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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5)-
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5)- 2000년 5월 2일


유성기음반은 초기 장시간음반 시대(1950년대 후반∼196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 발매되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전축보다 유성기가 훨씬 많이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 유성기음반은 장시간음반에 밀려 음반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광복 후 국내에서 제작된 유성기음반은 1000장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악 음반은 350장 가량, 나머지는 대중가요일 것이라 생각된다.(노재명, 『판소리 음반 걸작선』 서울:삼호출판사, 7∼30쪽)

우리나라에서 장시간음반(LP)이 처음 생산된 것은 1958년 공보실레코드제작소였다. 초기 장시간음반 시대에는 대개 10인치 크기로 제작되었고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12인치로 제작되었다.

초기 장시간음반 시대에는 많은 음반회사가 있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각지에 크고 작은 음반회사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주로 대중가요 음반을 제작하기에 분주했다.

초기 장시간음반 시대의 음반은 열악한 음반 재질과 조잡한 표지 디자인, 연주자를 잘못 명시하거나 아예 명시하지 않는 무성의, 녹음 기술의 한계, 무단 복제, 체계없는 음반번호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기 장시간음반 회사들이 음반 레이블, 상표, 표지 디자인, 음반 내용의 기록 방법, 광고 문구 등을 일제시대 일본 음반회사의 기법을 그대로 모방했다. 이점 또한 일본 직배음반회사 체제의 잔재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과거사로 남는다.

초기 장시간음반 회사들은 대부분이 영세한 회사 운영과 조잡한 음반 제작을 면치 못했고 현재 발견되고 있는 극소수의 음반으로 회사명만이 간신히 확인되는 음반사들이 많다. 지금으로서는 당시의 사정을 알만한 이의 증언이나 문헌 기록이 나오지 않는 한 상세한 내력을 알기 어려운 회사들이 많다.

초기 장시간음반 회사 중에서 대표적인 음반회사를 꼽자면 킹스타레코드, 신세기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유니버살레코드, 대도레코드, 아세아레코드를 들 수 있다. 이 6대 음반회사들은 광복 후 유성기음반을 제작했던 대표적인 회사들이고 초기 장시간음반 시대에도 계속해서 국내 음반산업을 주도해 나갔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신세기, 신진, 예그린, 지구, 힛트, 유니버살, 신세계, 오아시스, 대한, 현대, 태광과 같은 회사에서 상당수의 장시간음반을 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은 국악 음반이 가장 적게 제작된 시기로서 시중에서 정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국악 음반이 10여장에 불과했다. 이때는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국악 음반을 더 많이 제작했다. 미국의 넌서치, 폭크웨이스, 리리코드, 유네스코, 일본 제이브이시, 프랑스의 오코라, 스위스의 브이디이갈로와 같은 외국 회사에서 국악 음반을 제작한 바 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국악 음반 제작 붐이 일어났다.(노재명, “판소리 장시간음반에 관한 연구” 『한국음반학 제2호』 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325∼392쪽)

장시간음반은 1993년부터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어서 1995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장시간음반의 상당수는 폐반되어 구하기 힘든 음반이 많다.

장시간음반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한 콤팩트디스크(CD)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에스케이시(SKC)에 의해서다.

콤팩트디스크 생산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음반이 고가인데다 사용 기계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장시간음반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가 콤팩트디스크가 지닌 편리함과 고음질의 장점은 음반시장을 점차 장악하였고 1992년에는 콤팩트디스크가 장시간음반의 생산량과 비슷한 추세로 제작되다가 1993년 이후 콤팩트디스크가 장시간음반의 판매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 음향 영상 매체 중에서도 콤팩트디스크가 거의 모든 음반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현재 지구레코드, 아세아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서울음반, 신나라레코드, 웅진뮤직 등의 수많은 국내회사와 외국서 들어온 여러 직배회사가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음반들을 제작하고 있다. 불과 수십년 전의 우리나라 음반 생산시설과 시장규모를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진보라 하겠다.(노재명, “광복 이후 한국음반사” 『스테레오음악 통권 23호』 서울:중앙일보사, 1994.1.20, 276∼281쪽)

그러나 국제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우리 고유의 상품 개발, 일본음반 개방 등 우리가 넘어야 할 산맥은 아직 산재해 있다.

아이엠에프(IMF) 이전에 한해 동안 제작된 국악 음반은 거의 200여종에 육박했다. 서양 고전음악을 제외하고 한 나라의 전통음악이 이렇게 왕성하게 음반화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음반 생산량 세계 8위다운 우리 음반업계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특수성들을 잘만 살린다면 우리 음반산업의 미래는 분명 희망적이라 하겠다.

앞으로 새로 녹음을 하여 음반화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와 병행하여 과거에 기록된 여러 음향 영상물을 수집 연구 보존하는 일 또한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보다 많은 국립, 사립, 분야별 음향영상자료관(아카이브) 건립이 시급하다. 이는 엠피스리(MP3), 콤팩트디스크(CD) 자판기, 인테넷 등이 주도하게 될 21세기 음반시장에서 우리 음반산업과 문화예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남아있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필름을 찾아오기 위해 몇 백억의 보상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 내버려지고 방치되어 있는 음반과 영상자료들이다. 불과 10∼20년 전의 마스터테입도 분실된 것이 허다한 우리의 현실에서 앞으로 우리의 또다른 자료들이 아리랑 필름처럼 일본인의 손에 남아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신중현 등의 우리 대중음악 음반이 우리나라 중고음반시장에서 일본인들끼리의 경쟁 속에서 한장에 최고 수십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심지어 수집을 위해 상점 주인에게 고가의 접대비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빅타, 콜럼비아 원반 수입이야 후손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도 우리가 만든 우리 음반까지도 장차 수입을 해야 한다면 이는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박용찬이 평생 모은 음악 자료들을 아낌없이 문예진흥원에 기증한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귀중한 자료가 있다면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 좋은 시설을 갖춘 공공기관에서 관리된다면 자료 보존이 용이하고 영구히 후세 사람들에게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여러 음악학자들이 평생 애써서 수집한 음악 자료들을 선뜻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보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 연구가들이 일생 동안 애써서 수집한 자료들이 또다시 중고시장에 흘러나오는 사례가 종종 목격되고 있다. 음향 영상 자료를 보관하는 공공기관이 과거에 기증받은 자료에 대해 우선 성의있는 관리로 신뢰도를 높혀야만 앞으로 이런 작업이 더욱 가능해질 것이다.

음향 영상물을 보관하는 공공기관은 이제 기증받는 자료 외에도 직접 자료를 찾아나서야 한다. 과거에 녹음 녹화된 테입과 음반 등 찾아보면 발굴할 자료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 지금도 문화재급의 음반이 중고 음반시장에 나타나고 있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테입자료도 많이 남아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그러한 자료들을 직접 나서서 수집하지 않고 있다. 우선 지금 이 시간 제작되고 있는 음반부터라도 수집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음반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그 나이에 걸맞게 수백개의 음반회사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 역사를 담고 있는 음반들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제대로 된 음향 영상 자료관은 전무한 형편이다.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끝>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2000년5월2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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