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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판소리 자료 집성 전문지 『판소리 명창(창간호)』(경기 양평: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2005년 12월 17일) 112~12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국악학자 이보형 대담자료(1) 판소리 발생론
일시: 2005.11.15(화) 11:00~12:30
장소: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이보형 연구실
참석: 이보형(이), 노재명(노), 김희라(김)
정리: 김희라(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회원)
노: 판소리 연구에서 가장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판소리 발생론과 초기 광대론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하여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그냥 순서 없이 여쭙겠습니다. 정로식 『조선창극사』에는 판소리 최초 명창으로 하은담, 최선달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하한담(하은담)하고 또 최선달 그런 분들은 원래 출신이 광대 출신은 아닌지요? 집안이.
이: 내 생각에는 하한담은 광대 집안 같고, 최선달은 아닌 것 같고...
노: 예. 우춘대는 광대 집안 출신이구요?
이: 우춘대는 광대 집안 출신 같습니다. 많은 문헌 자료로 봐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근래에 광대에 관한 문헌이 더러 발견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게우사』라고... 무숙이타령 사설이 처음 발견됐잖아요. 거기에 우춘대 무렵의 광대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이 주목됩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름도 많고 밝혀진 이름도 있습니다.
노: 그 최석황이라는 사람도 나오고...
이: 네, 재미있는 것은 각 광대 더늠을 지시하는 말이 덧붙여 있어 재미가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당시 판소리 명창에 대하여 대부분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런 연구가 부진한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대와 같은 민속공연 문화에 대한 기록을 안 남긴 탓도 있습니다. 선비들이 그런 것들을 시시콜콜 논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긴 탓이지요. 만일 당시에 판소리나 광대에 관한 것을 많이 적어 놨더라면 판소리 발생 초기 광대에 관한 연구가 이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 선생님의 판소리 발생론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 판소리 발생론은 아직도 학문적으로 명확히 단정된 정설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두된 판소리 발생론에는 서사무가 기원설, 독서성 기원설, 중국 강창(설창) 기원설, 광대 소학지희 기원설 등이 있고 최근에 광대소리 기원설, 정악 기원설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판소리 기원설이 나왔지만 이것들이 두루 판소리 발생에 대한 가설로 제시되었을 뿐 판소리 발생과정을 분명히 규명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판소리 발생론 가운데 판소리가 한국 남부 서사무가에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정로식 『조선창극사』를 비롯하여 많은 논문에 판소리 무가 기원설이 대두되었고 뒤에 남도 서사무가 기원설이 보강된 것입니다. 이 주장은 판소리 공연자들이 세습무와 같은 혈연집단이라는 것. 판소리나 남도 무가나 다 같이 남도 조(육자배기 토리)로 되었다는 것, 그리고 판소리나 무가(서사무가)나 다 같이 서사구조로 되었다는 것 등을 들어 판소리가 남도 무가의 서사무가에서 나왔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는 이 판소리 무가 기원설이 기왕에 나온 당시 다른 판소리 발생론 보다 설득력이 있었지요. 그런데 판소리 무가 기원설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었습니다. 남도 서사무가에서 직접 판소리가 나왔다고 하였을 때 서사무가와 판소리가 서로 다른 음악구조로 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서사무가 장단은 외장구장단이나 살풀이장단과 같은 어정 장단으로 되었고, 판소리 장단은 중모리, 중중모리와 같은 패기장단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사무가 성음은 어정성음으로 되었고 판소리 성음은 패기성음으로 되어 서로 다르게 되었습니다. 남도 서사무가가 직접 판소리로 전이 되었다면 어떻게 서사무가 음악이 어떻게 판소리 음악으로 전이 되었는가 하는 전이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풀기 위하여 내가 제시한 것이 남부 창우집단 광대소리 기원설입니다. 다시 말해서 판소리 음악은 남부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음악에 기원을 둔다는 것입니다.
노: 그럼 창우집단의 광대소리에는 판소리 밖에도 무엇이 있습니까?
이: 판소리 발생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요. 남부 창우집단 광대소리에는 광대희에서 불려지는 많은 소리들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대부분 없어졌고 지금은 창우집단 광대 고사소리, 창우집단 광대 줄소리(줄광대소리), 창우집단 광대 영산(단가), 창우집단 광대 선굿소리(선증애소리)와 같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노: 그럼 판소리에서 이런 다른 광대소리가 발생했다고 보지 않고 다른 광대소리에서 판소리가 발생했다고 보시는 거지요?
이: 두 가지로 그 근거를 댈 수 있습니다. 첫째는 판소리가 300년 이내의 역사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광대 고사소리가 고려 때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줄타기도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고, 광대가 마을굿 의식에 참여하여 판소리처럼 선굿을 공연하는 것은 여러 고장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판소리보다 여타 광대소리가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판소리에는 진양장단, 설렁제, 경드름과 같은 19세기 초 소리 광대의 더늠이 보입니다. 그러나 광대소리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판소리에서 광대소리가 갈려 나갔다면 광대소리에도 그런 것이 보여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노: 그럼 그냥 광대소리라 이르지 않고 어찌하여 창우집단 광대소리라 하여 창우집단이라는 말을 앞에 두는 것인가요?
이: 어찌하여 그냥 광대라 이르지 남부 창우집단의 광대라 하였는가 하는 것인가 하면, 광대는 연극적인 연희의 연기자를 가리키는 말이라 그냥 광대 하면 가면희 집단의 탈놀이 광대나 초라지 집단의 초라니 광대 같은 다른 집단의 광대와 변별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판소리를 공연하는 광대는 탈놀이 광대나 초라니 광대 같은 다른 집단의 광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고 창우집단에 속하는 광대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노: 그럼 여기에서 창우집단의 광대 문화에 대하여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판소리 역사는 길어봐야 300년이 못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창우집단의 광대는 천여 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사에 보이는 수많은 가무백희를 연행하던 공연집단이 창우, 배우, 창부 그렇게 부르던 것인데 창우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였기에 내가 이를 학술 용어로 창우집단이라 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창우라 이르지 왜 창우집단이라 하여 집단이라는 말을 첨가 하여 이르는가 하면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만 이 집단에는 연극하는 광대도 있고, 곡예하는 재인도 있고 춤추는 무동도 있고,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고인도 있어서 이를 총칭하여 그 상위 개념을 지시하는 용어가 필요해서 창우집단이란 말을 썼거든요. 흔히 이 집단을 광대, 또는 재인이라 하여 하위 개념을 상위 개념으로 대신 이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위 개념으로 상위 개념을 이르게 되면 연극만 공연하는 광대집단이나 곡예만 하는 재인집단과 변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창우집단이 어느 때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팔관회가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팔관회에 여러 가지 가무백희가 딸렸던 것이고 그 가무백희를 연행한 집단이 창우집단이니까 창우집단의 전통이 천년이 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노: 그럼 그 창우집단의 공연문화는 어떤 것입니까? 홍패고사니 하는 것도 그런 것인지요?
이: 고려시대에 창우집단이 팔관회, 연등회, 구라와 같은 국가 축제에서 가무백희를 한 것은 분명한 것이고 민간 축제나 연향에서도 가무백희를 연행하였던 것 같으나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민간에서도 창우집단의 가무백희가 궁중 축제에서는 쇠퇴하지만 수령의 부임연, 지역의 마을굿, 파일놀이, 사가의 회갑연, 급제자의 문희연과 같은 민간 축제나 연향에서 창우희, 배우희, 우희라는 이름으로 가무백희를 하게 되었습니다. 홍패고사라는 것은 과거급제자가 신래불림과 유가를 마친 다음 사당에 고사를 지낼 때 광대가 고사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노: 판소리 발생 이전에 창우집단의 광대들이 현행 광대소리 말고 어떤 것을 공연하였나요?
이: 앞에서 광대는 천여 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했지요. 그때 창우집단의 광대들이 공연하던 것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광대희, 광대골계지희, 또는 광대소학지희라는 말로 기록되었고 단편적으로 그 내용이 전해질 뿐입니다.
노: 그럼 광대희와 광대소리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이: 광대희나 광대가 행하는 의식에서 하는 소리를 총칭하여 광대소리라 이르는 것입니다. 광대희가 연극인데 무슨 소리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연극배우가 순수 대사(말)와 몸짓으로만 연기 하는 것은 근대 유럽의 연극에서 비롯된 것이고 본래는 동서를 막론하고 연극에서는 배우(광대)들이 말, 몸짓 밖에도 소리, 춤, 곡예로 연기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지요. 이 광대희 연극에서 배우가 연기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광대소리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노: 그럼 광대소리 음악에서 판소리 음악이 나왔다는 것이 됩니다만 판소리가 광대희에서 나왔다는 말도 성립됩니까?
이: 판소리도 광대희의 일종이니 그런 뜻이라면 이 말이 성립되겠지만 문제는 판소리 이전에 보이는 광대희에는 여러 공연방식의 연극형태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판소리는 한 사람의 연기자가 긴 서사적 사설을 연기하는 한 가지 공연방식으로만 경연되는 점이 다릅니다. 어찌하여 판소리는 기왕의 광대희와 다른 공연방식을 취하며 그 공연 방식은 어디에 기원을 두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목되는 것이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가운데 선굿소리입니다. 선굿은 남도 창우집단의 광대들이 기왕의 쓰던 패기 성음과 패기 장단에 얹어 노정기와 같은 서사적 내용을 공연하는 것이니 이런 광대소리에 서사적인 내용을 길게 공연하게 되면 판소리와 같은 공연 형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김: 그러면요, 『조선창극사』에 신라 화랑이 근세 광대가 되었다는 그런 광대 기원설이 있잖아요.
이: 그것은 신라 화랑집단과 근래에까지 전승된 화랑집단과 같은 집단이냐 하는 문제와 같습니다. 근세 화랑집단은 신라 화랑집단과 성격은 일치하지 않지만 근세 화랑집단이 신라 화랑집단과 연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명칭부터가 같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창우집단과 화랑집단은 같은 것이냐 하겠지요. 나는 기능상으로 근세 화랑집단의 하위 개념으로 무격집단과 창우집단을 분리합니다. 무격집단은 세습무 집단인데 여자 사제자, 그리고 남자 양중(반주자) 이렇게 혼성 공연자로 구성되지만 창우집단에는 남자만 단성 공연자만으로 구성됩니다. 화랑집단의 무격집단은 의식 연행이 주가 되지만 화랑집단의 창우집단은 총체적 공연이 주가 됩니다.
노: 그럼 사당패는요?
이: 사당집단과 화랑집단은 별개 집단입니다. 화랑집단은 무교와 관련이 있는 집단이고, 사당집단은 불교와 관련이 있는 별개 집단입니다.
노: 그러면 과천 소완준패니 뚝섬패니 그런 사람들도 또 다른 집단이라고 보시는 거죠?
이: 그거는 서울 근교의 선소리패라는 집단입니다. 선소리패가 사당패 집단에서 분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선소리패가 바로 사당집단은 아닙니다. 사당집단은 본디 남녀 혼성 반승반속의 불교 가무단이었지만 선소리패는 마을 소리꾼들이 사당패의 소리를 따로 발전시킨 소리패입니다. 그래서 월선이패와 같은 초기 선소리패는 사당패와 비슷한 특성이 있었던 같지만 뒤에 세속의 남성 소리꾼들이 그들의 소리로 발전시킨 것이 선소리 산타령으로 보입니다.
근데 이창배 선생이나 이런 분들은 선소리가 사당패 소리에 기원을 둔다는 것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소리가 사당패소리의 영향 하에 발전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노: 다른 이야긴데요. 그러면은 그 송흥록이 함경도에서 행방불명 됐다는 설이 있지 않습니까? 북청이요.
이: 근래에 전북 함열 웅포에 묘소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으로 봐서 만년에 함경도에 은거하다가 고향 웅포에 은거하다가 죽은 것 같습니다. 흔히 전북 남원군 운봉면 비전리 출생으로 알고 있지만 비전리는 중년에 살았던 거주지로 보입니다.
아마 대구 기생 맹렬을 만나 고향으로 갈 수 없어 대구와 가까운 운봉 비전리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맹렬이와 비전리에서 살았다는 것은 안민영의 『금옥총부』라는 문집에 보입니다.
노: 그런데 그 송흥록이 북청에서 행방불명되었다는 설이라든가, 함경도에 갔었단 얘기라든가, 함경도에는 그 머나먼 오지에 왜 갔을까요? 이유가 추측되는 게 있으신지요?
이: 박황 선생이 소개하는 것은 흥선대원군 집권 후에 송흥록이 합경도로 종적을 감추었다는 전설을 발표하였는데 송흥록이 함경도를 택한 것은 함경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요.
노: 예, 그 박송희 선생님 말씀하시듯이, 함경도 거기에 (귀명창이 많았다고...)
이: 함경도 사람들이 소리를 엄청 좋아한다는 말은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노: 패티김 아버님도 그러시고...
이: 함경도가 경상도와 같이 메나리토리권이잖아요. 함경도와 경상도에서 판소리를 좋아하는 것은 메나리토리와 육자배기토리가 같은 동남토리에 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노: 그럼 경상도에서 조선시대에 판소리 명창이 많이 나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경상도에 판소리인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육자배기토리에 메나리토리를 섞어서 소리하므로 중앙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동진 선생의 말씀으로는 경상도에 그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또랑 광대’가 많았다고 그래요.
노: 그 이선유도 메나리 그런 느낌이 좀 보이는 게 있으셨나요?
이: 글쎄... 이선유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박동진 선생 얘기와 같이 경상도에 그 지방에서 활동하는 또랑 광대가 중앙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메나리 성음이 섞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금도 명창 중에서 메나리토리 성음이 섞여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이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노: 그런데 대개는 국창 정도 되면 소리만 내세우지 고수라든가 악기 연주, 춤을 잘 하지 않는데 역대 판소리 명창 중에는 다른 기예에도 능한 이가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기록에 보면 김정근은 판소리도 잘하고 온갖 음률들 시조, 가사, 악기도 잘하고... 아마 정춘풍도 그랬던 것 같고요?
이: 본래 창우집단이 총체적 공연집단이라 총체적 학습에 능한 것이 아니에요?
노: 예, 박기홍도 그랬다고 하고...
이: 창우집단이 경극하는 광대, 곡예하는 재인, 춤 추는 무동, 악기 하는 고인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모두 같은 혈연집단이라 같은 집안사람들이 학습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장차 뭐로 대성할지 모르니 이것 저것 가르치고 또 보고 듣는 것이 그런 기예들이니 소리, 곡예, 춤 악기에 능한 것이고 또 다른 기예를 겸하는 수가 많아요.
예를 들면 이날치가 줄 탔다는 건 유명하지만, 젊어서 줄타기 학습한 명창들이 많다구요. 그래서 역대 유명한 줄꾼들이 다 창우집단 출신이구요. 유명한 김봉업, 이동안, 임상문이 다 창우집단 출신이지요.
부모들이 자식이 어렸을 때 뭘로 성공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대개 소리를 위주로 가르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기악, 곡예, 춤도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판소리로 성공할 조짐이 보이면 다른 걸 안 가르치지요.
노: 그럼 어찌하여 소리 교육에 치중하는 것이지요?
이: 창우집단의 공연에서 판소리가 보수도 다른 공연 종목의 몇 배가 되는데다가 사회적 대우도 훨씬 좋았기 때문입니다. 창우집단의 공연에서 판소리 명창만이 상석에 올라가 상객들과 같이 주인하고 한 술상에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창우들은 아래에서 따로 술상을 받았다고 그래요.
본디 판소리 명창만이 선비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본래 광대 복장은 얼룩덜룩한 예의라는 옷을 입고 초립을 썼던 것인데... 과거 급제 유가할 때 그런 옷 입고 춤추는 그림 많이 있잖아요. 그게 광대복인데 판소리 명창이 대우를 받으면서 선비복으로 바꿔진 것 같아요. 모흥갑 판소리도에 선비복의 모흥갑 명창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판소리 명창이 선비 복색을 한 것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노: 그때부터 바뀐 시점인 건가요?
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판소리가 고도의 예술로 승화되는 시점에 그런 것 같고...
노: 초기 광대들, 그 판소리 광대가 성씨가 뭐 우씨, 모씨, 염씨 이렇게 좀 특이한 성들이 많은 까닭은 짐작되시는 게 있으신지요?
이: 무숙이타령에 나오는 명창들의 성씨들을 다 분석해 봐야지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명창들이 같은 혈연 집단이니까 어느 성씨가 집중적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임석재 선생님이 조사한 걸로는 이 집단의 성씨가 일반 성씨하고 같다고 그러니까 그 집단만 가지고 있는 성씨를 가려내기는 어려울 거에요. 그리고 그들의 말로는 그 몇 대 전에는 양인이었는데 정권에 밀려 가지고 또는 집안이 몰락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전설이 많습니다. 송만갑이나 심정순 쪽도 그런 전설이 있다고 그래요. 그러니 그 문제는 아직도 연구 안 된 수수께끼입니다.
노: 그러면 고수의 복장도 옛날에는, 모흥갑 전에는 달랐었던 건가요?
이: 고수는 최근까지 평민 복색이었던 것 같지만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지요.
노: 그러고 1910년대 초반 녹음을 보면, 20년대도 그렇고 박춘재나 이제 다른 사람들이 장고, 이흥원 같은 사람들이 장고를 반주한 건 음향 때문에, 녹음 특수성 때문에 그렇게 한 건지, 아니면...
이: 그 관계도 있지만, 이흥원이나 박춘재가 장구엔 능하고 북에는 능하지 않은 것 같아요. 판소리가 북 장단을 쳤다고 하는 건 옛날부터 기록도 그렇고 전승되는 판소리도 그렇고...
김: 근데 여자 고수가 없었잖아요.
이: 고수뿐만 아니라 본디 명창도 여자가 없었지요.
김: 예, 그 창우집단이 남자로 이루어져서 거기서 판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걸로...
이: 그렇죠. 창우집단엔 여자들이 끼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먼저 처음 여자가 판소리하기 시작한 것이 신재효가 진채선을 판소리 명창으로 길르면서 그렇다고 그러잖아요. 진채선은 본디 기생이었대요.
노: 김창룡이 인제 그 후대 나온 얘기지만 이북에서도 좀 인기가 있었고 방만춘이 이제 황해도 봉산 절에서 어떤 음률가에게서 소리 다듬고 심청가 가사를 거기서 만들어서 왔다 뭐 이런 기록이 있는데, 황해도 지역도 판소리 하고는 완전히 무관한 지역은 아닌가요? 아니면 무슨 영향 관계가 있을 수 있는 지역일까요?
이: 이북에서도 본래부터 창우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집단이 창우집단 밖에 없으니까 우선 관아에서 음악이 필요하니까 각 지역에 두루 창우집단이 필요하니 지역마다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판소리는 모든 지역에서 전승된 것이 아니에요. 본디 광대소리는 각 지역 토리로 전승되었던 것 같고 판소리는 남쪽 지방 창우집단 광대들이 전승한 것이라 다른 지역의 창우집단은 판소리에 서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판소리 세가 매우 커지니까 남도 판소리 영역 자체가 자꾸 팽창이 되고, 또 다른 지역 창우들이 남도 판소리를 배워가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봅니다. 황해도 사람들도 남도 판소리를 알게 되고 그래서 방만춘이 간 것으로 보입니다.
노: 그러면 방만춘이 심청가를 음률가에게 배웠다는, 그 음률가가 당연히 창우집단 광대일까요?
이: 그건 알 수가 없지요.
노: 함경도에 송흥록이 가서도 소리하고 모흥갑이 평양 가서도 소리한 것이 그림에 있고 방만춘이 봉산에서 소리한 흔적이 있고, 이북도 뭔가 영향을 줬다고는 볼 수가 있을까요?
이: 그러니까 판소리가 남도 광대소리에서 생겨나서 크게 예술적으로 떨치니까, 다른 지역에서도 창우희를 할 때 남도소리 광대를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모흥갑이 소리한 것은 평양감사 부임 축제에서 한 것인데 관아에서 부른 것이겠지요. 모흥갑이 당시 천하 명창이니...
그러니까 평양감사가 부임할 무렵에 평양에서 관아 축제를 하니까 능라도에서 어느날 따로 판소리도 공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럼 누가 불렀느냐 하는 얘긴데, 아전이 부르는 것이지만 수령이 누구를 지목하면 아전이 그 지역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불렀을 수도 있지요. 수령이 소리광대를 부르라 하면 유명한 소리광대는 남쪽에 있으니까 남쪽 모흥갑을 불렀을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이 평양 시찰 갈 때 정창업을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노: 초기에 했던 레퍼토리가 열두 바탕 말고도 또 더 많이 있었겠죠?
이: 그랬을 거라고 보이죠. 이것은 나손(羅孫) 김동욱(金東旭) 선생이... 고소설 중에서 이춘풍전, 두껍전과 같은 것이... 판소리 문체로 돼 있으니까 판소리에 열두 마당 말고 다른 것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였는데 옳은 말이라고 봅니다. 이춘풍전이 무숙이타령하고 비슷하잖아요.
노: 그러면 그런 무수한 여러 가지 소리와 열두 바탕 중에서 오 바탕 빼고 나머지가 전승이 끊어져 버린 까닭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 그걸 내가 “공연문화 변동이 판소리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판소리는 본래 광장의 창우희에서 생긴 것이니 초기 판소리도 다른 창우희 종목에 끼어 광장에서 공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를 광장에서 공연하게 되면 누상에서 구경하는 상객(주빈)들은 들리지 않고 둘러있는 광장의 평민들이 잘 들리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평민들이 주된 향수집단이 되는 것이니 평민집단의 감정에 맞는 변강쇠타령과 같은 걸죽한 서민 정서 내용으로 된 판소리가 성행하였던 것이고 여기에서 열둘을 꼽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뒤 판소리가 음악성이 높아지니까 판소리를 창우희에서 떼어 따로 누상이나 실내에서 감상하는 문화가 생긴 것입니다.
창우희에서 따로 떼어 내어 누상, 대청, 방중으로 올려서 판소리를 경연하게 되니 주된 향수층이 좌상에 있는 상류집단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류층을 향수집단으로 경연하다 보니 기왕에 있던 서민적인 걸죽한 재담 소리는 도태된 것이고 오마당이 선택되어 이것이 전승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세련된 사설 내용과 고도의 음악성을 지니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노: 그러면 그렇게 불려진 거가 그렇게 아주 오래된... 어느 정도 연대로 보시나요?
이: 그 때가 팔명창 직전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문헌에 판소리가 나오고 명창들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은 벌써 상류층에서 판소리를 예술로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되요. 그러니까 누상에 올라가서 소리를 하게 되면 명창들 하나하나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단 말입니다. 그러니 명창들은 사설 내용을 가다듬고 음악을 다듬어 짜서 소리하게 되니 명창들이 개성이 두드러지게 되고 어떤 개성이 담긴 더늠이 명창 이름에 매겨지게 되었습니다. 무숙이타령에 나오는 수많은 명창이 그냥 이름만 나오는 게 아니고 저마다 더늠을 매겨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벌써 하한담이나 우춘대 때에 벌써 소리가 그런 쪽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 본격 판소리는 이제 하한담, 우춘대 때부터라고 봐야 할까요?
이: 판소리는 훨씬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그런 변화는 그때 일어난 것 같습니다.
노: 음악적으로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이, 그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 팔명창 직전 그러니까 벌써 하한담이나 최선달, 우춘대와 같은 명창들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 같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되기 시작한 것은 팔명창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판소리에 진양이 없었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진양 장단은 김성옥이 처음 불렀다고 하고 송흥록이 보편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단모리도 본디 판소리에 없었던 것을 문석준이 처음 낸 것 같고 그러니 여타 광대소리처럼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 중심으로 하던 판소리가 부르기 영역이 훨씬 확대된 것이지요. 그리고 팔명창 때 권삼득이 설렁제(드렁조)를, 염계달이 경드름과 추천목을, 모흥갑이 강산제를 만들어 다른 광대소리처럼 애원성(서름제=계면조), 시조목(평조), 호령제(우조)가 주였던 판소리에 악조 영역이 확대된 것이지요.
판소리는 후기 팔명창 시절이 되면서 사설도 다듬어지고 부침새와 성음이 다양해져서 오늘날 판소리 모습이 된 것이지요.
노: 박동진 선생님이 완창 붐을 일으키셨지만, 그 전에 일제시대 때 토막소리가 유행을 했고 아주 오래전엔 물론 전판 공연이 왕성하게 있었겠죠?
이: 예, 판소리 완창이라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도 한 것입니다.
본디 춘향가, 심청가와 같은 성악을 공연하는 것을 ‘소리 한다’고 하였고 초앞부너 뒤풀이까지 다하는 것을 ‘판소리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판소리 완창이라는 말은 없었지요. 전판 공연하는 것을 ‘판소리 한다’ 일렀기 때문에 일부분을 소리하는 것을 ‘도막소리 한다’ 또는 ‘마디소리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춘향가, 심청가를 그냥 소리한다고 하면 상여소리, 짓소리와 같은 다른 소리와 변별이 안 되니 이것을 위하여 판소리 한다고 하면서 판소리라는 말의 개념이 춘향가, 심청가와 같은 성악 부문을 가창하는 것으로 변하였고 그래서 본디 의미인 판소리를 한다는 것이 ‘판소리 완창한다’ ‘판소리 전판 공연한다’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창우희 공연은 대가댁 회갑연이라든가 과거 급제한 집에서 희연을 한다든가 마을 축제에서 대동 놀음에서 하게 되는데 많은 창우를 부르는 것이니까 돈이 엄청 드는 거지요. 며칠이 걸려서 줄도 타고, 땅재주도 하고, 소리도 하고, 춤도 추고 하니 광대, 재인, 무동, 고인이 다 동원되는 거죠. 그런데 창우희가 한나절에 끝나는 게 아니고 며칠이 걸리던 것입니다. 줄타기도 한 나절 판줄을 타야 하고, 땅재주도 한 나절 하는 것이니, 소리 광대도 한 나절 소리하는 것이니 그게 판소리입니다.
판소리를 따로 떼어서 소리하는 문화로 바뀌면서도 밤새도록 해야 되니 그야 말로 판소리, 즉 전판 판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소리라는 것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길어야 두시간 세시간이었는데. 초저녁에 시작했다고 그러면 아홉시나 되면 한 바탕 끝나면 딴 광대가 나와서 다른 바탕하고 이렇게 밤새도록 소리했다 해요. 그래서 늦가을 소리판을 벌이면 마당에 모인 청중의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고 합니다.
김: 그럼 그, 완창할 때요. 그 땐 방안에서 안하고 마을 사람들이 밤새 들어야 되니까 그땐 또 마당으로 내려와서 한 건가요?
이: 상객은 대청에서 듣고 광대는 대청이나 마루에서 해요. 사랑에서 하게 되면 문을 열어 놓고 소리하지, 마당에서도 다 보이지요.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은 마당에 전부 앉아서 구경하고...
그러다가 조선 말기부터 판소리가 협률사 경연에 참가하면서 시민대중을 상대로 소리하게 되고 무대에서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소리하여 시민들을 상대로 흥행을 위한 경연을 하게 되어 전판에서 도막소리 경연이 보편화된 것입니다.
협률사 때문에 판소리 완창이 없어지고 도막소리 공연이 보편화되니까 박동진 선생이 국립국악원에 재직하면서 옛날에 판소리가 완창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를 극장 무대에서 복원을 해 본 거지요.
노: 그러면 그 1900년경에 스웨덴 기자(아손 그렙스트 신문기자)가 한국에서 일기 쓴 거 보면 서울 장안에 막 다섯시간, 이틀 삼일 일주일씩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집에서 이야기를 하는 꾼이 있다 이런 기록이 많이 있는데 그 분들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이: 광대 소리를 들어보고 그렇게 얘기한 건지... 판소리도 얘기니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기수라고 얘기쟁이를 보고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얘기책 놓고 얘기를 하던 사람을 한문으로 전기수라 합니다. 얘기책 읽어주는 사람을 심우성 선생은 ‘이야기 장사’라고 하였습니다.
노: 판소리 발생지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은...
이: 경기 이남과 충청도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판소리 명창이 팔명창 시절에는 경기 충청도 광대가 많이 있었고 그 뒤에 전라북도가 많아졌고 그 뒤에는 전라남도가 많아졌습니다. 그로 봐서 오늘날 판소리를 처음에 만들어 낸 건 충청도 근방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들을 하지만 분명히는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노: 충청도 지역이 명창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판소리 발생지라 한다면 거기에서 뛰어난 음악가들이 나오고 했던 어떤 이유가 있었는가요?
이: 그건 인제 아직 풀리지는 않은 것이지요.
노: 옛날에는 판소리가 지역적인 제나 특성이 다 있었다고 보시는 거지요?
이: 있었던 거지요. 판소리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라 하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전라도 동편에 전승되던 것이 동편제이고 서편에 전승되던 것이 서편제이고 경기 충청간에 전승되던 것이 중고제이고 그러나 뒤에는 소리 명창들이 교류되어 뒤섞이면서 지역보다 전승계보와 소리 특성으로 제를 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순수 제가 거의 전승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노: 예. 오늘 거의 불쑥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대담인데도 장시간 좋은 말씀 들려 주셔서 감동적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늘 판소리 발생과 초기 명창들에 관한 대담을 여기에서 마칠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김: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 예, 다음에 또 차차 이야기해 봅시다.
* 상기 대담 내용 녹음은 국악음반박물관에 컴팩트디스크(CDR)로 기록,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장 녹음:김희라.
* 상기 사진: 왼쪽부터 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노재명, 송경주, 이보형, 김희라(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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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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