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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223~230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922
1933년에 녹음된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유성기음반
Chieron 118-B 春香傳 쑥대머리 林방울 伴奏朴綠珠
전국민의 우상이었던 명창 임방울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쑥대머리> 명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임방울은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하여 한국 전국민의 우상이었다.
‘쑥대머리’란 옥에 갇힌 춘향의 헝크러진 머리를 쑥잎에 비유한 말이다. <쑥대머리>는 춘향이가 옥에 갇혀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사설로 되어 있다.
<쑥대머리>는 일제 때 이화중선의 심청가 중 <추월만정>, 춘향가 중 <사랑가>와 함께 가장 인기있었던 소리다. 일제 때 전국 방방곡곡에, 멀리는 만주와 일본에까지 유행가처럼 번졌던 소리다.
<쑥대머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임방울이다. 물론 <쑥대머리>는 임방울 이전 시대에도 있었지만 그에 의해 유명해진 것이다. 이 곡은 임방울의 데뷔작이자 그가 가장 장기로 삼은 소리다. 일제 때 임방울의 <쑥대머리> 열풍을 반영하듯 당시 거의 모든 음반회사에서 그의 <쑥대머리> 음반을 냈다.
일제 때 임방울이 계면조와 노랑목을 전면에 앞세워 선보인 <쑥대머리>는 당시 판소리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귀명창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애절한 호소력을 지닌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대다수 민중의 인기를 확보했다. 일제 때 임방울이 취입한 <쑥대머리>는 수 십만장이 팔렸다고 하니 그 인기를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춘향의 서글픈 심정을 계면조로 묘사하면서 처절하게 불러대는 그의 <쑥대머리>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온국민들에게 식민지의 슬픔을 머금고 있는 소리로 가슴 속에 판화처럼 각인되어 있다.
임방울(林芳蔚, 본명:林承根, 1904~1961)은 전남 광산에서 부친 임경학과 모친 김해 김씨 사이의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임방울은 박재실 문하에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유성준 문하에서 적벽가와 수궁가를 사사했고 공창식, 김창룡 등에게도 소리를 배운 바 있다.
임방울은 옛 소리제를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독공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취향은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독공으로 다져진 그는 위력적인 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스승에게 물려받은 소리제를 자신에게 맞게 바꾸어 불렀다. 임방울은 대가들의 법통있는 옛 소리제를 제대로 익히지 않아 엉성하게 짜서 부르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귀명창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임방울 자신도 말년에는 그런 자신의 단점을 느끼고 소리제를 고쳐보려고도 노력했다. 암튼 그는 타고난 목청과 천부적인 음악성, 피나는 독공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완성하여 대다수 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소리판을 장악했다.
서민계층에서 발생한 판소리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양반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나중에는 왕까지도 매료시켰다. 그리하여 고위층의 부름을 많이 받는 이름 높은 명창일수록 듣는 이의 격에 맞게 판소리를 기품있는 쪽으로 다듬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크게 성장한 판소리가 양반 취향의 적벽가였고 없어진 소리가 변강쇠타령이었다.
그러다가 일제 때 이땅에서 왕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소리속을 알아주고 명창에게 벼슬까지 내리던 최고 권력자가 사라진 것이다. 일제시대 이후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돈 많고 권력있는 계층 또한 붕괴되었고 명창들의 소리는 거리로, 요리집으로 내몰렸다. 결국 명창들은 서민의 쌈지돈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고 판소리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왕이나 권세있는 계층 앞에서 불리던 기품있는 소리와 점잖은 발림 대신 서민의 취향에 맞게 소리를 바꿔야 했다. 그런 시대 흐름에 잘 적응하여 대중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성공한 명창이 바로 임방울이었다.
임방울은 그의 명성 만큼이나 많은 녹음을 남겼다. 일제 때 콜럼비아, 빅타, 오케이, 시에론, 코라이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무수히 많은 유성기음반을 취입했고 1950년대에는 여러가지 릴테입 녹음을 남겼다. 그리고 임방울이 1960년 원각사에서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을 부르는 장면이 영상으로 남아있다.(대한뉴스 224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국악 음반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중에서 들을 만한 판소리 음반은 이 임방울 음반뿐이었다.
그의 여러 음반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1950년대 녹음집이 그의 기량이 가장 압축되어 있는, 가장 돋보이는 명반들이다. 그래서 이 음반들은 옛부터 유명했다.
신세기레코드주식회사 민1237(3LP) 임방울 적벽가(고수:김재선)
1957년 실황 녹음, 1960년대 후반 제작.
신세기레코드주식회사 민1238(3LP) 임방울 수궁가(고수:김세준)
1956년 실황 녹음, 1960년대 후반 제작.
신세기레코드주식회사 민1244(1LP) 임방울 특선곡-쑥대머리 외(고수:박귀희 외)
1950년대 녹음, 1960년대 후반 제작.
이 음반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임방울의 절정기 녹음인데다 그의 장기인 춘향가 중 <쑥대머리>, 적벽가, 수궁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950년대 임방울이 남긴 녹음은 거의 대부분 유성준 문하에서 배운 적벽가와 수궁가이다.
적벽가 음반은 전바탕 완창 공연 실황 녹음이며 수궁가 음반에는 전바탕 완창 공연 실황 녹음 가운데 일부인 단가 <호남가>와 수궁가 초입~<토끼가 수궁에서 나오는 데>가 들어있다. 그 뒷부분도 녹음은 남아있으나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특선곡집 음반에는 단가 <호남가>, 춘향가 중 <쑥대머리>, <옥중 상봉>, <이화춘풍>,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수궁가 중 <녹수청산>이 담겨있다. 여기에서 <이화춘풍>의 고수는 박귀희, 나머지 곡의 고수는 미상이다.
이 가운데 <이화춘풍>은 어떤 식당 모임에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청중의 추임새가 들어있다. <이화춘풍> 녹음시 그 앞에 <춘향모 후원 치성>~<춘향 유언>(옥중 상봉)도 함께 불렀는데 이 음반에는 <이화춘풍>만 수록되고 나머지는 제외되었다.
상기 녹음집 중에서 춘향가 중 <쑥대머리>와 <이화춘풍>,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 데>~<적벽대전>, 수궁가 초입~<토끼 배 가르는 데>가 돋보인다. 특히 1956년 임방울의 수궁가 공연 실황은 그의 모든 녹음을 통틀어서 가장 걸작으로 평가된다.
<용왕 탄식>에서의 엄중한 통성, <토끼 화상>에서의 밝고 화사한 성음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고고천변>에서는 거센 물살을 이리저리 헤치며 나가는듯 강하게, 때론 유연하게 밀고 당기는 수법이 돋보인다. 그리고 <상좌 다툼>의 박진감, <범 내려오는 데>의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호령조 성음, <녹수청산>에서의 한가로운 성음, <토끼 배 가르는 데>의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불치의 판소리 열병 바이러스가 된다.
폭포수 소리도 뚫을 만한 강한 통성과 천구성에다 화려한 목놀림을 앞세운 임방울의 자신감, 거기에 김세준의 당당한 북가락과 추임새가 가세하였고 또한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는 청중의 웃음소리와 때에 따라서 소리를 도와주는 진지한 추임새가 이 수궁가 녹음집을 최고의 판소리 실황 명반으로 이끌었다.
임방울은 말년에 녹음을 싫어했다고 한다. 당시 임방울만 녹음을 기피한 것은 아니고 상당히 많은 명창들이 녹음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일설에는 한번 녹음해 놓고 수 백번 되풀이해서 듣는 것을 임방울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한다. 어제 연주가 오늘 그대로 반복되면 그건 이미 재즈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즉흥성이 많이 강조되는 판소리 또한 그렇다 할 수 있다.
임방울은 그런 면에서 녹음이 지닌 영구불변의 특성이 생리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거의 모든 명창은 자신의 예전 녹음을 불만족스럽게 여기기 마련인데 임방울은 실력이 향상되어도 늘상 예전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는 녹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다.
임방울은 녹음 스튜디오보다는 공연장에서 더 실력 발휘를 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녹음된 것이라도 비공개된 스튜디오보다 관중이 있는 열린 공간에서 부른 쪽이 더 좋다. 그리고 듣는 청중이 많을수록 더 소리를 잘한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왠지 흥이 없다. 하지만 공연 실황은 다르다. 공연에서는 억지로 소리를 잘 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흥에 넘쳐서 절로 나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처럼 그는 닫힌 공간에서는 공연 때 만큼 제 소리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튜디오 녹음을 기피했는지 모른다.
일설에는 임방울이 말년에 녹음을 싫어했기 때문에 1960년대에 제작된 그의 음반은 모두 임방울 몰래 녹음해 놓았던 것을 그가 타계한 뒤에 모아서 낸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음반을 들어보면 몰래한 녹음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녹음상태가 양호하다. 공연 실황의 경우는 공연장에 다행히 마이크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선에서 몰래 소리를 뽑아서 녹음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과 같은 음반은 녹음자와 마이크의 거리가 무척 가깝고 외부 잡음이 없으며 녹음상태가 좋기 때문에 몰래 녹음된 것이라 보기 어렵고 정식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이라 생각된다.
일설에는 임방울이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는 녹음을 해주기도 했다 한다. 그렇다면 1960년대에 음반으로 나온 그의 후기 녹음들은 거의 모두 임방울의 허락하에 그와 친분이 있던 이들이 정식으로 녹음했을 가능성이 높다.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에는 적벽가 녹음 앞에 “지금은 적벽가를 허시겠습니다”라는 설명이 있는데 박귀희의 음성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방울 특선곡’ 녹음집에 수록된 <이화춘풍>에서 박귀희가 북반주를 맡은 점으로 보아 임방울과 밀접한 관계였던 박귀희가 임방울의 말년 소리를 녹음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이 대한국악원(국립국악원의 전신)에서 발행한 한정판이라는 점, 임방울 적벽가와 수궁가 공연 실황 음반의 표지에 장사훈과 성경린이 해설을 썼다는 점으로 보아 장사훈, 성경린, 대한국악원이 임방울의 말년 녹음집을 출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겠다.
1960년대에 제작된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 임방울 적벽가와 수궁가 공연 실황 녹음집, 임방울 특선곡집은 모두 그를 추모하고 그의 예술을 보존하려는 차원에서 제작된 한정판이었다. 하지만 그 음반들이 제작되자 그 소문을 들은 임방울 애호가들이 가만있을리 없었고 폭발적인 주문에 따라 한정판이라는 명찰은 금방 떼어야 했다.
그리하여 수없이 재발매되었고 광복 후 가장 많이 팔린 판소리 녹음집으로 꼽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임방울 창극조 제1선집은 요즘 폐반되었지만 임방울 적벽가와 수궁가 공연 실황의 재판이 제작되기 전만해도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판소리 음반이었다.
임방울의 적벽가·수궁가 공연 실황과 특선곡을 담은 음반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판소리라 생각된다. 판소리의 진수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명반이라 여겨 모든 음악애호가들에게 필청을 권하는 바이다.
다음은 임방울의 약력에 대한 몇가지 기록들을 모은 것으로서 주요 사항만 일부 발췌하여 정리해 놓았다. 임방울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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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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