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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와 명창들의 아편 중독, 잇따른 요절, 이념과 남북으로 갈라선 명창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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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334~338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식민지 시대와 명창들의 아편 중독, 잇따른 요절, 이념과 남북으로 갈라선 명창들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구한말 시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판소리 명창을 비롯한 국악인들,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던 산적, 강도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상해를 당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판소리 명창 이동백이 1900년경 강도를 만나 겪은 일화를 회고한 내용이다.
“(이동백이 작고한 모친을) 고향으로 운구해 오는데 녯날 잇던 곳이라 아는 사람들과 친한 친지들이 여기저기서 모혀 드러 부의도 후히 하므로 창원서 떠나 서천으로 오는데 어느 곳 주막에 드러 자랴니까 밤중 쯤 되어서 박가치 두스런 두스런 하더니마는 인적기가 나면서 ‘아즈머니’ 하고 문을 여는데 보니 엇죽밧죽한 놈들이 오륙인이나 마당에 느러서고 그 중에 한놈이 방안으로 썩 드러서면서 불문곡직하고 노수로 가지고 가는 모수 다섯필을 성큼 집어 들고 나서는 것이엇다. 가치 가든 종제들이 그만 놀라서 그 놈의 팔에 매달리면서 이 길은 다른 길과도 달러서 이것을 가지고 가면 여기서 백여리나 되는 압길을 운구해 가지고 갈 수도 업스니 사람 살려 달라고 애걸을 하나 그 놈은 종시 듯지 안코 뿌리치며 그 중 한놈은 환도를 빼여 들고 ‘너이 놈들이 무엇이기에 귀찬케구느냐’ 하고 아프로 나서는 것이다. 이씨는 하도 기가 막혀 ‘녜 저는 이동백이올시다. 친상을 당해 이러케 운구해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주어도 감축합니다마는 노수를 다 가저 가시면 압일이 딱합니다’ 하고 비는 수박게 업섯다. 그랫더니 그 중 대장격 가는 놈이 이동백이란 이름을 아럿던지 뒤에서 ‘쥐야 바라’ 하는 변을 쓰니 모수 뺏고 환도 가진 두놈이 뒤로 물러서면서 서로 수군 수군하고 나가 버렷다. 이동백이 일흠 석자로 이 화를 겨우 면하고 천신만고로 친장을 마친 뒤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니”(1939년 3월 26일자 [조선일보] 李東白 一代記5)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구한말에 이동백뿐 아니라 여러 국악인들도 그같은 일을 당했을 법하고 예부터 소리꾼들이 산에서 독공을 하다 보면 산적, 짐승 등의 위협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한말 때까지 국악인들이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정도의 큰 위험 요소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제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송만갑, 김창환, 정정렬을 비롯한 일제시대 판소리 5명창의 절륜한 기예를 가장 제대로 물려받은 장판개, 박봉래, 김정문, 김봉학, 오수암, 김록주, 이화중선, 배설향 등이 대부분 아편 중독으로 요절하였다.
1920∼1930년대 아편으로 많은 국악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김창환, 정정렬, 송만갑, 김창룡 같은 원로 명창들이 노환으로 타계하고 일제 말기로 갈수록 국악계의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공기남, 박동실, 조상선, 임소향 등이 광복과 6.25 한국전쟁 때를 전후해 월북하였다.
일제시대 5명창의 수제자인 공기남, 박동실, 조상선, 임소향 등은 광대를 천시하고 국악을 낮추어 보는 당시 남한의 사회 풍조 등 때문에 월북했는데 북한에서 한때 왕성한 활동을 하고 민족음악을 발전시킨 공로자로 인정받기도 했으나 남도소리가 북한쪽 사람들의 체질에 잘 맞지 않고 복고주의자로 몰려 1960년대 이후 대부분 숙청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광복 후 남한에 남은 몇몇 국악인들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리하여 조선조 판소리를 6.25 전쟁 이후까지 충분히 잘 전달해 줄 수 있었던 수많은 실력가들이 스승 만큼 장수하지 못하고 소리판에서 너무 일찍 사라지는 바람에 판소리 전통의 맥이 많이 단절되었다.
결국 20세기 전반과 중반 격동기를 거치고 후반기까지 초인적으로 살아남은 몇몇 명창 가운데 온전하게 판소리 다섯바탕을 할 줄 아는 이 조차 아주 극히 적은 숫자가 됐다. 그나마 남한에 몇 명 남지 않은 명창들 중에서도 김초향, 오비취, 이소향, 방금선, 조소옥 등은 사회의 국악 멸시 풍조 때문에 국악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 생활을 했다. 이리하여 판소리, 국악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판소리뿐 아니라 국악계 전반이 피라미드 구조처럼 안정적이며 그 인적 구성이 탄탄하고 풍성했었으나 그로부터 불과 30∼40여년만에 거의 전멸이라 할 만큼 아주 열악한 상황이 되었다.
몇 백년을 아무 문제 없이 왕성하게 발전을 거듭했던 판소리가, 국악 전반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초토화된 것이다.
그런 황량하고도 바람 앞의 촛불인 악조건 속에서도 6.25 전쟁 이후 남한에 판소리 명창 정응민, 강장원, 임방울, 강남중, 정광수, 박록주, 김여란, 박초월, 박봉술 같은 국악 대가들이 다행히 생존해 있었고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늘날까지 정통 판소리, 국악의 진수가 잘 전해질 수 있도록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박록주는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정남희 등한테 월북을 강요당하는 위기가 있었으나 잘 모면하였다.(박록주 증언) 그리고 판소리 명창 박보아 역시 조상선이 월북할 때 함께 가자고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박보아 증언)
남한에 남은 국악인들은 남북의 이념 문제로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여 월북한 명창 공기남, 박동실, 조상선, 임소향, 가야금 명인 정남희, 안기옥, 최옥산 등에게 배웠다거나 친했다거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몇 년 전까지는 거의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래서 월북한 국악인들의 예술은 남한에서 사실상 거의 잊혀졌었고 근래에 들어서 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측에서는 1950년대부터 국악기 개량과 민요의 현대화, 신작국악 작곡에 주안점을 두었고 남한에서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도를 중심으로 해서 사라져 가는 전통음악을 우선 올바로 전승하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그 결과 북한에는 그 지역 나름의 고유 전통음악이 많이 사라졌고 남한은 판소리를 비롯한 옛 남북한 지역의 전래음악들이 정부의 지원 아래 명맥이 유지가 되었다.
송만갑은 판소리 역사상 가장 전승이 위태로운 시기에 초인적인 노력으로 눈부신 업적과 기적과 같은 혁명적인 소리를 개척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너무나도 높은 경지를 후학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 송만갑 사후 그가 의도한 방향과는 사뭇 다르게 판소리 흐름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가 뿌린 판소리의 통속화, 그 씨앗이 일희일비(一喜一悲)의 결과를 가져온 게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미련이 남는다 하겠다.
송만갑의 판단 착오나 의도적인 잘못은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 같은 그의 수제자들이 재주가 없고 게을렀다고 볼 수도 없다.
송만갑이 본인을 쏙 빼닮은 아들 송기덕에게 소리를 열심히 가르쳐 주다가 왕의 존재가 사라진 일제 때 소리를 작파하게 하고 순사가 되도록 권유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어쩌면 송만갑의 요절한 일급 제자인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는 송기덕의 입장보다 더 절박하고 생존에 대한 처절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살아줬어야 하지만 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물망처럼 빠져 나갈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신분 사회에서 광대들이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상류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왕으로부터 벼슬을 받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판소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도의 예술로 발전할 수 있었다. 힘겨운 소리 수련 과정에서 명창들에게 그 벼슬은 등대였다고 하겠다.
왕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전통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차츰 식어갔다. 그리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정한 직업을 저마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서 하였으니 명창들이 음악 외에 달리 생소한 일을 나이 들어서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 아편에 빠졌고 결국 스승보다 앞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재주가 모자른가, 또 학습하는 데 게을렀는가? 아니라고 본다. 이들만 요절하지 않고 장수하였어도 송만갑의 꿈은 상당 부분 완성되었을 것이다.
무수한 욕을 먹으면서도, 가문의 소리를 극도로 통속화시키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판소리를 살리려 했던 송만갑! 그는 유서깊은 가문의 어전 판소리를 대중음악화 하는 비상 수단을 썼지만 그 꿈은 결국 그렇게 미완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가 얼마나 고독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을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그토록 공들여 길러낸 제자들을 하나,둘 떠나보낼 때 송만갑의 괴로움은 또 어떠했겠는가? 가슴 아픈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전광대의 꿈을 이룬 송만갑 또한, 그 꿈을 미처 이루지 못한 제자들 못지 않게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당사자가 아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천재성, 초인적, 혁명가 등 화려하게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파란만장한 시대를 겪으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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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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