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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127~137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SP-1874
Victor 49140-A(3448) 短歌 大觀江山대관강산 朴綠珠 鼓韓成俊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은 현존하는 판소리 관계 녹음 가운데 명창 박기홍의 뛰어난 기량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
박기홍은 5명창 시대 최고봉의 기량을 지녔던 것으로 보임. 녹음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보다 한수 위였고 후배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은 박기홍에 대해 “가신이니 일언반사도 평을 가할 수 없다” 했고 박기홍은 가선(歌仙)으로도 평가받은 대명창.
가선(歌仙) 박기홍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구한말부터 일제 때까지 활동한 판소리 명창 가운데 대표적인 명창으로 박기홍, 김석창, 김채만,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 전도성, 유공렬, 이선유, 유성준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기량이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을 가리켜 ‘근대 판소리 5명창’이라 이른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달리 5명창을 선정하는데 오늘날에는 대체로 녹음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을 근대 판소리의 5명창으로 꼽는다.
오늘날 5명창은 판소리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다. 그 이유는 초기 인간문화재들의 스승이 바로 5명창이며 판소리 녹음이 5명창 시대부터 이루어졌고 따라서 오늘날 실제 녹음으로 접할 수 있는 가장 오래 전의 판소리가 5명창의 육성이기 때문이다.
5명창 시대에는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가 뚜렷하게 공존했기 때문에 판소리 유파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5명창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 하겠다. 또한 5명창 이전의 판소리와 5명창 이후 인간문화재들의 판소리가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5명창의 판소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 하겠다.
그 중에서도 박기홍은 5명창 시대 최고봉의 기량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녹음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보다 한수 위였고 후배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은 박기홍에 대해 “가신이니 일언반사도 평을 가할 수 없다” 했고 박기홍은 가선(歌仙)으로도 평가받은 대명창이다.
박기홍(朴基洪)은 이동백(1866년 출생)보다 몇 살 연상인 것으로 보이며 전라도 태생의 동편제 명창이고 이날치, 김창환과 이종간이라 한다. 경상도 함양, 청송 등지에서 살았고 초년에 박만순 수하에서 지침을 받다가 후에 정춘풍 문하에서 다년간 판소리를 전공하여 대가를 완성하였으며 대원군으로부터 무관선달의 직함을 받았다.
박기홍이 당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판소리 대가가 되기까지는 정춘풍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박기홍의 제자 박록주가 남긴 박기홍제 소리에 정춘풍제의 면모가 많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박기홍의 스승 정춘풍은 다음과 같은 명창이었다 한다.
“정춘풍(鄭春風) - 비가비 (동편)
정춘풍은 헌,철,고 3대간 인물이다. 충청도 어느 저가에서 출생한 양반광대로서 권생원 후 제일로 굴지한다.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 등과 동시하여 일세를 울린 대가이다.
원래 유가에서 생장하여 진사과에 등(登)한 만큼 한학의 조예가 상당하고 창극조에 대한 이론과 박식에 재(在)하여는 고금을 통하여 남에 고창 신재효요, 북에 정춘풍일 것이다.(단 신재효는 이론으로 승하고 정춘풍은 실제로 승하였다)
실제가로 당시에 있어서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 등과 호유장단이려니와 그 학식의 우여함과 이론의 고상함을 저네들과 불가동일어요 재인 계급에서 출생한 저네들과 양반 계급에서 출생한 정춘풍과는 좋은 대조이다.
정씨 성격이 소방하여 사물에 애체가 없을 뿐더러 불우외락하여 농세적으로 춘풍이라 자호하고 도처춘풍으로 생애를 마쳤다 한다. 광대로서 아호로 행세한 이가 춘풍이 효시일 것이다.
유가 출신으로 창극조로 타인에게 학득한 것이 아니고 그 예술적 천재는 문일지십하여 자가독공으로 고금을 종합하여 마침내 대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창조는 우조를 주체로 하고 제작은 동파가 분명하나 자신의 자부가 강한 만큼 초연이거하여 동이니 서이니 파에 속함을 불설히 역였었다.(여겼었다)
대원군의 지우를 얻어서 일시는 대원군의 사랑은 자기 사랑같이 알고 종유하였다 한다. 가조와 음률에도 정통하여 역시 일대가를 일우웠으며(이루었으며) 적벽가에 특장하였고 그 창법은 수문도인 박기홍에게 많이 전수하였다.
만년에 전라북도 여산군에 이거하다가 사하니 년이 68세이었더라. 더늠으로 후에 전한 것은 소상팔경 단가인데 박기홍, 송만갑에게 전창하여 현하 광대와 기생들의 성창하는 바이다.
소상팔경가 1.산악이 잠형하고 ...(중략)... 송만갑 방창.”(정노식, [조선창극사] 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74~76쪽 발췌)
박동진의 증언에 의하면 정춘풍은 공주 사람으로서 양반광대인데 박동진의 적벽가 중 <남병산 축문>이 바로 정춘풍제라고 한다. 정춘풍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명창으로서 8년간 무당 뒤를 따라다니며 짐방꾼 노릇을 했으며 해금, 가창가사, 시조에도 능했고 판소리는 특히 적벽가를 잘했다 한다.(1999.8.19 박동진 증언)
이동백을 비롯해 그와 어깨를 겨룬 동료들 대부분이 어전 광대를 꿈꾸며 거의 일평생을 왕을 비롯한 극히 몇몇의 소수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귀족 명품’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 상품을 주로 추구하였다. 그것만이 신분 상승과 예술성 획득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그러다가 왕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신분 체제가 붕괴되면서 어전 광대의 명품 판소리를 사주는 귀족 소비층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생과 자존심을 걸고 명품을 만들었던 어전 판소리 취향의 광대들은 그 소비자들의 몰락과 함께 아예 입을 다물고 명품 생산과 공급을 중단해 버리고 은둔하기도 했다. 박기홍이 바로 그런 명창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여진다.
박기홍은 일제시대 전국을 정처없이 유랑하며 극히 적은 몇몇 귀명창들을 상대로 소리 활동을 하고 귀족풍의 정통 명품 판소리를 추구하였다. 박기홍은 후배 송만갑이 법통있는 소리를 변질시켜 통속화시켰다 하여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박기홍과는 반대로 귀족 명품을 사주는 소비자가 점차 사라지자 그 제품을 대중적인 상품으로 변모시켜 시대에 순응하고 끝까지 중앙무대를 떠나지 않은 광대들이 있었는데 송만갑이 바로 그러한 명창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겠다.
이동백 역시 박기홍보다는 송만갑 쪽에 가까운 길을 택했다 하겠는데 이동백은 시대에 맞추기 위해 송만갑 만큼 급격하게 소리를 확 바꿔 부르진 않았다. 그런데도 이동백이 송만갑 이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그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대 최고 인물 좋은 국창으로 꼽혔던 이동백의 탁월한 외모 덕분이라 할 것이다.
사실 소리 원액만 가지고 어전 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관중들을 매료시키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동백과 송만갑이 극찬한 선배, 천하의 판소리 대가 박기홍이라 해도 그건 무리일 것이다.(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도 박기홍의 소리는 오래 들어야 진가가 나온다고 기록됨)
박기홍 같은 경우는 평생 혼신을 다해 연마한 자신의 소리를 어설프게 이해시키느니,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차라리 아예 입을 다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박기홍은 시대상 녹음을 충분히 남길 수 있는 시기에 활동했지만 음반을 전혀 취입하지 않았다.
매우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출중한 기량을 어느 정도 느껴볼 수 있는 녹음이 있는데 그의 제자 박록주가 남긴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과 같은 유성기음반들에서 박기홍의 뛰어난 면모를 일부 발견할 수 있다. 박록주가 이 <대관강산>을 박기홍 문하에서 배웠다는 사실은 이보형이 박록주와의 대담시 파악하여 알려진 것이다.
필자는 박록주의 이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1929년 녹음)을 컴팩트디스크로 복각 기획하고 오늘날의 소리꾼이 복원하여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관계 연구 논문에 자료 제공과 자문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지난 10여년간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의 우수성과 특징을 부각시켜 보고자 했다. 필자는 방송, 혹은 이 박기홍제 단가를 대외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 때마다, 판소리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단가를 들려 주었다.
그런데 이 박기홍제는 지금의 소리 방식과 워낙 다르기 때문에 판소리를 오랫동안 한 소리꾼들도 그 단가를 처음 들었을 땐 낯설어하고 대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어느 부분이 핵심이고 소리를 진행해 나가는 독특한 특색은 무엇인지를 잘 감지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0여년이 흐른 지금 이 단가를 들어온 소리꾼들이 하나, 둘 참으로 좋다고 반응이 오고 있다. 이제는 필자보다 더 열광하여 이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의 월등히 뛰어난 면모를 주변에 강력 추천하고 다닌다.
박기홍은 박록주의 첫 스승이고 대체로 소리꾼들에게 있어서 첫 스승의 성음과 가르침이 일평생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박록주는 1916년에 박기홍 문하에 들어가 두 달 동안 단가 <대관강산>을 비롯해서 여러 판소리를 배웠다. 이때 소리에 대해 백지 상태였던 12살 어린 소녀 박록주에게 첫 스승 박기홍의 가르침 하나하나는 박록주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박록주는 동네 친구 하나, 나이든 유부녀 둘과 함께 박기홍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약 20시간 동안 소리를 질러야 했다. 소리할 때의 자세가 매우 엄격했고 사설은 거의 한문투로 되어 있어서 외우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목에선 피가 나왔고 사설을 잘못 외우면 옆에서 지켜 보던 박록주의 부친이 들고 있던 회초리로 내리쳤다. 박기홍 문하에서 함께 판소리를 배우던 3명은 모두 중도에 포기하고 막판에는 박록주만 남았다.
박기홍은 박록주에게 “좀 더 가르쳐서 국창으로 만들고 싶지만···” 하고 아쉬워 하면서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겸손함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주고는 신령처럼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박록주는 훤칠한 키에 하얀 한복을 휘날리며 사라진 스승을 그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박록주 증언)
필자가 그간 강조해온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선 초입부 내두름을 요즘처럼 자극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말하듯 별 욕심 없이 툭 던지듯이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박기홍에게 비판받았던 송만갑처럼 대마디 대장단으로 마디를 뚝뚝 끊어서 소리를 가지고 나가지 않고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처럼 한 음을 가지고 소리를 길게 늘려 장단을 몇 마디씩 넘나들며 진행하는 것도 주목된다. 정응민, 박록주, 김여란, 성우향 등의 명창이 늘 강조한 것처럼 소리를 억지로 만들지 않고 소리를 구기지 않고 빨래줄 피듯이 좍좍 펴서 소리를 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박록주의 이 박기홍제 <대관강산>에서는 별 기교를 부리지 않는데도 장중하며 상당히 격조 높은 성음과 골격이 크고 점잖은 기법이라는 게 느껴진다. 근래의 정가보다 더 기품이 있는데 이 녹음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단아하게 차려 입은 선비가 차분히 산행을 하며 풍류를 즐기는 멋스러움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폭포수 소리를 제압하고 거대한 산을 진동시키고 왕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천하를 호령했던 옛 명창들의 대범한 기개가 이 녹음에 담겨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박기홍의 품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 생애가 담박하고 지신이 근신온화하였다. 주는 편기하되 색에는 가장 담박하여 일생을 통하여 노류장화를 일차도 절취한 일이 없었다고 지구들은 그 미덕을 찬칭한다. 병세한 대구 명기 앵무가 연정을 누소하였으되 종시 거절하여서 앵무는 그 반감으로 도처에 악평중상하므로 당시 사계에 있어서 일종 소화제가 되었든 것이다.”
박록주의 증언에 따르면 박기홍은 기골이 장대하였고 어려서 머슴살이를 했다는 얘기가 있으나 행동거지가 어긋남이 없었다고 한다.
도인 같이 잡다한 유혹에 흔들림 없이 품행을 올바로 했던 박기홍의 그러한 면모는 박록주의 박기홍제 단가 <대관강산>에서도 느껴지는데 소리의 구성과 흐름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맑고 깨끗하다. 박기홍의 청빈한 생활과 인격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이는 스승 정춘풍의 영향이 짙었으리라 보여진다.
박록주는 <대관강산>을 일제 때 즐겨 불렀으나 만년에는 잘 부르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도 별로 가르치지 않았다.(‘박록주 판소리’ 음반 해설서 25쪽, 엘지미디어 LGM-AK008, 2CD, 1996년 유성기원반 복각 제작, 음반 기획·해설·사설채록:노재명)
박록주는 1929년에 일본 콜럼비아 음반회사에서 이 <대관강산>과 함께 단가 <죽장망혜>도 녹음했는데 이 <죽장망혜> 또한 <대관강산>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어서 박기홍의 소리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 두 단가 녹음은 요즘 단가들보다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며 창법 또한 요즘 단가 발성과 다른 면이 있다.(노재명, [판소리 음반 걸작선] 서울:삼호출판사, 1997년, 153쪽)
박록주는 만년에 자신의 유성기음반을 듣고서 “그 때는 소리속도 모르면서 소리만 빽빽 질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그렇게 겸손하게 말하면서 쑥쓰러워 했지만 그의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20대 녹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원숙한 기량을 들려준다.
우선 또박또박한 소릿길이 돋보이며 대명창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청아하고 넉넉한 성음이 호감을 준다. 20대 녹음은 맑고 씩씩한 맛에 듣는다지만 그의 20대 녹음은 낭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답지 않게 매서운 공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대범한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박록주는 일제 때 박기홍제 <대관강산>을 4번 유성기음반에 남겼는데 그 가운데 1929년 일본 콜럼비아 음반회사에서 취입된 것과 1930년 일본 빅타 음반회사에서 녹음된 것은 백점봉의 단가 <별조유람가>와 닮았고 1933년 오케이 음반회사에서 박록주가 남긴 <대관강산>, 1934년 다이헤이 음반회사에서 박록주가 취입한 <대관강산>은 또 사뭇 다르다.
백점봉은 1928년과 1932년에 각각 단가 <별조유람가>와 <몽유가>를 녹음했는데 이 소리들은 본래 사설과 뼈대가 같은 하나의 단가로서 앞서 녹음된 <별조유람가>는 고형의 모습을 지닌 백점봉 집안의 소리이고 <몽유가>는 거기에다 후에 정정렬 시김새를 첨가하여 부른 것이라고 이보형은 분석하고 의견을 낸 바 있다.(이보형, “백점봉 소리제 소고” [한국음반학 제12호] 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2002년)
박록주 역시 백점봉의 경우처럼 정정렬 사사 후 박기홍제 <대관강산>에 정정렬 스타일을 가미하여 부른 듯하다. 즉, 박록주의 1929년 <대관강산>은 박기홍제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이고 1933년, 1934년 박록주의 <대관강산>은 약간 통속적으로 변모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백점봉은 경기도 장호원 사람으로서 부인이 요정을 하여 형편이 넉넉했고 한승호가 19살 때 70여세 노인이었다 한다. 한승호의 말에 따르면 백점봉은 판소리 대가이고 연극을 잘했고 멋쟁이였다 한다. 한승호의 기억에 의하면 백점봉은 정정렬 판소리에 가까웠고 이동백 소리제도 할 줄 알았다 한다.(1999.11.24 한승호 증언)
백점봉은 백점택(충청도 연기 출신)과 한 집안 사람이며 박록주의 흥보가 중 <비단타령>에 백점봉제 일부(사설과 곡조가 아닌 평조라는 악조)가 들어있다.(이보형, “백점봉 소리제 소고” 등)
주목되는 것은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콜럼비아 녹음)과 백점봉의 <별조유람가>가 충청도 양반광대 정춘풍이 지었다는 단가 <소상팔경>(송기덕 김록주 등 녹음), 그리고 박록주의 <죽장망혜>(1929년 콜럼비아 녹음),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와 소리 진행 방식이나 곡조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 박록주의 1929년 녹음 <죽장망혜>, 백점봉의 <별조유람가>,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도 정춘풍의 작품 내지는 정춘풍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곡일 가능성이 있다.
그 가운데 박록주의 박기홍제 <대관강산>은 백점봉의 <별조유람가>, <몽유가>와 제목만 다를 뿐 한 곡이나 거의 다름 없고 박록주의 1929년 녹음 <죽장망혜>, 이동백의 <천리강산>, <죽장망혜>도 한 곡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을 때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춘풍의 더늠 <소상팔경> 외에 이렇듯 정춘풍 단가류가 2곡(별조유람가=대관강산, 죽장망혜) 더 있었던 것이라고 추측된다.(노재명 글, '경기 판소리' 음반 해설서, 경기도국악당 교욱부연구부/티앤씨매니저먼트 TNC-250309, 1CD, 2005년 1월 제작)
박기홍이 직접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의 제자 박록주가 아주 젊어서 녹음한 단가 <대관강산>에서도 박기홍의 엄청난 그늘이 느껴지는데 이것만으로도 박기홍이 가히 송만갑을 어린 아이 대하듯 꾸짖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만일 단가가 아니라, 박록주의 음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박기홍이 직접 구사한 판소리 완창을 대했다면 정말 어마어마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판소리 완창시 처음엔 담담하게 하다가 갈수록 목이 살고 예측불허의 기가 막힌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게 박기홍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조기홍이라는 명창은 박기홍과 이름도 비슷하고 박기홍과 마찬가지로 정춘풍한테 소리를 배운 사람인데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기홍(趙寄弘) - 동편
조기홍은 전라북도 영례 인(人)이다. 정춘풍의 문도로 고종 시대에 울린 희세의 명창이다. 동파의 본색을 온전히 발휘하였고 소리가 신역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이 재(才)만 주고 수(壽)는 빌리지 아니하였던지 20여세 30 이내에 조사하였다.
이동백, 김창룡은 추억담으로 그 예술적 천재를 흠복하는 동시에 조사함을 탄석불기하더라. 춘향가와 적벽가에 장하였고 특장으로는 춘향가 중 십장가이다.
“청령급창이 나서며 ‘춘향 대령하였오.’ ...(중략)... 사또 기가 막혀 ‘허허 그년 말 못할 년이로고. 큰칼 씨워(씌워) 항쇄 족쇄로 하옥하라.’” 운운. 송만갑, 전도성, 이동백 창.(정노식, [조선창극사] 152~161쪽 발췌)
이 조기홍이 박기홍의 스승 정춘풍에게 소리를 학습한 바 조기홍과 박기홍의 소리제가 매우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기홍의 제자 박록주의 증언에 따르면 박기홍은 기량이 워낙 출중하고 천생의 방랑객이어서 그의 소리를 이어받은 이가 매우 드물다 하였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김봉문이 박기홍의 제자라 한다.
“김봉문(金奉文) - 동편
김봉문은 충청도 서산군 출생이다. 박기홍 제자로서 순종 이후로 최근까지 성명이 쟁쟁하다가 54세를 일기로 하고 10년 전에 고향에서 병사하였다 한다.
사(師) 박기홍의 창법을 많이 계승한 만큼 동파의 면목이 약여하였거니와 흥보가에 장하였다 한다. 그 특장으로 흥보가 중 박물가 1절을 소개하면 여좌(如左)하다.”(정노식, [조선창극사] 224~229쪽 발췌)
그리고 조학진이 박기홍한테 소리를 배웠는데 한승호의 말에 따르면 조학진은 경상도 출신으로서 경상도 사투리를 썼고 대구에서 살았으며 적벽가를 주로 한 명창이라 한다. 한승호가 10대 때 조학진은 70대 노인이었다고 한다.(1999.11.24 한승호 증언)
조학진은 1935년에 일본 폴리도르 음반회사에서 단가, 심청가, 적벽가 유성기음반을 취입한 바 있는데 이 녹음에 박기홍제가 상당 부분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고제 명창 김창룡의 장남 김세준이 박기홍에게 판소리를 배운 바 있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23호 향사 박귀희 작곡 및 작품집’이라는 음반 뒷표지 기록에 의하면 박귀희가 박기홍에게 창을 사사했다는 기록이 있다.(박귀희 자비 제작, 서울音盤 제조 SR-850321, 1LP, 1985년 녹음 발매)
박귀희가 1921년 생이므로 박귀희가 박기홍에게 판소리를 배웠다면 박기홍은 최소한 1930년 경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보형의 판단에 따르면 박기홍이 경상도를 중심으로 해서 많이 활동했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김초향이 박기홍에게 판소리를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춘향전 사본 선집(1) 남원고사 외](서울: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국학자료간행위원회, 1977년)에 명창 박기홍조 춘향가 필사본(1912년)이 영인되어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박기홍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박기홍)는 당당한 동파의 괴걸이라기보다 박만순, 정춘풍 거후 고종 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러 유사 백년인 동파의 법통을 혼자 두 손바닥 우(위)에 받들어 들고 끝판을 막다 싶이(시피)한 종장이다.
송만갑, 전도성, 이동백, 유성준 등의 선배로서 그(其) 중 송(송만갑), 이(이동백)와는 종종 동석하여 소리를 하였다. 중년에 대구 모가에서 송, 이와 가치(같이)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박(박기홍) 선, 송(송만갑) 후로 순서를 정하였다. 송이 말하기를 “박의 뒤를 따라서 하면 좔축이 되어서 임의로 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청중이 칠령팔락하여서 소리할 흥미가 나지 아니함을 어찌하랴” 하므로 송 선, 박 후로 순서를 바꾸어서 송이 먼저 소리를 하는데 박은 옆에 앉아서 듣고 나서 송더러 “장타령이 아니면 염불이다. 명문 후예로 전래 법통을 붕괴한 패려자손”이라고 혹평하여 송은 “고법에 구니하는 것보다 시대에 순응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모피하였으나 국창으로 일세를 울리는 송으로도 오히려 박의 앞에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을 보면 씨(박기홍씨)의 포부와 기량의 여하는 듣지 아니하여도 가히 추측할 수 있다.
박씨 창극조에만 탁발할 뿐 안니라(아니라) 문식이 우여하여 사율 일편을 능히 얼거서(얽어서) 당장 축돌님의 색책을 하고 시조, 가사, 현금, 가야금 내지 피리, 저, 해적 할 것 없이 무불정통으로 각각 일가를 완성하였고 현금, 가야금은 타인에게 많이 교수하였다 한다. 통틀어 말하자면 조선 음악에 있어서는 절륜한 천재와 위대한 포부를 갖었든(가졌던) 것이다.
조선 성악과 음률에 견식이 있는 사람으로 박과 종유한 이는 여출일구로 무불탄복이다.
춘향가, 적벽가에 특장하고 적벽가 중 삼고초려, 장판교대전, 화용도 장면에 이르러서는 신출귀몰한 기예를 발휘하였다 한다.(이동백, 김창룡 담) 그 더늠으로 적벽가 중 조조 군사 사향가 1편을 좌게(左揭)하노라.
“이때에 월명성희하고 오작남비라. (중략)" 운운. 송만갑, 전도성, 이동백 창.(정노식, [조선창극사] 162~169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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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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