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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음반에 나타난 남원 관련 명창들의 판소리<1>
* 이는 노재명 김기형 김혜정 공저 논문집 [음반으로 보는 남원 동편소리의 전통과 세계]
(전북 남원:국립민속국악원, 2002년 9월 비매품 한정판 발행, 총 516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문헌자료 [음반으로 보는 남원 동편소리의 전통과 세계]와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음반자료 관리번호 MICD-2298, MICD-2357~2360
음반으로 보는 남원 동편소리의 전통과 세계
기획 제작:국립민속국악원, 음원 제공:국악음반박물관, 제조:(주)서울음반, 해설:노재명. SBCD-4719(1CD), 2002년 8월 비매품 한정판 제작 배포.
수록 내용:송만갑 이선유 박중근 이화중선 박록주 박봉술 박초월 고음반 복각 녹음, 사설 채록 및 주석:김혜정.
유성기음반에 나타난 남원 관련 명창들의 판소리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송만갑의 신(新)동편제
2.송만갑 가문의 뛰어난 목구성, 동편제의 탄생과 발전
3.송만갑을 비롯한 근대 5명창들의 개인기와 음악 특징
4.송만갑과 그의 후예들
5.자료 - 20세기 남원 관련 명창들의 주요 음반 목록
(1)단가 (2)판소리 (3)창극
1.송만갑의 신(新)동편제
송만갑! 20세기, 아니 판소리 역사상 이런 예술 혁명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긴 큰 명창이다. 여기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남원 관련 역대 판소리 명창들 중에서도 그의 영향력과 무게는 단연 으뜸이다.
특히 본고에서 주로 다루게 될 20세기 남원 판소리에서 송만갑제가 차지하는 위상과 면적은 그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송만갑의 위대함은 무엇인가?
송만갑! 그를 주목하고 경이롭게 보는 까닭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고 만들어냈고 또 창조하는 것마다 하나같이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그러면서도 완성도 높은 소리를 창조하는 것이 명창들의 성취감이고 그 색다른 소리에 열광하는 게 귀명창들의 기쁨이라면 송만갑은 단연 국창으로 추앙받을 만하다.
송만갑의 1913년 녹음부터 1934년 그의 마지막 유성기음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돋보이는 면모는 한결같이 창의적인 소리를 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아주 지극히 시대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송만갑이 세차례 녹음을 남긴 단가 <진국명산> 유성기음반들이다.주1> 이 단가는 송만갑이 평소 즐겨 부른 단가였기에 시대별로 유성기음반에도 여러번 담길 수가 있었다.주2> 1913년, 1930년, 1934년에 송만갑이 이 단가를 녹음했고 각기 곡조와 창법을 조금씩 달리해서 불렀다. 이걸 들으면 이게 좋고 저걸 들으면 또 저게 좋고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고 경이로운 기량을 들려준다.
이 세가지 녹음 가운데 물론 1913년 녹음이 가장 목이 우렁차고 고음의 힘이 좋다. 허나 1930년, 1934년 녹음 또한 그때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에 견주어 볼 때 당시 극노인으로 인식된 60대 후반의 성악가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기적적인 수준의 고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송만갑이 1913년에 취입한 판소리 춘향가 중 <십장가>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이는 한면에 3분 정도밖에 담을 수 없는 음반의 녹음 시간 제약 때문에 음반 양쪽면, 그러니까 6분 정도에 그 긴 <십장가> 대목을 불러야 했으므로 중간중간 사설을 생략하고 매우 압축해서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즉흥적인 편집, 편곡 능력이 매우 놀랍다.
이 녹음에서 송만갑은 본래부터 <십장가>가 그렇게 짧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능숙하게 <십장가>를 줄여서 불렀다. 이는 취입 전 미리 별다른 준비도 특별히 없이 즉흥적으로 편곡하여 부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의 뛰어난 공력, 자신만만함이 느껴지며 이런 점에서 안좋은 여건이 주어져도 불평하지 않고 늘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진정한 대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김명환, 송만갑의 수제자 김연수(여자) 등의 증언에 의하면 송만갑이 말년에 평상시 말을 할 때는 목이 콱 잠겨 있다가도 소리만 하면 젊은 여자도 따라하기 어려울 만큼 고음이 기가 막히게 잘 나왔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송만갑의 특출난 면모가 유성기음반에 실증자료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또 1913년, 1926년, 1930년, 1934년에 녹음을 남긴 송만갑의 판소리를 시대별로 분류, 그 흐름을 비교해 보면 조금씩 시대에 맞게 다소 통속화된 소리로 변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만갑의 판소리가 같은 동편제 계열인 이선유의 소리와 사뭇 다른데 이선유의 소리가 고(古)동편제라면 송만갑은 그 소리에 현대성을 가미하여 신(新)동편제를 만들어 냈다고 하겠다.주3> 송만갑이 남긴 녹음 가운데 고(古)동편제에 가장 가까운 소리는 역시 송만갑이 맨처음 취입한 1913년 유성기음반들이다.
이선유가 1931년에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취입한 판소리 심청가 중 <곽씨부인 품팔이> 유성기음반(Columbia 40292-B)을 들어보면 “백산 과자에 신선로며” 등에서 일부분 씩씩한 덜렁제로 불러서 곽씨부인이 온갖 힘들고 짜증날 것 같은 고된 일들을 전혀 고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느낌이 나게끔 하는데 이런 덜렁제 부분이 송만갑의 1930년대 녹음하고는 사뭇 다른, 고(古)동편제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은 이선유가 1930년에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취입한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 배 가르는 데> 유성기음반(Columbia 40263-B)에도 나타나는데 이 <토끼 배 가르는 데> 녹음에서는 후반부에 약간 덜렁제로 호기있게 불러서 진짜 뱃속에 간이 없다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토끼의 면모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선유가 1931년에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취입한 판소리 수궁가 중 <새타령> 유성기음반(Columbia 40268-A) 초반부에 덜렁제로 불러서 수궁으로부터 세상 밖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토끼의 가슴 벅찬 기쁨을 표현하는데 이 또한 고(古)동편제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송만갑, 이선유와 동시대에 활동한 동편제 명창 유성준의 경우 지금까지 아래와 같은 유성기음반 단 한 장(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 데, 1933년 녹음)이 발견되었는데 단편적인 흔적이지만 이 음반을 통해서 본다면 시김새, 곡조 면에서 유성준 또한 송만갑과 마찬가지로 매우 통속화된 소리를 한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관리번호 MIVHS-0003·0007(2VHS)
Okeh K.1621-A 三國誌 趙子龍활쏘는데(上) 劉成俊
Okeh K.1621-B 三國誌 趙子龍활쏘는데(下) 劉成俊
송만갑이 가문의 동편제 소리에 서편제 맛을 가미하여 소리를 변질시켰다고 집에서 쫓겨난 일화는 유명하다. 송만갑 외에 최승학도 처음에는 김정근에게 중고제를 배웠다가 나중에 서편제로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그 외에도 여러 중고제 명창들이 고제 소리를 하다가 나중에 신제 소리를 따랐다는 기록이 많이 있다.
옛 소리는 도태되고 자꾸 새로운 소리가 나왔을 것이고 신식 소리를 따르지 않으면 외면당했을 것이다. 송만갑이 신 동편제를 내놓자 옛 동편제 소리가 도태되었고 정정렬이 신 서편제를 내놓자 옛 서편제 소리가 도태된 것처럼 고제 소리를 고수한 명창들의 소리는 전승이 끊어졌다.
그래서 김창룡도 가문의 중고제 소리를 배우다가 나중에 이날치에게 서편제를 배웠다. 그러나 김창룡의 경우는 잠시 이날치에게 서편제를 배운 일이 있지만 그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중고제이다. 김창룡은 서편제가 잘 맞지 않았던지 중고제를 고수했고 결국 그의 소리는 신식 소리에 밀려 전승이 끊어지고 말았다.
송만갑 세대 대부분의 명창들이 앞세대가 이룩한 업적,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되면서 힘이 집약된 선배들의 소리제를 익히고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도 벅차 사실상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안주하거나 혹은 고풍스러운 맛을 고집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리를 개발하지 않았다.
송만갑은 이미 중년에 전통적인 동편제 창법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그 단계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층 분발하여 초인적인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신동편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그가 자유롭게 넘나든 성악의 영역은 가히 징기스칸의 세계 정복 면적 만큼이나 광활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송만갑이 왈 대명창으로 인정받는 것이며 이는 목을 잘 타고난 것에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고(古)동편제와 송만갑의 신(新)동편제 차이는 창법과 곡조, 음색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이크, 스피커, 녹음기술, 무대시설이 없었던 시절로 갈수록, 옛 소리일수록 인간의 힘만으로 멀리까지 소리가 들리게 해야 했으므로 창법은 우렁차게 지르는 데 많은 역점을 두었지만 현대에 올수록, 송만갑이 말년으로 갈수록 크고 높게 지르는 점은 약해지고 작은 음도 섬세하게 표현하는 쪽으로 발달된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명창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대체로 아주 멀리까지 소리가 들렸다든가, 매우 크고 매서운 호랑이 성음을 냈다든가, 우렁찬 소리 진동으로 인해 방안의 문고리가 흔들렸다든가, 폭포수 소리를 뚫고 힘차게 질렀다든가 하는 부분에 초점이 많이 맞추어졌다.
마이크나 스피커 같은 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소리를 멀리까지 힘차게 내질러야 했기 때문에 잔기교는 부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호걸제나 덜렁제와 같이 힘차게 질러대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고 그런 소리제가 야외 소리판에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따라서 옛 명창들은 붙임새나 장단 공부보다는 소리를 우렁차게 내지를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데 가장 주력했을 것이다. “권오성의 원담소리, 방덕희의 우레목통, 조관국의 한거성”이라고 한 게우사의 기록과 “모흥갑의 덜미소리는 십리 밖까지 들렸다”는 조선창극사의 기록이 그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근대 명창들까지 구사, 존재했던 통성이라는 것이 결국 그러한 점과 맥을 같이 한다. 김명환이 증언한 이날치 소리가 어디까지 들렸다, 송만갑이 소리하고 나면 천장에서 먼지가 다 떨어졌다, 장판개가 소리를 하면 방안의 문고리가 흔들렸다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고제 명창 권삼득의 소리를 일러 “곡조가 단순하고 그 제작이 그리 출중한 것이 없으나 세마치 장단으로 일호차착이 없이 소리 한 바탕을 마치는 것이 타인의 미치지 못할 점”이라고 했다. 김명환은 전도성과 이선유의 옛 동편제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도성 씨 소리는 우리는 재미없어요. 이선유 목에서는 무엇이 나올 중 알았지마는 한달 이상 별 조가 없어. 모흥갑 더늠이라구 허는디 별 것이 아니드란 말이여.”주4>
정노식과 김명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옛 명창들은 우렁찬 소리를 내기 위해 발성 연습에 주로 공력을 들인 만큼 잔기교는 거의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소리를 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마이크와 같은 구실을 하는 나팔통에다 입을 대고 소리를 질러서 그 진동에 따라 유성기음반을 취입하는 방식의 초창기 기계식 녹음 시대까지만 해도 취입 기술상의 한계 때문에 송만갑과 같이 고음과 통성을 위주로 우렁차게 지르는 소리가 초기 음반에는 효과적으로 잘 담길 수가 있었고 그 당시 애호가들 또한 그런 소리를 많이 선호했다.
한국의 경우 1907년부터 1926년까지 기계식 녹음 방식에 의해 유성기음반이 취입되었는데 이 시대에 송만갑은 4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로서 본인이 가장 힘있고 웅장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였으므로 당시 그의 소리는 기계식 녹음에도 적합했고 또 고음과 통성을 위주로 우렁차게 하는 소리를 선호한 전통사회의 미적 관점에도 가까웠다.
그러던 것이 기계식 녹음의 한계를 뛰어 넘는, 매우 획기적인 전기식 녹음 기술이 192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도되면서 미세한 숨소리, 아주 극히 작은 음까지도 녹음기술이 많이 감지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정정렬과 같이 중,저음 위주로 소리를 끌고 나가면서 미묘하고도 섬세한 붙임새를 아주 복잡하게 구사하는 소리, 결코 우렁차지 않아도 은은하고 서정적인 소리가 큰 각광을 받게 된다. 이는 판소리 역사상 음악 측면을 가장 크게 바꾸어 놓은 대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정렬에 의해 기존의 고(古)서편제와는 사뭇 다른 이른바 신(新)서편제가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녹음과 방송 기술의 발달이 그 견인차 구실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극장식 무대가 등장하지 않고 전통적인 야외 무대 위주로 판소리가 공연되었다든지, 음반 취입 기술이 계속해서 기계식 녹음에만 머물러 있었다든지 했다면 작은 공간에서 가까이 귀를 대고 들어야 깊은 맛을 확실히 잡아낼 수 있는 정정렬의 방안 소리는 널리 퍼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판소리 전반에 영향을 주어 대체적으로 짧은 한마디, 한 장단 안에서도 많은 기교를 표현해 내고자 했고 또 무대, 녹음, 방송 등 기술의 발달로 그 복잡하고도 섬세한 음악 기교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었다.
그리하여 전통사회에서는 판소리 한바탕을 염두에 두고, 혹은 토막소리라 할지라도 장시간 소리해 나가는 전체 흐름, 큰 골격과 한판을 염두에 두고 굵고 큰 선을 그리며 소리를 짜나갔지만 시간 제약이 뒤따르는 유성기음반이나 방송의 등장, 특히 전기식 녹음 출현 이후에는 차츰 한 장단, 한 소절 안에서도 많은 걸 담아내려고 하고 대중에게 좀 더 자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게 된다. 자연히 투박하고 굵은 선보다는 부드럽고 가는, 화려한 기교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송만갑이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판소리 곡조가 통속화되고 고음과 통성이 약해지고 아주 치밀한 기교와 섬세한 음색 표현으로 가는 점도 바로 이러한 시대 흐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니, 송만갑이 정정렬과 더불어 그런 변화의 흐름을 가장 주도한 명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오늘날은 단가 한곡이면 더 보여줄 것도 없고 더 들을 것도 없다는 탄식이 나올 만큼 단가 한마디 안에서도 무척 화려하고 다채로운 기교가 이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그 도가 지나쳐 현기증이 일어날 만큼 짧은 곡 안에서도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고 과욕을 부리는 경향까지 있다.
박록주 명창이 생전에 소리를 너무 많이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후학들에게 던진 말은 바로 그러한 시대 흐름에 대한 염려였을 것이고 그 걱정이 박록주 사후 지금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암튼 20세기 전반기 송만갑은 시대에 맞게 개량한 소리로 파란을 일으켰고 박봉래 형제들, 김정문, 박중근, 김록주(김해), 김연수(여자) 등 송만갑의 제자들 거의 대부분이 그런 유행과 변화에 모두 뒤따라갔고 그리하여 송만갑의 신(新)동편제는 근대 판소리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였다.
20세기 전반기 송만갑이 내놓은 신(新)동편제는 발표 당시 최신식이었고 신선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송만갑 타계 후 지금까지도 그 소리를 뛰어넘는 신식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즉, 동편제 판소리는 송만갑을 끝으로 신곡 발표가 중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하게 동편제에서 송만갑과 다른 나름의 신식을 개발하여 무대에 가지고 나온 이가 장판개 정도뿐이다. 장판개는 송만갑의 제자이면서도 소리 이념이 조금 달랐는데 다음은 송만갑의 소리에 대한 장판개의 생각 일부분을 옮긴 것으로서 이는 김명환의 증언 내용이다.
“장판개 선생은 이동백 선생얼 추어. 이동백 씨 명창입니다. 근디 인자 송만갑 씨 소리는 또 안 추어. 숭은 어쩌구 본가면 소리가 뼉다귀뿐이라고. 살하고 뼈하고 조합이 되야 한다 그것이여. 소리가 푸진 맛이 없고 너무나 맑다 그것이여.”주5>
극도로 자극적이고 통속화의 길로 질주하는 송만갑에 대해 거의 유일하게 이를 일부 거부하고 스승 송만갑과 근접하는 예술성을 발휘하며 색다른 대안을 제시한 이가 바로 장판개라고 생각된다. 박동실이 선배 정정렬과 다른 나름의 신식 서편제를 제안한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 유성기음반에 흔적이 남아있는 명창들, 음색까지도 확인이 가능한 가장 확실한 근거인 녹음이라는 악보를 남긴 명창들을 중심으로 판단해 보는 것이다. 물론 동시대에 활약한 이 가운데 녹음을 남기지 못한 명창 중에서도 이들과 비슷한 노력과 활동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암튼 그런 장판개의 면모를 김명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장판개 것은 바닥은 감찰(송만갑)하고 같은 바닥인디 맛이 달체. 가다가다 반드름 하나쓱 넣어 갖고 소리가 싱금한 듯싶어도 끝 조직이 창창 안한가? ···(중략)··· 말씨럴 또록또록 안놓고 건너뜀서 한디, 그것보고 반드름 소리라고 한다. 옛 더늠이시. 착 늘여갖고 끄트머리에 가서 탁 털어 뿐 놈 이것이 반드름이시. 배에다 탁 실어서 탁 떨어뿐 그놈 밑으로 내가 들어갔네. 이걸 반드름 실음이라고 하지. 장단은 맞지만 치기가 안서툰가.”주6>
한승호는 반드름 소리가 중고제라 하였다. 결국 한승호와 김명환의 증언을 종합하면 중고제가 오래 전의 판소리라는 얘기고 이런 점들로 보아 장판개는 송만갑보다 고형의 동편제, 즉 중고제에 가까운 동편제를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장판개가 송만갑(신동편제)보다는 이동백(중고제+동편제)을, 그리고 정응민(고제에 가까운 동편제)의 소리를 높게 인정했다는 김명환의 증언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김명환의 증언에 의하면 정응민의 첫 스승은 이동백이고 그런 만큼 정응민제에 이동백 더늠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주7> 따라서 다른 명창의 소리를 별로 칭찬하는 일이 드물었다는 장판개의 취향은 거의 이동백만을 향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송만갑이 신동편제를 내놓았고 그후 신서편제를 개발한 정정렬의 소리 또한 통속화의 길로 질주했다. 일제 때는 어정(무속)제 판소리가 근래처럼 많지가 않았고 그것이 주류를 이루지는 못했다. 김명환은 “송만갑이 늙어서 못씨게 된께 정정렬이가 느닷없이 어정제로 헝께 모다 좋다고 그랬었지”라고 한 바 있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서울:뿌리깊은나무, 1991년, 81쪽)주8>
김명환의 말대로 어정제는 일제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느닷없는 소리였고 보편적으로 하는 주류의 소리는 아니었다. 어정제는 대명창들은 금기시하여 입에 잘 담지 않았던 것이고 정통 판소리에서는 가장 하급으로 쳤다. 이를 반영하는 다음과 같은 김명환의 증언이 있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59～60쪽)
“군목질이라는 것은 우조로 첨에 해 가지고 인자 평계면으로 갔다가 또 우조로 왔다가 평조로 갔다 또 계면, 단계면으로 왔다가 나중엔 결국 저 진계면까지 갑니다. 시나우, 신제, 어정 성음까지 다 가요. 그래 갖고는 도로 인자 평계면으로 와 갖고는 도로 단계면으로, 인자 도로 우조로 끝얼 지어 버립니다. 처음에 우조럴 내 갖구는 별짓 다 하다가 도로 결국은 우조 그 청으로 끝얼 내요. 그래서 그것얼 각구목질이라고도 하제. 각각, 각자 여러가지 목소리럴 건드려, 가지가지로.
각구목질은 이 세상 천지 생긴 뒤로 김정문씨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고 감찰 같은 그런 분은 각구목질 할라구 안해요. 기양 음정으로 해부리지. 그것이, 각구목질 멋만 있지 소리에 대해서는 온 위벱이여. 감찰은 원 음정으로 사람얼 막 울리고 웃기고 그래 뿌려. 완전한 성음으로만 살려 뿌려. 그것이 더 어렵제. 인자 감정으로 끌고 나가드끼 맨들어서 허면 좀 쉽지. 그전에 저 이동백씨나 송 감찰 같은 그런 분네는 각구목질 할라구 안해요. 그냥 음정으로 해 뿌링께. 긍께 각구목질은 인자 그렇게까지 그 신접은 못허니까 인자 그것이 쉽게 말하자면 채색이지. 미끈하게 단청얼 한다 그 말이여.”(참고:감찰은 송만갑을 말하는 것임)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보아 김정문은 스승 송만갑보다 더 소리를 통속화시키고 아주 자극적으로 감칠맛을 내는 쪽으로 소리 이념을 가지고 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송만갑과 정정렬을 필두로 하여 시작된 20세기 판소리의 통속화 바람, 아주 강력한 흐름이었다.
어정제는 김명환이 말한 바대로 판소리의 큰 물줄기에 있어서 일제 말기 느닷없이 나온 양념과 같은 존재였지 그것이 판소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순 없었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어정제가 판소리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초기 소리광대들이 전라도 무속인 출신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데도 근대 명창들이 대체로 전라도 무속과 혈연 관계가 있다 하여 판소리를 전라도 무속음악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지금까지는 단청에 가리워져 있는 판소리의 본 모습을 못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판소리만 기록이 남아있다면 판소리가 무속음악과 관련이 많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판소리의 전부는 아니고 예전엔 훨씬 다양한 스타일의 판소리가 존재했었다. 일제 때 녹음된 경기, 충청도 판소리에는 무악과 관련 없는 광대소리들이 많고 정가라 해도 무방한 곡조들이 매우 많다. 그러니 근래 판소리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소리가 전라도 무악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추리일 수 있다.
전라도 무가 기원설은 정노식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시작으로 강하게 대두되었고 그후 이 부분의 학설을 많은 학자들이 추종하여 지금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버렸다.
“巫女의 굿의 調와 광대의 唱劇調가 상이한 점이 많다. 지금도 全羅道의 巫女의 살풀이 祝願 其他各色 굿 소리를 들어보면 그調와 너림새가 퍽 광대의 唱調와 彷佛하고 ···(중략)··· 春香傳을 지어서 이것을 巫女의 살풀이굿에 올려서 그寃魂을 慰勞하였다. ···(중략)··· 그後에 春香傳은 여러文豪의 붓으로 添削을 加하여 小說이 되고 南原을 爲始하여 그隣近邑郡에서는 巫女의 春香傳 살풀이굿이 盛行하였다. 광대들은 그價値를 認定하고 唱劇調로 옮겨서 부르기를 始作하여 唱劇으로 改作할때에 더많은 敷衍과 潤色을 經由하여 今日의 春香傳을 일우었다고.”주9>
그러나 김명환은 무속인과 판소리인 사이의 혈연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판소리의 본질을 어정소리(무가), 육자배기 소리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47,54쪽)
“판소리 작곡한 사람은 따로 있어요. 무가에다 부쳐 씰 것이요?”(47쪽) “정정렬씨 소리도 소리 바닥은 아니제. 창극 쪽으로는 일인자지. 어정이 육자라구 그려. 정응민 선생도 정정렬이 소리럴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니여. 성음이 육자배기 노랑목 성음과 판소리 성음과는 다릉께.”(54쪽)
요즘은 판소리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해야만 맛이 난다고 하는 통념이 있다.(1998년 1월 국악인 신영희, 김혜란 방송 인터뷰 등 참조)
하지만 일제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감의 판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서울을 중앙무대로 하였고 지금처럼 아니리를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었고 경제 아니리가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었다. 5명창이 그랬고 그 후배들도 대다수는 그랬다.
어전광대가 판소리의 본맛을 위해선 그 전라도 말투가 필수기에 왕 앞에서 요즘처럼 심하게 전라도 아니리를 했다고 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쌍스러운 욕이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하겠다.
왕이 아니더라도 사대부 혹은 전라도가 아닌 다른 지방 서민들 앞에서도 타지역 사람에겐 간혹 의미 전달까지 잘 되지 않는 전라도 사투리를 일부러 꼭 썼다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과거에 전라도 판소리만 있었던 건 아니고 경기, 충청, 경상도 지역에도 각기 그 지역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판소리가 분명 있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전라도 음악어법에 의한 판소리만 있는 게 아니었고 그것이 지금처럼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불과 몇 십년 사이의 일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판소리 아니리, 노래의 변화 모습이 음반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원로 국악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송만갑은 생전에 아니리를 별로 하지도 않았고 간혹 하더라도 극히 절제되고 점잖은 몇 마디 꼭 해야 할 말만 하였다 한다. 그의 녹음에도 그렇게 담겨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5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송만갑 역시 전라도 사투리로 아니리를 하지 않고 서울 말씨로 했음을 녹음으로서 확인할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확실한 건 송만갑과 정정렬이 신식 개량 소리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긴 호흡을 가지고 소리하고 감상했던 전통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이는 한면에 3분 정도밖에 담아내지 못하는 유성기음반과 고작해야 최대 몇 십분 정도 소리할 수 있었던 일제시대 방송의 시간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음악에 대해 차츰 관심이 사라지고 있던 일제시대 단 몇 분 안에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줘야 했던 명창들의 생존 몸부림 결과가 그러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국악학자 이혜구 박사는 이동백이 오래하면서 신명을 내는 데 비해 송만갑은 아리아같이 짧은 소리를 잘했다고 평가하였다. 박기홍 명창은 그런 송만갑에 대해 장타령 아니면 염불을 한다며 명문 자손으로 전래 법통을 붕괴한 패려자손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긴 호흡으로 장시간에 걸쳐 판소리를 끌고 나가면서 세밀한 표현보다는 굵은 기교만 가지고 소리를 해나가는 전통사회의 고박한 판소리 분위기는 동편제의 거장, 가선으로 불린 박기홍에 대한 다음과 같은 조선창극사의 기록에서 잘 엿볼 수 있다.
박기홍은 처음에는 담담히 아무 흥미가 없는 태도로 하여 소리가 싱겁기 짝이 없다. 청중은 염증이 나서 하품과 졸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하여 중판쯤 이르더니 소리는 점점 흥미있게 되어간다. 난데없는 딴청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장내 공기는 변환하여 하품하고 졸던 간관들은 귀를 번쩍 들고 지수는 소리 좌우에서 쏟아져 나온다. 완급장단 억양반복을 법도에 맞도록 창거창래할 제 듣는 사람의 정신을 혼도한다. 그리하다가 소리는 다시 점점 담박무미하게 된다. 이러한 제작으로 조종하면서 달야토록 계속하였다 한다. 담담연 냉수적으로 탄탄연 대로적으로 하다가 어느 지경에 이르러서 그 어떤 특조를 발휘하는 식이다. 이것이 동파의 본령인 동시에 자가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김명환은 이렇게 증언한 바가 있다. “송흥록씨는 소리럴 못들어봤으니께 모르지만 송만갑씨 말얼 들어봉께 오바탕 전부럴 다 잘헌 것이 아니라 어디 쪼개씩 갖고 했다고 헙디다.”(김명환 구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76쪽)
이는 송흥록 역시 송만갑과 같이 다른 명창에 비해 아리아에만 능했다고 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당대 풍토가 그랬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한다.
판소리가 한 장르로서 인정받기까지는 광대집단의 판놀음시 소리광대들은 가장 장기로 하는 마디소리로서 짧고 굵게 관중들을 감동시켜야 했을 것이고 그런 흔적이 바로 위에 언급되어 있는 송흥록이 토막소리를 했다는 얘기에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명환은 송만갑의 소리가 동편제인데 바닥은 계면조 위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주10> 송만갑이 시대에 순응하는 소리를 했다는 것, 극도로 자극적이고 통속화의 길로 흘렀다는 것, 장타령 아니면 염불을 한다며 혹평받은 것, 이 모든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바로 그 계면조 위주로 소리를 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동백의 경우는 우조 위주로 했지만 송만갑은 대중의 기호에 맞춰 지나치게 계면조의 비중을 늘렸고 이런 송만갑의 소리가 당대 기호에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데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명환은 그런 송만갑의 소리를 가리켜 ‘계면이 주인’이라고 말하였다.
판소리가 서민 예술로 출발했다고는 하지만 차츰 상류층에서 관심을 갖고 이를 즐기고 후원을 하다 보니 나중엔 일류 명창들의 소리가 왕과 일부 귀족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타 서민 대상의 판소리를 한 명창들도 자연히 어전광대를 꿈꾸며 신분 상승을 위해 어전 소리에 초점을 맞추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20세기 초반까지 전체적인 판소리의 대세가 점차 귀족풍, 정가풍의 판소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시대가 되면서 명창들에게 벼슬을 내리는 왕의 존재가 사라지고 신분 체제가 붕괴되면서 귀족 취향을 향해 달리던 어전 판소리가 다시 태초의 모습과 같이 전국 각지 장터로, 공터 천막 안으로 서민을 찾아 나서게 됐다.
사실 5명창 수준의 판소리는 정가에 대한 흥미와 청취력을 지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공들여 들어본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어전광대 급수인 5명창의 소리를 평소 마음놓고 들으면서 귀에 젖고 그 속깊은 맛을 알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소수의 부유층, 몇몇 귀족 귀명창들만이 명창의 후원자이자 소리를 제대로 알아주는 진정한 팬이었던 셈이다.
즉, 왕의 귀를 향해 벼슬을 목표로 소리를 연마하고 그 꿈을 이룬 어전광대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고 그저 힘있는 사람 몇 명만이라도 자신의 소리를 이해해 주고 환호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명창에 따라서는 귀족풍과 서민풍의 판소리를 모두 겸하고 있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서민들에게는 거의 폐쇄되어 있다시피 했던 어전 판소리, 많은 시간 감상 훈련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고 장시간 긴호흡을 가지고 긴장 이완을 반복하며 조이고 푸는 맛을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긴 소리가 느닷없이 서민들 앞에 펼쳐졌을 때 많은 사람들한테 쉽게 이해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누구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리가 요구됐고 이런 판소리 공연을 일평생 단 한번밖에 볼까 말까 하는, 기회가 별로 제공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보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기교로서 감동을 주어야 했기에 일제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어전 소리들이 극도로 압축된 기교파, 통속적인 짧은 소리로 차츰 변모되며 유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장편소설은 사라지고 단편소설, 아니 짧은 수필만 살아남게 됐다고 할까? 20세기 판소리의 변모 양상을 표현하자면 그렇다. 송만갑을 비롯한 5명창의 수제자들-앞세대의 절륜한 기예를 가장 제대로 물려받은 장판개,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 등이 요절, 월북 등으로 스승 만큼 장수하지 못하고 소리판에서 너무 일찍 사라지는 바람에 전통의 맥이 많이 단절되었다. 결국 20세기 전반과 중반 격동기를 거치고 후반기까지 극적으로 살아남은 몇몇 명창 가운데 온전하게 판소리 다섯바탕을 할 줄 아는 이 조차 아주 극히 적은 숫자가 됐다.
이런 점에서 송만갑은 판소리 역사상 가장 전승이 위태로운 시기에 초인적인 노력으로 눈부신 업적과 기적과 같은 혁명적인 소리를 개척하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너무나도 높은 경지를 후학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 송만갑 사후 그가 의도한 방향과는 사뭇 다르게 판소리 흐름이 전개되었고 결국 그가 뿌린 판소리의 통속화, 그 씨앗이 일희일비(一喜一悲)의 결과를 가져온 게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미련이 남는다 하겠다.
송만갑의 판단 착오나 의도적인 잘못은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그의 수제자들이 재주가 없고 게을렀다고 볼 수도 없다.
송만갑이 본인을 쏙 빼닮은 아들 송기덕에게 소리를 열심히 가르쳐 주다가 왕의 존재가 사라진 일제 때 소리를 작파하게 하고 순사가 되도록 권유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어쩌면 요절한 송만갑의 수제자인 장판개,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는 송기덕의 입장보다 더 절박하고 생존에 대한 처절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살아줬어야 하지만 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물망처럼 빠져 나갈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신분 사회에서 이들이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상류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왕으로부터 벼슬을 받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판소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도의 예술로 발전할 수 있었다. 힘겨운 소리 수련 과정에서 명창들에게 그 벼슬은 등대였다고 하겠다.
왕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전통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차츰 식어갔다. 그리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정한 직업을 저마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서 하였으니 명창들이 음악 외에 달리 생소한 일을 나이 들어서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현실을 잊기 위해 아편에 빠졌고 결국 스승보다 앞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재주가 모자른가, 또 학습하는 데 게을렀는가? 아니라고 본다. 이들만 요절하지 않고 장수하였어도 송만갑의 꿈은 상당 부분 완성되었을 것이다.
무수한 욕을 먹으면서도, 가문의 소리를 극도로 통속화시키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판소리를 살리려 했던 송만갑! 그는 “극창가는 주단 포목상과 같아서 비단을 달라는 이에게는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는 이에게는 무명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유서깊은 가문의 어전 판소리를 대중음악화 하는 비상 수단을 썼지만 그 꿈은 결국 그렇게 미완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장판개, 박봉래, 김정문, 김록주가 얼마나 고독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을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그토록 공들여 길러낸 제자들을 하나,둘 떠나보낼 때 송만갑의 괴로움은 또 어떠했겠는가? 가슴 아픈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전광대의 꿈을 이룬 송만갑 또한, 그 꿈을 미처 이루지 못한 제자들 못지 않게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당사자가 아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천재성, 초인적, 혁명가 등 화려하게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파란만장한 시대를 겪으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송만갑은 그 시대 전통음악의 몰락과 함께 대부분의 명창들이 모두 낭떨어지로 추락할 때 그는 남보다 우수한 천재성이 있었기에 그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가지 송만갑은 자신이 평생을 공부한 판소리, 진정으로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느낀 그 음악을 후세에 최대한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혼신을 다해 무수히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불안했는지 직접 자신의 육성으로 많은 녹음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2.송만갑 가문의 뛰어난 목구성, 동편제의 탄생과 발전
송만갑이 왜 명창으로 추앙받는가? 그 첫째 조건으로 목이 그는 우선 타인에 비해 월등히 좋다.
판소리는 사람의 몸 자체가 악기인 성악 예술이다. 사람 생김새가 조금씩 다 다르듯이 명창들의 악기인 목소리, 울림통, 음색도 조금씩 다 다르게 마련이다.
판소리의 경우는 명창의 몸 일부분, 목 자체가 악기로서 머리와 감정에 그 신체 악기가 신경이라는 고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소리와 매우 미비한 감정의 변화도 음악 진행에 중요하고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이 연주자의 신체와 분리되어 있는 다른 악기들보다도 훨씬 다양한 음색과 그에 따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 명창의 성음이라고 하는 것은 악보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수치로도 나타내기 어려운, 듣는 이의 느낌을 최대한 말로 나타낸 것으로서 수리성, 철성, 발발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들이 있다.
또 같은 수리성이라 하더라도, 같은 철성이라 하더라도 모두 똑같은 느낌을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더 좋은 수리성, 조금 못한 수리성이 있고 아주 듣기 싫은 철성, 독특해서 듣기 좋은 철성 등으로 또 세분된다. 이는 같은 파란색이라 할지라도 진한 청색, 흐린 청색이 있고 같은 쪽빛 염색이라 하더라도 약간씩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떤 소리의 경우에는 명창들이 무어라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고 들으면 어떤 것인지 그 독특한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판소리 녹음을 악보로 채보했다 하더라도 그 녹음을 모르는 사람이 나중에 그 악보만 보고 노래를 할 경우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다른 서양의 성악 예술도 그렇지만 판소리의 경우는 그 편차가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판소리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가곡이나 범패와 같은 성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선조들의 소리 미학은 이와 같은 성악 예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대개 판소리에 가장 적합한 목 성음은 수리성이라고 명창들은 말한다. 그러나 수리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하면 정확하게 설명을 못한다. 소리가 청아하면서도 약간 쉰 듯한, 그러면서도 확실히 쉰 것은 또 아닌, 그런 게 수리성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뿐이고 또 그럼 누가 수리성이냐고 하면 선뜻 누구라고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필자가 수많은 명창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확실한 답변을 들은 건 박송희 명창이 수리성이라고 꼽은 단 한사람이 인간문화재 박초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우향 명창에게 지금까지 들어본 소리 중에서 가장 목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안향련의 성음이 가장 좋았다는 응답이 가장 시원스러운 답변이었다.
정확한 통계 수치로 나온 결과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여러 원로 명창들과 대담을 나누면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판소리 하면 우선 떠올리는 고정 관념인 팍 쉰 소리가 결코 우리 선조들이 선호했던 음색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성음이 판소리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던 수리성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보형은 판소리가 창우집단의 연희과정 속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은 바 있다.주11> 서울, 황해도, 평양, 내포 등 주요 상권을 중심 무대로 하여 서울 주변 지역인 경기, 충청, 황해도가 초기 창우집단의 광대소리를 이끌어 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판소리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황해도 지역까지 초기 판소리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정의 단서는 <병신타령> 등과 같은 판소리식 재담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를 뒷바침해 주는 근거로는 송흥록, 모흥갑 등 초기 판소리인들이 봉산, 멀리는 평양, 함경도에까지 가서 많이 활약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로는 이북 지역에서는 판소리를 쉰소리가 나는 쐑소리라 하여 싫어했다 하지만 판소리 발생 초기부터 중고제 생명의 끝자락인 일제 때만 해도 무척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박보아, 박송희 증언)주12> 이러한 점은 맑은 소리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이북 사람들의 성향에 맞는, 남도소리와는 거리가 있는 색다른 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제 때까지만 해도 경기 명창들이 서도소리를 단골 메뉴로 불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도소리에 가까운 모습의 판소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박하고 담백한 소리가 강세였고 극단적으로 쉰 소리 보다는 맑은 음을 선호했다. 특히 판소리 발생 초기로 갈수록 걸걸하고 팍 쉰 소리 보다는 우렁차고 시원하고 맑은 소리를 선호했다고 판단된다.
이는 초기 판소리 명창들이 <새타령>과 같이 맑고 고운 음색을 내는 성대 묘사 소리를 장기로 삼아 불렀다는 점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이런 사실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여 최초에 탄생한 판소리의 본모습, 광대의 본구실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양반들을 상대로 하지 않았던 초기 광대소리는 매우 해학적이고 서민 취향의 소리였을 것이고 그 기본 메뉴에 바로 병신 흉내, 짐승 모방 등이 속해 있었을 것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즉 <병신타령>, <새타령>, 장끼타령, <개타령>, 흥보가 중 <놀보 박타령>(병신들 나오는 데), 적벽가 중 <전동다리>가 바로 그런 초기 모습이 남아있거나 연장선 상에 있는 소리들이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지배층에 저항하는 뜻이 있다거나 권선징악을 사람들에게 알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판소리가 처음에 탄생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는 후대에 양반들이 광대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들 취향에 맞춰 각색을 해나간 결과이고 발생 초기에는 광대라는 신분에 걸맞는 그야말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유흥소리였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래가 바로 맑고 고운 음색의 <새타령>과 같은 성대 묘사 소리였고 음난한 <변강쇠타령>, 병신 흉내와 같은 짓거리였다고 생각된다. 자연히 맑고 고운 미성이 각광받았으리라 판단된다.
원로 명창들의 표현대로 ‘쉰 듯한’이 좋다는 것이지, 결코 팍 쉰 상태를 좋은 것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쉰 김치와 같이 자극성이 강한 음식에 우리 입맛이 익숙해진 게 몇 백년 안된 근대의 일이라고 하니 이런 맥락과도 우리의 소리 미학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쉰 듯한 음색이 가미된 성음을 선호했는가? 아마도 청아하기만 한 음색 한가지 요소만으로는 불안정하다고 느낀 것 같다. 단순 구조보다는 복합 구조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고 안정감을 준다고 느낀 듯하다.
청아한데다가 약간 쉰 듯한, 흠이라면 흠일 수 있는 상반된 요소가 가미되므로 해서 음양이 조화된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약간 쉰 듯한 음색이 상대적으로 청아한 음색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여긴 듯하다. 마치 이동백 자신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약간의 실수, 흠집들이 완전무결한 나머지 부분을 더욱 웅장하고 청아한 느낌이 나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얄미울 정도로 너무 극도로 청아한 소리는 거부감을 줄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약간 쉰 듯한 음색이 가미된 성음, 약간 미련이 남는 소리를 더 편안하게 느끼고 값어치 있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명창들은 목에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들뜨지 않고 안정된 상태의 음색, 그러면서도 이모저모 오미(五味)가 있는 종합 선물 세트 상태를 구성이 있다고 본다. 그 구성진 목에서 빠질 수 없는 요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쉰 듯한 음색인 것이다. 달고 맵고 짠 음색만 있어서는 무미건조하고 단순해서 안된다는 것이다. 쓰고 신 맛도 있어야 된다고 본 것이다.
서양에서는 고음을 중시하지만 우리나라 성악에서는 고음보다는 안정된 저음을 더 해내기 어려운 것, 더 멋있는 것,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서양의 무용은 최대한 높히 하늘을 향해서 추는 춤이 많고 발가락 하나라도 최대한 땅에 닿지 않게 하려는 동작이 많지만 우리의 무용은 땅을 향한다고 할 만큼 낮게 가라 앉히는 춤사위가 많은 것도 그와 같은 미학, 같은 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고음이 아무리 곱고 화려해도 그것만으로는 건조하고 그와 함께 바다와 같이 넓고 든든한 저음도 아주 좋아야만 암수가 잘 조화됐다고 여긴 것이다.
또 우리가 장승과 같은 조각이나 전통 건축물에 붙여져 돌출되어 있는 구부러진 나무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잘 생기면 잘 생긴대로 못생기면 못생긴 그 나름대로 가능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그 자체의 미학을 찾았다. 음악에서도 보면 수수하면 수수한대로, 환장할 정도로 빛이 나고 감칠 맛이 나면 나는대로 그 자체가 지닌 모습을 멋스럽게 여기고 향유할 줄 알았다.
판소리 하면 무조건 쉰 소리가 나게끔 모든 사람의 성대를 한가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풍토는 근래에 생긴 일이다. 옛 유성기음반이 이와 같은 점을 증명한다.
불과 몇 십년 전 녹음인데도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아주 다양한 판소리가 존재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처럼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명창들마다 색깔이 아주 독특하고 제각기 다 다르게 소리를 했다. 그렇게 다양함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특이한 점들을 귀명창들이 뷔페 요리 먹듯이 각각의 맛을 다 즐길 줄 알고 멋스럽게 여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고음이 아무리 곱고 화려해도 바다와 같이 넓고 든든한 저음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는 건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약간 쉰 듯한 느낌이 없고 극도로 고음만 곱고 청아한 철성은 판소리 하기에 좋지 않은 성음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철성에 가까운 서양의 소프라노, 플룻 음색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이게 동서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대금은 저음 단단하고 고음이 청아하면서도 플룻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갈대청이 장착돼 있어 문풍지 떨리듯 떨리면서 ‘쉰 듯한’ 독특한 수리성과 같은 음색이 있다. 이점이 플룻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대금만의 특징이다.
원로 명창들은 철성에 가까운 사람으로 판소리 명창 이중선, 소프라노 조수미 등을 꼽는데 철성이라고 해서 또 아주 안된다는 법은 없어서 6.25 때 월북한 판소리 명창 조상선도 철성이었으나 그의 철성은 귀명창들이 독특하게 느끼고 매우 즐겼다.
또 누구나 판소리를 하기에는 정말 안된다고 여겼던 정정렬은 수 십년 동안의 독공을 통해 그런 궂은 목의 단점을 극복하고 온갖 화려한 기교로 중무장하고 하산하여 귀명창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판소리나 산조나 음정이 불안하게 발발 떨리는 발발성은 치명적인 것으로 고치기도 어려운, 아주 안좋은 성음으로 보았으나 이 역시 또 백퍼센트 안된다는 법은 없다. 6.25 때 월북한 가야금 명인 정남희 같은 이가 발발성이었으나 그는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나 공력으로 중무장하고 어느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발발성이 가미된 아주 독특한 음악으로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것이 다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 우리의 심성이 아닐까? 음치도 노력하면 명창이 될 수 있는 환경, 획일화보다는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 어떤 최고의 가치에 이르지 못했다고 못난이 취급 당하거나 ‘왕따’ 당하지 않고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사회,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이룬 무릉도원이고 그런 정신이 우리의 음악 미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심성인가?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얼마나 아까운 우리가 잃어버린 보물인가?
그 중에서도 송만갑 가문은 특별히 목이 출중했고 지금은 맥이 단절되어 버린 가장 아까운 찾기 어려운 보물이 되고 말았다. 원로 명창들은 모두들 송만갑의 목구성은 판소리 하기에 적합하다는 수리성을 훨씬 능가하는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말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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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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