내서 물에 타 먹었을 것이다.
또 소리꾼들은 산공부 중에 각종 약초, 산나물, 야생 열매, 솔잎, 약수 등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채웠을 것이다.
판소리 명창 박기홍은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고 극히 가리고 절제하여 굉장히 적게 먹은 것으로 보인다.(박록주 증언 등)
단소 거장 전추산 역시 굉장히 소식을 했고 사진으로 봐도 도인 같이 극도로 단아하고 절제된 생활을 한 풍모가 역력하다.(김소희, 정경태, 예용해, 이생강, 최병호 등 증언)
박록주가 박기홍에게 판소리를 익힐 때 자고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 하루 약 20시간 동안 소리를 질러야 했는데 음식을 무척 사려서 참기름만 먹어가며 수련을 했다고 한다.(박록주 증언)
박록주는 말년에도 많이 먹고 소리하지 않고 거의 뱃속을 비우고 판소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우향은 정응민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울 당시 음식 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형편이 어려워서 힘겹게 공부를 했다. 먹을 게 없어서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고 나면 배가 고파 밭에 나가 무우를 잘라서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이따금 정응민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소리에 지친 나를 특별히 불러 닭을 몰래 삶아주기도 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눈물겹게 고마운 일로 기억된다.”
명창들마다 식성은 가지가지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는 수도승 이상으로 음식을 극히 구별하고 절제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가난하던 시절 워낙 굶고 소리를 한 것이 습관이 돼서 소식을 해야 소리가 잘 나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편식하지 않고 잘 먹어야 소리가 잘 나온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혜구의 증언에 따르면 송만갑은 일제 때 일본으로 음반 취입, 공연을 다니면서 양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한다.
정광수의 말에 따르면 그의 스승 이동백은 한자리에서 혼자 닭 백숙을 몇 마리씩 먹곤 했다 한다. 이와 관련된 이동백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는데 장사훈이 이동백한테 방송 섭외를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이통정(이동백)은 돈을 받고 소리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방송 사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회피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을 더듬어 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 주고 받다가, ‘저희 방송국에서는 선생의 소리를 영원히 간작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읍니까?’ 이렇게 넌즈시 의취를 떠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뜸 ‘방송하면 돈 주지오?’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원 천만의 말씀입니다. 방송국에서 선생님과 같은 국창(國唱)을 모시는데 어떻게 돈으로 예를 하겠읍니까? 그저 영원히 선생님의 음성을 남겨 두기로 하고 그 대신 음반(音盤)을 하나 기억으로 드리지요.’
그랬더니, 그는 몹시 기뻐하면서 ‘그럼 내일 갑시다’ 하고 약속해 주었다. 필자는 곧 돌아와서 녹음 시간을 정하고 사례는 방송 사례와 녹음 사례를 합해서 곱으로 지불키로 하고 그 돈을 김광채(金光彩)에게 주면서 아무 소리 말고 며칠 동안 닭이나 삶아 드리라고 당부했다.”(張師勛 著, “새타령의 절창(絶唱) 이동백(李東白)” [국악 명인전] 서울:세광음악출판사, 1989년)
이는 장사훈이 1945년 문교부 편수국 편수관으로 있다가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옮기면서 1948년부터 계획한 ‘藝人 百話’ 작업의 일환으로 이동백을 직접 만나고 겪은 일화를 삽입하여 집필한 평전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은 본래 1959년 4월 18일부터 1960년 2월 27일까지 서울중앙방송국(옛 KBS, 호출부호 HLKA) 제2방송을 통해 총 11회 연재 방송된 ‘이달의 國樂人’이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인 1960년 2월 27일자 ‘名唱 李東白翁’의 방송 원고였다. 그후 장사훈은 그 방송 원고를 약간 다듬어 1961년 6월 자신의 저서 [國樂 槪要](서울:精硏社) 298∼302쪽과 [音樂 文化 1961년 9,10월호](서울:음악문화사)에 발표한 바 있고 1989년 좀 더 보완된 상기 글 ‘새타령의 절창 이동백’을 자신의 저서 [국악 명인전]에 실었다.
이 장사훈 회고담은 은퇴 후 경기도 평택에 은거하던 이동백의 만년 모습을 일부 짐작케 하는데 이로서 이동백 명창이 노년에도 여전히 닭고기를 무척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동백이 대식가였던 면모는 다음과 같은 기록에도 있다.(1939년 3월 26일자 [조선일보] 李東白 一代記4)
“(이동백이) 진주서 살림하면서 창원으로 마산으로 돌아다니며 놀기 구년 동안이나 하다가 다시 강원도로 들어가니 그때 마침 강원 감사로 잇던 김정근(金政根)씨란 이가 또한 풍류를 조하하는지라 한번 이씨의 명창을 듯자 그만 쏘다지듯 반해서 밤나즐 모르고 소리를 시키면서 대접은 근진히(극진히) 하엿다. 공사만 마치고 나면 동헌으로 불러드려
‘동백이 심심하지.’
하는 것은 벌써 ‘소리 한번 안하려니’ 하는 말이엇다.
‘아니올시다. 별로 무어.’
하고 우물 쭈물하면
‘꿀 줄게.’
하고 허허 우스면서 통인 불러 밀수 타 드려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례히 소리판이 버러지는데 먼저 그 조흔 강능백청(江陵白淸)을 한사발씩 마시는 것이 석달인가 넉달 잇는 동안 꿀을 다섯각이나 먹엇다고 소문이 자자햇스니 삿도는 소리 듯는 바람에 꿀 아까운 줄 모르지마는 꿀 심부름하기 귀찬흔 통인들에게는 눈총도 만히 마젓슬 것이라고 한다.(一記者)
※ 이동백이 강원 감사 앞에서 소리하는 장면을 그린 삽화가 본문에 수록되어 있다.(그림 그린이 미상, 그림 한편에 ‘江陵白淸 다 녹이며 離別歌에 자지러지는 대목’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음)”
옛 명창 중에는 산공부 중에 소리를 무리하게 해서 몸이 상하면 약을 구하기 어려워 자신의 배설물을 받아 먹으며 소리에 매진했다는 회고를 하곤 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였던 박동진 명창이 소리공부를 하다가 목소리가 잠겨 전혀 안나오고 온몸이 부황 나듯 부어올라 똥물을 먹었다고 생전에 말하였다. 이에 대해 판소리 학자 김용근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논으로 가는 길가에 노천분뇨 저장소를 만들어 집에서 수거한 똥물을 저장해두고 농사에 사용했다.
이렇게 저장된 똥물은 뜨거운 여름날 햇볕에 의하여 수분이 증발되어 굳어지게 되는데 이때는 각종 벌레와 기생충들이 많이 죽어 없어지게 된다.
동네에서 사람이 아파서 심하게 열이 나면 이곳의 똥물을 떠다 먹이면 곧잘 열이 내리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을 민간 단방 약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사용하는 똥물은 저장되어 있는 똥물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대나무통을 이곳의 똥물에 쑤셔 박아 오랫동안 두면 그 대나무통 속으로 스며들어온 것만을 사용했다. 이것은 거의 완벽하게 정제된 깨끗한 것이다.
소리꾼들이 무리하게 소리 연습을 하다가 목이 붓고 열이 나면 해열제 역할을 하는 이 똥물을 먹고 열이 내리면 소리를 다시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실력을 바탕으로 다시 소리를 할 수 있게 되니 전보다 소리가 더 잘된 느낌이 들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 것이다.”(김용근 저서 [지리산 판소리 동편제] 전북 남원:지리산판소리문화연구소, 2006년, 27쪽)
이와 함께 김용근은 소리꾼들의 성대 보호에는 살구씨 기름이 최고 좋다는 다음과 같은 조사 기록을 발표한 바 있다.
“지리산 동편제 소리꾼들이 성대 보호에 사용했던 것은 살구씨 기름이다. 살구씨 기름은 원래 여자들의 피부를 하얗게 하는 화장 미용제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천황에게 진상하던 지리산 함양의 마천 살구씨 기름은 전국 최고의 화장용 진상품이었다 한다.
이러한 살구씨 기름은 또한 성대 보호에도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한다. 그래서 지리산 운봉 주변에서 소리 수련을 하던 소리꾼들은 인근 지역인 마천의 살구씨 기름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공연을 해주고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했는데 특히 유성준, 송만갑, 양학천, 김정문 명창 등은 성대 보호를 위하여 수시로 살구씨 기름을 즐겨 사용했다 한다.
요즘도 선거 때가 되면 많은 출마자들이 자신들의 성대 보호를 위하여 살구씨 기름을 사용한다 한다.”(김용근 저서 [지리산 판소리 동편제] 29쪽)
지금도 이 살구씨는 피부미용 재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방에서는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고 하며 기침, 천식, 기관지염, 인후염, 급성폐렴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하니 산공부시 토굴이나 폭포에서 추위와 비바람 맞으며 혹독하게 수련하다 감기 걸리기 쉽고 호흡기가 중요한 명창들에게는 제격인 먹거리라 하겠다.
한편 소리 공부에 힘쓰다가 목이 콱 잠겨서 목소리를 회복하려고 답답한 나머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양잿물을 잘못 먹었다가 오히려 목이 더 상해 소리를 못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성우향의 증언에 따르면 전통춤 인간문화재 김숙자가 바로 그런 사례라 한다. 김숙자는 본래 판소리 학습을 했고 소리 독공 도중 무리하여 목이 안나오게 되자 방법을 찾다가 양잿물을 잘못 먹고 성음이 완전히 손상되어 판소리를 작파했다고 한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봉술은 변성기에 목을 잘못 관리하여 고음이 안나오고 성대가 손상되었는데 양잿물을 먹으면 목소리가 시원하게 뚫릴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마셨다가 더 심하게 목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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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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