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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4)-
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 -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4)- 2000년 5월 2일

밀리온레코드는 한국인이 설립한 음반회사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소규모 회사가 그렇듯이 이 회사 또한 음반 생산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에서 제작된 음반의 레이블을 보면 밀리온은 일본 오사카의 고카레코드 등 다른 음반회사의 시설을 이용하여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리온은 193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한국 음반을 발매했는데 고라이라는 상표로도 음반을 냈다. 밀리온과 고라이 레이블로 발매된 국악 음반으로는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 임방울, 김남수, 조소옥, 경서도 명창 이영산홍, 고일심, 대금 명인 박종기, 가야금 명인 강태홍, 가야금병창 명인 최계란 등의 녹음이 있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돔보조선레코드(잠자리표), 쇼지쿠레코드, 코리아레코드, 뉴코리아레코드, 리베라레코드, 시스터레코드, 케이아이레코드, 디어레코드, 금조인특허레코드와 같은 회사에서 약간의 한국 음반을 제작했다.

돔보조선레코드(잠자리표)는 경서도 명창 박부용, 이금옥, 박숙자, 이영자, 가야금 명인 한성기, 쇼지쿠레코드는 가야금 명인 한성기, 경서도 명창 김주호, 코리아는 국악합주단인 코리아악단, 뉴코리아는 판소리 명창 김초향, 리베라레코드는 경서도 명창 박부용, 케이아이레코드는 판소리 명창 김남수, 디어레코드는 경서도 명창 이영산홍, 김옥엽, 금조인특허레코드는 서도 명창 백운선의 음반 등을 발매했다.

서양음악 유성기음반은 대개 12인치 크기이고 한국음악 유성기음반은 거의 대부분 10인치 크기로 제작되었다. 12인치 크기의 서양음악 유성기음반은 한면에 약 4∼5분 수록되어 있으며 10인치 크기의 한국음악 유성기음반은 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대체로 약 3분 정도가 한면에 녹음되어 있다. 한국음악 유성기음반은 특수한 경우에만 12인치 크기로 제작되었고 동요, 동화, 동화극 등 아동반의 경우에는 8인치로 제작되기도 했다.

유성기음반은 근대 한국문화예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광복 이전의 동영상자료로는 극장 개봉용 영화 일부와 일본, 미국 등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찍어 간 영화 필름 몇가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광복 이전의 음악 등 문화예술 전반을 이해하려면 현재로서는 장르의 다양성으로나 자료의 양적인 측면에서나 유성기음반이 가장 첫손 꼽히는 연구 대상이 된다. 단적인 예로 오늘날엔 유성기음반이 아니면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고음반은 현재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타임머신과도 같은 존재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이러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어 옛 음반들이 활발하게 복각되고 있다. 그런데 복각 음반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음질이었다. 즉, 대부분의 복각 음반은 유성기음반의 마스터테입이라 할 수 있는 원반이 없어서 중고 유성기음반으로 복각되었고 그래서 음질이 감상의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다행히 일제 때 가장 많은 양의 한국문화예술 음반을 제작한 일본 콜럼비아와 빅타의 원반이 기적적으로 남아있었고 국내 음반회사들이 그 원반 녹음을 들여와서 수십년 전의 음악들을 비교적 깨끗한 음질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우리나라는 일본의 직배음반회사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이때부터 우리의 힘으로 음반을 제작하게 되어 실질적인 우리나라의 음반산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광복 직후 국내에는 레코드 프레스 공장이 한 군데도 없었다. 왜냐하면 1940년대 초반까지도 대개는 일본에서 녹음되었고 서울에는 1937년 오케이가 다옥동(현재 다동)에, 1940년대 들어서 폴리도르가 충무로 3가에, 콜럼비아가 인현동(일본인 전용극장 대정관 자리)에 설치한 간이녹음실만이 일부 있었을 뿐 프레스공정은 모두 일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 음반산업의 첫 걸음은 오케이 사장의 매부뻘 되는 김성흠이 일제 말기 일본에 건너가서 습득한 레코드 원판 제조기술과 프레스공법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김성흠은 일본에서 배운 기술로 기름짜는 압축기를 개조하여 레코드 프레스를 만들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유성기음반을 제작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에는 음반 원료가 귀했기 때문에 일제 때 생산된 유성기음반을 수집하여 중고 유성기음반 표면을 녹이고 그 위에 새로운 소릿골을 새기는 식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녹음 기술, 표지 디자인, 인쇄 기술이 매우 조잡했다. 이때 제작된 음반은 생산량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아주 희귀하며 신문이나 음반표지 광고에서만 확인되는 음반들이 많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특별반들은 일본 음반회사에 위탁하여 제작해 오기도 했다. 그 한 사례를 들면 6.25전쟁을 전후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株式會社三和交易社 EL-1001-A B 文敎部公認 敎育用레코-드’ 음반(국악기록보존연구소 노재명 소장 유성기음반 관리번호 MIPSP-0011∼0019)의 표면 기록에 의하면 일본 빅타음반회사에서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복 후 유성기음반을 제작한 회사는 코로나레코드, 서울레코드, 고려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킹스타레코드, 신세기레코드(신신레코드), 도미도레코드, 유니버살레코드, 노벨레코드, 대성레코드, 백조레코드, 문교레코드, 서라벌레코드, 아세아레코드, 오케이레코드, 럭키레코드, 오리엔트레코드, 스타레코드, 스파르타레코드, 신동아레코드, 실버스타레코드, 아리랑레코드, 평화레코드, 힛트레코드, 미도파음반공사, 은성레코드, 삼성레코드, 평화레코드 등이 있다.

광복 후 제작된 유성기음반은 대부분 가요였고 국악은 드물었다. 그리고 국악 중에서는 민요가 주로 취입되었다. 광복 후 음반회사 가운데 오아시스레코드, 킹스타레코드, 신세기레코드, 도미도레코드, 유니버살레코드가 국악 유성기음반을 가장 많이 제작했다. 그 중에서도 오아시스레코드, 킹스타레코드, 신세기레코드는 민요뿐 아니라 불교음악, 무속음악, 풍물, 산조, 시조 등 여러 장르의 국악 음반을 제작하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 킹스타레코드는 해외 소개용 국악 음반까지 제작한 바 있다.<계속>

2000년5월2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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