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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명창에게 듣는 동편제 판소리
(1992년 8월 13일 김소희 자택 증언, 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노재명 정리)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MI12LP-0560
명인명창선집(6) 동편제 판소리
한국고음반연구회 기획, (주)서울음반 제작 SOER-069(1LP 초판), 1992년 10월 1일 중고 유성기음반 복각 제작. 심의번호:9208-G301.
총 17쪽짜리 해설서 내장(김소희의 증언과 이보형·백대웅·노재명 등의 글, 사설 수록).
컴팩트디스크로도 발매되었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MICD-0408, 한국고음반연구회 기획, 서울음반 제작 SRCD-1064, 1CD 재판)
[앞면 28:30] 1.춘향가 중 옥중가(3:03)(송만갑) 2.단가 진국명산(3:26)(송만갑) 3.수궁가 중 고고천변(3:30)(송만갑) 4.단가 소상팔경(2:56)(송기덕)
5.춘향가 중 이별가(3:07)(송기덕) 6.춘향가 중 퇴령후(2:48)(이선유) 7.심청가 중 소상팔경(6:50)(이선유) 8.수궁가 중 새타령(3:00)(이선유)
[뒷면 29:26] 1.단가 진국명산(3:36)(장판개) 2.흥보가 중 제비노정기(3:21)(장판개) 3.단가 홍문연(6:33)(김정문)
4.흥보가 중 박타령(5:56)(김정문) 5.춘향가 중 적적공방(3:25)(박중근) 6.춘향가 중 동풍가(6:35)(박중근)
* LP 음반 해설서, CD 음반 해설서(4~5쪽) 기록 발췌: 김소희 명창에게 듣는 동편제 판소리(1992년 8월 13일 김소희 자택 증언, 노재명 정리)
동편제의 특징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대마디 대장단으로 소리를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서편제는 한 마디, 한 장단 안에서 변화가 많은데 비하여 동편제는 한 마디, 한 장단 안에서는 변화가 별로 없지만 여러 마디와 장단이 모이면 결국 전체적으로는 큰 선율의 변화가 생기게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소리를 끌고 나가다가 한번 씩 매두새(매듭)를 지어주는데 이때 매두새 처리를 잘해야 소리가 듣기에 좋습니다. 왜냐하면 동편제는 담담하게 쭉 펴서 소리를 하는 이유가 매두새를 멋있게 지으려고 한 것이니 이 매두새는 잔기교를 쓰는 다른 어떤 소리들보다도 잘 처리해야 하는 겁니다.
송만갑 선생님은 음정이 높고 돌덩이처럼 뭉친 소리를 하셨어요. 음을 높게 올려서 한참 돌덩이 같이 단단한 소리를 흔들고 휘어잡다가 밑에다 쾅! 하고 내려놓는 기법이 송 선생님의 장기였습니다. 또 송 선생님은 경조를 많이 사용했는데 선생님의 경조는 다른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독특했습니다. 그런데 송 선생님은 발림은 거의 안하셨고 가끔 손을 들뿐 뻣뻣하게 서서 소리만 하셨습니다.
송 선생님은 공력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매우 강하고 힘이 뭉친 소리를 하셨고 잔목을 쓰거나 소리를 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계속 소리에 양념을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잔꾀를 부리지 않고 소리를 쫙 펴서 담담하게 나가다가 가끔씩 양념을 쳐주는 겁니다. 그런 소리를 요즘 사람들은 맛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자주 들어보면 더 맛있는 소리이고 어려운 겁니다. 또 노력을 많이 해야 그 맛이 나올 수 있지요.
송 선생님 아들 송기덕씨는 젊어서 잠깐 소리를 했는데 소리가 곱고 싱싱하긴 했지만 공력이 별로 없어서 자기 아버지만큼 강인하거나 무르익은 맛은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틀은 자기 아버지와 같습니다. 제게 소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송만갑 선생님, 정정렬 선생님, 박동실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인데 그중에서 소리하시는 스케일이 가장 큰 분이 송 선생님이라고 생각됩니다. 목을 풀 때도 그렇고 소리를 하면 할수록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선유씨는 송 선생님의 기량은 못 되었지만 소리 법도는 참 좋은 분인데 진주에만 있다 보니 소리판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던 서울에 있는 청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장판개씨는 송 선생님에게 배우긴 했지만 맛이 조금 다릅니다. 장판개씨 나름대로 개성도 있었겠지만 송 선생님의 소리는 속에서 짜내는 소리고 장판개씨는 수월하게 내는 소리거든요. 장판개씨는 목이 아주 싱싱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목이 상해서 깨진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아들 장영찬도 목이 좋았습니다.
장판개씨는 원래 고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나 송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북을 치고 소리를 많이 들었던지 송 선생님의 소리를 거의 외우게 되었고 고수의 대우가 명창만 못한 것에 불만을 갖고 명창이 되기로 마음먹고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송 선생님께서 소리할 때마다 고수를 도맡았던 장판개씨는 아무 말 없이 송 선생님 곁을 떠나 독공에 들어갔고 송 선생님은 장판개씨가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을 했습니다. 후에 장판개씨가 독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송 선생님은 “소리 공부 할려면 내 앞에서 해야지” 하면서 장판개씨를 찾아 자신이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장판개씨는 명창이 되었고 송 선생님께서 아주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판개씨보다 먼저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정문씨를 장판개씨가 기량이나 인기면에서 앞질렀습니다. 장판개씨는 재주가 있어서 김창환씨의 발림을 보고 배워 발림도 아주 멋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장판개씨는 적벽가를 특히 잘했습니다.
장판개씨에게 배운 사람 중에 제가 깜짝 놀라게 잘하는 여자 명창이 있었는데 박씨였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위였는데 목소리가 아주 좋았고 역시 적벽가를 잘했어요. 그리고 발림도 아주 멋있어서 제가 그분에게서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지금도 살아있습니다만 소리 활동은 안하고 있습니다.
김정문씨의 소리는 송 선생님의 소리보다 장식음이나 잔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문씨는 목청이 연하고 가벼워서 송 선생님처럼 소리를 하면 힘이 모자라서 맛이 없으므로 좀더 기교를 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진주에 갔다가 이선유씨, 유성준씨, 박중근씨를 보았습니다. 소리 바탕은 모두 좋았습니다만은 거의 진주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기호가 조금 다른 서울의 청중에게는 이 분들의 소리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의 동편제 명창들의 소리는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고 담담하게 나가다가 가끔 맛을 돋구는 기교를 구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판소리는 잔기교, 잔목이 너무 자주 쓰이니까 극적인 맛이 옛 소리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잔기교에 익숙한 지금 명창들은 옛 명창들이 구사했던 자연스럽고 통이 큰 소릿길은 흉내 조차 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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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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