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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뿌리깊은나무 1977년 8월호](서울:뿌리깊은나무) 52~59쪽에 실린 글로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대 판소리 관계 글 가운데 명문으로 선정하여 여기 재수록함.
* 이 글에는 1990년 이보형 발표 논문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연구” [한국전통음악 논구](서울: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83~111쪽)의 신호탄 격이라 할 만한 매우 탁월한 의견, 판소리 발생론 등이 담겨있음.
그리고 이는 학자뿐 아니라 판소리 애호가, 학생들이 판소리 전반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적극 권하고 싶음.
과거 원문에 일부 나타나 있는 오자를 올바로 수정하여 여기 실었음을 밝힘. 컴퓨터 입력/교정/편집:국악음반박물관(http://www.hearkorea.com)
* 상기 사진 자료:'평양감사 환영연도'의 10폭 병풍 속에 그려진 모흥갑 판소리도.
민중 예술 판소리
글/이보형(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고문,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소리’라는 말은 요즘에는 음향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노래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김매기소리, 방아소리, 판소리, 선소리, 짓소리, 상여소리와 같은 말들에서 쓰이는 소리는 노래를 가리킨다.
김매기소리는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방아소리는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방아소리는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상여소리는 상여를 메고 나가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선소리는 여러 사람이 서서 소고라는 작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짓소리는 절에서 스님들이 제를 지내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그럼 판소리는 어떤 노래일까? 판소리는 옛날에 창우, 광대 또는 가객이라 불리던 가수들이 ‘놀이판’에서 긴 이야기로 ‘판’을 짜서 부르던 노래이다. 그리고 소리 곧 노래를 부를 뿐만 아니라 ‘아니리’라 하여 노래 사이에 말을 곁들이기도 하고 ‘발림’ 또는 ‘너름새’라 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몸짓을 곁들이기도 한다. 따라서 음악뿐만이 아니라 무용과 연극의 요소가 한꺼번에 연출된다.
놀이판은 어떤 것일까? 놀이판이란 말은 요새 사람들에게는 낯선 말일 것이다. 오늘날에는 음악이 연주 회관의 무대나 방송국의 스튜디오에서 연주되고 있지만 팔십년 전까지만 해도 방이나 대뜰이나 마당에서 연주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음악은 방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대뜰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마당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저마다 특성을 달리하여 서로 구분되었다.
방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방중악’이라고 하였는데 거문고, 세피리, 양금, 단소와 같이 음량이 적은 악기들로 편성되었으며 줄풍류와 가곡처럼 점잖은 음악을 그 대표되는 음악으로 꼽을 수 있다.
대뜰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전정악’이라고 하였는데 궁중의 엄숙한 제사 음악이나 장중한 의식 음악을 그 대표되는 음악으로 꼽을 수 있다.
마당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주로 마을의 큰마당이나 도시의 장마당을 떠돌며 연희를 하던 ‘놀이패’들이 연주하던 것으로 꽹과리, 북, 징, 호적, 향피리와 같이 음량이 큰 악기를 사용하는 떠들썩하고 구성진 음악이고 무용, 연극, 곡예 따위의 갖가지 놀이도 곁들여 연출된다.
마당에서 베풀어지는 놀이는 그 종류가 대단히 많았다. 놀이패가 그 많은 놀이를 모두 연출하는 것이 아니고 놀이에 따라 놀이패도 저마다 따로 있었다.
긴 나무를 높게 세운 ‘솟대’에 올라가서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솟대쟁이패’도 있었고, 소고라는 조그마한 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춤을 추던 ‘사당패’도 있었고, 젓대나 해금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던 ‘풍각쟁이’도 있었고 집집마다 돌면서 농악으로 고사굿을 쳐주던 ‘걸립패’도 있었고 탈을 쓰고 익살을 부리던 ‘초라니패’도 있었고, 그 밖에 ‘남사당패’, ‘각설이패’, ‘날탕패’, ‘짠지패’와 같이 많은 놀이패가 있었다.
그 중에 소리하는 소리광대와 줄타는 줄광대와 재주 넘는 재인과 삼현을 치는 잽이와 춤추는 무동들로 구성된 놀이패가 있었는데 이들은 ‘창우’라 불리었다. 이들은 상고 시대에는 ‘국선’으로서 국가의 제사 의식을 집행하였고 고려 시대 뒤에도 잡귀를 쫓는 의식인 나례와 불교 의식인 연등회와 같은 때에 춤과 음악과 여러 가지 놀이를 연출하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솜씨가 다른 놀이패와 비교가 안되게 우수했다. 판소리는 이들이 짜내는 놀이판에서 불리던 소리였다.
어떤 종류의 놀이패든지 구경꾼이 한바탕 흥겹게 구경할 수 있도록 놀이를 갖추고 다녀야 되는데 한나절 또는 밤새도록 긴 놀이를 베풀려면 놀이의 내용에 어떤 변화가 있게 짜야 된다.
이것을 가리켜 ‘판을 짠다’고 하며 이런 놀이가 벌어지는 자리를 ‘놀이판’이라고 불렀다. 놀이판에서 판을 짜서 베푸는 놀이를 ‘판놀음’ 또는 ‘판놀이’라고 불렀다.
‘판놀음’은 그 놀이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굿(농악)을 치면 ‘판굿’이라 불렀고, 줄을 타면 ‘판줄’이라 불렀으며, 소리를 하면 ‘판소리’라 불렀고, 춤을 추면 ‘판춤’이라 불렀으며, 염불을 하면 ‘판염불’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판소리는 바로 놀이판에서 판을 짜서 부르는 소리 곧 마당에서 구경꾼들에게 한바탕 구경하도록 길게 짜여진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소리라는 말은 토박이말이고 한문으로 쓰인 옛 글에서는 타령, 잡가, 창가, 극가, 본사가 따위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판소리는 요즘에나 옛날에나 가수 한 사람이 창옷을 입고 통영갓을 쓰고 한 손에 줄부채를 들고 다른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돗자리 위에 서서 소리를 했고 그 옆에는 북치는 고수가 북을 앞에 놓고 앉아서 가수의 소리에 맞추어 북장단을 치며 ‘얼시구’, ‘좋다’ 하고 소리치며 추임새를 했다.
오늘날에는 판소리 한 마당이 짧으면 네 시간, 길면 여덟 시간이나 걸려 불리게 되므로 줄타기나 땅재주와 같은 다른 놀이를 곁들일 필요가 없다. 또 판소리는 다른 놀이보다 우수한 예술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판소리가 우수한 예술로 꼽히기 시작한 것은 조선 영조 뒤부터인 듯하다. 왜냐하면 타령이니 잡가니 창가니 하는 말이 그 이전의 문헌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그 이전에는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던 듯하다. 왜냐하면 판소리, 판줄, 땅재주 따위를 연출하던 창우들의 놀이인 창우희는 아주 옛날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찌하여 영조 이전에는 판소리가 문헌에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그 이유가 영조 이전에는 판소리가 땅재주, 판줄, 죽방울 따위의 다른 놀이에 끼어 연출될 만큼 두드러진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익살스러운 재담과 몸짓거리를 잘하는 광대가 다른 놀이의 사이사이에 한바탕 아니리와 소리로 흥을 돋구었던 그런 정도였으며 이것을 옛 기록에는 ‘광대소학지희’라고 썼다.
그런데 이런 소학지희 때에 잠깐 벌이는 재담이 아니고 좀 길게 연출될 기회를 갖게 되면 아무래도 길다란 이야기로 판을 짜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로 판을 짜는 것은 판놀음 말고도 이미 마을의 놀이인 ‘대동놀음’이나 ‘별신굿’에도 있었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이야기가 그리 긴 것이 아니면 한 가지만이 아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출할 수 있었을 테니 옛날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판소리로 불렸던 것 같다. 이 가운데 열둘을 골라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불렀다.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열둘을 꼽는 데에는 그 내용이 꼽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드나들었었던 것 같다. 대체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릉 매화타령, 무숙이타령을 꼽았고 마지막으로 가짜 신선타령을 꼽기도 했고 최근에는 숙영낭자전을 꼽기도 했던 것 같다.
이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는 지금도 노래로 불리고 있으므로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고 부르고 있고,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은 사설만이 이야기책으로 전해지며, 강릉 매화타령, 무숙이타령, 가짜 신선타령은 이름만 전할 뿐이고 사설은 전하지 않고 있다. (편집자 주: 이 글 발표 이후 무숙이타령 사설 발견되었음)
판소리 열두 마당에 꼽히는 춘향가, 흥보가, 적벽가와 같은 소리들의 이야기 줄거리가 춘향전이니 흥보전이니 삼국지니 하는 옛 이야기책으로도 전하고 있으니 판소리 사설과 조선 시대의 이야기책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적벽가가 중국의 유명한 소설인 삼국지의 이야기를 노래한 것으로 봐서 춘향가나 흥보가와 같은 판소리가 춘향전이나 흥보전과 같은 조선 시대의 소설을 판소리로 짜서 부른 것이라고 얼핏 짐작할 것이다.
한 때는 국문학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에 따라 춘향전, 흥보전과 같은 소설이 오히려 광대가 부르던 판소리를 이야기로 적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이나 김만중이 지은 구운몽과 같이 처음부터 소설로 지은 이야기책과 춘향전과 같이 판소리 사설을 적은 이야기책과는 어떻게 다를까? 국문학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수백 가지에 이르는 조선 시대 소설들의 내용을 보면 거의가 귀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어렵게 자라면서 역경을 이기고 나라에 공을 세운다든지 부모에 효도한다든지 하는 이야기 줄거리를 지니고 있지만 판소리 사설을 이야기로 꾸민 소설들은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이 먼저 생긴 적벽가와 숙영낭자전을 빼면 판소리의 사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이 귀한 집 출신이 아니고 조선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이거나 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이다.
춘향전, 배비장전, 강릉 매화타령, 무숙이타령에서 나오는 기생, 변강쇠타령에 나오는 옹녀, 심청가에 나오는 뺑덕어미들은 모두가 밑바닥의 여자들이며 흥보가에 나오는 놀보, 옹고집타령에 나오는 옹고집, 춘향가에 나오는 변학도들은 욕심 많고 심술궂은 사람들이며 변강쇠, 무숙이, 장끼들은 술 잘 먹고 쌈 잘 하는 사람들이며 흥보, 심봉사, 심청이, 배비장, 까투리들은 순박한 평민들로서 고대 소설의 등장 인물과 다르다.
또 판소리의 이야기의 내용도 고대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보다 밑바닥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을 그리고 있어서 더 인간미를 풍기고 있다. 서민적인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점도 다른 고대 소설과 다른 점이다.
이와 같이 판소리의 이야기가 고대 소설의 이야기와 다른 까닭은 고대 소설이 안방이나 사랑방에서 목청 좋고 입심 좋은 사람이 소리내어 읽는 이야기였던 데에 반하여 판소리는 놀이판에 모인 구경꾼들에게 소리 광대가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내던 이야기로서 이들이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겨났고 또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연출되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이야기책으로 읽혔지 않느냐 하는 반론이 있겠으나 이것들이 소리 광대의 사설을 한글로 적은 것이거나 그것을 다시 편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수긍이 갈 것이다.
판놀음에서 다른 놀이에 끼여 겨우 놀이 구실을 하던 판소리가 점점 소리의 내용이 충실해짐에 따라 민중과 상류 사회의 눈을 끌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 조선 중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본디는 재담으로 엮는 아니리의 사이에 짧은 토막 소리를 군데군데 끼어 넣었는데 소리의 음악적인 특성이 발달함에 따라 구경꾼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낼 만큼 표출력이 커지므로 민중뿐만 아니라 선비와 부호들, 더 나아가 벼슬아치들도 즐기게 되었다. 따라서 판소리는 판놀음에서 다른 놀이를 제쳐 놓고 가장 뚜렷한 존재로 나타났다.
소리의 표출력이 커짐에 따라 아니리를 길게 엮는 것보다 아니리 사이에 한바탕씩 소리를 하도록 소리를 길게 짜게 되고 토막 소리를 길게 늘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니리 중심이 아니라 소리 중심이 되어 요즈음과 같이 길게 되었다.
한바탕씩 소리를 하도록 긴 소리를 짜려면 새로 사설을 지어야 하는데 판소리를 즐기던 선비나 한량들이 사설을 짓는 데에 협력했음직하다.
따라서 외설스럽고 익살스러운 육담이 뒤범벅이던 판소리 사설에 유식한 문구나 유명한 시귀를 집어넣어 판소리 사설은 밑바닥의 육담들과 선비들의 문구들이 묘하게 뒤섞여지게 되었다. 이것을 가수들이 갈고 닦아서 점점 풍부한 문학성이 배어들게 되었다.
판소리가 훌륭한 예술로 성장한 까닭은 소리의 표출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소리의 음악적인 표출은 판소리의 사설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극적인 상황에 맞춘 장단, 조 및 선율의 변화에 따른다. 판소리의 장단과 조가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기는 아마 조선 시대의 순조 뒤부터일 것이다.
오늘날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가 있고 그 밖에 자주 쓰이지 않지만 엇모리와 엇중모리라는 장단이 있다.
진양은 매우 느린 여섯 박자의 장단이며 빠르기에 따라 느린 진양, 평 진양, 자진 진양으로 나뉜다. 진양은 느린 장단이므로 소리가 매우 부드럽고 길어서 한가하거나 서정적인 대목에 흔히 쓰인다.
예를 들면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며 아늑한 정원의 경치를 구경하는 대목이라든지 심청가에서 심청이가 황후가 된 뒤에 소식이 끊어진 눈먼 아버지를 생각하고 가을밤에 정원에 비친 달을 보며 탄식하는 대목들을 진양으로 소리한다.
중모리는 보통 빠른 빠르기의 장단으로 열두 박자이다. 빠르기에 따라 느린 중모리, 평 중모리, 단중모리로 나뉜다. 보통 빠르기의 장단인 만큼 여느 사연을 서술하는 대목에 흔히 쓰이며 또 진양과 같이 서정적인 대목에도 쓰인다.
예를 들면 심청가에서 어린 심청이가 심봉사에게 자기가 구걸을 다니겠다고 말하는 대목이라든지 흥보가에서 놀보가 흥보에게 나가라고 하니 흥보가 놀보에게 비는 대목을 중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중중모리는 빠른 열두 박자이나 실제는 세 박자를 하나로 쳐서 보통 빠르기의 네 박자로 춤가락을 느끼게 하는 장단이다. 중중모리는 빠르기에 따라 느린 중중모리, 평 중중모리, 휘 중중모리로 나뉜다. 중중모리는 흥겹게 춤추는 대목이나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대목에 흔히 쓰인다.
예를 들면 춘향가에서 어사 출도 뒤에 춘향의 어머니가 ‘얼씨구나 절씨구’ 하며 춤추는 대목이라든지 흥보가에서 박 속에서 나온 비단을 들고 흥보가 춤추며 비단 타령을 부르는 대목이라든지 심청가에서 선인들에게 팔려 가는 심청을 붙들고 심봉사가 통곡하는 대목을 중중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자진모리는 빠른 네 박자이다. 빠르기에 따라 느린 자진모리와 자진 자진모리로 나뉜다.
느린 자진모리는 어느 사연이나 사물을 열거하는 대목에 쓰인다. 예를 들면 흥보가에서 놀보 심술을 나열하는 대목이라든지 춘향가에서 변학도가 갖가지 절차를 차리고 남원으로 부임해 가는 대목을 느린 자진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자진 자진모리는 어떤 일이 매우 긴박하게 벌어지는 극적인 대목에 쓰인다. 예를 들면 춘향가에서 어사가 출도하는 대목이라든지 심청가에서 인당수에 바람이 부는 대목이라든지 적벽가에서 적벽대전이 벌어지는 대목을 자진 자진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휘모리는 매우 빠른 네 박자이다. 휘모리는 빠르기에 따라 휘모리와 단모리로 나누기도 한다. 휘모리는 판소리에서 가장 빠른 장단으로 어느 일이 매우 분주하게 벌어지는 대목에 쓰인다.
예를 들면 춘향가에서 사령들이 달려들어 춘향이를 동헌 마루에서 뜰 아래로 끌어 내리는 대목이라든지 흥보가에서 흥보가 박 속에서 돌과 쌀을 정신없이 퍼 나르는 대목을 휘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엇모리 장단은 매우 빠른 세 박자와 두 박자가 뒤섞인 열 박자로 매우 색다른 느낌을 준다. 엇모리 장단은 신선, 도사, 중, 범, 장군과 같은 신비한 인물이 나타나는 대목에 쓰인다.
예를 들면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개천물에 빠졌을 적에 중이 나타나 건져 주는 대목이라든지 수궁가에서 용왕을 진맥하러 신선이 나타나는 대목을 엇모리 장단으로 소리한다.
엇중모리는 보통 빠르기 여섯 박자로 매우 드물게 쓰이는데 중모리의 경우와 같이 여느 사연을 말하는 대목이나 판소리 맨 끝의 뒷풀이에 쓰인다.
이를테면 춘향가에서 춘향 어머니가 이몽룡에게 춘향이 출생한 내력을 말하는 대목이라든지 수궁가에서 까마귀가 제 근본을 말하는 대목을 엇중모리로 소리한다.
오늘날 판소리에 쓰이는 조에는 우조, 평조, 계면조, 경드름, 설렁제 등이 있다. 그 밖에 메나리조, 추천목이 있으나 드물게 쓰인다.
우조는 호령조라고도 부르는데 웅장하고 호탕한 느낌을 준다. 판소리에서 우조와 평조는 시조와 가곡과 같은 정악의 선율과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우조는 장엄한 정경이 벌어지거나 큰 인물이나 남성적인 인물의 거동을 그리는 대목에 쓰인다.
이를테면 적벽가에서 유비, 관우, 장비의 세 형제가 늠름한 모습으로 공명을 찾아가는 대목이라든지 춘향가에서 변학도가 위풍이 당당하게 차비를 차리고 남원으로 도임하러 내려오는 대목을 우조로 소리한다.
평조는 화창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판소리에서 평조는 화창하고 명랑한 정경이 벌어지는 대목에 쓰인다.
이를테면 심청가에서 황제가 꽃을 사랑하여 정원에 온갖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노래한 <화초타령>이라든지 흥보가에서 흥보 집에 봄이 오니 꽃이 피고 제비가 날아 드는 대목을 평조로 소리한다.
계면조는 서름조라고도 부르는데 슬픈 느낌을 준다. 계면조는 전라도 민요 및 무가의 선율과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 계면조는 슬픈 정경이 벌어지거나 아랫 사람이나 여자의 거동을 그리는 대목에 쓰인다.
이를테면 춘향이가 매를 맞고 옥에 갇혀서 세월을 보내며 이몽룡을 생각하고 슬피 탄식하는 대목이라든지 심청이가 선인들을 따라가며 슬피 탄식하는 대목을 계면조로 소리한다.
경드름은 경제 또는 경조라도고 부르는데 <창부타령>이나 <도라지타령>과 같은 경기도 민요의 선율과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 경드름은 서울 사람이나 한량들의 말투가 나오는 대목에서 쓰인다.
이를테면 춘향가에서 이별을 서러워하는 춘향을 이몽룡이 달래는 대목이라든지 또한 춘향가에서 춘향이 매맞는 거동을 보고 한량들이 사또를 원망하는 대목을 경드름으로 소리한다.
설렁제는 덜렁제, 드렁조, 권마성제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설렁제는 벼슬아치들이 행차할 때에 하졸들이 길게 빼어 부르던 소리인 권마성에서 나왔다고 한다. 판소리에서는 군로 사령, 사냥꾼, 뱃사람들과 같이 무사 같은 사람들이 크게 외치며 거드럭거리는 대목에 쓰인다.
이를테면 춘향가에서 군로 사령들이 춘향을 잡으러 가며 떠드는 대목이라든지 흥보가에서 놀보가 제비를 기다리다가 답답하여 사냥꾼들을 데리고 산으로 제비를 잡으러 가는 대목을 설렁제로 소리한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사설의 극적인 상황에 따라서 한가한 대목은 느린 장단, 긴박한 대목은 빠른 장단, 슬픈 대목은 서름조, 웅장한 대목은 호령조를 써서 표출력이 높은 예술이 됨에 따라 지방의 부호와 수령 방백이 즐겼을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임금 앞에서도 연출되었다.
그래서 판소리 가수로 이름을 얻으면 다른 놀이의 연희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보수를 받게 되고 예술인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므로 판소리 가수들은 저마다 솜씨를 쌓아 국창의 이름을 얻고자 다투어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또 유명한 판소리 가수는 어느 대목을 자기에게 맞도록 새로운 음악적인 특징을 살려서 작곡하여 그것을 자기의 장기로 삼아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그와 같이 어느 명창이 평생 동안에 걸쳐서 갈고 닦아 그의 독특한 장기로 전해오는 대목을 ‘더늠’이라고 부른다. 유명한 명창들의 더늠은 후대 명창들이 이어 오고 또 후대 명창의 새로운 더늠들이 쌓여 오늘에 전하는 판소리는 대목대목에 유명한 명창들의 더늠이 모여 있게 되었다. 이 더늠들은 유명한 명창이 평생을 두고 갈고 닦은 대목인 만큼 훌륭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도 순조 무렵에 활약한 유명한 명창들의 더늠이 전하니, 이를테면 권삼득의 더늠으로 흥보가에서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대목, 송흥록의 더늠으로 춘향가에서 <옥중가>, 고수관의 더늠으로 춘향가 중에서 <자진 사랑가>와 같은 것들이 있다.
판소리 명창들은 거의가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와 경기도 남부에서 나왔다. 넓은 지역에 판소리가 긴 세월에 걸쳐 전승되다 보니 지역적인 특성이 전해지게 되고 또 지역마다 그 지방 출신 명창들의 더늠이 따로 모이게 되어 지역의 전승 계보에 따라서 음악의 특성을 달리하게 되었으니, 크게 나누어서 전라도 동쪽 소리제와 전라도 서남쪽 소리제와 경기-충청 소리제로 나뉜다.
전라도 동쪽 소리제는 동편제라고도 불렀는데 운봉, 순창, 정읍, 고창과 같은 전라도 동북부 지방에서 전승되던 소리제로 우조 대목을 잘하며 소리를 굵직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순조 때의 명창인 송흥록의 소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동편제의 뛰어난 명창으로는 철종 때의 명창인 박만순, 김세종, 장자백과 고종 때의 명창인 박기홍, 송만갑, 유성준 등이 있다. 동편제에서는 우수한 적벽가와 수궁가를 남기었다.
전라도 서남쪽 소리제는 서편제라고도 불렀는데 보성, 광주, 해남과 같은 전라도 서남부 지방에서 전승되던 소리제로 계면조 대목을 잘하며 소리를 교묘하게 꾸미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서편제 소리는 순조 때의 명창인 박유전의 소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서편제로 이름난 명창으로는 철종 때의 명창인 이날치, 정창업, 고종 때의 명창인 김창환, 김채만 등이 있다. 서편제는 우수한 심청가를 남기었다.
경기-충청 소리제는 예스럽고 소박하며 윗소리와 아랫소리가 분명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소리제로 이름난 명창으로는 순조 때의 명창인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김제철 등이 있고 철종 때의 명창인 한송학, 김정근, 김석창과 고종 때의 명창인 김창룡 등이 유명했었으나 지금은 이 소리제가 끊겨져 버렸다.
이처럼 판소리에 더늠이 불어나서 그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한 가수가 보유할 능력에 한계가 생겨 옛날처럼 열두 마당을 모두 닦을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한 사람이 대여섯 마당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되도록 민중이나 지방의 부호나 수령 방백에게 두루 인기가 있는 마당만을 공부하게 되므로 다른 마당은 점점 도태되고 오늘날에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만 전승되게 되었다.
다른 마당이 없어진 대신에 지금 남아 있는 다섯 마당은 뛰어난 명창들이 갈고 닦아서 사설의 문학성으로나 선율의 음악성으로나 훌륭한 예술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는 이미 판놀음의 딴 놀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판을 벌였고, 마당에서 뿐만 아니라 관아의 대뜰이나 대가집의 대청에서도 판을 벌였다.
일반 민중과 달리 판소리를 높게 이해하는 수준 높은 청중을 확보하여 고도의 예술이 됨에 따라 명창들은 일반 민중 앞에서는 아니리 중심의 쉬운 소리로 판소리를 엮어가고 소리 듣는 귀가 높은 청중에게는 더 정교한 소리를 중심으로 하여 짜게 되었다.
큰 보수는 소리 듣는 귀가 높은 청중에게 나오므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소리 중심의 판소리만 배우게 되어서 오늘날에는 판소리가 연극성보다는 음악성이 더욱 두드러진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그 뒤 고종 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각사라는 현대 극장이 세워지자 일본에서 ‘가부끼’를 보고 온 이인직이 무대에서 판소리 가수들에게 배역을 나누어 맡아 판소리를 부르게 하였는데 이것을 ‘창극’이라고 불렀다.
창극은 인기가 대단하여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전통 판소리 뿐만 아니라 치악산과 같은 많은 창작 창극이 생겼다. 일제 시대에는 무수한 창극 단체가 생기고 여기에 많은 판소리 가수들이 몸을 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판소리 가수들은 정통 판소리를 수련하는 것보다 새로 창작되는 창극의 대사와 거기에 날림으로 붙여진 소리를 익히기에 나날을 보내게 되어 순수한 판소리의 전승이 어렵게 되었었다. 이렇게 날림으로 지어진 소리를 ‘창극 소리’라고 부르는데 이 소리에 물든 판소리 가수들이 판소리를 창극 소리조로 불러서 정통적인 가락을 망치는 일이 생겼다.
또 공연에 앞서서 가수들에게 돌아가며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르게 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무대에서 인기를 얻는 대목만 골라서 공부하게 되어 판소리 전판을 공부하지 않고 토막 소리만 공부하는 폐단이 생기고 말았다.
창극이 유행해서 창극조가 휩쓸게 되고 또 일제 때의 명창인 정정렬은 춘향가를 자기가 새로 짜서 불렀는데 이 소리가 크게 인기가 있어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옛 판소리보다 정정렬의 새로운 판소리에 열을 올렸다.
1950년대에는 영화에 밀려 창극도 점차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창극 소리의 유행과 토막 소리의 풍조는 정통으로 내려온 고제 판소리를 많이 소멸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통에 정통의 판소리를 이어받아 명창으로 이름을 날린 이동백, 김창룡, 전도성, 장판개 등의 소리제는 영원히 끊어지고 말았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국립국악원이 판소리 부흥이라는 이념을 내세우고 박동진이 판소리 전판을 부르는 소리판을 마련하였다. 그 소리판은 마당이 아니고 극장 무대였지만 전판 소리 부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박초선, 박초월, 성우향, 김소희, 오정숙과 같은 오늘날의 명창들이 전판 판소리 공연을 열었다. 이렇게 하니 일반 사람도 전판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판소리 감상회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과 같이 정응민의 정통 소리제를 이어 받은 명창들이 크게 활약하고 있어서 정응민이 보유한 고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가 부흥된 것은 판소리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좋은 고제 판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판 공연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명창들이 숨어 있어서 이들에게 전판 공연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 동안에 뿌리깊은나무에서 여러 해에 걸쳐서 판소리 감상회를 열었고 그 덕분에 박봉술의 춘향가, 수궁가와 한애순의 심청가와 강도근의 흥보가가 햇빛을 보게 되었지만 아직도 박봉술의 심청가, 흥보가와 강도근의 춘향가, 심청가와 정광수의 적벽가와 백남희의 김창환제 소리와 같이 발굴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고제 판소리는 아직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큰 일이다.
요즈음에 들어서서 꽤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대학생들의 연구도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일반 사람들의 판소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상태이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서양 예술에 젖어온 사람들이 독특한 종합 예술인 판소리의 예술성을 깊이 있게 알기란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인 데다가 다른 예술과 달리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어려운 점이 많아 후계자를 기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판소리의 앞길에는 갖가지 어려움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판소리는 그 수많은 어려움들을 물리치고 성장해 나갈 만한 훌륭한 예술성을 그 자체 속에 지니고 있으므로 그런 여러 어려움들은 멀지 않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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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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