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는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지구레코드 JCDS-0575~0577, 3CD 박스물, 재판, 1997년 제작) 해설서 1~6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음반자료 관리번호 MICD-0175~0177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소리:김연수(도창)·박록주·김여란·박초월(월매)·김소희(월매)·장영찬(몽룡)·박봉선(춘향)·김경희(방자)·남해성(향단)·김득수(농부)·김동준(농부)
지구레코드 JCDS-0575~0577(3CD 박스물/재판), 1997년 4월 제작. 녹음:1968년, 총 56쪽짜리 해설서(글·사설 채록:노재명) 내장.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지구레코드가 제작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이다. 이 음반은 새로 녹음되어 나온 음반도, 복각 음반도 아니다. 국악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마스터 테입이 28년간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자고 있던, 즉 폐반되었던 음반이 재발매된 것이다.
이 음반의 초판은 1968년에 (주)지구레코드의 전신인 지구레코드공사에서 다음과 같이 5장의 장시간음반(5LP)으로 제작되었다.
地球레코드公社 LM-120235-1∼5, 唱劇 大春香傳 其一∼五
唱:金演洙, 朴綠珠, 朴貴姬, 金如蘭, 朴初月, 金素姬 外 名唱
其一 A面 廣寒樓서의 邂逅 B面 千字풀이 百年佳約
其二 A面 사랑歌 B面 月梅푸념 五里亭離別
其三 A面 新官到任 妓生點考 B面 十장歌 獄中歎息
其四 A面 春香便紙 佛供夢占 B面 農夫歌 御史逢變
其五 A面 獄中相面 御史出到 B面 結末
상기 내용은 이 음반의 초판 표지에 적힌 것을 원문 그대로 모두 옮겨 놓은 것인데, 이 음반에 대해 고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이것밖에 남아있지 않다. 지구레코드에도 이 음반에 대한 또다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국악 음반들을 보면 거의가 연주자에 대한 기록이 인색하며, 특히 고수 이름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음반의 초판 표지에 연주자들의 사진을 넣어 디자인을 했더라면 이 음반의 녹음자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음반의 초판 앞표지에는 신성일(몽룡)과 홍세미(춘향)가 주연한 영화 춘향전의 스틸 사진이 실려있다. 1961년에 신필름에서 제작하고 최은희(춘향), 김진규(몽룡), 한은진(월매)이 주연한 영화 성춘향이 대성공(관객: 37만명)을 거두자 사극 영화 제작 붐이 일어났다. 이 음반의 표지는 지금 보면 촌스럽게 생각되지만, 이 음반을 처음 낼 때에는 사극 영화가 인기도 있었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영화 춘향전의 스틸 사진을 쓴 것 같다. 이 음반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대도레코드, 신세기레코드의 창극 춘향전 음반, 민요 음반 등 여러 국악 음반에 영화 춘향전 스틸 사진이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때 국악 음반 디자인의 유행이었다.
이 음반의 초판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명창 외에는 기록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명창 이외의 녹음자를 밝히는 일부터 서둘렀다. 박귀희는 이 음반의 초판에는 녹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음반을 들어보니 박귀희의 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여러번 음반을 들어보니 이도령은 장영찬이, 춘향은 박봉선이, 방자는 김경희가, 향단이는 남해성이, 북반주는 한일섭, 김득수가 녹음한 것 같았다. 이 추측은 나중에 김소희, 박봉선의 증언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고 농부 역으로 김득수와 김동준이 녹음에 참여했음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김소희와 박봉선은 이 음반에 대해 많이 기억하고 있었고 남해성은 기억하는 바가 없었다. 김소희와 박봉선은 이 음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도창은 김연수 선생님께서 하셨고, 박록주 선생님과 김여란 선생님은 배역없이 특별한 대목들을 맡아서 녹음하셨고, 월매는 박초월 씨와 내가 번갈아 했고, 몽룡은 장영찬 씨가, 춘향은 박봉선 씨가, 방자는 내 동생 김경희가, 향단이는 남해성 씨가, 고수로는 한일섭 씨와 김득수 씨가 번갈아 반주했다. 박귀희 씨는 이 음반의 녹음시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음반에는 모두 쟁쟁한 사람들이 녹음을 했고 아무나 끼질 못했다. 이 음반에 말석에 끼었다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으나, 이 음반에 대명창들과 함께 녹음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1995.4.7. 서울시 중구 필동 제일병원 253호 병실에서 김소희 증언)
“지구레코드의 창극 춘향전 음반은 1968년 이른 봄에 서울 장충동에서 녹음하였다. 도창은 김연수 선생님께서 하셨고, 박록주 선생님과 김여란 선생님은 배역없이 특정한 몇 대목들을 녹음하셨고, 월매는 박초월 선생님과 김소희 선생님이 번갈아 하셨고, 몽룡은 장영찬 씨가, 춘향은 내가, 방자는 김경희 씨가, 향단이는 남해성 씨가, 농부는 김득수 선생님과 김동준 선생님이 하셨다. 김동준 선생님과 나는 김연수 선생님 전수생이었기 때문에 창극 춘향전 녹음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고수로는 한일섭 선생님과 김득수 선생님이 번갈아 반주했다. 박귀희 선생님은 이 음반 녹음시 제자들과 함께 일본에 공연하러 가셨기 때문에 녹음하시지 못했다.
<농부가>에서 농악 연주가 나오는데 한일섭 선생님이 호적을 연주하셨다. 그리고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장고는 김득수 선생님이, 북은 김동준 선생님이, 꽹과리는 장영찬 씨가 징은 소리를 녹음한 분 중에 한 분이 연주한 것 같다.
이 음반을 녹음하기 전에 김연수 선생님이 미리 짜놓으신 대본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마이크 앞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다가 자기가 맡은 대목이 나오면 마이크에 다가가서 녹음을 하였다. 이 음반은 2일간 녹음을 하였는데 첫 날은 녹음 연습을 몇 시간 하고 저녁 늦게 한 시간 가량 녹음을 하였다. 둘째 날에 나머지 녹음을 했다.”(1995.4.9.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꽃다방에서 박봉선 증언)
김연수가 미리 짜놓은 대본을 보면서 이 음반을 녹음했다는 박봉선의 증언대로, <기생점고>에서 박초월이 “행수기생 월선이∼” 할 때 대본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 음반이 김연수의 창본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김연수가 이 음반의 대본을 짠 것이 분명하다.
판소리가 창극으로 각색되어 꾸며질 때에는 판소리에서 불리워지는 대목들이 일부 삭제되기도 하고 판소리에 없는 대목들이 삽입되기도 한다. 김연수 춘향가 창본과 비교해 보면 이 음반에서는 <춘향이 이도령 만날 몽사를 얻는 데>, <춘향이 추천하는 데>, <금출지내력>, <춘향의 설부화용>, <그른 내력>, <춘향집 경치>, <해소식>, <퇴령 후>, <방안치레>, <춘향모가 음식을 장만하는 데>, <이도령이 춘향모에게 증서 써주는 데>, <비맞은 제비같이>, <하루 가고 이틀 가고>, <갈까 보다>, <행수기생이 춘향 부르러 가는 데>, <몽중가>, <기생 난향이 춘향을 달래는 데>, <쑥대머리>, <과거장>∼<어사 행장을 차리는 데>, <박석티>, <어사와 장모>, <사또 생일 잔치>, <옥사정이> 등이 삭제됐다. 그리고 김연수의 춘향가에만 있는 <만복사 찾아가는 데>와 <봉사가 춘향의 꿈을 해몽하는 데>를 삽입시켜 창극의 묘미를 살렸다. 또 3시간 정도로 제한된 음반에 창극을 녹음해야 했으므로 <사랑가>, <이별가>, <십장가>, <옥중가> 등이 간략하게 축소되었다.
이 음반이 처음 제작될 당시 지구레코드는 가장 큰 음반회사였고 문공부 등록 제1호 회사답게 당시로서는 드물게 많은 국악 음반을 제작했다. 특히 당시 국악계의 슈퍼 스타였던 김연수의 단가, 판소리, 창극 음반을 1966년부터 4년 동안 연달아 제작했다. 1966년에 김연수 판소리 다섯 바탕 눈대목 음반(5LP)이, 1967년에 『김연수 창본 춘향가』의 부록으로 김연수의 춘향가 중 초입부터 <광한루 구경>까지 담은 음반(소형 1LP)이, 1968년에 김연수가 총지휘한 국립창극단의 창극 춘향전 음반(5LP)이 지구레코드에서 제작되었다. 그리고 1969년 무렵에 지구레코드에서 제작된 단가집(2LP)에도 김연수의 <사철가>, <백구가>가 담겨있다.
이 음반은 1967년에 『김연수 창본 춘향가』가 발간되고 나서 몇 개월 후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김연수의 춘향가 창본 출판 기념 음반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고 당시 창극계에서 김연수가 얼마나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며, 국립창극단의 전성기인 1960년대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창극은 중국의 경극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공연 형태로서, 판소리 작품 속의 배역을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대형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창극은 1900년대에 원각사 등의 신식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는데, 1920년대까지만 해도 무대 시설 면에서나 연출 면에서나 여러모로 창극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일제 때 무대를 화려하게 꾸민 신파극 등이 이땅에 들어와 유행하게 되자, 판소리 명창들은 그에 맞서 창극 무대도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무대 시설을 꾸미는 데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1920년대까지는 별다른 무대 시설 없이 배역만 나누어 번갈아 부르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이 신선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1920년대 중반에 일축조선소리반에서 제작된 이동백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을 들어보더라도 창극이라고 하기에는 짜임새가 다소 허술한 면이 있다.
그러다가 창극다운 모습을 갖춘 것은 1930년대에 조선성악연구회가 생겨나면서 부터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무대 시설을 꾸미기 위해서나, 여러 명창들이 한데 모여 연습을 하기 위해서나 조직이 필요했고 그런 상황에서 조선성악연구회가 창극 활성화에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1930년대 창극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크게 성공한 데는 창극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정정렬의 공이 컸다. 정정렬은 창극에 필요한 소리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단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였고 직접 연출까지 했던 창극의 귀재였다. 정정렬이 타계한 후에는 그의 영향을 받은 정남희가 창극단을 이끌었다. 정남희가 광복 후 월북하자 김연수가 그 뒤를 이어 창극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일제 때 여류 명창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여성들로만 꾸며진 창극인 여성국극도 생겨났다.
한편 창극과 신파극의 대립 속에 판소리는 설 자리를 점점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창극이 크게 성행한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은 옛 소리제를 바탕소리로 익히려 하는 이가 드물었고, 창극을 위한 토막소리 몇 대목만 배우는 것이 유행했다. 1968년부터 1970년대에 박동진이 해마다 판소리를 완창하여 관심을 끌었고 완창 판소리 붐을 일으켰다. 박동진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 완창 붐 덕분에 판소리는 생존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창극은 판소리를 모태로 해서 태어났다가 창극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판소리를 쇠퇴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성악연구회와 같이 명창들이 하나로 뭉친 결속 단체가 없이 동일창극단, 김연수창극단, 조선창극단 등 수많은 창극 단체로 여러 명창들이 흩어졌고 거의 모든 창극단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광복 후에 창극단들이 많은 시련을 겪다가 비로서 자리를 잡은 것은 1962년에 국립창극단이 생긴 이후다. 국립창극단의 창립에 있어서 김연수의 공이 가장 컸다. 김연수가 1930∼50년대에 창극 활동을 하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얻어낸 결실이 곧 국립창극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창극단 창립과 함께 입단한 박봉선은 초창기(1960년대) 국립창극단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였다. “1962년에 김연수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국립창극단이 창립되었는데, 창립 초기에는 월급도 거의 못받고 모두 헌신적으로 일했다. 나는 국립창극단이 창립될 때 장영찬 씨와 함께 입단하였다. 그리고 창극을 별로 안좋아하셨던 김여란 선생님과 박봉술 선생님도 국립창극단 창립 초기에 잠깐 단원으로 합류하여 도창을 하신 바 있다. 박록주 선생님은 국립창극단에 들어가시지 않았다. 1960년대 국립창극단에서 김연수 선생님의 연기가 가장 뛰어났고 박초월 선생님은 월매 역을 잘하셨다. 김득수 선생님은 풍채가 근엄하셔서 노인 역을 잘하셨고 김동준 선생님과 나는 김연수 선생님의 전수생으로 국립창극단에 함께 있었다. 나는 김소희 선생님과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춘향 역을 맡아 공연한 바 있다. 장영찬 씨가 국립창극단 창립 때부터 1970년 무렵까지 이도령 역을 도맡아서 공연하였다. 장영찬 씨가 당뇨병으로 몸이 쇠약해진 1970년대 초반에는 박후성 씨가 이도령 역을 했고 장영찬 씨는 방자 역을 했다.”
일제 때부터 시대별로 많은 창극 음반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음반을 통해서 창극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유성기음반 시대에는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김정문, 정남희, 김연수가 주도적으로 창극 음반을 취입하였다. 1960∼80년대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창극 음반은 시대별로 크게 5기로 구분할 수 있다. 콤팩트디스크 시대에 들어서는 이렇다 할 창극 음반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1990년대 창극의 흐름은 안숙선을 간판 스타로 한 국립창극단이 이끌어가고 있다.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창극 음반 중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창극 음반이 1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박초월 사단(성우향, 한농선, 박봉선 등)이 거의 모든 창극 음반을 냈다. 그러다가 박초월 창극 일변도였던 창극 음반의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은 1968년에 지구레코드에서 제작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김연수가 나이가 들어 창극 활동을 못하게 되자 김소희 성우향 조상현(도창)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들이 안향련, 한농선 등과 함께 1970년대에 창극 음반을 주도적으로 냈다. 이 때의 창극 음반이 3기에 해당된다. 4기에는 1980년대 전반기에 녹음된 창극 음반들이 해당되는데 정권진(도창), 조상현, 안숙선 등이 녹음한 현대음반의 창극 춘향전 음반, 현대음반의 박동진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창극 음반들이 5기에 해당된다.
장시간음반 시대는 창극이 크게 유행한 시기다. 그래서 장시간음반 시대에는 국악 음반이 흔치 않게 제작된 중에도 창극 음반은 많이 제작되었다. 장시간음반 시대의 창극 음반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음반은 박초월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이다. 1960년대를 전후하여 신세기레코드, 대도레코드, 아세아레코드 등의 여러 음반회사에서 박초월 도창 창극 음반을 무려 40장 가량 제작하였다는 사실로도 박초월이 도창한 창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장시간음반 시대의 창극 음반 중에 1968년에 제작된 지구레코드의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5LP)이 가장 명반이고, 그 외에도 1960년 무렵에 대도레코드에서 나온 박초월 도창 창극 춘향전(5LP), 1970년대 초반에 제작된 현대음반의 김소희 도창 창극 춘향전(5LP), 장영찬 성우향이 도창한 창극 심청전(4LP), 김소희 도창 창극 흥보전(3LP),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아세아레코드의 성우향 도창 창극 춘향전(3LP)이 명반으로 꼽힌다.
지구레코드의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은 김연수, 박록주, 김여란, 박초월, 김소희와 같은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국창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창극 음반이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지만 이 음반은 특이하게 기악 반주로 녹음되지 않아 매력있다. 기악 반주를 바탕에 깔고 창극을 하는 것은 일제 때에도 있는 일이었으나, 광복 후에 크게 유행하여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창극 음반은 거의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다. 그런 유행은 판소리에도 영향을 끼쳐 판소리 음반도 한때 기악 반주로 녹음되었다.(그런 예로는 오아시스레코드의 안향련 심청가 음반, 대성음반의 한농선 흥보가 음반이 있다.) 그러나 기악 반주가 소리하는 데 있어서나, 소리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나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리꾼의 소리만 찬찬히 듣고 싶어하는 청자에게는 기악 반주가 오히려 소릿길을 가로막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단촐하게 북 하나만으로 반주된 지구레코드의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은 매력이 있다.
장시간음반 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창극 음반들은 연출을 맡고 지휘하는 김연수와 같은 구심점이 없거나 충분한 연습 시간이 없이 급조되었다. 그래서 녹음자끼리 호흡이 안맞아서 어색한 면이 있다. 이 음반을 녹음한 사람들은 대부분 국립창극단에 함께 있으면서 수없이 공연을 하였기 때문에 서로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 이 또한 이 음반이 지닌 장점이라 하겠다.
1960년대에 5장짜리 음반이면 흔히 전집으로 분류한다. 아무리 큰 회사라도 당시에 거물급 명창들이 대거 참여한 전집물의 기획은 엄청난 모험 투자였을 것이다. 다행히 이 명반을 만들어낸 지구레코드의 노력 만큼이나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했다. 이 음반의 초판이 근래까지 청계천 일대의 중고 음반 상점에서 여러차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국악 음반이 별로 팔리지 않았던 1960∼70년대에도 비교적 많이 팔린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여러 음반회사에서 ‘창극 대춘향전’이라는 음반 제목으로 여러 장 제작한 바 있다. 그래서 이 음반을 재발매하면서 다른 음반과 구별되게 제목을 ‘창극 대춘향전’에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이라 바꿨다. 그리고 콤팩트디스크는 장시간음반 보다 많은 분량의 녹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5장의 장시간음반으로 나왔던 초판을 3장의 콤팩트디스크로 편집하여 재발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표지 디자인도 바꿔 영화 배우 사진 대신에 1971년 무렵의 국립창극단 사진으로 교체하였다.
1968년에 발매된 이 음반의 초판에는 ‘제1회 공보부 주최 무궁화상 시상에서 제작대상과 4개 부문 수상’, ‘제13회 서울특별시 우량공산품 시상에서 연년 최우수상 수상’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상들은 이 창극 춘향전 음반으로 수상하게 된 것이 아니라 지구레코드가 이 음반을 내기 전에 받은 상들인데 자랑삼아 표지에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지구레코드가 제1회 공보부 주최 무궁화상 시상에서 제작대상과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한 것은 1966년 12월의 일이다. 그리고 ‘제13회 서울특별시 우량공산품 시상에서 연년 최우수상 수상’이라는 것은 1967년, 1968년에 각각 열린 제12, 13회 서울특별시 우량공산품 시상에서 연년 최우수상 수상을 했다는 말이다.
1967년 7월에 지구레코드가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233번지에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시설을 갖춘 공장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 음반은 바로 그 공장에서 1968년 봄에 제작된 만큼 당시로서는 최상의 품질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녹음에 있어서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인 최성락이 운영한 장충녹음실에서 녹음되었다. 전체적으로 녹음이 잘 되었으나, 녹음기사가 창극을 녹음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옥의 티가 몇가지 발견된다. 고수의 북반주와 추임새가 너무 작게 녹음된 점, 명창들의 녹음 크기가 일관성이 없이 녹음자에 따라 크거나 작게 녹음된 점이 옥의 티로 지적된다.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여란의 녹음이다. 김여란은 일제 때 빅타 음반회사에서 유성기음반을 몇 장 취입한 바 있고 지구레코드에서 제작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음반(5LP)에 판소리 몇 대목과 단가집(2LP)에 두 곡의 단가를 녹음했지만, 독집 장시간음반은 남기지 않았다. 인간문화재들이 문화재관리국에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을 기록 보존용으로 녹음했을 때에도, 김여란은 자신이 보유했던 춘향가 전바탕을 녹음하지 못했다. 김여란은 녹음을 무척 싫어했고 본래 창극 활동은 잘 안했기 때문에 이 창극 음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김여란이 어떻게 이 음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만다행으로 이 음반에 녹음이 드물기로 유명한 김여란의 <방자 나귀 안장 짓는 데>, <이별가 초두>, <신연맞이>가 담겨있다. 비록 토막소리 몇 대목이지만 김여란이 장시간음반 시대에 음반용 녹음으로는 유일하게 남긴 판소리 대목들이다. 따라서 김여란의 판소리를 가장 깨끗한 음질로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이다. 그리고 요절한 명창 장영찬의 소리 또한 이 음반에서 주목되는 녹음이다.
초판이 나온지 27년만에 재발매되다 보니 이 음반의 녹음에 참여한 인간문화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어느덧 모두 작고하고 말았다. 이렇게 뒤늦게 나마 나올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요, 마스터 테입이 깨끗하게 남아있었던 것도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김소희 명창은 이 음반의 재발매 작업을 하고 있는 중에 작고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필자는 이 음반에 대해 물으려고 그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에 누워 투병 중인 모습을 보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그밖에는 증언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는 박봉선도 연락이 닿지 않을 때였다.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면 자신이 하던 일에 더 집착하게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병세가 안좋은 때였으나 기억력은 여전히 좋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음반을 손에 쥐고 기억을 되살려 가며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그는 이 음반을 듣고 싶다 했다. 결국 그는 다시 듣고 싶다던 이 음반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음반은 김소희 명창이 그의 팬들에게 유서처럼 마지막으로 증언해준 음반이자, 마지막 온정을 남기고 간 음반이 되고 말았다.
이 음반은 판소리를 공부하는 학도나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창극사를 이해하고 대명창들의 소리제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 구실을 할 것이며, 귀명창들에게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1세대들의 기량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감상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음반은 광복 이후의 창극 음반 가운데 가장 명반으로 꼽히는 기념비적인 음반이라 여겨 여러 음악 애호가들에게 필청을 권하는 바이다.
|
| 2006-08-15 |
|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