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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2)-
20세기 한국 음반 100년사 -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 시대를 중심으로(2)- 2000년 5월 2일

1925년에는 일축(와시표)에서 판소리 명창 이동백, 김창룡, 강소춘, 판소리와 가야금의 명인 심정순과 그의 딸 심매향, 경서도 명창 박춘재, 최섬홍, 김패수, 장금화, 이진봉, 백모란, 길진홍, 가야금 명인 김해선, 가야금병창과 민요의 명창 이초선, 국악합주단인 조선악단, 판소리와 민요의 명창 김추월, 신금홍, 박경화, 권금주와 같은 국악인을 비롯해서 영화설명 명인 김영환, 동요로 유명한 이정숙, 그리고 안기영, 홍난파와 같은 양악 전공자들이 음반을 취입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심정순, 김해선의 가야금산조 음반은 최초의 산조 녹음으로 추정되며 1926년 일축에서 제작된 이동백 도창 창극 춘향전(18SP) 음반은 최초의 창극 녹음이다.

1929∼1932년 일축조선소리판(이글레코드 적반 대중반) 전기녹음 때에는 판소리 명창 이동백, 김창진(김창룡의 동생), 김세준(김창룡의 아들), 백점봉, 김정문, 김추월, 이화중선, 배설향, 김초향, 하농주, 경서도 명창 박춘재, 서원준, 손진홍, 김향란, 백모란, 이진봉, 김산월, 이영산홍, 김옥엽, 장학선, 문명옥, 박월정, 김인숙, 설중매, 김부용, 임명옥, 임명월, 대금산조의 창시자 박종기, 대금 명인 김계선, 단소 명인 윤종선, 김명수, 가야금 명인 심상건, 안기옥, 김종기, 김운선(김죽파), 가야금병창 명인 오태석, 이소향, 김우학, 남도 명창 박동준 등이 음반을 취입했다. 이글레코드 적반 가운데 일부는 1934년에 리갈 대중반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1928∼1945년에 제작된 일본 콜럼비아 정규반과 리갈 대중반에는 이번 (주)컨텐츠그룹에서 복각 제작한 전집물에 수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단가, 판소리, 창극, 민요, 가야금병창, 민속기악, 정악, 무속, 불교, 대중가요, 서양식 고전음악, 재즈, 만담, 연극, 영화, 동요, 동화 등 다채로운 분야가 녹음되었다.
봉산탈춤, 대금산조, 풀피리산조와 같은 음반은 일축(콜럼비아)에서 최초로 발매됐다. 그리고 일축은 일축조선소리반(와시표) 시절에 이동백 도창 창극 춘향전 전집을 제작한 데 이어서 콜럼비아 레이블 때는 김창룡 도창 창극 춘향전 전집을 제작했다.

일축은 일제 때 음반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판소리 5명창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의 유성기음반을 모두 제작했다. 그리고 명창 김창룡과 그의 동생 김창진, 장남 김세준, 손녀 김차돈, 이렇게 중고제 가족 3대의 판소리 음반을 모두 제작한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1931년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발간한 『정선조선가요집』에 판소리 명창 유공렬의 사진이 실려있다. 『정선 조선가요집』에 사진이 실려있는 명인 명창들은 거의 대부분 콜럼비아에서 낸 음반이 발견됐으나 유공렬의 음반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의 음반은 콜럼비아에서 적반으로 제작한 이글레코드(일축조선소리판) 중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낸 한국문화예술 음반 가운데 가장 많은 취입된 것은 국악이다. 일축이 일제 때 제작한 2200여장의 한국 음반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악이다. 일축은 오늘날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로 존재하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 원폭을 맞아 공장이 밀집된 곳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음반회사 또한 거의 파괴되어 유성기음반의 마스터테입 구실을 하는 원반(동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87년 케이비에스(KBS)에 의해 일본 콜럼비아 원반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되었다. 그리고 1995년 엘지미디어(LG소프트)가 이 원반을 인수하여 그 일부를 복각한 바 있으며 1999년에는 (주)컨텐츠그룹이 이 원반 전량을 콤팩트디스크(100CD)로 복원하였다.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한국 원반은 1928년부터 광복 때까지 콜럼비아, 리갈 레이블로 발매된 음반들이다. 여기에 일본 콜럼비아 고급반(청반)의 원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1911년부터 1927년까지 기계식으로 녹음된 일축조선소리반(NIPPONOPHONE) 원반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는 일제 때 녹음된 한국문화예술 원반 외에도 1900년대부터 일제 때 녹음된 중국 전통음악 원반과 일본음악 원반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1987년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는 이 가운데 중국 전통음악을 원반에서 복각하여 전집물로 제작한 바 있다.

일축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 음반회사는 일동축음기주식회사(제비표조선레코드 NITTO)이다. 이 회사는 1925년부터 1929년 무렵까지 한국 음반을 발매했다. 일동의 한국 음반은 대부분 이기세의 기획에 따라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동에서 음반을 취입한 이는 판소리 명창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강소춘, 김록주, 신금홍, 박록주, 정가 명창 하규일, 현매홍, 경서도 명창 박춘재, 최섬홍, 표연월, 이월암, 김죽사, 서도소리와 단소의 명인 양우석, 가야금 명인 심상건, 김해선, 대금 명인 최학봉, 김영근, 해금 명인 지용구, 김화녀, 피리 명인 이응룡, 양금 명인 정위정, 태평소 명인 박기동, 진창규, 정가 경기 서도 남도민요 판소리의 명창 박월정, 고수 한성준, 김창근, 양악 전공자 윤심덕, 윤성덕, 영화설명 변사 김영환, 그리고 도월색(대중가요), 다리아회(동요), 고한승(동화) 등이다.

일동은 여러 음악 중에서도 국악 음반을 가장 많이 제작했다. 그 중에서 특히 최학봉, 김록주(김해), 현매홍, 이월암, 양우석, 김화녀, 이응룡, 정위정, 박기동, 진창규의 녹음은 유일하게 일동 음반에만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강소춘, 하규일, 박춘재, 김록주의 녹음이 걸작으로 평가된다.

1928년에 콜럼비아와 빅타가 전기식 녹음을 도입하여 음반을 취입하자 기계식 녹음 회사였던 일동은 1929년 무렵에 우리나라 음반시장을 떠났다. 기술 부족과 영업 부진이 원인이었다. 일동은 윤심덕의 가요 <사의 찬미>로 한때 엄청난 이익을 보았으나 국악 음반으로는 별로 이득을 보지 못했다.

일동에 이어서 1926년에는 합동축음기주식회사가 비행기표조선소리판을 발매했다. 이 회사 또한 일본 음반회사인 것으로 보인다. 합동에서는 경서도 명창 백운선, 김월선, 김산월, 이난향, 남도 명창 안금향 등의 음반이 발매되었다. 합동도 일동과 마찬가지로 기술 부족과 영업 부진 때문에 1920년대 후반 한국 음반시장을 떠났다.

1900년대 후반에 한국 음반을 제작했던 미국 빅타가 한국의 음반시장을 포기하고 되돌아간지 20년만인 1927년 전기녹음 기술을 개발하여 일본에 지사를 설립하고 다시 한국 음반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일축이 한국 음반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빅타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일축과 어깨를 겨루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에 의해 한국 음반시장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빅타레코드는 1928년에 한국문화예술 음반을 취입하기 시작했고 1929년부터 광복 때까지 빅타 정규반, 고급반, 주니어 대중반, 아동반(8인치)으로 나누어 한국 음반을 제작했다.<계속>


2000년5월2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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