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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음반박물관장 '김순자 판소리 수궁가' 음반 사설 채록, 해설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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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 '김순자 판소리 수궁가' 음반 사설 채록, 해설서 집필!

'김순자 판소리 수궁가' 음반(고수:김청만)
국악방송 기획, 로엔엔터테인먼트 제작 L100004251(2CD)
2010년 12월 15일 서울 국악방송국 다목적스튜디오 녹음, 2010년 12월 제작, 2011년 7월 발매.
사설 채록·해설 집필:노재명.
다음은 이 음반 해설서에 실린 글의 초고 일부.

진도 바다같은 김순자 명창, 잘 삭힌 홍어 맛나는 수궁가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판소리 명창 김순자(본명:金順子, 아호:芽原)는 1945년 5월 2일(음력)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서 부친 김월새와 모친 임양글례 사이의 4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부친 고향은 동거차도, 모친 고향은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이고 양친 모두 농사일을 하였으며 부친은 1990년경 84세로, 모친은 1969년 56세로 별세하였다.
  김순자 부모와 형제는 모두 국악을 하지 않았고 김순자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남편과 아들 모두 국악인은 아니다. 김순자 부친의 당숙들이 전문 국악인은 아니지만 목이 좋았고 취미로 판소리를 익힌 또랑광대였다.
  김순자 부친의 사촌동생 김봉문은 북, 장고 잘 치고 소리도 잘한 진도읍 당대 최고 한량인데 김봉문은 동거차도에서 태어나 진도읍에서 살았다. 김봉문은 김월새보다 7~8세 연하로서 2005년경 서울에서 작고하였고 김봉문 자손은 현재 목포에서 살고 있으며 국악은 하지 않는다. 김봉문은 박병천, 조공례 등과 교류하였는데 박병천이 김봉문에게 국악을 배운 바 있다 한다.
  김순자는 7~8세 때 1~2년간 채우물(당시 50대)에게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어이 가리너~” 하는 초동목수 중모리 대목 등을 배웠다. 채우물(별호, 남자, 본명:채기선)은 12세부터 오랫동안 임방울한테 판소리를 익힌, 임방울의 진정한 수제자로서 판소리 다섯바탕을 두루 잘했다 한다.
  채우물 고향은 진도군 조도면 육동(옛 지명:육굴)이고 채우물은 외지에 나갔다가 귀향하여 육동에서 성냥간(대장간)을 운영하면서 호미, 낫, 도끼, 징, 꽹과리 등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채우물은 모친인 ‘녹두엄마’(별호)와 함께 조도면에서 씻김굿, 다시래기 일을 하였는데 채우물 모친은 조도면에서 가장 큰 당골이었다.
  채우물은 판소리, 북, 장고, 피리 등의 명인이었고 1995년경 작고하였으며 채우물의 누나는 씻김굿보다 판소리로 이름이 났고 채우물 부인은 무속 일을 하지 않았다. 채우물 부친은 일찍 별세하였고 채우물은 슬하에 외아들 채영철을 두었는데 채영철은 현재 70여세로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국악인은 아니다.
  채우물은 틈틈이 조도면 일대를 다니며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판소리, 북을 가르쳤는데 이때 김순자가 삼촌, 형부, 마을 어른들과 함께 단체로 그 판소리를 익혔다. 이리하여 김순자는 당시 동네에서 짜서 공연한 창극 ‘장화홍련전’, 학교 학예회에서 주인공을 맡아 소리를 하였으며 채우물 덕에 판소리를 하게 된 셈이라 한다.
  당시 조도면 마을 사람들이 판소리를 배울 때 목이 다 좋았다 한다. 진도는 예로부터 잔치 때나 농사 일을 하면서도 늘 다 같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자연히 음악성이 우수해진 것 같다고 김순자는 말한다.
  김순자 어린 시절에 동거차도에는 당골이 없었고 서거차도의 함씨(남자) 등이 동거차도를 당골판으로 관리, 담당하였으며 그래서 동거차도에 굿 일이 생기면 서거차도의 함씨, 조도면 육동의 채우물 등이 가서 굿을 했다. 당시는 굿 일을 할 때마다 보수를 주고 받지 않고 1년 단위로 계산하여 한꺼번에 1년 품삯을 보리 등으로 당골에게 주었다 한다. 김순자는 어려서 굿을 많이 보고 자랐고 김순자 모친과 당골이 친구로 가깝게 지내서 마을 사람들이 당골을 하대하던 당시 관습 속에서도 김순자는 당골들에게 예우를 갖춰 대했다 한다.
  김순자 부모는 음악은 좋아했지만 자식이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은 못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순자는 국악에 일찍 전적으로 뛰어들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뒤늦게 국악에 전념한 편에 속한다.
  김순자는 20세에 약혼, 21세에 혼인하였는데 가마 타고 아주 성대하게 혼례식을 치루고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종가집으로 시집을 갔다. 그리고 김순자는 23세 때 도시에서 살고 싶다 말하여 남편과 함께 목포로 이주하였다. 김순자는 목포에서 활동한 명창 안기선, 안향련 부녀를 보지 못했으며 목포 귀명창 임상운이 금년 2010년 초에 별세했다고 증언하였다.
  김순자 나이 31세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김순자는 32세부터 김흥남 작고 때까지 6년간 목포에서 김흥남에게 단가 <어화세상>,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이별가>, 흥보가 중 <저 아전> 등을 사사했다. 김흥남은 전라북도가 고향이고 당시 목포시립국악원 사범이었으며 윤진철, 오정해가 김흥남에게 판소리 배우는 것을 김순자가 목격했다 한다. 김흥남은 김순자가 목이 좋다며 수제자로 가르치려고 욕심을 냈다 한다.
  김순자는 1982년부터 1996년까지 김제와 군산에서 최난수에게 단가 <강상풍월>(박초월제)와 <사철가>(동초 김연수제),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이별가>(박초월제), 수궁가 완창(박초월제), 흥보가 완창(박초월제) 등을 배웠다. 박초월은 춘향가의 경우 완창으로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한다.
  최난수는 목 성음이 허스키하고 남성적인 판소리를 구사하는 명창이며 판소리 활동을 하는 최영길이 최난수의 조카이다. 박초월 묘소를 남원으로 이장하고 추모 공연을 할 때 김순자가 명창 이일주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최난수가 박초월의 첫 번째 수제자라 한다. 김순자가 최난수에게 수궁가를 배울 당시만 해도 전라도에서 수궁가를 부르는 이가 드물었다.
  김순자는 1998~2009년 조상현 문하에서 단가 <사철가>(조상현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정응민 보성소리), 심청가 완창(정응민 보성소리) 등을 사사했다. 동초 김연수와 조상현의 <사철가>는 곡조가 각기 다르고 가사도 약간 다르다.
  김순자는 조상현한테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것을 군산 최난수에게 찾아가 조심스럽게 의논하였고 최난수가 조상현한테 김순자를 소개하여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최난수와 조상현은 더욱 친해졌고 김순자는 조상현에게 판소리를 잘 학습하게 되었다.
  김순자는 판소리 공부 외에도 무용, 가야금 등을 익혔다. 김순자는 32세부터 3~4년간 목포시립국악원 사범 장복례(당시 50대)에게 전통춤 <살풀이>를 사사했고 목포시립국악원 사범 정기수(당시 60대)한테 가야금 풍류와 산조를 배웠다. 이때 연주한 가야금을 김순자는 현재 보관하고 있는데 스승 정기수를 통해 100만원 정도 주고 구입한 것이라 한다.
  정기수가 어느날 제자 김순자에게 “다른 이의 수궁가를 들으면 질리는데 최난수 소리는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더라” 하며 최난수한테 판소리를 배워 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래서 김순자가 최난수 문하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정기수는 최난수와 친한 건 아닌데 소리를 듣고 진심으로 좋다고 말한 것이라 한다. 최난수는 현재 군산에서 살고 있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활동 중이다.
  김순자는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하면서 한이 응어리져 판소리에 몰두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판소리에 한이 서려있고 남도민요만 불러도 듣는 사람들이 울곤 한다고 말한다.
  김순자는 1993년 박초월제 수궁가 완창 공연, 1996년 제4회 광주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대상(대통령상) 수상, 1997년 박초월제 흥보가 완창 공연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순자는 최난수한테 배운 박초월제 흥보가로 2009년 3월 20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9-5호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같은해 ‘김순자 흥보가(소리:김순자, 고수:정화영)’ 음반(김순자 제작 YSRD-10353~10354, 2CD, 2009년 비매품 한정판)을 발표하였다. 김순자는 고수 정화영과 이때 처음 소리를 맞춰 본 것이고 무더운 날 무형문화재 인정 자료 제출 관계로 급하게 녹음하여 김순자는 이 음반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김순자는 흥보가로 인간문화재가 되었지만 본래 수궁가가 특기이고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 화상>~<별주부 모친 만류>, 흥보가 중 <흥보가 놀보에게 매 맞는 데> 대목을 좋아한다.
  김순자는 구음은 잘 안하고 <육자배기>, <흥타령> 같은 남도민요는 자주 부른다. 남도민요는 김순자가 특별히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고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부를 줄 알게 되었으며 최난수, 조상현 등 스승들이 판소리를 지도할 때 한 부분씩 던져 주어서 익힌 것이 일부 있다고 한다. 김순자는 어려서 채우물에게 배운 판소리, 정기수한테 익힌 가야금 가락은 현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김순자는 지금까지 박행님, 장광월, 박유정, 정유화, 임종욱, 정병도, 김한식, 양지은, 윤수휘, 서늘볕, 최한주, 박수진, 정다와, 최한희 등등 수 백명에 이르는 판소리 제자를 길러냈다. 김순자는 제주도, 부산에서도 다년간 판소리를 가르쳤는데 두 지역 모두 사투리가 강하지만 경상도는 판소리가 잘 안되고 제주도 성음에는 한이 있어서 판소리가 잘 된다고 한다.
  김순자는 박초월, 김소희 등 옛 명창들 소리는 물론 말할 수 없이 좋고 현재 활동하는 이 중에서는 김수연의 성음이 마음에 들고 김수연의 판소리가 맛있고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
  김순자는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순자 판소리 전수관’ 운영, 1988년부터 현재까지 (사)한국판소리보존회 목포지부 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2010.11.4.11:50~14:00.전라남도 목포시 용당동 962-68 김순자 판소리 전수관/김순자 자택/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목포지부 건물에서 김순자 증언)
  본 수궁가 음반은 2010년 12월 15일(2009년 11월 18~19일 녹음의 재취입본) 서울 국악방송국 다목적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이다. 김순자는 고수 김청만과 이때 거의 처음 소리를 맞춰 본 것인데 모두 판소리에 훤하여 마치 오랫동안 함께 공연을 많이 해본 사이인 듯이 능숙하게 수궁가 완창을 잘 마쳤다. 이는 김순자 명창 생애 두 번째 독집 음반이고 자신의 첫 수궁가 녹음집이라 하겠다.
  요즘 판소리 녹음 중에서 이 정도 완성도를 지닌 음반은 드물어 보이는데 어느 한 대목 어설픈 구석 없이 소리 성음이나 북가락, 추임새가 조화를 잘 이루었다. 특히 선천적으로 좋은 목을 타고난 김순자 명창의 진도 바다같은 넉넉하고 농익은 성음은 귀명창들에게 무척 반가운 소리가 될 것이다.
  본 음반에 담겨있는 수궁가는 박초월-최난수-김순자로 이어진 소리제이다. 박초월(1916~1983년)은 애원성이 가미된 고운 목을 지녀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소리를 구사했다. 그러면서도 남자 명창들에게 소리를 배워서 꿋꿋한 면도 지녔다.
  박초월은 동편제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후 송만갑, 박중근, 박동실, 오수암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김소희 증언)
  박초월의 학습 과정은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데 박초월과 그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명창들 모두 녹음을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소리 비교를 통해서 박초월의 판소리 학습 내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여 필자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박초월은 춘향가와 흥보가 대부분을 김정문에게 배운 것 같고 심청가는 대부분 박동실에게 배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초월의 수궁가는 대부분 정광수에게 배운 유성준제이다. 박초월이 송만갑 문하에서 사사한 것은 판소리 다섯바탕의 몇가지 주요 대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박중근에게 익힌 것은 춘향가와 수궁가 토막소리였을 것으로 보이고 오수암한테는 흥보가 토막소리를 배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초월은 김정문에게 배운 송만갑제 흥보가와 정광수에게 배운 유성준제 수궁가는 전판을 했고 그 외에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는 토막소리만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박초월의 흥보가와 수궁가 완창 속에는 각각 오수암과 박중근 등의 소리제도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초월은 1950~60년대에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남도민요, 구음을 주로 불렀다. 그러던 그가 수궁가 명창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것은 문화재관리국에서 그를 춘향가에서 수궁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변경 지정한 1974년부터이다. 광복 후 박초월이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배운 것으로 보아, 박초월이 유성준 문하에 있을 때 아마 전바탕은 못배우고 토막소리만 학습했던 것 같다. 1950년대 후반에 박초월은 수궁가가 특기인 임방울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때 박초월이 임방울과 교류하면서 직접, 간접적으로 임방울제 수궁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 여러 명창들이 이 박초월제 수궁가를 부르고 있는데 박초월 명창이 워낙 고음과 미성, 강인한 공력으로 불렀던 수궁가인지라 자칫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굉장히 저렴하게 들리기 쉬운 소리가 바로 이 수궁가이다.
  김순자는 우선 박초월 특유의 성음이 나온다. 김순자는 조상현한테 배운 정응민제 보성소리를 불러도 박초월 성음이 들어간다. 이는 김순자 명창이 얼마나 박초월제 판소리에 몰입하고 노력해 왔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점이다.
  김순자는 진양조에서 타루치는 부분, 방울목으로 곁목치는 부분 등이 박초월제 판소리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김순자 목에는 어정제 성음도 들어있고 고향인 진도 말투가 판소리 아니리에서 문득문득 나온다. 김순자 명창에 의해 박초월제 수궁가에 잘 삭힌 홍어 맛이 가미된 느낌이다. 진도의 끈적끈적하고 훈훈한 인심, 구수하고 다정한 성음이 들어있다.
  김순자 명창이 여러 유파의 판소리를 익혔고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나 본령이자 장기는 어디까지나 바로 이 박초월제 수궁가이다. 김순자 스승 최난수 명창 또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나 본령이자 장기는 어디까지나 바로 이 박초월제 수궁가이다.
  박초월의 수궁가는 동편제 명창 유성준이 일제 때 크게 유행시킨 바디를 이어받은 것인데 계면조를 흠모했던 박초월은 이 소리 역시 계면조 애원성을 많이 가미하여 불렀다. 그리고 같은 계열의 임방울, 김연수, 정광수, 유사 계열의 박봉술, 강도근보다 전체적으로 장단 속도를 다소 느리게 설정하여 불렀다.
  수궁가는 이 세상의 인간사를 그려낸 판소리이다. 토끼가 평소에 포수한테 쫓기고 맹수한테 쫓기다가, 자라의 유혹에 속아서 수궁에 들어가고, 수궁에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고, 세상에 다시 나와서 사람의 덫에 걸려 죽을 뻔하고, 독수리 밥이 될 뻔하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날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토끼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살이 희노애락을 느끼게 된다.
  수궁가 초입~<용왕 득병> 대목은 용왕이 병이 들어 탄식하는 장면부터 그 소문을 듣고 도사가 나타나는 대목까지 들어있다. <용왕 탄식>은 진양조에 계면조로, <도사 등장>은 엇모리에 계면조로 불린다. 곱고 높은 상청을 바탕으로 매우 구슬프게, 때론 아주 화사하게 이끌어가는 화려한 박초월제 수궁가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약성가>는 빠른 자진모리 장단에 우조-평조로 불리는데 이 대목은 붙임새가 매우 복잡하면서도 뛰어나 옛부터 유명한 소리이다. 수궁가에서 첫손 꼽히는 눈대목이다. <용왕 탄식>~<토끼 상소> 부분에서는 이 박초월제 수궁가가 정광수의 소리와 다른 여러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토끼 화상>은 흥겨운 중중모리에 평조-계면조로 불리는데 김순자의 타고난 좋은 목성음이 유감없이 잘 표출되어 있다. 이 <토끼 화상>은 옛 동편제 명창 박만순의 더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목이다. <별주부 모친과 아내의 만류>는 김순자가 특기로 하는 소리로서 본 음반의 대표적인 걸작 녹음이다.
  <고고천변>에서는 밝고 화사한 김순자의 성음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데 거센 물살을 이리저리 헤치며 나가는 듯 강하게, 때론 유연하게 밀고 당기는 수법이 돋보인다.
  <날짐승 상좌 다툼>, <길짐승 상좌 다툼>, <별주부가 호랑이 만나는 데> 대목은 이 박초월제 수궁가가 정광수의 소리와 여러 차이점을 보인다.
  <별주부가 토끼를 유인하는 데>는 녹음을 남긴 옛 명창이 매우 드물다. 이 대목은 이면을 살려서 부르기가 무척 어렵고 잘 부르지 못하면 따분함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명창들이 녹음을 꺼린 것 같다. 박초월제의 뛰어난 면모가 잘 발휘된 녹음이다.
  <토끼가 용왕을 속이는 데>는 수궁가 중 가장 긴장이 고조되는 대목으로서 수궁가의 여러 소리 가운데 가장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잘못 부르면 토끼가 용왕을 속이고 세상에 살아 나가는 내용이 억지로 만들어낸 재미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목은 수궁가 중에서 가장 공들여 불러야 하고 이 대목을 얼마나 잘 부르느냐에 따라 수궁가 공연이 성공, 또는 실패가 판가름난다고 할 만큼 중요한 소리이다. 김순자도 자신의 기량을 잘 살려 여기 좋은 녹음을 남겼다. 판소리에서 사연을 말하는 대목은 거의 대부분 가장 기본이 되는 장단인 중모리로 부르는데 토끼가 간을 두고 다닌다고 거짓으로 그 내력을 말하는 이 대목 또한 중모리로 불린다. 경박한 인물인 토끼의 말은 계면조로, 근엄한 인물인 용왕의 말은 우조로 소리하여 두 인물의 품격을 그려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태연하게 말하는 토끼와 점잖으면서도 다급하게 질문하는 용왕의 심리 묘사가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끼가 수궁에서 나오는 데>는 흔히 토막소리로 떼어 많이 불리며 단가로 분류되기도 하고 가야금병창으로도 많이 불리는 소리이다. 토끼가 수궁에서 죽을 뻔했다 살아 나오는데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죽다 살아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얼떨떨하여 기뻐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간을 두고 왔다며 용왕을 속이고 수궁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황급히 수궁을 빠져 나오지 않고 느긋한 진양조로 나온다. 그리고 경직된 형상으로 조심조심 나오는 토끼를 우조로 그려냈다. 그러다가 토끼가 살아 나가는 기쁨을 실감하고 그리운 고향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나중에는 장단을 빨리하여 중중모리에 석화제로 흥겹게 세상을 향해 나간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로 시작되기 때문에 <가자 어서 가>라 이르기도 하는데 백경순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가 별주부에게 욕하는 데>는 중모리에 추천목으로 불러서 이면을 살렸다. 이 소리는 염계달의 더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이후의 소리는 박초월제 수궁가가 정광수의 소리와 약간 다르게 불린다.
  토끼가 그물에 걸렸다가 살아나고 토끼가 독수리 밥이 될 뻔했다가 살아나고 한편 별주부는 정성으로 용왕 병을 직차하고 토끼는 산중에서 차츰 늙어갔다고 하면서 이 수궁가 완창은 끝을 맺는다. 이 끝맺음은 엇중모리에 평조로 불린다.

20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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