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는 [월간음악 1995년 10월호 통권 285호](서울:음악세계사) 68쪽에 실린 글입니다.
리뷰-명인의 소릿결 들려준 보기 드문 자리
정달영의 가야금산조와 병창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9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차례씩 네 번에 걸쳐 개최되는 '가야금병창 명인전'에서 인간문화재 정달영이 그 첫 무대를 장식했다.(9월 5일 예음홀)
1922년에 태어나 정남옥에게 한숙구류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오태석에게 가야금병창을 사사한 정달영은 개인 발표회가 드문 명인으로 소문나 있다.
그것은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성품 때문이며, 이런 탓에 인간문화재도 뒤늦게 지정받았다.(88년) 그런 만큼 정달영의 이번 공연은 근래에 보기 드문 귀한 연주회였다.
가야금병창이란 한 사람이 가야금 반주를 하면서 단가나 판소리 대목들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대개는 가야금병창만 떼어서 공연하지 않고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묶어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고 산조 연주 후에 병창으로 뒷풀이를 한다. 이번 연주회 역시 이 순서를 밟았고, 장고 반주는 정철호가 맡았다.
정달영은 현재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그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가야금산조이다. 그의 산조 장단 구성은 다른 산조와 약간 차이가 있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로 연주하다가 특이하게 중모리로 끝을 맺는 식이다.
정달영의 가야금산조는 전라도 산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라도 산조 특유의 애원성이 깃든 계면조가 주를 이루고 잔가락 없이 거의 대마디 대장단으로 연주하면서 간혹 엇가락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무대에서 그가 들려준 산조는 요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여류 산조에 비해 힘이 있으며 고풍스럽고 덤덤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된 정달영의 첫 음반(신향음반제작소 LKM-3011, 1LP)에 담긴 가야금산조와 이번 공연에서 그가 연주한 산조를 비교해 보면, 요즘 연주하는 산조는 옛 산조에 새로운 가락들을 많이 첨가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정남옥의 산조를 차츰 자기 것으로 바꾸어 정달영류 가야금산조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달영이 산조 연주 후 들려준 가야금병창은 단가 <죽장망혜>와 심청가 중 <어이 가리너>부터 <방아타령>까지이다.
이 대목들은 정달영의 특기로서 <죽장망혜>의 진중한 소릿길이 좋았고 심청가에서 소리를 다채롭게 포장하는 가야금 반주는 요즘 접하기 힘든 명연이었다. 청중은 적었지만 굵직한 국악 공연장마다 나타나는 몇몇 귀명창들의 멋들어진 추임새가 이 연주회를 빛내 주었다.
정달영은 현재 유일하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연주하는 남자 인간문화재로서 여류 산조, 여류 병창 일변도인 국악계에 신선한 존재이다. 정달영과 같이 귀한 명인의 공연장에 관객의 발길이 뜸한 것이 안타깝다.
가야금병창의 부활을 위해서는 오태석이나 이소향과 같은 가야금병창의 스타가 나와야 한다. 또한 창작 국악이나 사물놀이에 사람들을 몰아가는 국악 대중화 운동으로 인해 소외되고 있는 여타 국악 분야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
| 2006-06-12 |
|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