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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3) 가야금과 바이올린의 만남-김갑자·김갑순' 음반
(명인기획/엘지미디어 LGM-AK003, 1CD, 1933/1934년 녹음, 1995년 제작, 노재명 기획/고증/해설/사설 채록) 해설서 1~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 상기 사진 자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음반자료 관리번호 MICD-0186
가야금과 바이올린의 만남-김갑자·김갑순(고수:한성준) 음반.
동서 악기의 만남과 국악의 현대화 물결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음악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중에 하나로 발전해 왔다. 각 나라마다 각양각색의 관습이나 가치관, 자연환경이 있듯이 각 나라마다 고유한 음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1877년에 에디슨이 유성기를 발명한 이래 음반과 방송시설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서양음악이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팝송의 세계적인 유행은 인종과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초월해서 음악문화의 이질감을 해소시켰다. 그 결과 ‘음악은 세계 만인 공통어'라는 말을 낳게 했고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발생한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음악들이 소멸하거나 쇠퇴하여 오늘날 획일화된 음악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많은 음악인들은 서양음악 위주의 단순함에서 탈피하고자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해외 음악인 가운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인도의 라비 샹카와 나이지리아의 바바툰데 올라툰지, 인도음악을 록에 도입한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인도음악을 재즈에 도입한 존 콜트레인, 남아프리카의 말라티니 마호텔라퀸스와 협연한 폴 사이먼, 세네갈의 은두르와 합작한 피터 가브리엘, 일본의 전통악기를 재즈에 도입한 허비 만, 중국음악을 신디사이저로 연주한 반젤리스,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합주한 재즈 그룹 레드 선을 꼽을 수 있다.
인도음악과 아프리카의 토속리듬을 서양음악에 도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간혹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민속음악을 서양음악에 도입한 경우도 있다. 현재 아프리카 토속리듬이 가미된 일명 ‘아프로팝'은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동서 음악의 접목을 시도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에 외래 음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880년대이다. 1882년 10월, 청국에 의해 우리나라에 서양식 군악대가 설치되었다. 그 후로는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 러시아가 이 땅에서 정치적 우위권을 가질 때마다 서양식 군제 개편과 훈련, 서양식 군악대의 양성을 각기 달리했다. 한편 1883년 5월부터 이은돌 등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서양식 군악대가 조직되었다. 서양식 군악대를 시작으로 이 땅에는 강대국들의 강렬한 침략욕구와 맞물린 외래 음악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1885년과 1886년에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배재학당, 이화학당과 같은 서양식 학교에서 서양식으로 작곡된 교가와 찬송가가 불리워지면서 이 땅에 양악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같은 해 8월에 제1차 한일협약과 함께 고문정치를 시작한다. 이 때부터 일본은 이 땅의 기존 음악을 강압으로 약체화시키고 공립학교를 통해 그들의 쇼오카(唱歌)를 주입시켜 이 땅의 민족정서를 없애려 했다. 1906년, 공립학교에 창가가 교과목으로 개설됐고 1910년에는 일본 전래의 노래들을 가사만 번역하여 실은 『보통교육 창가집 제일집』(학부편찬, 한국정부인쇄국 인쇄)라는 교과서를 제작하고 이것을 이 땅에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주입시켜 이 땅에 일본의 정서가 깊히 뿌리내리게 하였다. 이 교과서에는 <학도가>, <학문가>, <권학가>, <운동가>와 같은 곡이 실렸고 신학문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 널리 애창되었는데 특히 <학도가>와 <권학가>는 1913년에 기독교청년회원이 日蓄朝鮮소리盤에 취입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노래였다.(Nipponophone 6217 學徒歌及勸學歌 基督敎靑年會員) 이런 노래들은 당시 강대국의 침략 표적이 되고 있던 이 땅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계몽하는 뜻에서 즐겨 불렀다. 1896∼1897년 『독립신문』을 보면 배재학당 등 신학교 학생들이 그와 비슷한 내용의 노래들을 지어 불렀다는 기록이 많이 있다. 당시 이런 노래들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한국 민요식, 서양식, 일본식 창법으로 불리워졌다. 즉, 우리 전래민요에 익숙한 이들은 민요식 창법으로, 서양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은 서양식 창법으로, 일본 음악이 들어와 유행한 후 일본 음악에 익숙해진 이들은 일본식 창법으로 불렀던 것이다.
일본의 한국문화 말살 정책은 치밀하게 전개되었고, 결국 일제시대 말기에 가서는 일본 엔카(演歌)식의 뽕짝과 일본 신파극의 번안 주제가가 크게 유행되고 이 땅의 정서로 정착되어 갔다. 결국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양악과 일본음악은 국악과는 물과 기름처럼 이분된 상태로 민족음악의 정립에 큰 장애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가야금산조 명인 한수동이 바이올린산조를 연주했고,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였던 안기영은 1931년 5월 『동광』 제21호 66∼67쪽에 ‘朝鮮民謠와 그 樂譜化'라는 글을 통해 구전민요를 악보로 체계화시키고 피아노 반주의 합창곡으로 편곡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당시 안기영이 제시한 민족음악론은 일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나 당시의 음악 풍토를 감안할 때 그의 선구자적인 음악관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순남은 국악에 배어있는 고유한 한국 정서를 토대로 해서 <산유화>와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그리고 일제 때 양금 연주자 홍재유, 단소 연주자 김상기, 바이올린 연주자 홍난파가 정악 합주 음반을 내기도 했다.(일츅죠션소리반 K648-A B) 또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된 바와 같이 일제 때 김갑자의 가야금병창과 김갑순의 바이올린 협연 음반이 취입되었다. 일제 때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국악기와 양악기의 협연이 많이 방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실례로 1931년 11월 28일자 『매일신보』를 보면 최수성(崔壽成)의 단소, 윤태병(尹泰炳)의 양금, 김진자(金鎭字)의 바이올린 협연으로 <영산회상>, <이팔청춘가>가 라디오 방송된 바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음악인들이 국악기와 양악기 협연을 시도한 바 있다.
한국에서 타국 음악과 전통음악의 접목이 처음 시도된 것은 국내에 음반이라는 신문명이 처음 들어온 1907년 이후가 된다. 1910년대에 일본 음반회사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일본 노래가 음반을 통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그 영향으로 일본 노래를 번안해서 우리 민요 창법으로 부른 창가가 유행했다.
왕가가 몰락하면서 판소리는 현대식 극장에서 서민을 대상으로 해서 공연되었고 일부 명창들은 중극의 경극을 본떠 판소리를 창극이라는 새로운 공연 양식으로 각색하기도 했다. 또 한문투의 판소리가 서민에게 제대로 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한 일부 명창들은 신선한 내용과 쉬운 사설로 새롭게 짠 창작 판소리를 내놓기도 했는데 정정렬의 숙영낭자전과 배비장전, 박동실의 열사가, 전일도의 구운몽, 임방울의 신제 춘향가와 신제 흥보가, 김연수의 장끼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개화기 때 기악인들은 판소리 등 민속악에서 좋은 가락들을 골라 모아 산조라는 독특한 기악 독주 형태를 창출시켜 가야금산조,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퉁소산조 등을 탄생시켰다.
근래에 들어 국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이 마음 같이 국악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음악인들이 보다 쉽게 국악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악과 양악을 접목시키고, 쉬운 노랫말을 지어서 국악의 선율 위에 얹어 부르기도 하고 양악기로 국악을 연주하는 등 다각도로 국악의 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국악, 양악을 초월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인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국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래에 국악의 발전 방향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국악이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되고 여러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국악의 사용 범위를 넓히면서 국악을 염두에 두고 시도된 모든 음악이 근대 창작 국악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창작국악은 그 창작 과정으로 볼 때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국악어법을 토대로 해서 새로 창작된 경우, 기존의 국악이 연주방법에 있어 다르게 편곡되어 연주된 경우, 국악과 양악이 섞여 작곡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국악어법을 토대로 해서 새로 창작된 대표적인 근대 국악으로는 산조, 신작 판소리, 신민요를 꼽을 수 있다.
기존의 국악이 연주방법에 있어 다르게 편곡되어 연주된 경우는 다시 세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국악기 편성을 달리해서 기존의 국악을 연주한 경우, 양악기로 연주한 경우, 국악기와 양악기로 합주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농악에서 꽹과리, 장고, 징, 북 하나씩만 가져다 편성한 사물놀이가 첫번째의 경우에 해당되고 한수동의 바이올린산조가 두번째의 경우에 해당된다. 그리고 김석출 등의 국악인과 사이토오데쯔 등의 일본 재즈 연주자들이 연주한 <살풀이 구음>이 세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국악어법과 양악어법이 섞여 작곡된 경우로는 황병기의 <미궁>, 김영동의 <아마존>과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근대 창작국악을 이끌어 나간 이들 중 그 활동이 돋보이는 개척자로는 국악 분야에서는 산조를 처음 짜낸 김창조, 창작 판소리의 대가 정정렬을 꼽을 수 있고 양악 분야에서는 김순남과 안기영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이후로는 김희조, 이해식, 김기수, 이강덕, 이성천, 김용진, 김달성, 황병기, 백병동, 이건용, 장덕산, 정대석, 황의종, 백대웅, 전인평, 채치성, 이병욱, 조광재, 김진희, 김영동, 박범훈 등의 음악가들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국악어법과 양악어법이 섞여 작곡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기에 걸맞는 연주단이 많이 생겨났는데 국립국악원 연주단,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연주단은 모두 서양의 관현악단 형태로 편성된 것이다.
국립국악원에 의해 1962년부터 1968년까지 치루어진 ‘신국악 작품 공모'는 창작국악 작곡가들의 등용문이었다. 그리고 1991년부터 치루어진 한, 중, 일 민족음악 연주회는 한국전통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뜻깊은 무대였다. 한편 어울림, 슬기둥 등 실내국악연주단의 활동과 사물놀이패의 국악 대중화 노력도 요즘 두드러진다.
대중음악인 가운데는 신중현, 송창식, 김태곤, 강태환, 이동기, 길옥윤, 정태춘, 최구희, 이중산, 김도균, 김수철 등이 국악을 염두에 둔 창작음악을 선보인 바 있다.
신중현은 1970년대에 국악과 록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 대표작으로는 <마부타령>, <나도 몰래>, <미인>, <산아 강아>, <너만 보면>, <내>, <큰 새>, <전기기타산조>가 있다.(노재명, 『신중현과 아름다운 강산』 1994)
송창식은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가요를 우리네 민요 창법으로 불렀고 노래와 함께 가야금, 꽹과리 등 국악 연주도 직접 들려주었다. 송창식의 발성은 마치 판소리의 덜렁제와도 같이 시원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며, 우리네 정서와 맞아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했다.(대표작: 참새의 하루, 한국음반 200300, 1LP, 1986)
김태곤은 국악기를 직접 개량하고 국악기와 인도 악기의 협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요 창법을 바탕으로 한 신민요를 작곡하여 여러 장의 음반에 발표한 바 있다.(대표작: 김태곤 창작곡집 4324, 킹레코드 KTG-011, 1LP, 1991)
프리재즈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은 동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이자 태평소 연주자인 김석출과 즉흥 연주를 한 ‘도깨비'라는 음반(JVC VICG-8025, 1CD)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재즈 색소폰 연주자 이동기는 1970년 무렵에 우리 민요를 편곡해서 그의 악단과 함께 음반을 낸 바 있다.(킹레코드 KL-7029, 1LP)
타악기 연주자 유복성과 색소폰 연주자 길옥윤은 1989년에 대금 연주자 이생강과 협연한 바 있다.(오아시스레코드 ORC-1043, 1CD) 그리고 정태춘은 중모리 등 민속악 장단을 써서 대중가요를 작곡하고 민요 창법으로 노래한 음반을 여러 장 발표한 바 있다.(대표작: 92년 장마 종로에서, 삶의 문화 ㅅㅁ06-1, 1LP, 1993)
기타 연주자 최구희는 그룹 괴짜들 시절부터 우리 고유의 민속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너랑 나랑>, <단의 노래>,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가 있다.(괴짜들: 서라벌레코오드사 SRB-0187, 1LP, 1986. 최구희 독집: 동아기획 VIP-20080, 1LP, 1989) 최구희는 전기기타 연주법에 있어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농현 효과음, 가야금과 같은 음을 내는 등 한국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기타 연주자 이중산은 우리네 민속악 가락을 전기기타에 얹어 사물놀이패 짝쇠와 함께 김호식이 작곡한 <사물배경>을 연주한 바 있다.(전인권 자유, EMI EKLD-0005, 1CD, 1991) 헤비메틀 기타 연주자 김도균은 1990년 무렵에 한국 민요를 전기기타로 연주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희지레코드, 1LP)
김수철은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의 음악과 ‘황천길’과 같은 음반에 국악과 양악을 섞은 음악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김수철은 김덕수의 장고 반주에 맞춰 <전기기타산조>를 발표한 바 있다.(1993.4.8. KBS-FM 국악무대 제31회 공연)
박성연과 재즈 앳 더 야누스(Jazz At The Janus)는 1985년에 민요 <밀양아리랑>을 재즈로 편곡하여 연주한 음반을 발표한 바 있고(지구레코드 JCDS-0298, 1CD) 여러 재즈 공연에서 민요를 재즈로 편곡하여 연주한 바 있다.
김시라가 기획한 ‘품바’ 음반(대성음반 DAS-0249, 1LP, 1985)에는 전통적인 국악을 새로 편곡하거나 가사를 달리하여 녹음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생강의 대금 연주, 임진환의 단소 연주, 신민요 등을 담고 있다. ‘품바’ 음반은 국악 음반을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1980년대 중반에 출반되어 국악에 입문한 젊은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박재천은 대금과 사물을 양악기와 섞어 연주하기도 하고 한국적인 창법으로 노래한 ‘사주팔자’라는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서울음반 SPDR-261, 1LP, 1991) 그리고 김병덕은 1994년에 단소, 항아리 연주로 한국적인 맛을 낸 프리 재즈 성향의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시완레코드 SRMKC-0001, 1CD)
장사익은 충청도 상여소리를 토대로 한 가요 <하늘 가는 길> 등 국악 맛을 가미한 가요를 음반에 발표한 바 있다.(예원레코드 YWKC-0013, 1CD, 1995) 장사익의 음반에는 타악기 연주자 김규형(명창 김연수 아들)이 참여했다.
농악 가락이 랩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을 감지한 그룹 디제이 덕(DJ Doc)은 TV방송에 출연하여 사물놀이 장고 가락에 맞춰 랩을 들려준 바 있다. 그리고 판소리와 랩을 접목시켜 부르는 박선미의 ‘랩창’(대성음반 DIC-1016, 1CD, 1994), 그룹 한국사람(나이세스 SCS-096, 1CD, 1994), 그룹 6각수의 ‘판랩’(1995)도 주목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남북 분단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족음악은 소멸하거나 쇠퇴했다. 1907∼1945년 미국과 일본의 직배음반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의 음악 취향이 국악에서 외국 음악으로 바뀌었다. 유행가(일본식 가요) 음반 한 장쯤은 사서 들어야 신식 사람이고 멋쟁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외국 음악을 흥얼거리면 돈 있고 교양 있어 보이게 했다.
광복 후에도 우리 전통문화를 우리 스스로 천시하는 사회 풍조는 지속되었고, 우리 전통음악가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숨어살아야 했다. 허나 원로 뽕짝 가수들은 여전히 방송에 출연하여 일본식 가요 뽕짝을 우리의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 사랑하자는 구호를 외친다. 사회자도, 시청자도 전통을 지켜온 데 대한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추억의 뽕짝이 흘러나오면 수많은 방청객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되면서 일제 때 대표적인 친일가요이자 일본식 가요였던 <감격 시대>가 울려퍼졌다. 광복 50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 문제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니, 어찌보면 우리 음악을 몰아낸 왜색가요의 안방 차지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상류층의 교양 음악=서양의 클래식'이라는 등식까지 생겨났고 오늘도 전국의 노래방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제 일본과 서양 음악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국의 독자적인 민족음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양음악에 대해 서양의 그들 만큼 알지 못한다.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바흐와 송만갑, 어느 쪽 하나 충실한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모르는 사람은 정신 세계가 빈약하다”고 말하는 책(중학교용 음악 참고서, 한국능력개발사, 1981)보다 송만갑의 판소리에 관한 지침서가 더 절실하다.
오늘날 서구 문화가 지구를 온통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가 양복을 입고 있다고 정신까지 정복당할 것인가? 이탈리아에 카루소가 있다면 우리에겐 명창 이동백이 있다. 미국에 지미 헨드릭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중현이 있다. 우리 모두 잊혀져 가는 자존심과 자긍심을 되살리고 소중히 간직해야 겠다. 자신의 것을 먼저 확실히 알고 남의 좋은 점을 수용하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다. 어설프게 남을 흉내내기 보다는 차라리 자기다운 멋을 갖는 편이 낫지 않은가.
개화기 때에는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에서 양악을 국악에 수용했다. 비교적 국악 입장에서 바라본 양악을 우리에게 맞게 걸러서 수용했다. 개화기에는 대부분의 음악인이 지녔던 음악 바탕이 국악이었기 때문에 양악의 한국적 수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음악인이 국악보다 양악에 익숙해 있다. 요즘 성장하고 있는 젊은 국악인들도 국악보다 양악에 귀가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여기는 분명 한국인데, 모든 매체에서 한국 음악보다 외국 음악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음악가나 감상자나 국악보다 양악에 중독이 될 수밖에 없다. 음악 풍토가 이러하니 한국적인 음악, 진정한 의미의 국악과 양악의 접목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국악의 현대화 작업, 동서 음악의 접목은 대부분이 양악에 뿌리를 두고 국악을 수용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된 김갑자와 김갑순의 음악은 지금 들어보면 세련된 맛은 없지만 한국 정서가 물씬 풍기는 신국악이다. 양악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국악기와 만나 우리네 정서를 연주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우리 선조의 손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양악기 소리가 들어있다. 한수동이 바이올린산조를 연주하듯, 인도에서 바이올린을 땅바닥에 놓고 라가를 연주하듯, 이탈리아에서 칸초네를 바탕으로 록을 연주하듯, 프랑스에서 샹송을 바탕으로 록을 연주하듯 김갑순이 김갑자의 가야금병창에 한국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입혔다. 김갑순은 바이올린 연주자지만 국악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남 흉내가 아닌 자기다운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갑자의 가야금병창과 김갑순의 바이올린 협연은 양악기를 우리답게 비판 수용한 좋은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이 음반은 요즘 여러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창작국악의 좋은 표본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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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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