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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목구성, 변화무쌍한 편곡, <새타령>의 대가 이동백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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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재명 저서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본 판소리 참모습](서울: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006년) 143~171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장쾌한 목구성, 변화무쌍한 편곡, <새타령>의 대가 이동백 명창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이동백(예명:李東伯, 본명:李鍾琦, 1866~1949)은 13세 무렵부터 이규석, 최상중, 김정근, 김세종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정노식의 [조선창극사], [조선일보] 신문기사 기록 등)
이동백은 1866년 음력 2월 3일 출생하였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문헌 기록에 의해 고증한 것이다.
“씨(이동백)의 관향은 경주요 본명은 종기(鍾琦)며 동백은 아명이다. (중략) 처음 고고의 소리를 내기는 지금으로부터 칠십사년 전인 병인(丙寅)년 이월 초사흔날이엇스나 불행히 그해 십월에 부친이 돌아가 씨는 강보(襁褓)에 싸인 채로 아버지 얼굴도 못보고 청상과부인 편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가계도 넉넉지 못하므로 백부 슬하에 가서 수양되엇다.”(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 1)
“내 出生地는 至今 忠淸南道 舒川-옛적 일흠은 庇仁郡 一方面 都萬里 ‘도마니’ 洞里임니다. 生日이 二月 初사흘인데.”(靑葉生, “명창 이동백전-칠십 평생을 조선 노래로 바친 정열 명창·고난의 일대기” [조광 소화 12년 3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162~169쪽 발췌)
이와 같은 인적 사항들은 이동백 자신이 생전에 언론사 인터뷰시 직접 얘기한 내용들이다. 이 외에 반론을 제시할 만한 다른 실증 자료는 아직 없는 상태이다.
예전 판소리 명창들은 대부분 외국의 집시나 히피와 유사한 유랑 생활을 많이 하였다. 정처 없이 떠돌아 살며 가는 곳마다 신분의 차별을 받았다는 점에서 외국의 집시와 많이 닮은 집단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혈족, 친족 사이의 결속이 강하고 자체 규범이 엄격하다는 점, 결혼은 거의 동일한 집단 출신끼리 한다는 점 역시 우리의 명창들과 외국의 집시가 유사하다.
인간사, 사회를 비판하고 또 사랑, 효도, 형제 화목 등의 실천을 강조하고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 나가며 올바로 행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노래하는 명창들은 외국의 히피와도 닮았다 할 것이다.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주체로 하여 시작된, 탈사회적(脫社會的) 행동을 하는 히피들. 진부한 물질 문명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리며 음악, 그림 등 예술에 심취하고 무엇보다도 반전과 평화, 자유와 사랑을 외치는 히피와 한국 옛 명창들의 언행, 삶의 방식이 많이 닮았다 하겠다.
이러한 특성, 자유분방하다고 할 수 있는 유랑 생활 때문에 명창들의 출생지부터 주거 이동 경로, 성장 과정 등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박해와 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광대라는 신분 때문에 방랑 기질이 없는 이들도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명창들은 후손을 생각해서 신분의 멍에를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주거지를 자주 옮기고 심지어는 성씨도 바꾸거나 호적 마저 세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에 후일 그 진실을 추적한다는 건 무척 난해한 일이다.
그래서 명창들의 증언 내용과 그들의 실제 호적, 고서적 기록 등이 일치되지 않고 각기 다른 경우가 아주 많다. 따라서 어느 명창의 호적이 발견된다 해도 그 출생지 기록이 참고는 될 수 있으나 그걸 정확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명창 송만갑도 그러하고 이동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동백 역시 거의 일생을 방방곡곡 유랑하였고 출생지가 과연 어디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그의 출생지로 서천만을 주목하였고 점차 이 곳으로 굳어지고 있으나 필자가 찾은 여러 자료에 의하면 서천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증거들이 서천 출생설과 대등할 만큼 많이 있고 새로 발굴한 그 자료들이 무척 신빙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에서 어느 특정 지역이 이동백의 고향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보다 확실한 입증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다음과 같이 세 곳을 그의 출생지일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근거 자료와 함께 제시하는 바이다.
● 이동백 출생 유력지(1) 충청남도 서천
- 翁: 나는 원래 忠南 舒川에 나서 早失父母하고 스물두 살까지 집에 곱다라케 드러안저 농사질을 하고 잇섯지요.(“명인 열전 其一 국창 이동백옹” [삼천리 1929년 12월호] 서울:삼천리사, 2~6쪽 발췌)
- 씨는 세상이 다 아는 조선 유일의 명창이다. 그 성량의 웅혼함과 태도의 장중함은 당대의 제일인자요 신수의 청수함과 기개가 있음은 너나 없이 칭찬해 바뜨는 그다. 금년에 七十. 고향은 충청도 서천(舒川)이요 소리는 창원(昌原)에 있을 때 배우기 시작하였다 하니 그가 창원에 가기는 아홉 살 때라 한다.(“방문 삼중주, 조선 소리는 어디로 가나, 명창 이동백씨 방문기” [중앙 1936년 4월호] 서울:조선중앙일보사, 174~175쪽 발췌)
- 내 出生地는 至今 忠淸南道 舒川-옛적 일흠은 庇仁郡 一方面 都萬里 ‘도마니’ 洞里임니다. 生日이 二月 初사흘인데.(靑葉生, “명창 이동백전-칠십 평생을 조선 노래로 바친 정열 명창·고난의 일대기” [조광 소화 12년 3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162~169쪽 발췌)
- 생각하면 지나간 모든 일이 바로 엇그제 지난 일 갓기도 하고 또한 깜아득한 녯날 일 갓기도 합니다.
흐미한 過去를 더듬어 보면 깃뻣든 일 슬펏든 일 야속햇든 일들이 斷片的으로 머리에 떠오르지 안는 바도 아니지만은 이제는 나히를 만히 먹은 탓으로 모도가 신산스러우며 過去를 回想해 볼 긔운 조차 생기지를 안습니다.
故鄕인 舒川서 어렷슬 때 지나든 일은 이저 버린 꿈 가태서 생각이 날듯 말듯 합니다만 노래를 배호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부터인 것마는 확실합니다.(“그들의 회고담(1) 통정대부 하사하신 朝鮮一의 명창 오십년 정진의 가지가지-조선성악회 이동백” 1937년 4월 29일자 [매일신보])
- 이동백씨는 충남 서천(舒川) 출생으로.(“일대 명창 이동백 은퇴 기념 공연회 본사 주최 來 이십구, 삼십 양일간, 부민관에서-팬에게 보내는 최후 선물” 1939년 3월 15일자 [조선일보])
- 본래 세거하기는 충청북도 진천(鎭川)이엇스나 씨가 나기는 충청남도 서천(舒川)이다.(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 1)
- 氏는 忠淸南道 舒川 出生으로.(이달재, “이동백과 조선음악-그의 은퇴와 금후의 조선성악회” [조광 소화십사년 오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330~333쪽 발췌)
- 李東白은 距今 七十四年 前에 忠淸南道 庇仁郡 都萬里에서 出生하였다.(정노식, “이동백, 일명 종기, 중고제” [조선창극사] 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205~210쪽 발췌)
이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동백 스스로 자신의 출생지에 대해 충청남도 서천(비인군 도만리)이라고 밝힌 자료들이다.
● 이동백 출생 유력지(2) 충청남도 보령
- ‘노래’로 유명한 이동백옹이 평택군 송탄면 칠원리 자택에서 정양 중이다가 83세의 고령으로 지난 6일 별세하였다. 국보적인 우리의 성악가 이동백옹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충남 보령 출생으로.(“국악계의 지보 국창 이동백옹 서거” 1949년 6월 9일자 [경향신문])
이 신문 기사에는 정남희, 박록주의 추모글이 함께 실려있는데 이 기사는 정남희, 박록주 일행이 작성하고 언론사에 배포한 자료에 의해 보도된 것으로 보인다.
정남희는 이동백이 아끼고 신뢰한 제자이자 오른팔 격이었던 후배이고 누구보다 이동백에 대해 잘 알았던 인물이고 이동백 타계 후 국악계의 거목이었으니 이 신문 기사를 위한 보도자료 작성 또한 정남희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동백이 충남 보령 출생이라는 것 역시 정남희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서천과 보령이 가까운 거리이지만 분명 행정 구역상 다른 곳이고 만일 보령 출생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동백은 광대라는 신분과 후손을 위한 마음 때문이든, 또다른 이유에서든 위장을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태어나기는 보령이나 아주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서천에서 성장했기에 서천을 고향으로 여겨 서천을 출생지라고 인터뷰시 말한 것일 수 있다.
만일 이동백이 어떤 이유에서 출생지가 보령인데 서천이라고 거짓말을 했든, 아니면 서천은 어려서 자란 곳이기만 한데 그 곳을 고향이라고 인터뷰시 그냥 편의상 말했든 간에 이동백의 가장 측근이고 이동백을 잘 알았던 정남희는 진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이동백 출생 유력지(3) 경기도 평택
- 선생(이동백)은 1866년생으로 송만갑 선생보다는 한 살이 아래이다. 고향이 경기도 평택인데 기적적으로 남도창(南道唱)을 잘하셨다.(박록주, “나의 이력서20” 1974년 2월 2일자 [한국일보])
선생(이동백)은 성악연구회가 흐지부지 없어진 해방 직전에 평택으로 이사가서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시골에 은거하시자 선생은 미리 산소와 비석을 마련해 놓았다. (중략) 댁은 평택읍서도 20리를 더 들어가는 시골에 있었다.(박록주, “나의 이력서 24” 1974년 2월 8일자 [한국일보])
- 강선영이 어릴 때 자신의 모친이 평택에서 4년간 하숙, 바느질품 일을 했다 한다. 그때 서울 한성준 무용 학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춤을 공부하던 강선영이 어느날 오랜만에 평택 집으로 가서 모친과 담소를 나누던 중 이동백의 고향에 대한 말을 들었다 한다.
언젠가 한성준 무용 학원에 이동백 명창이 왔는데 강선영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무척 반가워하였고 예뻐하여 그 얘기를 강선영이 모친에게 했더니 모친은 이동백 명창 고향이 여기 평택이야 하고 강선영에게 말했다고 한다.(2003.3.17 강선영 증언)
이동백이 강선영을 만나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하고 예뻐한 까닭은 강선영의 큰조부 강경수가 생전에 이동백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동백에 대한 여러 추억을 가지고 있고 이동백 작고시 평택으로 문상을 갔던 박록주, 그리고 이동백 생전에 인연이 깊었던 강선영 집안 사람이 이동백의 고향을 평택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주목된다.
한 사람의 말이라면 이것이 착오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동백과 가까웠고 인연이 깊었던 주변 인물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의 옛 사람들은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면 자기 고향을 바라보고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법. 일설에는 이동백이 평택에 정착한 이유가 말년에 얻은 부인이 평택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혹시 이동백이 은퇴 후 평택으로 가서 은거한 점 역시 평택이 이동백의 고향이란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지.
과연 그토록 오랜 동안 객지를 떠돌고 자식도 거의 없이 말년을 외롭게 지내던 이동백이 여생 마저도 객지에서 보내고 눈을 감고 싶었을까. 고향 아닌 타지에서 객사하는 걸 아주 서럽게 여긴 우리네 관습으로 봐서 이 점은 의문이다.
만일 말년에 가서 살고는 싶었는데 어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서천이나 보령 등 고향 땅으로 가지 못하고 진정 아내를 따라 타지 평택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면 이동백은 정말 외로움, 경제적 궁핍에다 우울함까지 가해져 무척 힘겨웠을지 모른다.
암튼 이런 추측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불과 작고한지 반세기 조금 넘은, 20세기 한국 최고의 성악가라 할 만한 국창이 이렇게 기록이 극히 부실하게 남아있다는 게 부끄럽다. 그런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게 냉대 속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고 지금까지도 각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 이 얼마나 억울하고 애석한 일인가.
전통사회뿐 아니라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들 대부분이 한 곳에 뿌리내리고 대대로 한 동네, 한 집에서만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동백의 후손이 20세기 중반 충청도를 떠나 현재 전남 무안에서 살고 있고 이동백이 충청도 서천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전국을 떠돌다가 경기도 평택에서 여생을 보낸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이동백 일가의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39년 3월 26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4)에 의하면 이동백은 강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한다.
그리고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1866년 음력 2월 3일 이동백이 태어나고 그 해 10월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 강보(襁褓)에 싸인 채로 아버지 얼굴도 못보고 청상과부인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계가 넉넉하지 못해 백부 슬하에 가서 수양되었다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다음과 같은 문헌에는 이동백이 유복자 외아들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生日이 二月 初사흘인데 그 전해 十月에 父親이 도라가시고 遺腹子 외아들노 태여났읍니다. 집에서는 三寸宅과 같이 머슴 두고 農事 짓고 있었지요.”(靑葉生, “명창 이동백전” [조광 소화 12년 3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162~169쪽)
이동백이 태어나기 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는가, 아니면 태어난 후 부친이 작고했는가 기록이 서로 다른데 필자는 이동백이 강보에 싸인 채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고 두 번 언급되어 있는 1939년 3월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 기록이 이동백은 유복자 외아들이라고 단 한번 언급한 1937년 3월 [조광]보다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1937년 4월 29일자 [매일신보] ‘그들의 회고담(1) 조선성악회 이동백’이라는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동백이 김정근에게 노래를 배웠는데 처음엔 부모가 무심코 내버려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동백이 백부를 아버지라 부르고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동백의 어린 시절을 잘 보여주는 한 문헌 기록이다.
“어렸을 때요? 어렸을 때야 작난치고(→ 장난치고) 놀고 별 것 있읍니까. 소리에 대하야 처음 귀를 기우리고 듯기도 한 것은 十歲 前後이였읍니다. 그리고는 書齋에서 千字를 뵈이는데 암만 배와도 도무지 드러오지 않었읍니다. 하늘천 따지 하고는 그 아래는 깜깜이였읍니다. 그래도 읽기는 史略初卷까지 읽었는데 天皇氏는 以木德으로 王하고 또 그 아래는 알 수 없었읍니다.”(靑葉生, “명창 이동백전” [조광 소화 12년 3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162~169쪽)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이동백이 차차 철이 들자 글을 배웠으나 글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어서 다른 아이들을 따르지 못하고 자연히 훈장한테 꾸중을 들으니 글에는 마음이 가지 않고 어린 마음에 어려운 글을 맞아 가면서 배우는 것보다는 쉬운 언문을 익혀 소리를 배워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205~210쪽에 의하면 이동백이 8,9세부터 13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독서에는 뜻이 없고 가요에만 취미가 있으므로 그 기호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글 공부를 폐기하고 이내 김정근 문하에 가서 판소리 공부하기를 시작하였다 한다.
이동백이 어려서 글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성경린의 글 “이동백옹-무학으로 서러운 이야기”([신천지 1954년 9월호] 서울:서울신문사, 138~142쪽)에도 자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속칭 ‘산이’(세습 국악인 집안 사람) 가운데 집에서 공부를 시켜 보려고 했으나 글에는 흥미가 없고 오로지 적성에 맞는 게 국악밖에는 없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이’ 출신인 김영택(황해도 은률탈춤 악사 인간문화재) 역시 생전에 필자에게 이동백과 유사한 증언을 한 바 있다. 김영택은 보통학교에 다닐 때 한 학급 약 68명 가운데 60등 정도를 했고 학교 공부는 그렇게 하기 싫고 무척 어려웠는데 음악은 귀에 쏙쏙 들어와서 배우는 게 너무나 쉽고 재미있었다 한다.(노재명 편저 [국악자료 총서 제1호 배뱅이굿] 경기 고양:아름출판사, 2002년, 62쪽)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이동백이 열두살 되던 해부터 소리를 배우려 하였으나 그 백부가 소리를 못하게 야단을 치고 어떤 때는 모진 매도 때리고 했다 한다. 그리고 종시 소리 배우고자 하는 이동백의 마음이 변치 않자 가정을 이루면 마음을 잡을까 하고 그 백부는 생각했던지 이동백을 열세살에 혼인시켰다.
이동백의 백부 입장에서는 조카를 엄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혹시나 어디 가서 나중에 아버지 없이 커서 그렇지 하는 트집이나 잡히지 않을까 하여 누구보다 엄격하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리고 친부가 아닌 백부로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언행 하나하나가 매사에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이동백의 백부는 일찍 요절한 동생(이동백 부친)이 안됐고 아버지 없이 성장하는 조카(이동백)가 측은한 생각이 들수록 조카 이동백 만큼은 오래도록 건강하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똑바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도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이동백은 백부의 뜻에 따라 장가를 들고 생각해 보아도 소리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식질 않았고 그 백부의 밑에서는 소리 공부를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백부와 따로 살아야겠다고 권솔을 데리고 따로 나와 소리 배우기를 결심했다 한다.
1939년 3월 23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2)에 의하면 이동백이 백부의 집에서 따로 나와서는 정말 소리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초암(草岩) 사는 이규석(李圭錫)이란 율객을 찾아가서 먼저 갖가지 소리 사연을 배워 가지고 공부하기를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집에서 소리를 하려니 백부가 엄하게 말리고 또 가인들도 이상스럽게 여기므로 혼자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사람 없는 데를 골라서 소리를 닦았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동백이 백부의 집에서 따로 나와 살았다고는 하지만 백부의 집과 그리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백부의 집에서 따로 나와 살면서도 이동백이 몰래 소리 공부를 하며 엄한 백부의 눈을 두려워 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또다른 문헌 기록으로 보아 이동백이 백부와 따로 살게 된 시기는 15,16세 무렵임을 알 수 있다.
“장가는 열세살 때 朴氏를 마저 十五六歲에는 三寸宅이 집을 나고 홀오마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靑葉生, “명창 이동백전” [조광 소화 12년 3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162~169쪽)
이처럼 이동백이 백부의 뜻을 강하게 거역하면서 소리를 하고자 한 것은 천성적인 예술가 기질도 있었겠지만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심과 같은 면도 적잖게 작용한 듯하다.
아주 어릴 땐 이동백이 백부가 친부인 줄 알았을 것인데 철이 들면서 친부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겪는 고통은 실로 컸다. 어린 시절엔 심한 놀림을 당하고 커서도 혼사에 지장이 있었다. 그 정신적 고통을 사춘기 이동백은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고 누구나와 같은 일상 생활, 한 곳에 정착하여 가정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보다는 사회의 고정 관념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적성에도 맞고 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누빌 수 있는 가객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7년 4월 29일자 [매일신보] ‘그들의 회고담(1) 조선성악회 이동백’이라는 신문 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처음 金正根이라는 이에게 노래를 배웟섯는데 처음에는 父母님께서도 無心코 내버려 두섯다가 내가 하도 熱中하야 노래에 專心하게 되니가 그때부터는 노래 工夫를 一切 嚴禁을 當햇섯지요. 그러나 어른들의 눈을 속여 가며 틈々히 몰내 노래를 배호기를 二, 三년 하다가 結局은 할 수 업시 노래 工夫를 斷念해 버리기로 하엿슴니다.
죽어도 하고 십흔 노릇을 몃 해 고만두고 보니 사람이 말러 죽을 지경이엇지요. 그러다가 집안 형편도 變하게 되고 나히가 차차 들게 되니까 男子로 나서 한번 먹은 뜻을 풀어보지 못하면 살어서 무엇 하나 하는 엉큼한 생각이 나서 노래 공부를 완성하야 朝鮮서 第一가는 名唱이 되여 보려고 飄然히 故鄕을 떠나 버렷습니다. 二十 前後에는 가장 氣力도 조흘 때이지만은 나도 그때는 한창 野心滿滿햇든 터이라 嶺南 各地로 도라다니며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차저 단이며 修鍊을 싸엇습니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爲하야 움을 파고 움 속에서 장단 업시 近 三年 동안이나 목청을 내 뽑든 것도 그 때 일이엿고.”
이처럼 이동백은 판소리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독공하는 과정 내내 지속적으로 집안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그래서 한때 소리를 중도에 포기한 적도 있다 한다.
다음과 같은 문헌 기록을 보면 생전에 늘 효를 중시한 이동백은 홀어머니 걱정을 덜어 보겠다는 생각에서인 듯 한때 소리를 포기하고 수 년간 도만리에서 조승지(曹承旨)의 청직(廳直)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때도 역시 소리하는 것을 향그럽게 알지 안을 때이니 母親께서나 어른들이 말니기도 하였지요마는 한번 決心한 나에게는 꼭 살 길이 그것밖에는 없어 뵈였읍니다. 不孝하였지요. 그래서 그후 한때는 도마니에서 曹承旨의 廳直이 노릇도 몇 해 하였습니다.”(靑葉生, “名唱 李東白傳” [朝光 昭和十二年 三月號] 京城:朝鮮日報社 出版部, 162~169쪽 발췌)
1974년 2월 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박록주 ‘나의 이력서(20)’에 의하면 이동백이 광대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리돌기’를 않기로 부모님에게 맹세했다고 한다.
이는 이동백이 유년기 때 소리에 관심을 갖고 노래를 하려고 하자 이동백의 일가친척이 강력하게 반대하였기에 철이 든 후 마음속이든, 실제 모친이나 백부에게 말로든 간에 소리는 하되 수치스러운 거리돌기만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1939년 3월 26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4)에 의하면 강원도 감사로 있던 김정근의 배려로 이동백이 광대의 신분에서 기적적으로 충주 감영 총수라는 감투를 얻을 기회를 잡은 적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 때 마침 모친이 세상을 떠나 효성이 지극한 이동백은 당연히 그 기회를 포기하고 모친이 있던 창원으로 막바로 내려갔다 한다. 그 문헌 기록은 다음과 같다.
“강보 때 아버지를 여히고 청춘 과거하는 편모를 남과 가티 효도로 봉양도 못하고 소리 공부하네 무어 하네 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최후의 임종 조차 못하엿스니 가슴에 맷친 원한이 만종녹을 누린다고 하드라도 그것을 바라서 어머니 상사에 유감이 잇게 할 수는 업다고 해서 청운(靑雲)의 노픈 뜻을 헌신짝 가티 버리고 피눈물을 먹으면서 분성(奔星)해 나려가니 그때 그 어머니는 서천서 살다가 외아들 하나 이 진주서 살모르(살므로) 따로 떨어저 잇슬 수 업다고 아들을 차저 진주 근처 창원에 와 살다가 불행햇스므로 밤나즐 다토어 창원으로 나려갓다.”(1939년 3월 26일자 [조선일보])
이같은 기록을 보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러하지만 청춘에 과부가 된 이동백의 모친이 외아들 동백을 사랑하고 아끼고 전국을 떠도는 아들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남편도 없이 백발이 되어 가면서 아들에게 기대고 싶은 심정은 그 누구보다 각별하였을 것 같다.
이러한 가정사를 지닌 이동백이었기에 판소리 다섯바탕 중에서도 그는 심청가에 가장 많은 애착을 보였다고 하겠다.
이동백이 모친 잃고 눈먼 부친을 위해 목숨을 바쳐 효도하는 심청이를 그린 심청가를 듣고 감동하여 자신도 이 노래로 사람들에게 효심을 심어 주고 싶어 소리를 하게 됐다는 얘기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이동백이 심청가를 부를 땐 심봉사와 심청의 얘기를 마치 자기 일인 듯 각 대목마다 상황에 몰입되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소리를 하고 듣는 이도 다같이 울었다는 일화가 많이 전해지는데 이런 소리판의 분위기를 가지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그가 어린 시절 처한 특수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동백은 1891년 무렵부터 공연 활동을 했다. 처음에 경기도로 상경했다가 진주, 창원 등 주로 경상도 지역을 주요 무대로 삼아 약 10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후 그의 나이 1902년 무렵에 서울로 상경하여 원각사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이때 그의 소리에 탄복한 고종이 그에게 통정대부(正三品)의 직함을 주었고 순종은 그가 원각사에서 소리할 때면 전화통을 귀에 대고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동백의 판소리는 남녀노소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고 5명창 가운데 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입은 명창이었다.
이동백은 1915년 경성구파배우조합 창립 구성원이었고 서울의 연흥사, 장안사 두 극장과 전속계약을 맺고 창극조 공연 활동을 했다.
1918년에는 송만갑과 협력하여 협률사를 조직하여 지방 순회 공연을 다녔으며 1930년대에 조선음률협회, 조선성악연구회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1915년부터 1936년에 미국 빅타, 일축, 일본 콜럼비아, 일본 빅타, 일본 폴리도르, 쇼지쿠 음반회사에서 많은 녹음을 남겼다.
1939년 3월 15일 경성 부민관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및 동포들이 있는 이웃 나라들까지 가서 은퇴 기념 작별 공연을 하였다.
1940년대 박록주 등의 후배 소리꾼들의 간청으로 소리 활동을 재개하여 이따금 공연을 하였고 1949년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칠원리에서 작고하였다.
이동백은 강장원을 비롯해서 정응민, 정광수, 정남희, 김석구, 백점봉, 김토산, 이화중선, 김차돈, 임유앵, 조영학, 공기남, 박복남, 김득수, 신쾌동, 염금달 등에게 소리를 가르친 바 있다. 이동백의 수제자 강장원은 장수하지 못하고 1962년 53세로 작고하고 말았다.
명창 정광수는 그의 스승 이동백의 판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동백의 판소리에 중고제가 많이 들어있는데 청우조에다 경제가 가미되어 있다. 청우조가 진짜 우조이다.”(2003.2.12 정광수 증언)
명창 한승호의 말에 따르면 유성기음반에 녹음된 이동백의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는 반우조, 반계면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동백의 잡가 <새타령>에서 ‘굼벙지게’ 하는 부분이 한승호는 우조라 하였고 그 <새타령>은 전체적으로 우조, 계면조, 평조가 섞여있다고 했다. 한승호는 이동백의 경우 전라도식에 가까운 판소리이고 김창룡은 충청도식 소리라 하였다.(1999.11.24 한승호 증언)
음악평론가 박용구는 명창 이동백의 소리를 접한 일화와 소감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내가 일본의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36년경부터 라디오 방송과 인연을 갖게 된 것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JODK로 불리던 정동의 경성방송국 조선어 방송 아나운서로 이계원(李啓元)이 있었다. 송진근(宋軫根)과 함께 그 당시의 인기 아나운서로 우리나라 방송 어법을 확립한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보성전문(지금의 高大) 시절의 그는 학생극 운동의 챔피언이기도 했다.
아마 37년 여름이었을까. 그는 방학에 귀국한 나를 부민관으로 데리고 갔다. 꼭 보아둘 만한 구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후 두 시쯤이었을까. 부민관 무대에서는 비공개(非公開)로 한국의 음악과 춤이 공연되고 있었다.
현장 중계도 아니요, 녹음이나 녹화도 없던 시절이고 보면 아마 일본의 고관(高官) 나부랭이가 와서 ‘광대’들을 동원시킨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름만은 듣고 있던 이동백의 ‘창’과 한성준(韓成俊)의 ‘학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동백은 <새타령>을 불렀던 것 같다. 북은 명고수(名鼓手) 한성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풍채부터가 당당했다. 행동거지에 자신이 넘쳐 보였다. 그 때 이태왕(李太王-高宗)이 하사했다는 옥관자(玉冠子)를 망건에 달았는지 기억에 없으나 유별나게 커보이는 통영갓은 눈에 선하다.
그 당시 바리톤을 공부하고 있던 내게 이동백의 창(唱)은 남성다운 우렁찬 목청이 거침없이 흘러 나와서 시원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朴容九 著, “제1부 레코드 史外史-옥관자의 李東伯” [음반과 함께 하는 名曲과 名人들] 서울:世光音樂出版社, 1989년, 179~183쪽. 181쪽에 이동백 사진 수록)
이동백 명창의 판소리에 대한 외국인의 찬사와 호응도 대단하였는데 다음은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실증 기록들이다.
“오늘은 전부터 총독부에서 부탁한 조선 악무의 영화 촬영을 하였다. 오전은 주로 李王職 아악대(봉상소)에서 종묘 및 문묘의 악무를 촬영하고, 오후는 요정 明月館의 마당에서 기생들의 궁중 宴禮舞의 촬영을 한 것이다. 이 영화 촬영에 대해서는 당시의 신문에서 떠들썩하게 썼으며 아주 신기하다고 하여 많은 구경꾼이 봉상소에 몰려 들었다. 그래서 문을 닫아 버렸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담장 위에 올라가 결국 담장 일부가 허물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중략)
이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간 나도 여러 장면의 사진을 소지한 카메라로 되도록 많이 찍었다. 그리고 곧 이 明月館의 별실에서 나를 위해 金永煥씨와 아악대 악사의 유지들과 함께 하는 조선 요리의 연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특별히 불려 온 조선의 名優 李東伯이 劇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대사 외에 몸짓도 있었는데 여하튼 조선 제일의 명우인 만큼 성량이나 음색이나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田邊尙雄 著, 朴水觀 譯, “朝鮮 1921年 제1부 조사 여행기-李王職 雅樂 調査 日記 <4월 12일 흐린 후 맑음>” [朝鮮,中國 音樂 調査 紀行] 대구:갑우문화원, 2000년, 60~61쪽 발췌)
“○記者: 先生의 藝術에 對하야 或 西洋 사람들이 무에라고 批評하는 말슴을 드른 적이 업슴니까.
○翁: 年前에 어느 舞臺에 올나 서서 ‘새타령’을 한 일이 잇지요. ‘저 벅국새가 나라든다, 이 산에 가도 뻑국 뻑국 저 산에 가도 뻑국 뻑국’ 하면서...... 그랫드니 梨花學堂과 培材學堂을 設立한 무에라고 하는 西洋 사람이 와서 자긔 나라에도 뻑국새 우름을 우는 노래가락이 잇는데 조선의 노래가 대단히 조타고 하면서 한편 自己 나라로 가사고 熱心히 勸하는 말을 드럿슴니다. 그러고 再昨年 가을에는 布哇에 잇는 우리 七千 同胞가 종로 靑年會館의 某氏와 某團體의 某氏를 通하여 布哇로 期於히 와 달라는 招請을 밧엇슴니다. 더구나 그 때는 布哇에 잇는 우리나라의 有名한 富者 朴某라는 분의 回甲 잔채가 림박하여서 그 富豪로부터 再三 懇請이 잇섯슴니다. 이 늙은 李東伯을 萬里 박게서 알아주고 동포가 부른다 하니 아니갈 수가 잇사오릿까. 分外의 榮光으로 생각하고 즉시 떠나려 하엿스나 드른 즉 너무 뱃길이 오래어서 날 가치 배에 약한 사람은 生命을 건저 쥐기 어려울 지경이라 합데다. 醫師의 말에도 그런 먼 곳으로 가자면 六味 먹든 사람은 몃칠 病院에 入院하여 그 지름끼를 뽑아야 한다 한즉 엇더케 갈 수가 잇겟슴니까. 그것이 지금 생각하면 엇더케 遺憾스러웟는지 몰으겟슴니다. 歌客 四十年에 世界에 한번 나가 조선 노래라고 우렁차게 불너 보고 죽는다면 엇더케 痛快한 일이겟슴니까.
○記者: 네 大端히 유감스러윗슴니다.”(“명인 열전 其一 국창 이동백옹” [삼천리 1929년 12월호] 서울:삼천리사, 2~6쪽 발췌)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 의하면 이동백의 관향은 경주이고 조상은 본래 충청북도 진천(鎭川)에서 살았다 한다.
진천이라면 이동백의 수행고수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강경수가 서울 상경 직전에 살던 곳이고 강경수 집안의 선산도 지금까지 여기에 있다.(2003.3.17 강선영 증언)
이런 점은 이동백과 강경수가 친하게 지내는 데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전통사회에서 같은 집단끼리 혼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직접적으로 피가 섞여 있지 않다 하더라도 조금만 따져 보면 국악인들 사이에 먼 친인척 관계라도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 사람 역시 예사로운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친구 이상의 특별한 인간 관계로 얽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에는 이동백 가문에 대해 “그 계출(系出)이 소상하지는 못하나 그의 증조가 풍류를 조하해 당대의 율객이라고 하엿다니 광대 이동백씨로 보면 그의 증조가 비조(鼻祖)가 되는 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전승되어 오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 별신제로 1966년 제1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어인년(李於仁連, 세습무 출신, 1894.9.18~1986.4.6)이 이동백의 육촌 여동생이다.
충청, 전라, 경상 지역은 일제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동백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국악인들이 판소리나 산조로 무대 활동을 하다가도 굿판이 벌어지면 악사, 즉 고인으로 변신하여 일가 친척과 함께 관할 당골판으로 가서 굿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가 전국의 국악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동백 일가와 은산 별신제의 관계는 매우 주목된다.
은산 별신제는 전국 내륙을 통틀어 세습무의 가무로 행해지는 마을굿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굿으로 꼽힌다.
은산은 충남 부여에서 서남 쪽으로 백마강을 건너 15리쯤 떨어진 큰 마을이다. 현재 시장, 중학교, 초등학교가 있고 예전에 부여, 공주, 청양, 예산, 서천으로 통하는 교통 요지로 역원이 있었던 곳이다.
은산 북쪽에 당산(堂山)이라는 80여미터의 산이 있고 서쪽에는 은산천이 흐르며 동으로는 금강이 평야를 끼고 있다. 예전에는 교통 요지인 은산에 인근 지역의 산물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은산 주민들은 이 마을의 별신제를 나당군에 항전하던 백제 광복군의 위령제라고 한다.(임동권,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은산 별신제] 서울:문화재관리국, 1965년 9월 / 임동권, “은산 별신제” [한국 민속학 논고] 서울:선명문화사, 1971년 / 박계홍, “백제와 오늘을 잇는 은산 별신굿” [뿌리깊은나무 1976.6])
은산 별신제는 시나위권에 속하는 음악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전라도 무속음악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은산 별신제에서는 살풀이, 시님 장단, 덩덕궁이, 굿거리, 앉은반 등의 장단이 쓰인다. 은산 별신제의 음악은 여러 명의 무녀와 삼현육각 악사들, 풍물패가 담당한다.(한만영 이보형, “은산 별신제의 음악적 연구” [민족음악학 제1집] 서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부설 동양음악연구소, 1977년, 61~81쪽)
이 때 은산 별신제 무녀 이어인년이 추는 춤사위는 인간문화재 김숙자의 도살풀이, 중고제 명창 심화영의 승무와 닮은 점이 있다.
필자가 1996년 은산 별신제를 현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진대베기나 꽃받기와 같은 행위 절차는 비교적 잘 전승되고 있는 편이었으나 무녀의 노래와 춤, 악사의 반주음악은 거의 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때 비디오 촬영된 굿에는 시나위와 삼현육각 반주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대체로 농악이 그 구실을 대신하였다.(1996.3.27~4.1 노재명 은산 별신제 현장 조사 비디오테입)
예전 이 마을굿을 담당하던 세습무 이어인년과 그 손녀 최매순, 그리고 이어인년에게 약 1년 정도 굿을 배운 무녀 한시우(1930년생)는 1996년 당시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고 이 때 굿을 한 무녀는 타지역 강신무들이었다.(1996.3.27 황남희 증언)
은산리는 1996년 당시 약 250가구가 있었으며 1996년 별신제 행사에 쓰인 경비는 총 2,800만원 가량 된다고 한다.(1996.3.27 차진용 증언)
이어인년은 이어린년이란 한글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그리 된 것인데 문헌에 따라 이어인년, 이어린년, 이언년, 이어인, 박어인련, 박언년 등 매우 다양하게 와전 언급되어 있다. 다음은 이어인년과 이동백의 가계 내력을 알 수 있는 한 문헌 기록이다.
“이(이어인년) 할머니가 은산 별신제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7세 때부터. 그는 원래 무악사인 고인 이동근씨와 무인 김씨를 부모로 대대로 세습돼 온 무가의 장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굿판 구경을 자주 했으나 정작 무가 사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철이 든 다음이었다.
모친이 작고하자 간간이 부친의 지도를 받았으나 거의 무가 사설이 적힌 책을 보고 독학으로 깨쳐 나갔다. 그가 별신굿을 주관하는 큰무당으로 데뷔(?)한 것은 34세가 되고서였다. 열여덟에 결혼한 남편 최씨가 5년이란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타계하자 평소 하고 싶었던 별신제에 뛰어 들었던 것. 논 1천평이 있어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지만 어머니가 전부터 해오던 것이라는 데 크게 애착이 갔다는 설명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겁이 없었나베. 처음 쥔으로 행세하면서도 전혀 떨리거나 두렵지가 않았으니 말이유.’
첫 굿판을 끝내고 내려오니 만족하신 듯 아버지가 빙긋이 웃더라면서 잠시 감회에 젖는다. 그 때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별신굿을 해왔지만 사설이 막히거나 틀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3년에 한차례 별신굿을 하고 나면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몇 날은 드러 누워야 할 정도로 몸이 지치지만 ‘좋으나 궂으나 내게 당연한 일’이란 생각에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었단다. (중략)
문화재관리국에서 지급하는 월 20만원의 보조금이 유일한 수입원으로 아들 내외와 함께 생활해 오고 있는 그는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1평이 넘을까 말까 한 작은 방에 민속경연대회 공로상장과 인간문화재 지정장을 액자에 걸어 두었는데 ‘며느리의 효성이 지극해 군에서 효부상을 주었다’고 은근히 며느리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이 할머니에게 있어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는 확고한 전수생이 없다는 것. 죽은 후에도 은산 별신이 잘 되길 바란다는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걱정이라면서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고 선별의 까다로움을 내비친다.
그가 유일하게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은 친손녀인 매순양. 15세 때부터 그의 지도를 받아온 매순양은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금년에 중앙대 예대 무용과에 진학, 후계자로서의 발판을 다져가고 있다.”(“외길 육십년, 은산 별신제 인간문화재 이어인 할머니” 1983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
이처럼 이어인년의 모친은 무녀, 부친 이동근은 굿판 악사, 즉 고인이었고 이어인년은 장녀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어인년은 13세 때 모친을 여의었는데 모친이 병으로 위중할 때 피를 내어 먹이려고 손가락을 잘랐고 그 일이 널리 알려져 효도상을 받았다 한다.
이어인년의 부친은 임술생(壬戌生), 즉 1862년 생으로 1933년 72세로 타계했고 삼현육각뿐 아니라 판소리에도 능했다 한다.
이어인년은 어려서 모친이 굿판에서 행하는 여러 춤과 노래를 듣고 보고 자라면서 자연히 무속에 대해 눈을 떴고 17세부터 본격적으로 부친한테 무악 전반과 무속 절차를 두루 학습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다년간 모친이 행한 굿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어 가며 무가 사설을 보고 스스로 기예를 다듬었다.
이런 이어인년의 효심과 무속 독학의 면모는, 효를 주제로 한 심청가를 가장 즐겨 부르고 좋아했고 이 노래를 잘해서 사람들에게 효심을 심어 주고자 판소리를 하게 됐으며 판소리를 거의 자득하다시피 했다는 이동백과 많이 닮았다 할 것이다.
돈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이동백(장사훈 증언)과 이어인년, 며느리의 지극한 효성을 자랑하는 이어인년의 면모(1983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 또한 일맥상통하는 점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넓고 고운 심성과 덕망이 있었기에 이어인년은 한평생 은산 별신제와 같은 대규모 굿을 집행하는 무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런 점을 갖추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잘못된 언행을 보인다면 이동백과 같은 세습 국악인과 세습무들이 대외적인 활동, 행세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만나 본 무속인, 국악인 중에는 언행을 조심하기 위해 아예 금주, 금연을 하고 말과 행동을 그 누구보다 극히 조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전통사회에서 행동을 잘못해 어느 광대, 어느 무속인이 멍석말이 당했다, 맞아 죽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 만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인들은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그 점이 큰 광대가 되느냐, 큰 무속인이 되느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할 것이다.
은산 별신제의 무가가 판소리와 음악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고 이어인년의 부친이 판소리를 잘했고 육촌 오빠 이동백이 판소리 명창이었던 만큼 이어인년 또한 판소리에 귀가 밝았다. 그리고 이어인년은 부친에게 소리를 직접 배워 판소리 실기에도 능했다. 그래서 언젠가 유명한 명창 박아무개의 소리를 듣고 이어인년이 ‘그것도 판소리냐’고 꾸짖기도 했다 한다.(박홍남 등 증언)
예전 한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러한 이어인년의 면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름난 무녀로 역시 별신제를 맡았었다는 어머니에, 소리 잘하는 광대로 전국을 누볐다는 아버지를 두었으니 할머니(이어인년)의 재질은 천부적인 셈. 그래서 소리도 곧잘해 젊은 시절엔 잔칫집에 불려가 유흥을 돋우었다고. 2,3시간 정도는 막힘없이 무난히 소리를 할 수 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1971년 12월 11일자 [대한일보])
얼마전 이어인년의 은산 별신제 무가를 담은 음반(국립문화재연구소 KICP-057, 비매품 1CD, 1965년 8월 이어인년 자택 녹음, 2002년 12월 제작)이 나왔는데 거기 담겨있는 이어인년의 성음을 들어보면 서산의 중고제 명창인 지방문화재 심화영처럼 목소리가 참으로 맑고 곱다는 걸 알 수 있다. 명창 이동백을 배출한 세습 국악 가문 출신이니 이어인년의 성음이 좋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어인년, 심화영과 같은 이들의 목소리가 예전 충청도 중고제 지역에서 선호한 판소리, 무악에 적합한 목구성이라고 판단된다.
이어인년은 18세 때 은산 별신제의 최씨 당골과 혼인했는데 남편 최씨 또한 굿판 악사였고 이어인년의 손녀 최매순 역시 대를 이어 은산 별신제 무녀였다.
이동백의 증조부가 국악인이고 육촌 여동생 이어인년과 이어인년의 부모, 남편, 손녀가 세습무이자 국악을 겸했다 하니 이동백 또한 여타 대부분의 명창들과 다름없이 세습 국악인 집안 출신이라 할 것이다.
이어인년은 열여덟에 결혼한 남편 최씨가 5년이란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타계하자 모친이 생전에 하던 게 굿이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 별신굿이라 은산 별신제에 뛰어 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은산 별신제 첫 굿판을 끝내고 내려오니 부친이 만족한 듯 빙긋이 웃더라고 하였다.(1983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 그리고 1971년 12월 11일자 [대한일보]에 의하면 남편의 반대로 이어인년은 굿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로서 남편과 산 5년 동안은 이어인년이 굿을 하지 않았다는 것(부친한테 배우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어인년이 은산 별신제를 주관하기 전후로 상당 기간 동안 이어인년의 남편 최씨 가문과 이어인년 부모가 은산 별신제 무의식을 담당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어인년의 모친 김씨와 부친 이동근 모두 아마도 은산 별신제의 무녀요 악사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1971년 12월 11일자 [대한일보]에도 이어인년의 모친 김씨가 은산 별신제 무녀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1958년 8월 15일자 [문화시보]에 의하면 당시 제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한 은산 별신제의 악사는 김정희·박기남·이순봉·박연출·이천봉, 무녀는 김순례·이정자·이숙자·이종구·강미희·장선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이어인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문헌 기록과 이어인년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어인년은 대략 1916년을 전후로 해서 은산 별신굿을 하기 시작했다. 일제 말기 경비 문제로 이 마을굿이 중단됐다가 광복 후 조금씩 부활되었고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까지 중단과 부활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어인년 역시 이 굿을 일시 못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자 명단에서 이어인년이 일시적으로 제외되었다 할 것이다.
1958년 8월 15일자 [문화시보]의 기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악사 김정희·박기남·이순봉·박연출·이천봉, 무녀 김순례·이정자·이숙자·이종구·강미희·장선 같은 이름들인데 이들 역시 대부분이 이어인년 부부, 부모, 이동백과 관련이 있는 예인들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주목된다.
일제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은산 별신제는 무척 큰 축제였기 때문에 당시 이 굿이 벌어지면 각지의 광대, 한량, 장사꾼, 그 인근 주민들이 모여 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면 5명창, 이화중선, 임방울과 같은 이들도 이 축제 속에 끼어 소리판을 벌이곤 했다.
멋이 가득한 이동백도 어린 시절이든, 명창이 되고서든 이 멋들어진 축제에 한,두번 아니가고는 못베겼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과 혈연 관계가 있는 일가가 주관하는 굿이었으니 말이다.
이동백이 이어인년의 육촌 오빠라면 모친쪽보다는 아무래도 성씨가 같은 부친쪽으로 서로 관련이 더 있어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이동백의 부친 이씨와 이어인년의 부친 이동근이 사촌간이라 하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통사회에서 이 정도의 혈연 관계는 무척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다.
제자가 거의 없고 제자 선별이 무척 까다로웠다는 점에서 이동백(강장원·정광수 증언)과 이어인년(1983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은 매우 닮았다.
이어인년의 첫 손꼽히는 후계자였던 손녀 최매순(崔梅順)은 젊은 나이 처녀로 1994년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최매순은 은산 별신제 보존회를 비롯한 이 마을 주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며 장학금을 모아 대학교까지 보내 주었으나 무속인에 대한 사회의 냉대 때문에 이 일을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은산에 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다 젊은 나이에 풍을 맞고 쓸어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1996.3.27 황남희 증언)
국악학자 이보형은 이어인년의 고향이 충남 서천이고 시가가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최씨인 것으로 봐서 언제부터인가 최씨 당골이 부여 은산 별신제의 무의식을 담당했을 것이고 은산 별신제의 최씨 당골이 서천의 이씨 당골과 통혼권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보형은 은산 별신제의 삼현육각 악사들을 충남 서천이나 전북 군산에서 불러다 썼다는 조사 기록이 이같은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했다.(이보형, “은산 별신제 음악 영역” [은산 별신제 종합 실측 조사 보고서] 서울:문화재관리국, 1998년, 208~209쪽)
이동백의 출생지는 불분명하나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충청남도 서천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확인된 이동백 관련 자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서천군은 충남 서남부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부여군, 서쪽으로는 황해, 남쪽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전라북도 군산시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보령시와 접하고 있다.
서천군은 예로부터 한산의 세모시로 유명한 곳이며 대부분 전통적인 농어촌 지역이고 현재 인구는 8만여명이다. 참고로 서천군 서면 마량리에는 이동백의 예명 동백과 이름이 같은 동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85그루가 있다.
이동백이 자란 곳은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라는 아담한 마을이다. 서천에서 판교 방면으로 2Km 가량 떨어져 있는 고을로서 약 330미터 높이의 희리산(希夷山)이 병풍처럼 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희리산과 문수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종천면은 동쪽으로는 판교천이 힘차게 서해로 흐르고 서로는 종천천이 내달려 서해로 빠져 나간다. 그 중간을 희리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화산을 이루었다가 수리넘어재를 거쳐 테뫼산 쪽으로 흘러 내린다.
이동백이 살았다는 도만리 250번지는 종천면 동편에 있다. 이동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지금 가 보면 대지 140여평 되는 삼간 홑집인데 세월이 흘러 함석지붕에 페인트를 칠했고 대문 앞에는 1990년 8월 서천군수가 세운 ‘이동백 선생 생가지’라는 대리석 표시가 있다. 예전에 이동백 일가가 이 집을 풍양 조씨 집안에 팔았고 그 후 김해 김씨 가문에서 이 집을 구입하여 제실을 지었다가 그 후손인 김씨가 집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생가 뒷편 근방 희리산에 이동백의 독공 터가 있다. 잡목 우거진 희리산 산마루 부근에는 10여미터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굴이 있다. 한 곳에는 물이 고여 있고 또 한 곳은 한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알맞을 정도의 바위굴이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서해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용구(龍口)이고 바위굴이 바로 이동백이 독공을 했다는 용당굴이다.
이달재의 글 “이동백과 조선음악-그의 은퇴와 금후의 조선성악회” [조광 소화 14년 5월호](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330~333쪽에 의하면 이동백이 “도마니(도만리) 흐리山(희리산)이라는 山에다 움집을 짓고 혼자 드러 박여 소리 工夫를 하였다”고 이동백의 독공 장소가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205~210쪽에 의하면 이동백이 20세 전후에 도만리 희리산 용구에서 2년간 독공하였다 한다.
이동백이 판소리 독공을 했던 희리산은 산 전체가 해송 천연림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정상에 오르면 서해 바다가 관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편 이보형은 이동백 유적지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동백이 독공한 곳이 희리산 대적굴일 가능성이 있다고 학계에 처음으로 또다른 의견의 현장 답사기를 발표하였다.(이보형 조사, “이동백 유적지” [판소리 유파] 서울: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년, 115쪽)
이동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만리의 주민 조남제(男, 丁巳生) 증언에 따르면 이동백이 피리를 들고 나와서 집앞에 있는 마살피라는 언덕에서 불었다고 한다.(이보형 조사, “이동백 유적지” [판소리 유파] 114쪽)
이는 이동백이 판소리를 직업으로 삼았지만 무업 등을 담당한 세습 국악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피리와 같은 악기 또한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세습 국악 집안 출신들은 대개 이런 피리 연주는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성장 환경상 어려서 수없이 듣고 자라 자연히 할 줄 안다.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일대기(1) 기록을 참고하면 증조 때부터 내려오는 풍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이동백의 귀에 젖어, 아마도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세습 국악 집안 분위기상 종이에 기름 쩔 듯이 민속악을 뱃속에서부터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매우 가깝게 들으며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동백의 성장 과정에 대해 이달재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氏(이동백)는 十歲頃에 벌써 노래에 귀를 떠 가지고 노래하는 사람을 좇아 다니였는데.”(“이동백과 조선음악-그의 은퇴와 금후의 조선성악회” [조광 소화십사년 오월호] 경성:조선일보사 출판부, 330~333쪽 발췌)
그렇다면 이동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만리의 백부와 모친, 그 외 친인척 누군가가 그 당시 무속음악 등을 하여 어린 이동백의 귀가 민속악에 익숙해졌다고 볼 수가 있다. 이는 이동백의 육촌 여동생 이어인년과 이어인년의 집안 사람들이 무속과 판소리를 했다는 사실로도 어느 정도 입증이 되는 점이라 하겠다.
이동백이 살았다는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 생가에 현재 딸려 있는 밭은 400평 정도 된다.
여러 가지 이동백 인터뷰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동백은 어려서 가족과 농사를 지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지금도 무속에 관여한 세습 국악 집안 출신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 대개가 굿한 일은 숨기고 농사를 지었다고만 말을 하고 간혹 한약방을 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한의에 대한 언급은 의술과 병원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 무속인들이 한의학으로 병을 고치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인데 이동백의 육촌 여동생 이어인년도 침술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1971년 12월 11일자 [대한일보])
무속인이라 하여 화장실도 안가고 밥도 안먹고 하루 종일 기도하고 종교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굿 하는 시간 외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진도 씻김굿 명인 채정례 무녀 역시 굿 이외에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농사, 어업, 바느질, 집안 살림 등 보통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다.
또한 전통사회에서 대부분의 무속인은 마을 주민들한테 무속으로서 떼돈을 요구하여 그 벌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삶을 이어가지 않았고 스스로 농사를 짓는 등 일정한 수입의 생업을 가졌다. 이동백의 육촌 동생 이어인년도 자신이 소유한 전답으로 생활을 꾸려 갔으며(1971년 12월 11일자 [대한일보]) 이러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날에도 은산 별신제에서 수 천만원짜리 굿을 하면서 악사에겐 사례를 해도 무녀에겐 사례를 하지 않고 하더라도 약간의 돈과 굿판의 음식 정도를 준다.(1996.3.27 차진용 증언)
지금 채정례 무녀도 서울 공연에선 그렇지 않지만 진도 당골판에서는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신도의 형편에 따라 보리 한 말에도 굿을 해주기도 한다. 즉,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이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겨진 것인데 오늘날 스님, 신부, 목사가 신도들에게 얼마 내라고 강요하지 않고 신도들이 각자 자발적으로 성의껏 마음의 표시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이동백과 이어인년 집안 사람 등 무속 예인들이 그냥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결코 아닌 셈이다.
이동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서천. 현재 이 서천군에선 월남 이상재와 더불어 이동백을 가장 자랑스러운 서천 출신 인물로 여기고 있다. 2002년 10월 18일에는 충남발전연구원에서 ‘자랑스런 충청의 1백인’ 안에 이동백과 김창룡 명창을 선정하여 발표한 바 있다.
1998년 모시문화제 때 서천군 측에서 시내버스 운행시 버스 안에서 이동백의 <새타령>이 흘러 나오도록 한 적이 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서천군의 향토축제 모시문화제에선 같은 해인 1998년 서천 출신 명창 이동백과 김창룡을 기리는 전국명창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2년 3월 민간 차원에서 이동백 생가 복원 사업과 소리비, 자료관 건립 등 본격적인 선양사업이 추진되었으나 사업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소리 소문 없이 중단된 상태다.
그리고 이동백이 말년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난 경기도 평택에서는 그 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매년 이동백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1941년 1월 이동백과 한성준이 나눈 대담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동백의 말이 있다. 이로 보아 이동백이 1939년 은퇴 직후~1940년경에 경기도 평택으로 간 것으로 짐작된다.
“[李] 어떤 때는 갑작이 목이 터지게 한번 불러 보고 싶은 적이 있지. 이럴 때마다 韓參奉이나 옆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나데. 더군다나 시골 山 속에 파무처 있으랴니까 孤寂한 때가 더 자저집데다. 그렇다고 늙은 사람이 樵童처럼 목청을 돋아 소리 할 수도 없고. 이런 것은 무슨 기뿌고 슬푸고 고적해서 우러나는 心情이라는 것 보담도 내가 죽는 同時에 내 노래도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이 원통해서 그런가봐.”(“李東白 韓成俊 對談-歌舞의 諸問題” [春秋 昭和十六年 三月號] 京城:朝鮮春秋社, 147~153쪽 발췌)
오래 전부터 이동백의 작고 시기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였다. 학자에 따라 1947년, 1950년 타계설 등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추측에 의한 주장이 난무하였다.
그러다가 필자는 옛 신문에서 국악 관계 기사를 찾고 정리 작업을 하는 중에 이동백 타계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그가 1949년에 작고했음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밝혔다.(노재명, “이동백의 삶과 음악세계” [판소리 명창 이동백] 서울: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2003년, 32/42쪽)
과거에 성경린과 장사훈은 1949년, 1950년 이동백 타계설을 동일한 문헌에 동시에 발표한 바 있다. 장사훈과 성경린은 이동백 타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듣고 목격한 이들로서 아마 기억에 의존해서 연대를 적다 보니 혼동하여 1년 차이의 오차를 보이며 다음과 같이 같은 책에서도 1949년, 1950년 이동백 타계설을 동시에 적는 오류를 보인 듯하다.
성경린, “이동백옹” [신천지 1954년 9월호](서울:서울신문사) 138~142쪽. 이동백 약력 부분을 보면 성경린은 ‘本名은 鍾琦. (단기 四二○○-四二八二)’, ‘四二八三年 六月에 逝去’ 이렇게 이동백의 작고 시기를 1949년과 1950년 두가지를 동시에 적어 놓았다.
장사훈 저서 [국악 개요](서울:정연사, 1961년 6월) 298~302쪽과 [음악 문화 1961년 9,10월호](서울:음악문화사), 그리고 장사훈 저 “새타령의 절창(絶唱) 이동백(李東白)” [국악 명인전](서울:세광음악출판사, 1989년) 79~86쪽. 이 글들의 이동백 약력 부분을 보면 장사훈은 ‘1950년 京畿道 平澤郡 松炭面 七玩里 새말(新里)에서 逝去’ 이렇게 이동백의 작고 시기를 1950년이라고 적는가 하면 자신의 동일한 저서 [국악 개요](서울:정연사, 1961년 6월) 141쪽 <새타령> 곡목 해설 부분에는 ‘六.二五 전 해에 작고한 李東白’이라고 달리 기록하는 오류를 보임.
성경린의 경우엔 1949년 이동백 타계시 추모의 글을 당시 신문에 발표하기까지 했었다.(成慶麟 “悼 李東伯氏” 1949년 6월 15,16일자 [京鄕新聞])
그런데 그 후 기억에 의존해 이동백의 생몰연대에 대해 집필하다 보니 성경린과 장사훈 모두 1949년, 1950년 두 연대를 오고 가다 결국 6.25 무렵에 세상을 떠났었던 희미한 기억에 따라 1950년 6월 6일에 작고한 것으로 잘못 혼동하여 기록, 그것이 이후 완전히 굳어져 버린 것이라 하겠다.
필자가 옛 신문에서 찾은 다음과 같은 이동백 타계 기사에 의하면 이동백은 1949년 6월 6일(양력)에 작고하였다 한다. 이를 통해 이동백 명창의 작고 시기가 확실한 실증 자료에 의해 최초로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다.
“‘노래’로 유명한 이동백옹이 평택군 송탄면 칠원리 자택에서 정양 중이다가 83세의 고령으로 지난 6일 별세하였다. 국보적인 우리의 성악가 이동백옹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충남 보령 출생으로 전북 순창 김세종씨의 문하생으로 공부를 하다가 그후 입산하여 토굴에서 3년간 독공하였다. 40세 때 국창이 되어 구한국의 통정대부에 임하다가 그 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건해서 회장이 되고 서기 1940년에 은퇴 공연을 마치고 해방 후는 국악원 명예회장으로 있으면서 평택 산촌에서 정양하다가 6월 6일 별세.
△ 정남희씨 추도담
이동백 선생은 구한말 당시에 국창으로 존중을 받아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분이다. 나는 과거 조선성악연구소에서 많은 지도를 받아 왔으며 해방 후 현재까지 국악원에서 모시고 있었다. 앞으로 고 선생님의 뜻을 이어 생명을 바치어 매진할 결심을 가지고 있다.
△ 박녹주 여사담
지는 이 선생님의 직접 문하생은 아니나 참으로 국보라고 일컬을 만한 귀인을 잃어 슬픈 마음 한량 없습니다.”(“국악계의 지보 국창 이동백옹 서거” 1949년 6월 9일자 [경향신문])
※ 정정: 이 신문 기사의 ‘1940년에 은퇴’ 기록 가운데 1940년은 1939년의 오류이다.
“우리가 가진 국보적 존재로 성악게 국창의 유일한 一위를 차지하던 이동백옹(李東伯翁)이 八十세라는 노령으로 지난 六일 평택군 송탄면(松炭面) 자택에서 영면하였다는 부고가 있었는데 이는 실로 우리 국악게의 최대의 손실로서 애통하여 마지 않는 바인데 옹은 일찌기 전북 순창(淳昌) 김세종(金世鍾)씨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그 후 입산하여 토굴(土窟)에 들어 三년 동안이나 국창을 독공하였다 하며 四十세 때에는 국창(國唱)이 되어 구한국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벼실까지 받았었고 해방 전 조선일보 주최의 은퇴 공연을 마지막으로 평택에서 정양하고 있었는데 옹은 해방 후 조선성악연구회장을 지냇고 현재는 국악원 명예회원이었다.(사진=이동백씨)”(“李東伯翁 永眠” 1949년 6월 9일자 [조선일보], 이동백 사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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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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