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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극단(대표:박정희)의 소리 대서사극 '달의 소리'
2006년 5월 17~2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공연. 수~목 7:30, 금~토 4:00/7:30, 일 4:00시.
음악자문: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 연출:박정희, 작가:김명화, 작곡:김대성.
출연:박웅(치자) 이연규(공주) 김은석(궁연) 이지하(각비, 혼령) 김정호(현덕) 성노진(율도) 이성근(상사) 김유리(무녀).
악사:박경소(가야금) 황경호(대금) 김진혁(타악) 천지윤(해금), 무대 디자인:지현숙 박찬호, 의상 디자인:김경인.
조명 디자인:김철희, 안무:최준명, 소품:박찬호, 조연출:유림 송희준 황우성, 기획:공연기획 MoA.
후원: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연극협회, 한국연극협회.
* 아래 글은 2006년 5월 17~2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연극 '달의 소리' 공연 안내 인쇄물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달의 소리: 극단 '풍경' 작품, 연출:박정희, 음악자문:노재명, 작가:김명화, 작곡:김대성.
자연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음률, 붙잡을 수 없어 더욱 가슴에 박힌 소리
한국의 음악과 풍류 정신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877년 에디슨이 유성기와 음반을 발명했고 1878년 그는 수첩에다 그 발명품 용도를 음악의 녹음과 재생 등등이라 적었다. 이 음반 매체의 탄생은 이후 인류 음악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았는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세계 도처의 다양한 음악들이 많이 사라지고 획일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 기술이 출현하기 이전 이 세상 예술 가운데 글, 그림, 공예, 건축물 이외에 음악이나 무용 등은 제대로 기록하기가 어려웠다. 무용의 경우 벽화 등 그림으로 일부 묘사하기도 했고 음악은 악보라는 수단을 강구하여 기록해 보기도 했으나 연속 춤 동작이나 소리의 섬세한 음색, 성량, 강약 등을 풍부하게 기록으로 남길 수가 없었고 더구나 가무악을 기록물로 대량 생산 배포한다는 것은 사진, 음반, 영화 필름의 발명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최첨단 기계가 병풍처럼 에워 싸고 있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예전의 가무악 분야가 그렇듯 대단히 취약하고 불편해 보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즉흥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할 수 있었다. 또 훨씬 자연미가 있었다.
특히 한국 민속음악의 경우는 성음, 농현 등을 중시하는 특성상 악보로도 나타내기가 더더욱 어려웠고 한국에 음반, 방송과 같은 신기술도 더디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불과 수 십년 전까지만 해도 전통사회의 음악 양상이 상당 부분 그대로 존재했었다. 최근 수 십년 동안 국악이 급격히 변질, 파괴된 것이지 그 이전에는 아주 오랫동안 음악이 고르고 왕성하게 전승되어 왔다.
지금이야 명창들도 녹음기를 앞에 놓고 판소리를 배우고 그러다 보니 판에 박힌 소리를 하게 되고 토속민요 조차 방송 매체 등의 발달로 개성이 사라지고 모두들 거의 비슷한 소리로 통일되어 간다.
허나 20년 전만 해도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작은 한 마을의 민요를 살펴 보더라도 무척 변화무쌍하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면모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명창들끼리 비교해 보아도 판소리가 완연히 달랐고 똑같은 명창이 하는 소리인데도 어제 한 소리와 오늘 부르는 소리가 또 확연히 달랐다. 대명창의 경우 그 즉흥 작편곡 수준이 곡마다 모두 경이로울 정도로 굉장하였다.
염라대왕이 삼촌일지라도 팔도 영웅호걸 어느 누구든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것 만큼 안타까운 게 없었겠으나 녹음이라는 것이 없던 그 옛날 붙잡을 수도 없이 공중을 가르며 사라지는 대명창의 그 황홀한 소리들은 또 얼마나 아까웠겠는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살았던 시절엔 사람 자체가 녹음기요 확성기이자 음파 탐지기처럼 감각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었고 인간의 신체를 손상시키는 공해도 없었고 그래서 명창과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명창도 많았다. 단 한번 듣고 스승의 소리를 익혔다고 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야만 했다는 원로 명창들의 증언이 많다.
귀명창들 역시 단 한번 울려 퍼지다 그 즉시 사라지는 대명창의 소리를 각자 있는 힘껏 간직하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 동원하여 가슴에 새겼다. 오늘날에도 몽골인의 시력이 5.0 내외인 것처럼 전통사회 인간의 청력은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고 자연 환경 면에서도 그렇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좋았다.
지구상에서도 우리네 민족은 특히 가무악을 좋아했고 고도의 예술로 끌어올렸다. 쾌적한 자연 환경과 영리한 이땅 사람들에 의해서 탄생한 이상적인 문화였다. 대나무 마디, 소나무 나이테, 퇴적층 바위, 물소리, 새소리, 황소 울음소리, 천둥 번개음 등 대자연이 빚어낸 현상에서 규칙성과 원리를 관찰하고 응용하였다.
사람의 신체와 자연의 공기, 공간, 시간, 자연 소재 등을 고려하고 활용하여 만들어 가는 예술이 음악인 만큼 자연에 대한 탐구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할 것이다. 국악의 12음률, 우륵(于勒)이 지었다는 가야고 음악 12곡, 중모리 장단 12박 등이 우주 만물에 대한 고찰에서 나온 결과라 하겠다.
단군신화에 언급된 쑥과 마늘의 엄청난 약효가 오늘날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듯이 에밀레종, 그리고 징, 꽹과리 방짜 악기의 우수성도 차츰 드러나고 있다. 이 또한 인간의 신체 리듬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던 시절 자연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나무 모양을 억지로 깎고 다듬지 않고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휘어진 장승,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지은 재래식 화장실 구조, 자연의 일부로 어색함 없이 자리하고 있는 옛 정원 조성 문화, 철저히 자연 소재로 되어 있는 국악기, 이 모든 것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더불어 살았던 한국인의 고운 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는 국악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이동백 명창의 판소리와 같이 자연미 넘치면서도 공력이 깃들어 있고 흥청거리는 여유와 멋이 있는 음악들이 특히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음악의 독특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음과 최저음, 청아함과 텁텁함, 단맛과 쓴맛, 극약처방까지도 고루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음악이다. 맑기만 한 플루트 소리보다는 문풍지 떨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갈대청을 청공에 붙여 청아함에다 곰삯은 오묘한 맛을 가미한 대금과 같은 경우가 오미(五味)를 갖춘 소리라 여겼다. 극도로 청아한 소프라노 소리보다는 그 상태에서 약간 쉰 듯한 느낌이 가미된 음색을 안정적인 소리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고대 한반도에서 지금보다 오히려 훨씬 더 광활한 영역에 걸쳐서 여러 국가와 문화예술 교역을 하여 타국의 음악을 향악화했던 흔적도 많이 발견된다. 시대에 따라 집시 같은 음악가들도 있었고 지역별 토박이 전문 집단도 있었고 속세에서 벗어나 수도승처럼 음률을 연마한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판소리, 무속음악, 영산회상, 정가, 범패 등의 음악을 통해 음파 치료 신념을 가지고 소리로 아픈 사람을 낳게 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려고도 하였다. 만파식적, 여민락 음악 역시 사랑과 평화, 홍익인간 이념과 맥을 같이 한다. 오늘날 각종 음악 실험으로 밝혀지고 있는 음파가 인간과 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고대사회 때부터 이미 이 땅의 조상들은 알고 있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음악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시조창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풍류였다. 화살 같이 빨리 흘러가는 시간, 각박해져 가는 인생살이 속에서도 하염없이 느린 시조창을 느긋하게 불렀던 그 노인들의 해탈한 듯한 모습이 그립다. 땅이 방바닥인 것 마냥 편안히 딛고 앉아 하늘 우러러 땀 닦고 고개 숙여 나물 캐며 허공에 뿌리던 강원도 산골 아낙네들의 <정선아라리>가 한국 음악의 진수가 아닌가 한다.
왕산악과 우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몇 끼를 굶은 상태에서 밥상 위에 국을 몇 번 데워 와도 단소 삼매경에 빠져 기가 막힌 가락을 한없이 뽑아내던 전추산이 타계한지 반세기도 안됐는데 이제 그 또한 전설이 되었다.
득음에 이르게 되고 목표점에 도달하면 결국은 그 득도한 연주자 혼자인 것이다. 우주를 품은 채 홀로 적막공산에 거문고 소리 둥덩 슬기둥 슬갱 하며 무심코 하나, 둘 띄워 보는 거다.
풍류음악 자체가 어디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모두가 자기 심신 수양을 위한 몸짓이었다. 사용되는 국악기의 음향 자체가 흥행을 목적으로 한 대형공간용 도구가 아니라 정신 수양과 극히 절제된 소리 구조로 되어 있다. 나무 등 자연 소재로 만들어진 국악기에서 뿜어내는 소리 자체가 산림욕 기능이 있다 할 것이다.
빠듯한 시골 살림살이 고된 일이 많고도 많은데 어찌 그리도 신명이 나는지 엄청난 노동을 하면서도 연신 흥을 돋구는 노래를 지어가며 하는 지혜와 풍류 정신, 외유내강! 이것이 한국이었다. 이런 민족을 일러 한의 민족이라니. 초상집에서도 망자가 좋은 곳에 갈 것이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고 쓸어져 울고만 있지 않았고 며칠밤 지새우면서 유가족을 위로하며 잔치집을 방불케 할 정도로 춤추고 노래하였다. 상여에까지 광대, 악공을 조각, 장식하여 망자가 저승 가는 길에도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자연이 주는대로 밥 먹고 내 집에 누워 석양 바라보며 풀피리 불던 심성 곱고 슬기로운 한민족, 아무리 가난해도 풍류를 잃지 않았던 그 멋들어진 땅! 그것이 우리네 민족이 일군 무릉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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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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